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자는 타는 듯한 갈증에 눈을 떴다.
침대에서 내려 서는데 구석에 시커먼것이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낮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로 그것이 커다란 개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미자는 다시 두발을 침대로 올리고는 남편을 깨웠다.
"여보, 여보..일어나봐. 어서"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남편은 흡사 수면제라도 잔뜩 먹은듯 움직이지를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을 흔들때 느꼈던 몸서리쳐지게 차가움은 산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놀란 마음에 다시 남편을 건드렸다.
"아악!!"
남편의 얼굴은 흡사 형광물질이라도 발라놓은 듯 시퍼렇다 못해 빛이 났고 눈은 어디 간건지
움푹 패여있었다. 그리고 남편의 가슴에 꽂힌 부엌칼은 몇년전의 죄를 상기시켜 주었다.
다시금 침대를 내려 서려니 개가 또다시 으르렁 거린다.
미자는 그 개도 살아 있는 그런 흔해빠진 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개가 목이 잘려 덜렁거리면서도 저런 시퍼런 안광을 내뿜을 수 있겠는가.
남편의 시체와 으르렁거리는 개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미자는 또한번 비명을 지를수
밖에 없었다. 이불 밑으로 차가운 무엇인가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차가운 손길을 뿌리치고는 무작정 안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조명등이 들어와 앞을 보기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미자는 거실 한 가운데서 얼어붙어버렸다.
현관에서는 남편의 시체가 밧줄에 목이 매인채 바람에 커튼 흔들리듯 흔들거리고 있었다.
혀가 믿을수 없을 만큼 빼어져 나왔고 안구 한쪽이 빠져나와 덜렁 거리며 그녀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다. 방안에 있는 조금전 자신이 본 남편의 시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깨를 매만지는 차가운 손. 고개를 돌려보니 언니였다.
자신의 손으로 죽인, 자신과 남편의 손으로 땅속에 묻은 언니였다.
있을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현실이었다.
다리가 덜덜 떨리고 온몸에 식음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주저앉은채 언니를 쳐다보며 엉덩이와 다리를 이용해 기었다.
등에 닿는 서늘한 감촉에 고개를 들어보니 자신이 죽인 조카가 있었다.
금방 물에서 나온듯 물을 뚝뚝 흘리며 미끄덩거리는 몸을 하고 있었다.
미자는 더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려 해도 풍선에서 바람빠지듯 쉭쉭하는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려 하니 숙자가 기르던 개들이 목을 덜렁거리며 다가왔다.
더이상 갈곳이 없었다. 미자는 눈을 감으채 누웠다.
다리사이가 축축한것이 오줌을 싼 것이다. 담담해서 눈을 감고 누운것이 아니었다.
그저 이 고통이 빨리 지나가기만 바랄뿐이었다.
2층에서 아이와 남편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그럼 안방과 거실에 있는 남편은? 하고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그 목소리들 역시 미자를 고통스럽고
무섭게만 할 뿐이었다.
수많은 손들이 미자를 더듬었고 그 손길들은 온몸을 찢어놓는 것 보다 더 고통스럽게 했다.
다음날 저녁뉴스에는 돈때문에 자신의 언니를 죽인 강미자와 그를 도운 이명수라는 놈에 대한것이
나왔다. 자세하게 그 년놈에 대해 나오지는 않았지만 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미자라는 년은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옷을 입고 거실 한 복판에서 오줌을 싸며 춤을 추고 있었고
남편이라는 놈은 강숙자의 시신과 백구가 묻힌 그곳을 손으로 파면서 히죽히죽 웃으며 흙을 주워
먹고 있었다. 그 망할 년놈들의 자식새끼는 2층 제 방에서 제 머리카락을 하나 하나 뽑아가며
자기가 싸질러 놓은 똥무더이에서 쉴새없이 엉덩이를 찧고 있었다.
애는 무슨 죄가 있겠냐 하겠지만 그놈도 잔인한 것이 지 부모의 심성을 닮아 강숙자가 키우던
개들을 발로 걷어차고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패서 모두 죽였다 하니 그놈돌 벌을 받아야 하는게
당연한 이치 아닌가. 개들은 생명이 아니라던가?
아무튼 이 사건으로 그들의 살인이 드러났다. 난 별로 한 것이 없다.
그집을 찾았고 힘을 조금 풀어 그 주변에 있는 개들의 령(靈)과 혼령들을 불러모았다.
그들은 재미난 놀이라도 되는냥 모두들 내 지휘에 따랐다.
그리고 다음날 공중전화로 119에 전화를 걸어 그 집 주소를 대며 응급환자가 있다고 전화를 했다.
다중이도 끼고 싶어 했지만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백구를 지키라고 했다.
위험할 일이 뭐가 있겠냐만은 그 순하디 순한 백구가 그런 귀신들의 잔치에 끼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려서.. 뭐 다중이가 그 잔치에 끼었다면 단순하게 미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속은 후련한데 이렇게 찝찝한 기분이 드는걸 왜일까? 뭐지?
이런. 백구가 무지개 다린지 지랄인지 안떠났다. 왜?
손을 잡아 주며 건너가라 했더니 이놈이 얼굴만 핧아대고 사라지질 않네.
어떻게 된일이냐고 다중이에게 물어봤지만 '여기서 살 생각인가 보네'라며 말도 안되는 소리만
지껄이고 있고 그렇다고 묵이 아저씨한테 전화해서 이노무 새끼가 갈 생각 안 한다고 아저씨가
와서 방망이로 때려잡아 보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담배 한갑의 값어치도 없는 놈이 왜 여기 눌러있는거냐고.
