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서 1700㎞ 떨어진 항구도시… 영국 영토인 까닭은?
지브롤터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지난 15일, 스페인 남쪽에 있는 영국령 지브롤터와 스페인 사이의 국경 검문소가 철거됐습니다. 1908년 두 지역 사이에 철조망이 설치된 이후 118년 만에 여권 검사 없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졌어요. 이번 철거는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한 ‘브렉시트(Brexit)’ 이후 다소 멀어졌던 영국과 EU 관계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합니다.
지브롤터는 영국이 300년 넘게 지배하고 있는 해외 영토인데요. 그런데 영국 런던에서 1700km 넘게 떨어진 이곳이 왜 영국 땅인 걸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영국과 스페인뿐 아니라, 유럽 역사, 나아가 세계사의 주요한 길목이었던 지브롤터 해협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합니다.
지브롤터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예요.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반도 남쪽에 있어요. 원래는 스페인 땅이었지만 1700년대부터 영국 영토랍니다.
고대부터 주목받은 길목
스페인 남부와 아프리카의 모로코 북부 사이의 바다인 지브롤터 해협은 가장 좁은 곳의 폭이 약 14㎞에 불과합니다. 이 작은 바닷길은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유일한 자연 해협으로, 하루 평균 수백 척의 선박이 통과해요. ‘관문’ 역할을 하는 중요한 바다랍니다.
먼 옛날 고대 그리스인들은 해협 북쪽의 거대한 지브롤터 바위와 남쪽 아프리카의 산을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원래 유럽과 아프리카는 아틀라스 산맥으로 붙어 있었어요. 그런데 영웅 헤라클레스가 그 산을 넘기 귀찮아 괴력으로 산을 갈라 바닷길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곳을 ‘세상의 끝’이라 생각했고, 이곳을 지나 먼 바다로 가는 걸 금기시했어요.
그러나 모두가 두려움 때문에 발길을 돌린 건 아니었습니다. 현재의 레바논 일대에서 주로 활동했던 페니키아인들은 기원전 1100년쯤 뛰어난 항해술을 바탕으로 이 해협을 건넜어요. 그리고 오늘날 스페인의 카디스에 ‘가디르(Gadir)’라는 식민 도시를 세워 무역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서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죠. 그들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은과 구리를 실어 와 지중해 세계에 공급하며 무역을 발전시켰습니다. 뒤이어 등장한 고대 국가 카르타고 역시 지브롤터 해협을 거점으로 서아프리카와 대서양을 탐험했어요. 하지만 카르타고가 기원전 218년부터 기원전 201년까지 로마와 벌인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한 뒤, 지브롤터 해협은 로마가 장악하게 됩니다. 로마는 스페인의 거대한 은광에서 생산되는 은과 북아프리카 물자를 배에 실어 로마로 운반했는데, 그 길목이 바로 지브롤터 해협이었어요.
하늘에서 찍은 지브롤터의 모습입니다. 거대한 바위가 깎아지른 듯 서 있어요.
‘지중해의 서쪽 관문’
지브롤터는 중세에 접어들면서 이슬람 세력에 넘어갑니다. 711년 베르베르족(북아프리카의 무슬림) 장군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군대를 이끌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한 뒤 바위 위에 요새를 건설했어요. 이 바위는 그의 이름을 따서 ‘자발 타리크(Jebel Tariq)’라고 불리게 됐는데, 아랍어로 ‘타리크의 산’이란 뜻이었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이 ‘지브롤터’로 바뀌었어요.
이후 서로 이곳을 차지하려는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갈등이 이어져요. 주인이 계속 바뀌다 1462년이 돼서야 스페인의 전신 국가인 카스티야 왕국이 통치하게 됩니다. 1501년 여왕 이사벨라 1세는 지브롤터를 왕실 직할령으로 편입하고 왕실 문장을 하사하기도 했어요. 성(城) 안에 열쇠가 있는 문양이었는데요. 지브롤터가 나라의 문, 혹은 열쇠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이 문양은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어요.
15세기 대항해 시대가 열리며 지브롤터 해협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아메리카에서 가져온 금과 은, 아시아에서 들어오는 향신료와 비단, 아프리카 노예를 실은 배들이 대부분 이 해협을 통과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18세기 지브롤터의 주인이 바뀌게 됩니다. 1700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2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스페인 왕위를 놓고 다투면서 유럽 전역에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1714)이 벌어졌는데요. 1704년 오스트리아 편으로 전쟁에 나선 영국과 네덜란드 연합군이 지브롤터를 점령합니다. 이어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을 통해 스페인은 지브롤터를 영국에 공식적으로 넘기게 됩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영국령 지브롤터의 시작이에요.
물론 스페인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775년 미국 독립전쟁이 시작되자 영국은 북아메리카에 막대한 병력을 투입해야 했는데요. 스페인과 프랑스는 이때를 틈타 영국에 빼앗긴 지브롤터를 되찾으려 했어요. 4년 동안 지브롤터를 포위하며 탈환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이후 영국은 지브롤터를 몰타, 수에즈 운하, 싱가포르와 함께 해상 교통망의 주요 전략 거점으로 활용했어요. 영국에서 지브롤터 해협, 지중해,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길이 인도와 동아시아로 향하는 가장 빠른 항로였기에, 지브롤터는 ‘지중해의 서쪽 관문’으로 불렸습니다.
최근 지브롤터와 스페인 사이에 있던 국경 펜스가 철거되는 모습이에요. 이곳을 지나려면 여권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이번 철거로 양 지역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됐답니다. /위키피디아·신화 연합뉴스
세계대전 당시 핵심 군사 기지
세계대전 때는 핵심 군사 기지 역할을 맡았어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지브롤터는 상선과 군함을 공격한 독일 잠수함 ‘U보트’에 대비하는 해군 기지 역할을 했어요. 연합군 호송대의 중요한 집결지였지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지브롤터 해협에 대규모 함대를 배치해 방어에 나섰고 역시 지브롤터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독일은 폭격에 나서기도 했지요. 영국은 지브롤터 바위 내부에 50㎞가 넘는 터널을 뚫어 병영, 병원, 탄약고 등을 만들었는데요. 이때 사용되었던 터널들은 현재 방문객들에게도 개방돼 있답니다.
지브롤터 해협의 역사적 중요성은 연구를 통해서도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스페인 고고학자들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지브롤터 해협 인근을 조사한 결과, 무려 124척의 난파선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고대, 중세,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에 걸친 배들이었습니다. 앞으로 학자들이 더 많은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하니, 지브롤터 해협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이 앞으로 더 밝혀질 수도 있을 겁니다.
김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