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앞에 한 부자 청년이 와서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계율을 지키라고 하신 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19:21)
고 하시니, 그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간다. 그 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부자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쉬우니라."(마태복음 19장 24절)
“돈을 사랑함이 만악(萬惡)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이 말씀은 단순히 부자는 천국에 못 간다는 것이 아니라, 재물에 집착하여 마음을 빼앗긴 자는 해탈하여 천국으로 가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당시 부유한 상류 귀족층이나 제사장, 권력자들과 가까이 한게 아니라 항상 소외된 자, 병든 자, 가난한 자, 죄인들과 함께 하시고 이들을 도우셨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
이 정신은 예수님의 가장 본질적인 자비와 박애의 표현이다. 예수님은 귀족이나 부자들이 아닌 가난하고 고통 받는 자들과 함께 하셨을 뿐 아니라, 그 고통을 직접 짊어지셨다. 또한 제자들에게도 함께 고통을 나누라고 가르치셨다.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2)
아울러 선행은 남에게 과시하거나 댓가도 바라지 말고, 드러내지 말고 무심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義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너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태복음 6:1-6)
아울러 사람들을 위해 진리를 전하는 등 의로운 삶을 살다가 고난이나 희생을 당한 자에게 하늘의 복이 주어진다고 하였다.
"義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5:10)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이 유대 제사장들의 손에 장악돼 있었는데, 그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신도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힘없는 민초들의 지지를 받는 ‘선지자’는 누구든 그들의 기득권적 권위에 위협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민중의 사랑을 받는 예수의 등장은 바로 유대 제사장들에게는 자신들의 이익(기득권 유지)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기에, 그들은 예수를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 본디오 빌라도에게 예수를 처형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오늘날 정당을 만들어 정치에 관여하고 거짓선동으로 좋은 사람을 음해하고 나라를 혼란하게 만드는 부패한 종교인들과 그 당시 예수를 죽이라고 외친 유대 제사장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바른 목회자라면 예수님의 박애 정신을 몸소 실천은 못하더라도, 혹세무민하는 나쁜 짓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장 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