다중이는 새 장난감이 생긴듯 좋다고 서로 손주고 발주고 난리가 났다.
아무튼 백구의 '무지개 다리 건너기'는 다중이와 함께 손을 잡고 객식구로 자리를 잡는 것으로
끝이났다. 객식구는 다중이로 족한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이기만 하는건지.
로또를 사볼까? 아님 즉석 복권?
"하늘아, 우리 백구 산책 시켜주러 나가자"
저런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내가 왜 듣고 있어야 하냐구.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말도 안되는 귀신놀이에 엘리베이터를 탄 내가 무척이나 한심스럽다.
3층에서 문이 열린다. 운동삼이 그냥 내려갈것이지 3층에서 무슨 엘리베이터야.
'으르릉..왈왈'
"어머 죄송해요. 우리 애가 참 순한 애인데.. 다음것 탈게요. 내려가세요"
예민한 것들. 내가 왜 이 늦은 시간에 귀신들 산책을 시켜줘야 해.
"하늘이가 인상이 더럽긴 더러운가봐 글치? 개들도 알아본다니까"
피곤한 하루를 공원을 거닐며 걷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난.. 정말 불쌍한 사람이다.
<살짝 다른 이야기>
난 서른 두살의 결혼 3년차인 전업 주부다.
이 오피스텔로 이사온지 2년째.. 이곳에 이사를 와서 유산을 하게 되었고 난 심각한 우울증 때문에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고 바깥 출입도 잘 하지 않았다. 두달쯤 전에 바로 옆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왔다. 나이는 스물 다섯쯤? 더 어려 보이기도 하지만 왠지 스물 다섯살은 됐을거란 생각이
든다. 그 아가씨가 내 눈길을 끈것은 우습게도 잦은 욕설 때문이었다.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날카로운 인상의 키큰 아가씨를 보게 되었다.
이사를 들어오는지 쓰레기장 앞에는 커다란 이사차가 서 있었고 그녀는 그 앞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는 계속 '젠장'이라는 낮은 욕설을 섞어가며 누군가와 말을 하고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통화
하는 것이었겠지만 왠지 내 생각에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잠시
미친 상상을 했다.
170정도 되는 키에 날씬한 몸매를 보며 혹시 모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그런 생각을 접었다. 결코 못생겨서는 아니었다.
쌍커풀이 진 까맣고 큰눈, 오똑한 코, 그리고 혹시 돈을 주고 태운 것은 아닐까 할정도로 가무잡잡
하고 깨끗한 피부, 허리까지 내려오는 무척이나 긴 까만 머리.
화장을 하고 요란하게 꾸미는 것이 왠지 안 어울릴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목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조그만 낡은 복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다.
내가 너무 유심히 보아서 인지 눈꼬리가 올라가며 날 쳐다봤다.
그래서 '이사오시나봐요'라며 웃으며 말을 걸었더니 입꼬리가 정말 어색하게 살짝 올라가는 듯
하더니 경련을 일으키든 떨었다. 평소에 웃지를 않는 모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망해서 그냥 올라왔는데 우리 바로 옆집인 1004호에 짐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간판이 '고민상담소'란다. 그 아가씨를 떠올리곤 그냥 웃음이 터졌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담배를 피워물고 상담온 사람들에게 욕설을 내뱉는 모습이 잠시 상상이 가서였다.
물론 그렇게 하면 손님이 오지 않겠지만 상냥하게 웃으며 상담을 하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무슨 고민들을 상담할까? 이성문제? 돈문제? 아니면 '철학관'을 신세대 답게 다른 이름으로
간판을 내 건걸까? 이상하게도 그 아가씨는 눈길을 끄는 뭔가가 있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자 저녁을 먹으며 옆집 아가씨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를 했더니 얼마만에
웃으면서 수다떠는 거냐며 신기하다면서 좋아했다.
내가 생각해도 옆집 아가씨한테 이상하게 관심을 갖는것 같다.
다음날부터 괜히 할일없이 복도를 어슬렁 거려 보았다.
혹시 사무실문이 열리는건 아닌가. 안은 어떻게 꾸며 놓았을까. 손님이 있기는 할까.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한참을 어슬렁 거려보았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후 가끔 안에서 그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담을 하는 중인건지 가끔 목소리가 카랑카랑 올라가기도 했는데 상담을 저렇게 해서 손님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복도위에 달린 카메라를 보는 순간 기전실에서 날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겠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것을 관뒀다.
가끔 내가 집안에 있을때 옆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급한 마음에 나가보면 벌써 그녀의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갔다.
내가 참 외로움을 타는 구나 싶었다.
그동안 소원해진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도 가정주부인 나로서는 쉽지가 않았고 가끔 가볍게 차나 마실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이 들때는 옆집 아가씨를 떠올리곤 했다.
차갑고 날카로워 보이지만 의외로 따뜻한 구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카페 게시글
공포소설방
12.고민상담소 - 백구의 무지개 다리 건너기<完>
겨울하늘
추천 0
조회 1,122
07.06.10 13:00
댓글 4
다음검색
첫댓글 그냥 미치고 끝나는건 저들에겐 너무 행복한 결말이 아닌가 싶다는..;; ㅋㅋㅋ.. 잘읽었어요..
걍 쉽게 죽이는 것도 너무 편한거 아닌가 싶어서요.ㅋㅋㅋ
아아 이번편에서도 다중이 귀여워요ㅎㅎㅎㅎ 왜일케 다중이가 귀여운건지ㅋㅋ 완소남 다중이ㅎㅎㅎㅎㅎ;;;;;;;;;; 재미있었어요ㅎㅎ
너무 재밌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