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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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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가 어찌 돌아가던 우리까페는 바깥세상과는 거의 무관한 듯 잘 돌아갈 것만 같더니 요즘 들어선 손님들이 제법 많이 줄었다. 그래도 전부터 오던 손님들은 (그들을 우린 '찐단골'이라 부른다) 여전히 매일 개근들을 한다. 다행히 그래도 우리는 임대료를 안내니 문은 안닫고 잘 굴러가고 있다. 그 찐단골들은 우리에게 제발 문은 닫지말고 버텨 달라고 하는데 만일 우리 까페가 문을 닫는다면 그것은 나라가 망하던지 지구의 종말이 오던지일 것같다.
우리 친구들은 인사동에서 점심을 먹고나면 근처의 한 큰 까페에 가서 대화를 계속하는데 그 까페는 항상 손님이 넘쳐 앉을 자리도 없다. 지난 가을 그 주인에게 나는 '나도 시골에서 작은 까페를 하는데 요즘 손님이 많이 줄었어요. 이곳은 정말 손님이 많아 부럽네요.'라 입에 발린 인삿말을 했더니 그녀는 '아유 말도 마세요, 임대료가 장난이 아니에요.'라며 한숨을 내쉰다. 재주만 열심히 넘지 수익을 보는 주인은 따로 있다는 뜻이다. 나는 솔직히 그렇게 붐비는 까페는 조금도 부럽지 않다. 평화와 낭만이 없는 시장바닥같은 까페.
지난 달 초에 서울 한 아파트15층에서 부부싸움을 한 후 엄마가 6개월된 딸을 베란다에서 내던져 사망케 했던 사건이 있었다. 나는 충격을 받아 한동안 멍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차라리 잘된 일이다 싶었다. 그 아기가 커서도 그 부모는 매일 싸울텐데 그건 산 지옥일 것이고 그 부모는 필경 그 딸을 사랑으로 따뜻하게 키우지도 않을 것이니 그 지옥을 맛보기전에 차라리.. 그런 환경에서 큰 애들은 커서 교도소에 가 앉아있거나 주위 시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를 확률이 높다.
6개월이라면 던져져 내려갈 동안 사태를 깨닫지도 못했을 것이고 (아마 방글거리며 웃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딪치는 짧은 찰나엔 고통을 못느꼈을 것으로 보고. 아기야 다음 생에 좋은 부모밑에 다시 태어나 행복하게 살아라.. 나는 눈을 감고 묵념을 했다.
그 몇일 후엔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의 패악에 결국 자살을 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런 사건은 하도 빈번하게 일어나 새삼스럴 것도 없지만 나는 그런 사건이 날 때마다 이 지구상 모든 나라들 중 한국이 가장 부끄러운 지옥의 나라라고 자책한다. 총생산량 3만불이니 뭐니 떠들어봤자 진짜는 가장 최악의 부끄런 나라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절대적 존재였는데 그동안 점점 우리는 왜 이런 부끄런 나라가 되었을까. 그런 사건들의 공통점은 꼭 여선생에게 남자학부형이 공격한다는 것. 그들이 남선생들에게 대드는 경우는 없다. 심지어 남자애들도 여선생에게 폭력으로 대 든다. 여자애들이 남녀선생들에게나 남자애들이 남선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는 경우는 없다. 조선시대 때 부터의 남존여비사상은 오히려 갈수록 더 굳건해 지는 것일까.
지난달엔 큰애부부가 와서 같이 밖에 나가 외식을 하며 즐거웠는데 사위는 슬슬 내 눈치를 보며 자꾸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연인즉 큰애는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영어회화학원에 나가 몇달간 열심히 가르쳤는데 그것도 남자애들이 어찌나 이 여선생말을 안듣고 속을 썩이는지 그만두고 새 외국인회사에 취직이 되어 잘 다니고 있는데 문제는 사위의 회사도 그 후 문을 닫아 그는 곧 아무리 다른 회사를 알아보려 발 부르트게 다녀봐도 사람을 채용하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큰애가 남편을 위로하며 지가 돈을 벌테니 집에서 쉬라했단다. 본래 음식솜씨가 뛰어났던 그는 마누라를 위해 깍듯이 밥상을 차리고 집안 청소니 뭐니 구석구석 거울처럼 반짝이게 해놓고 큰애 출퇴근도 자기차로 모셔다 주고 저녁에 모셔오는 등 큰애는 오히려 전보다 훨씬 편하고 좋다한다.
