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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5월의 마지막 화요일, 경기 양평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는 침묵 가운데 홀로 빗속을 걷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이는 수도원 옆을 흐르는 작은 냇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길가에 핀 작은 꽃을 사진에 담기도 한다. 길가에 난 쑥을 뜯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저 고요히 빗소리에 잠기는 이도 있다. 이들은 생태사도직 입문강좌인 ‘하늘 · 땅 · 물 · 벗’의 제14기 수강생들이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는 매해 각 본당 우리농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생명과 땅을 살리는 밥상, 그리고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길에 관한 교육을 펼쳐왔다. 지난 4월 23일부터 매주 화요일 총 6주간 진행된 강좌에서는 원광대학교 김은진 교수가 GMO식품의 종류와 위험성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기도 하고, 가톨릭농민회 김영길 씨가 농촌의 현실과 우리농의 생산 기준에 관해 전하기도 했다. 마지막 교육이었던 5월 21일에는 청주 가톨릭농민회 음성분회를 찾아 직접 농민들을 만나고 감자밭의 풀을 뽑았다. 6주 강좌의 마지막 날이었던 이날은 생태 피정이 진행됐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맹주형 실장은 피정에 앞서 “오늘만은 누구의 엄마, 아내, 아빠가 아니라 그저 나로 존재하시길 바란다”면서 “생태적인 것은 느림이다. 밥도 천천히, 걸음도 천천히. 그렇지만 느림 속에 깨어 있어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인 이영선 신부(광주대교구)는 오전 강의에서 “빠름과 느림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라며 “기준은 오로지 몸의 속도”라고 말했다. “소는 1년 반부터 어른이 되기 시작해서 3년 정도 돼야 완전히 어른이 되는데, 그렇게 키워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 그러니 성장촉진제를 먹이고 풀을 먹는 소에게 돼지 사료인 옥수수를 먹인다. 뿐만 아니라 뼈를 갈아서 사료에 넣는다. 그 소를 사람이 먹는다. 사람이 어떻게 될까?” 이 신부는 또 신앙인에게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가 되는 것’인데, 구체적인 방법은 ‘먹고 먹힘’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먹는 것과 나와의 관계는 중요하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하나가 되는 길이 바로 ‘받아먹어라’ 하신 말씀에 있기 때문이다. ‘동물의 왕국’에서 먹고 먹히는 관계를 약육강식이라 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적 해석이다. 신앙인에게 그것은 헌신이다. 이 원리가 아니면 자연은 존재할 수가 없고, 하느님의 눈에는 이런 자연스러운 세상이 보시기에 좋았던 것이다. 온갖 생명들이 먹고 먹히는 데 어색함이 없는 세상이다.” 이 신부는 먹고 먹히는 행위의 신앙적 측면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농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구상의 직업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농사일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을 성직자라 부르지만 농사야말로 성직 중의 성직이다. 인간이 살아갈 생명의 힘을 생산해 내는 것이니 그 이상의 거룩한 직업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피정을 마무리하면서 교육에 참가한 우리농 활동가들은 건강한 밥상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해 농촌과 땅으로 번져가는 마음을 나눴다. 유정자 씨(번동성당)는 충청도 예산이 고향이라며, “엄마가 농사를 지으실 때 옆에서 놀기만 했다. 다섯 번째 강좌 때 직접 감자밭을 매며 엄마 생각이 참 많이 났다. 살아계셨다면 엄마를 안아드리고 일도 도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주말농장을 가꾼다는 최낙숙 씨(구파발성당)는 “화학비료를 주지 않으려 애쓰는데 어느 날 밭에 가보니 쌈채소가 쑥쑥 자라 있었다”며 “남편이 잘 자라는 다른 밭 농작물을 보고 유혹을 참지 못해 화학비료를 뿌린 것이다.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돼 속상했다”고 말했다. 최 씨는 “배추나 열무에 벌레가 많으면 농약을 뿌리고 싶고, 두세 배로 자라는 다른 이들의 농작물을 보면 비료를 뿌리고 싶다”면서 “농부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가톨릭농민회 분들이 참 대단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희영 씨(고척동성당)는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언제나 먹을 수 있도록 놔두었던 커다란 과자 박스를 교육을 받으며 없앴다”고 했다. 이 씨는 “중1 때까지 부모님이 담배 농사를 지으셨는데 그 옆에 심었던 울퉁불퉁했던 큰 토마토가 생각난다”며 “아이들과 주말농장을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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