제라르 전기
3 - 베르그 평야 (2)
「괜찮아요? 제기랄!」
사제는 루르브즈를 깨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아까 도서관에서 보았던 그 사제 말이다. 나는 재빨리 주머니에 있던 단 하나의 침을 꺼내 가늠해 보았다.
3시간은 아직 안됐다. 시간은 4분을 넘기지 말 것. 파팟!
「아, 아니?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동양의 침술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제 곧 괜찮아질 테니까요」
나는 순간적으로 이제 이곳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동주랑도 없는 곳에서 허송세월을 보낼 수는 없을 일이니까. 루르브즈와 작별 인사는 하기 싫었다. 사제는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에 바깥으로 나갔다.
4분이 다 되어갈 무렵, 나는 침을 뽑아 다시 반대쪽 눈에 꽂았다. 루르브즈는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듯 움찔거렸고, 나는 속으로 사제를 씹어대고 있었다. 루르브즈와 작별인사는 하기 싫다고 했잖아!
드르륵!
그 때 문이 열리며 사제가 들어왔다. 작은 가죽배낭이었는데 뭔가로 가득 차 있는 듯 했다. 식량이면 좋고, 돈이면 더 좋고. 그러고 보니 붉은 레이피어를 그간 까먹고 있었군. 나는 침대 옆에 놓아두었던(이곳은 내 병실이라는 것을 잊지 말도록!) 레이피어를 집어 들고 허리춤에 찼다.
사제는 내 검을 보더니 조금은 놀란 듯 했지만 금방 진정되었다. 나는 루르브즈의 눈 밑에 꽂았던 침을 빼 신속하게 주머니에 갈무리 한 후 일어섰다.
「저……. 데블레지아 씨? 흠, 안녕히 가십시오. 그 배낭 안에 여러 가지 필수품을 넣어 두었습니다. 유용하게 쓰일 겁니다」
「아, 정말 고맙습니다. 루르브즈가 깨어나면 전 나중을 기약하며 떠났다고만 해 주십시오. 이제 곧 정신을 차릴 테니까요. 자, 그럼 이만」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루르브즈를 뒤에 두고 신전의 문을 밀었다. 금속성의 마찰음이 울려 퍼지며 내 귀를 감돌았다. 제기랄.
제라르 전기
「이거 사제 녀석 정말 고마운데? 지도까지 넣어주다니.」
꽤나 친절한 녀석이다. 심지어는 그 귀하다는 포션까지 하나 넣어두다니 루르브즈가 그렇게 귀한 여자였던가? 그냥 보통 여사제 아니었던가?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소지품을 점검했다.
레이피어 하나, 대륙 지도 하나, 포션 하나, 돈(와우!) 3골드, 빵 3조각(하루분).
정말 눈물겨운 생필품이로군. 자, 대륙 지도를 좀 살펴보자. 그러고 보니 대륙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빼먹었던 것 같다.
이르 대륙. 최소한 내가 아는 대륙은 그거 하나뿐이다. 왜냐?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이곳 이르 대륙은 17개국으로 되어있는데 사실 나라랄 것도 없고 그냥 크고 번화한 도시 서너 개와 중소규모의 마을 대여섯 개가 모여 있는 형국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내가 살던 곳은 「오켈렌크」의 수도「이르메이지오」. 분명히 처음에 집을 나올 때 검문소를 지나쳤으니 난「이르메이지오」에서 벗어난 것이다. 지도를 보니 이곳의 지명은 정확하지 않지만「레닌」인 것 같다. 이런 도시도 있었던가?
그리고 동서양 합동 수련회장은 이곳,「레닌」의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놀클페」의 수도인「알카트리지오」. 이거 수도 이름이 다 비슷비슷한데? 작명센스가 비슷한 놈들이군. 거리는…… 축척을 대충 살펴서 계산해보면 얼추 280~300km. 상당히 먼 거리지만 한 달여 남짓한 시간이 남아있는 나로서는 넉넉하다. 대략 열흘? 천천히 가도 사나흘 남짓 더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건 어디까지나 걸어서 갈 때의 이야기고, 아마 말이나 낙타를 타고 간다면 닷새 만에 도착한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리고 난 말을 타고 갈 것이다. 사제가 넉넉히 돈을 주었기 때문에. 3골드면 보통 상공업자의 두 달 수입이다. 그러니 얼마나 횡재한 것이겠나?
말을 타고 지나가야 하는 것은「베르그 평원」이라는 넓디넓은 땅인데 총 거리인 300km중 절반이 넘은 200km가 바로 이 평원이다. 말 먹을 풀은 충분하다고 하니 걱정 없고 부담 없을 듯싶다. 경비를 조금 줄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합류했으면 좋겠는데 그럼 너무 늦어질 염려가 있다.
어라? 가만히 보니 다른 길이 있다. 비록 400km로 빙 돌아가는 코스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이라고 한다. 이름은…… 어라?「베르그 평원」?? 그럴 리가!
그러나 분명히 베르그 평원은 두 군데다. 허허, 이런 신기한 일이 있다. 나는 멀리 돌아가는「베르그 평원」으로 가기로 결정한 후에 동반자를 구할 수 있는 곳인 시장 부근의 여행자 숙소로 향했다.
시간이 남아서... 운 좋으면 한편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