큰애는 직장일 중 챠트만드는 일에 좀 서툴러 골치가 아팠는데 사위는 그 일에 능란하여 큰애는 출근하면 먼저 그 일꺼리를 사위에게 보내고 차로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간 사위는 컴앞에 앉아 오전내내 그 챠트를 날씬하게 작성해서 보내주니 큰애는 훨씬 일이 수월해진다 한다. (혼자 어디 중간에 샐 틈도 없겠다)
본래 우리애는 살림솜씨도 없고 음식솜씨도 없지만 맞벌이 할 때는 그래도 같이 해본다고 좀 해봐도 그저그랬다는데 이젠 떳떳하게 손하나 까딱안해도 되니 훨씬 편하고 좋단다. 집에와서 카우치에 떠억 뻗어 누워버리면 남편이 알아서 온갖 써비스를 해주고 갖다 바쳐주니.
그래서 내가 사위에게 '자네가 훨씬 수고가 더 많구먼. 저애는 본시 음식도 잘 못하고 살림솜씨가 없어..' 해 줬더니 기뻐한다. 그냥 위로하려는 말이 아니라 내 솔직한 말이다. 학생 땐 출장 가정교사일로 바빴고 졸업전 12월에 이미 취업이 되어 그후 한번도 집에 있어본 적이 없으니 내가 살림살이를 가르칠 틈도 없었다. 내자신도 직장인으로 바빴는데 남편이란 자는 어떤 경우도 도와주는 법이 없었으니.
경상도 남자들의 여자를 대하는 단점을 자알 아는 나인지라.. 그 점에선 평생 경험한 바로 나는 박사학위 논문이라도 써낼 수 있다.
전에 까페에 올린바 있는 글이지만 큰애 한 친구의 언니는 서울의 큰 백화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직장을 닫는 바람에 쫒겨나 그는 맨날 집에서 티비나 보고 빈둥거리고 있었다. 그 아내는 온종일 서서 억지로 웃으며 손님접대하느라 저녁에 집에 오면 볼이 아프고 종아리가 아파 잠들기도 힘든데 집에 오면 남편은 쏘파에 누워 티비만 보고있고 집은 엄망인데 그 아내는 남편과 초등학교 아이들을 위해 또 저녁식사준비를 해야 한다고. 아침에 억지로 일어나 다시 아침밥을 차려주고 출근해야하는 그녀.. 지금 쯤 그 가정은 어떻게 돼 있을지 궁금하다. 아니 희망이 안보여 가슴만 아플테니 차라리 알고싶지도 않다. 아마도 그런 가정이 전국에 꽤 있을 것이니. 그런데 나의 사위는 같은 경상도 남자라도 사뭇 다르니 그점 내가 그에게 감사해야 할 판이다.
한번 티비에 맞벌이 부부의 살림에 대한 프로를 보여주는데 남편들이 제법 살림을 잘 도와주는 가정들을 골라 취재한 것이었다. 마지막에 보여주는 집은 그 중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로 여자가 요리를 하면 남자는 애를 보고 청소를 하는 등 일을 효과적으로 분할해서 잘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억에 남는 남자의 마지막 말, "일을 하면서도 내 머릿속엔 항상 이건 아내가 해야하는 일인데 내가 대신 해주는 거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사위가 작은애에게 요즘 까페는 어찌 되고 있냐 물으니 '전보다 손님수가 거의 반으로 줄었어요. 그래도 굴러가긴 한데 전깃세 까스비같은 게 더 오르지만 않으면 좋겠어요.'하니 '처제, 문 닫게 되면 언제든지 이 형부에게 말해 도와줄 테니' 라해서 내가 반농담으로 '아 자네는 백수면서 어찌 돕는단 말인가'했더니 '어머니, 저 그동안 저축해둔 게 제법 많아요'하며 활짝 웃는다. 참 순수한 모습이다 싶으면서도 내 가슴속엔 찬바람이 스치운다.
