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과 장시간노동 시달리지만...노조조직률은 바닥
윤지연 기자
최근 10년간, 한국 노동운동진영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한국 비정규직노동자가 무려 천 만에 육박한다는데, 매년 늘어가는 그 어마어마한 수치를 매년 통계로만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5월 1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계 노동절 행사가 좀처럼 1만의 규모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노조 조직률 역시 매년 정체기다. 현재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 중 특수고용노동자 등을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약 10%에 불과하다. 민주노총 최대 산별인 금속노조의 경우만 봐도 상황은 심각하다. 올 1월 기준, 금속노조에 가입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5,423명이다. 조합원 대비 3.7%에 불과한 수치다.
전국 170만 공단 노동자,
저임금과 장시간노동 시달리지만...노조조직률은 바닥
민주노총은 수 년 전부터 비정규직 전략 조직화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쉽사리 성과를 도출해 낼 수 없는 상황이다. 대기업 일자리가 줄고 중소영세기업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최근 추세에서, 비정규직의 압도적 다수가 중소영세사업장에 집중 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0년 기준, 1~4인 영세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수는 전체 비정규직 규모 대비 84.7%(270만 6천명)에 달한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대공장을 중심으로 노조조직화가 이뤄져 노조 조직률을 성공적으로 끌어올린 시기와는 확실히 다르다.
비정규직 고용이 중소영세기업으로 이전되면서, 비정규직의 저임금과 고용불안도 한층 심화되고 있다. 중소영세사업장이 몰려있는 공단지역만 보더라도 상황은 꽤 심각하다. 안산시흥 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이 2011년, 반월, 시화공단 노동자들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안산지역의 평균임금은 179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다수인 32.8%가 101~150만원의 저임금을 받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 통계상 약 15만 4천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서울남부 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이 2011년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단 노동자 평균 임금은 192.3만원으로 집계됐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만연해 있어,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비율이 13.8%에 달했으며, 5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비율도 20.3%나 됐다.
현재 우리나라 공단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거의 2백만 명에 육박한다. 전국에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40개 국가산업단지와 지방정부에서 관리하는 278개 일반산업단지, 9개 첨단산업단지, 432개 농공단지 등 총 960개 산업단지가 분포해 있다. 2011년 말 기준, 전국 산업단지에는 64,788개의 업체가 가동 중이며, 그 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는 1,743,259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중소사업장 미조직 노동자, ‘임금체불, 무료노동, 폭력까지...’
노조조직률이 1%도 채 되지 않는 공단 노동자들은, 집단적 행동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가 어렵다. 임금체불도, 부당해고도 모두 개인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서울구로남부 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이 진행하고 있는 상담사업 내역을 보면, 작년 1월~6월 상반기 172건의 전화, 내방 상담이 이뤄졌다.
상담 내역 중 30건 이상은 임금체불과 관련한 문의였다. 최저임금 위반과 부당해고, 시간외 수당 미지급, 무료노동과 관련한 상담도 상당수 이뤄졌다. 심지어 직장폭력이나, 사회적 기업에서의 장애인 노동자 임금체불 사례도 있었다. 노동절 휴무를 지키지 않거나, 노동절 근무수당 미지급 사례도 존재했다.
작년 7월~12월 상담내역은 224건으로 늘어났다. 당시에도 임금체불,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 성희롱 등의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장애인 고용 업체에서 연장근로를 시키며 임금체불을 하는 경우도 존재했다. 서울남부지역 노동자 권리 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 관계자는 “상담 내역 중 임금체불 문제가 가장 심각했고, 무료노동이나 근로계약서 미교부 등을 상담하는 사례도 다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노동자의 미래’는 지난해 상반기, ‘무료노동 이제 그만’ 캠페인과 하반기 ‘노동법을 지켜라’ 캠페인 및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서명운동에는 서울디지털단지 노동자 3,000여 명이 동참했다.
서울디지털단지의 열악한 노동 현실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민주노총 남부지구협의회는 사용자단체와 노동부 관악지청, 지방자치단체에 근로기준법 준수와 노동자의 권리 증진을 위한 공동선언을 체결할 것을 요구해 왔다. 지난 8일에는 서울관악고용노동청, 서울디지털산업단지 경영자협의회, 민주노총 서울본부 남부지구협의회 등 노사정이 ‘일하기 좋은 서울디지털단지를 위한 공동선언’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들은 공동선언문을 통해 △청년 및 고령자 등의 일자리 창출, 고용안정에 적극 노력하고 비정규직 근로자 및 사내하도급 근로자 등에 대한 차별철폐를 위해 적극 노력할 것 △고용노동부 서울관악지청은 고객지원실에 ‘근로계약서 미교부, 불법 시간외 근로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근로자와 노동단체 등이 제기하는 사항에 적극 대처할 것 등을 약속했다.
노동자의 미래는 “공동선언으로 모든 게 해결되진 않겠지만, 공동선언이 시작이 되어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지고 노동자의 권리와 처우가 개선되는 데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