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無一有長(백무일유장):뛰어난 것이라곤 하나도 없으면서
識字粗文章(식자조문장):학자로 살면서 글을 써댔지
唾嚼古今粕(타작고금박):고금의 껍데기들을 음미하며
糊塗眞妄相(호도진망상):진망의 보습들을 뒤섞였다오
爲充妻子腹(위충처자복):처자식의 배고픔을 채우려고
忍賣聖賢糠(인매성현강):성현들의 찌꺼기를 팔았었네
苦演人間戱(고연인간희):인생살이를 힘들게 엮다보니
曲終已夕陽(곡종이석양):어느덧 내 생애도 다 끝나가누나
중천 김충렬 선생님(1931.3.20~2008.3.4)께서는 강원도 문막에서 태어나시고 그곳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기로 이름나셨고 군제대를 위해 유학시험을 보시고 대만으로 유학을 떠나 동양철학의 대석학이신 방동미(方東美) 교수께 지도를 받으셨습니다. 대만 문화대학(文化大學)에서 교편을 잡으시다가 귀국하여 경북대(慶北大)에서 후학을 지도하시다가 1970년에 고대로 오셨습니다. 저는 1976년 사회학과에 다닌 관계로 대학 2학년 때에 선생님의 중국철학 강의를 처음 듣게 되면서 비로소 사승의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을 철학과로 들어가 드디어 선생님의 문하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중천선생님의 자조자영을 음미하자니 자꾸만 못난 제자신을 뉘우치게 됩니다.
첫댓글 박학다식하신 선생님께서 철학을 하셔서 자신을 되돌아 보시는 듯,,,
이 봄이 마음 따뜻한 봄날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청하 선생님.
중천 선생의 한시 작품이 많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