사위집 식구들은 형제들이 모두 부산에서 대단한 부동산 재벌이라 누나 한사람은 해운대 바닷가에 무슨 마린 뭐라는 아파트도 가지고있는데 월세로 매달 8백을 받는다 한다.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진다. 아 그러니 초등학생들 장래 꿈이 건물주라 하지. 나는 그 꿈이란 걸 듣고 애들에게 만정이 떨어졌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럴만도 하겠다싶다. 8백만이 매달 생긴다면 그 지독한 대입시지옥 취업지옥에서 일단 벗어날 수 있고 장가도 갈만하다할 것 아닌가. . 얼마나 그 걱정에 짓눌리고 있으면.. 그건 아이들 잘못이 아니라 모두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의식 아닌가. 그런 가치관을 심어놓은 것도 다 부모영향이고.
그 누나는 그 외에도 건물이 여러채 있는데 건물하나만 해도 월세가 거의 1억원넘을 테고 여러채라면.. 그래서 담보로 다른 건물을 차례차례 사들여가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점점 부익부가 되는 것이다. 그 집 가족들은 머리도 나쁘지 않고 한가지 목표에 파고드는 집중력이 있어 부동산을 타겟으로 삼은 경우지만 만일 그들이 학문에 뜻을 두었다면 국내 유명한 대 학자집안이 돼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방향으로 유도하지 않고 정부가 하는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수백 수만사람이 나누어 소유할 자산을 한사람이 다 차지할 동안 점부는 왜 그것을 저지못하는가. 그들이야말로 정부의 탄탄한 지지기반이라 절대로 지켜줘야 하는 것인가.
그중 막내동생인 사위는 그동안 서울에서 직장생활만 열심히 하며 저축만 했지 부동산을 모으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할까. 내 사위가 수만명 분의 부동산을 혼자 차지한 도둑이었다면 끔찍할 뻔 했다. 국민의 거의 반수가 집이 없는 판에.
언젠가 내가 사위에게 못참고 물어보았다. '윤통이 잘한 게 무엇인지 한가지라도 있으면 말해봐라' 했더니 그냥 하하 웃기만 한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그 집안 모두 항상 변함없이 독재던 무엇이던 가진자들 편인 여당 즉 정부측 편인데 마치 집안 대대로 기독교면 자녀들은 자연히 어떤 비판도 없이 어려서부터 세뇌되어 같이 기독교인들이 되는 것과 같다. 나의 그 질문은 그에게 왜 기독교인이 되었나 라고 따져보는 것과 같다. 그는 자기 가족들에 대한 어떤 비판의식도 없이 그 분위기속에 그냥 습관적으로 따라 갈 뿐이다.
그 가족같은 이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변화없이 자기들을 '그냥 이대로'두고 건들지 말라는 것. 남들이야 굶어죽든 말든
자기들관 상관 없는 일이다. 통일이야말로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단어다. 그러니 통일을 싫어하는 정부세력과 짝짜꿍이 맞을 수 밖에. 또한 한국의 통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주위 나라들과도 그들은 한편이 되어 친*파들이 될 수 밖에 없고 2찍들이 될 수 밖에 없다.
일제시대 때 호남평야의 부유한 지주들은 나라야 어찌되었던 친일파가 되어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자제들 역시 기생 오입질 등으로 하루하루를 주색으로 탕진하고 있었지만 그중에 많은 아들들이 자신 집 장롱속의 종문서들을 꺼내 불태워 버리고 집을 뛰쳐나가 항일운동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한다. 아버지 동지중에 그런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데 그 때는 영호남 분열이 없이 모두 한 민족의 뜨거운 사랑으로 뭉쳐 있었다고 한다(아버지 고향은 경북 영덕) 아버지가 말년에 중풍으로 누워계실 때 살아남아있던 그 몇분들이 병문안을 오셨었는데 지나온 지난했던 삶과 현재의 삶을 나타내는 그분들의 옷차림은 남루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나타나던 범상한 그 품위와 기개에 나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자주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을 언급하시며 호남은 특별한 의향(義鄕)이라 하셨는데 1929년 광주학생운동도 1919년 3.1운동이래 전국적으로 퍼진 가장 큰 민족의 항일투쟁이었다하셨다. 그 때 아버지는 이미 20대로 일제 경찰들간에 벌써 꽤 이름이 나 있어서 무슨 사건만 나면 예비검속으로 미리 유치장에 잡혀들어가 꼼짝없이 한두달 앉아있는 바람에 그 시위에는 참석도 못했다며 분개하고 계셨다.
