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벽
화씨벽(和氏璧)은 고대 중국에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역사적 중요성을 발휘한 벽(둥근돌 모양으로 비취 원석)이다.
《한비자》에 따르면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강가에서 원석을 발견하여 문왕이 도장을 만들었다. 처음엔 변화가 초 여왕에게 원석을 바쳤으나 옥세공인이 가짜 돌이라고 판정을 내리자 분노한 여왕은 변화의 다리를 잘라 버렸다. 여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변화는 다시 돌을 바쳤는데 이번에도 가짜라는 판정을 받고 나머지 한 다리도 잘렸다.
문왕이 즉위하자 다시 옥을 바치려 했는데 다리가 없어 갈 수가 없자 변화는 원석을 안고 엉엉 울었다. 문왕이 이야기를 듣고 원석을 가져다 반으로 갈라 보니 과연 세상에서 가장 좋은 빛깔을 가진 옥이 나왔다. 문왕이 옥돌을 잘라 도장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천자를 계승할 때 쓰였으므로 옥쇄였다. 문왕은 변화에게 봉록을 내려 여생을 편히 살게 했다.
(위의 이야기의 년대가 맞지 않아서 믿을 수는 없다.)
세월이 흘러 조나라 혜문왕의 손에 들어갔는데, 이 소식을 들은 진 소양왕이 화씨벽과 성 15개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욕심 많은 소양왕이 약속을 지킬 리가 없다고 거절하면 강대국인 진나라가 트집잡아 쳐들어올 판국이라 혜문왕은 진퇴양난이었다. 이때 인상여가 사신으로가서 화씨벽으로 만든 옥새를 고스란히 돌려 받았으므로 "완벽귀조"라는 말이 화씨벽에서 유래 되었다.
조나라가 망한 뒤 진시황은 화씨벽을 빼앗아 천자를 황제로 명명하고 등극을 한다. 진시황은 남전옥으로 새로운 옥쇄를 만들어서 서류 결제용으로 사용했다. 화씨벽으로 만든 옥쇄는 천자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후 화씨벽은 진나라가 망하고 전한의 옥새가 되었다가, 효원황태후때 화씨벽으로 만든 옥새를 벽에 던져 깨지는 바람에 떼워서 사용하게 되었다. 후한과 위나라, 서진, 동진, 수나라, 당나라를 거쳤다가 오대십국 시대에 석경당이 요나라 군대의 힘을 빌려 후당을 치자 후당 마지막 황제 이종가가 천자옥새를 끌어안고 분신자살한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화씨벽으로 만든 도장은 단 하나로 천자의 계승용도이며, 남전옥으로 만든 전국옥새는 전국문서를 통일시킨 인장용 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