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미래
설날을 이틀 앞둔 일월 하순 월요일은 휴무일로 지정되어 관공서와 기업체는 엿새 연휴로 이어졌다. 지기들에게 아침 시조로 ‘노점 콩나물’을 넘겼다. “반송동 저잣거리 점포가 여럿인데 / 찻길에 가드레일 경계로 좌판 펼쳐 / 할머니 노점상 네댓 손님들을 맞는다 // 도라지 껍질 벗겨 호박살 긁다 말고 / 어디서 햇빛 가린 자연산 재배 방식 / 오지독 물 주어 키운 콩나물을 팔았다”
어제 종일 도서관에서 머물다 귀갓길 반송시장을 둘러왔다. 설을 앞둔 저잣거리는 강정을 비롯해 평소보다 손님이 붐비는 듯했다. 우리 집에는 채소와 과일이 외부로부터 조달되는 예가 많아 그리 필요하지 않다. 생선은 열흘 전 부산 자갈치까지 진출해 넉넉하게 사 놓았다. 기본 나물로 삼을 시금치와 콩나물이 필요해 장터에서 구했는데 노점 할머니가 파는 자연산 콩나물을 샀다.
밤새 수도권과 호남 지역은 눈이 내려 당국에서 보낸 안전 문자가 와 있었다. 우리 지역은 새벽에 비가 흩뿌려 베란다 유리창에 물방울이 맺혔다. 오늘부터 설날과 이튿날까지 춥기도 하지만 도서관이 휴관이라 바깥으로 나갈 일이 없어졌다. 며칠 집에 머물며 독서로 시간을 보내려고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책이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 아침 식후 ‘나도 노인이 된다’를 먼저 펼쳤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감은 피하거나 막을 수 없다. 내가 나이가 듦은 시내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해주는 젊은이를 만난 경우로 적이 겸연쩍었다. 아직 다리가 정정해 얼마든지 서서 갈 수 있음에도 양보해 준 자리를 앉아줌이 도리였다. 한편 댓거리에서 시장을 봐서 서북동이나 둔덕 산골로 가는 할머니들의 짐을 올려다 주고 자리까지 비켜 주었을 때는 젊은 축에 들어 어깨가 으쓱했다.
나이로 규정하는 노인을 75세로 상향해도 좋을 듯하다. 그러함에도 내 나이도 노인이라고 열차 승차권은 20퍼센트 할인받고 지하철은 무임승차라 ‘지공거사’ 반열에 올랐다. 아마 앞으로 관련 기관이나 정치권에서 노인 권익이나 복지 수혜의 기준이 되는 나이를 조정하지 싶다. 스무날 전 대학 동기들 모임으로 봉하마을을 찾은 노무현 기념관도 노인은 무료로 입장이라 2천을 아꼈다.
근자 도서관에서 건강이나 수명에 관한 책을 몇 권 펼쳤는데 이 책은 노인을 학문적으로 접근했다. 고반출판사에서 펴낸 이 책을 쓴 이석주는 동국대 철학과를 나와 학위 취득 후 외국 대학 연구원과 국내 대학에 출강하다가 현재는 동국대학 드라마칼리지 교수였다. 그는 고대 신화와 전통 주거와 공간 구성 연구를 했고 이 책에서는 노인을 유교적 입장에서 학문으로 접근 기술했다.
개인이 노년기로 진입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자신이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해야 함을 수용하는 시점이다. 그는 인간의 연령기를 태어나 직업을 준비한 시기, 결혼과 출산으로 가족을 구성하고 부모 역할과 사회적 직업적 책무를 맡은 시기에 이은 개인이 자유로운 시간을 향유하는 은퇴기를 ‘노년’으로 봤다. 이후 타인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의존적 존재로 변한다.
저자는 노인은 자신의 한계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주축으로 잘못을 개정함에 꺼리지 않은 성찰을 권했다. 두 번째 자신의 허물과 편견에서 벗어나서 내면의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배움’에 대한 호학이 따라야 한다고 했다. 셋째 사람답게 살기 위한 타자와 긍정적 관계에서 사유하는 최소한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노인의 역할과 아침 햇살 같은 홀로 있음에 대한 깨달음에 이어 후반부의 상당한 내용은 선현들의 궤적을 쫓아 반추했다. 죽는 날까지 배워야 한다는 이황, 끊임없이 성찰했다는 송시열, 노년의 욕심과 손자 양육 편으로 이문건, 가훈으로 미래 세대와 소통한 박연, 꽃 떨어지는 시절이 봄보다 낫다고 한 김수온에 이어 마지막 편으로 노인이라서 유쾌하다는 정약용의 행적을 덧붙였다. 25.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