1980년 5.18 광주사태를 보시면서도 아버지는 광주의 그 민족정신은 조금도 사그러들지 않았다 하시며 그 당하는 민중들 그리고 권력을 휘두루며 폭력을 행하는 세력들의 성격은 여전히 같다고 뛰엄뛰엄 말씀하셨다. 그 후 정신이 왔다갔다 하시다가 '89년에 제자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숨을 거두셨으니 참으로 한많은 고통스런 삶이셨다. 지하에서라도 그 한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으실 것이니..
나의 아버지가 투병하시는 동안 동지들은 차례차례 모두 먼저 세상을 떠나버리셨지만 그분들의 마지막 소원은 모두 단 하루라도 조국의 통일을 보고 가는 것이었다. 한국인들의 모든 가치관의 갈래는 '통일'이란 단어에서 나뉘어진다.
나는 내 사위를 볼 때마다 그는 참좋은 남편이고 사위지만 아까운 놈이구나.. 왜 비판의식이란 없는가 싶어 가슴속에 찬바람이 인다. 사위는 이번에 이재명이 흉기로 목이 찔려 쓰러진 바로 그 도시 출신이다.
첫댓글 저기 글쓴분 지금 살고계신곳이 어디신지 궁금합니다...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저는 지금 외진 곳 산비탈에 은둔중인 셈이라
공개하기는 좀..
요즘은 문화시설이 잘 발달돼있어 불편한 것
보단 도시의 단점이 덜해 좋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그래도 산비탈이 공기도 좋고 인적도 드물며 물도 맑아서 건강한 생활을 하기에는 도시보다 나을 것입니다.
까페라면 인터넷까페를 말하시는건지 아니면 커피음료 파는 까페 말하시는건지?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기원합니다.🙏
윤석열 조국은
대한민국이 아니고 일본이다요
그래도 윤석열이는 한국의 대통령이다고 항변 하시는 분
그거야 왜구와 친일파들의 세뇌작전에 홀라당 속은 결과
윤석열 선택 하라고 얼마나 지랄한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민족주의가 아무리 잘못해도
우리 민족이 말살정책까지 안간다요
윤석열 선택하니 어때요
윤석열 특출하게 잘한일
조국인 일본 구하기 위해서 방사능에 오염된 먹거리 들여오자나요 오염된 물 까지 들고 와서 지랄이니 대선 투표에 윤석열 선택한 자신의 손목지을 저주 해라
윤이 홍범도를 싫어하는 이유는 쏘련 어쩌구
핑계를 대지만 실은 자신의 조국인 일본 군인
들을 장군이 대거 죽여댔기 때문.
그는 조국의 먹거리가 오염됐다며 트집잡는 걸
아주 싫어한다. 일본 해산물을 100% 사먹어
한국인들이 다 죽어 없어지면 그는 오히려 만족할 것.
그가 북한을 극도로 증오하는 것은 자신의
조국이 싫어하기 때문. 그래서 그에게 북은
같은 조국이 아니라 완전 붕괴되어 없어져야할
웬수다.
그날을 기다리며,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새해 건.행 하셔요.....
이곳에 오면 바깥 세상과 달리 나의 생각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 기분이 좋습니다.
정치권을 들여다보면 짜증만 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내가 발 딛고 사는 곳이니
작은 목소리나마 내며 살아가야지요. 언젠가는 좋은 세상이 오겠지요? 힘 내시기 바랍니다.
몇해전에 발표된걸 보니까
한국에서
부동산, 건물 아파트를 제일 많이 소유한 사람이
부산에 사는 사람인데 603채를 소유하였다고 함,
부동산재벌인 셈이지요
평생 동안 1채의 집도 없는 사람들이 있고
2, 3,5채를 넘어 수십, 수백채를 사람들이 있고
극과 극으로 나뉘지요
배가 터지게 재산이 많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째지게 가난하여 가족 동반자살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뉴스에 나오고 있지요
평균 40분에 한명씩 생을 마감하여
자살공화국이란 오명도 받고있지만
자살원인 중에는 경제적 궁핍이 제일 크다고 하지요
경제 10위 안에 든지도 퍼그나 되였지만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극한으로 가고 있지요
이렇게 된데는 1차적으로 정부의 정책에
제일 큰 문제가 있지요
공감되는 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