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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28회
한편, 제양공은 자돌에게 승전하고 검모를 주왕실로 쫓아 보낸 후, 주왕이 토벌하러 올까 두려워 대부 연칭(連稱)을 장군으로 삼고 관지보(管至父)를 부장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규구(葵邱) 땅으로 가서 동남쪽의 길을 지키게 하였다.
연칭과 관지보가 떠나기에 앞서 양공에게 물었다.
“변방을 지키는 일은 힘들지만, 신들은 감히 사양하지 않고 떠납니다. 그런데 언제쯤 만기(滿期)가 되어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그때 양공은 마침 참외를 먹고 있다가 말했다.
“지금 참외가 익을 때이니, 내년에 참외가 다시 익을 무렵에 교대할 사람을 보내주겠다.”
[여기서 ‘과만(瓜滿)’ 혹은 ‘과기(瓜期)’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참외가 익을 시기’라는 뜻으로, 벼슬의 임기가 다 되었거나, 여자가 혼인할 나이가 다 찼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두 장수가 규구 땅으로 가서 주둔한지 어느덧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군졸이 햇참외를 바치자, 두 장수는 참외가 익으면 교대해 주겠다는 약속을 상기했다.
“지금이 바로 교대할 때인데, 주공은 왜 교대할 사람을 보내주지 않는가?”
두 장수는 심복을 도성으로 보내 정탐해 오게 하였는데, 심복이 돌아와서 복명했다.
“주공은 지금 곡성(穀城)에서 문강과 환락에 빠져 한 달 동안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연칭은 크게 노하여 말했다.
“왕녀가 훙거한 후 내 누이가 후실이 되었는데, 무도한 혼군(昏君)은 윤리를 돌아보지 않고 매일같이 바깥에서 음란한 짓이나 일삼고 있으면서 우리는 변방에 내팽개쳐 놓았구나, 내 반드시 죽여 버릴 것이다!”
[제27회에, 제양공에게 시집온 왕녀가 죽었었다. 제25회에, 문강이 노장공과 함께 제나라로 갔을 때 연칭의 사촌누이인 연비와 함께 잤다고 말했다.]
연칭이 관지보에게 말했다.
“자네는 내 한 팔이 되어 주게.”
관지보가 말했다.
“참외가 익을 때가 되면 교대해 준다고, 주군께서 친히 약속하셨습니다. 혹시 잊으셨는지 모르니, 교대해 달라고 요청해 보십시오. 요청했는데도 교대해 주지 않으면, 병사들이 모두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병사들이 원망하게 되면, 동원할 수 있습니다.”
연칭이 말했다.
“좋다!”
연칭은 심복을 보내 양공에게 참외를 바치고 교대를 요청하게 하였다. 그러자 양공이 노하여 말했다.
“교대해 주는 것은 과인의 뜻에 달린 것인데, 감히 그걸 요청한다고? 참외가 다시 익을 때까지 기다려라!”
심복이 돌아와 보고하자, 연칭은 원망하면서 관지보에게 말했다.
“이제 대사를 결행하고자 하는데, 어떤 계책이 있는가?”
관지보가 말했다.
“무릇 거사를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군위에 받들 사람을 정해 놓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공손 무지(無知)는 공자 이중년의 아들입니다. 선군 희공께서는 동복아우인 이중년을 총애하셨고 아울러 그 아들 무지도 총애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궁중에서 키워 의복이나 예절이 세자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주군이 즉위한 후에도 무지는 궁중에 있었는데, 어느 날 씨름을 하다가 무지가 발을 걸어 주군을 넘어뜨린 일이 있었습니다. 주군은 그때부터 무지를 싫어하였습니다. 또 어느 날은 무지가 대부 옹름과 道에 대해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주군은 무지가 불손하다고 노하여 궁에서 쫓아내고 품계도 대폭 삭감했습니다.
그리하여 무지는 원한을 품은 지 오래되었고, 항상 난을 일으킬 생각을 하고 있지만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이 한이었습니다. 우리가 만약 무지와 은밀히 통하여 안팎으로 호응하면 대사를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22회에, 제희공은 기나라 원정에서 패전하고 돌아와 병을 얻어 죽으면서 세자 제아(양공)에게 공손 무지를 부탁하였다.]
연칭이 말했다.
“언제가 좋겠는가?”
관지보가 말했다.
“주군은 용병을 좋아하고 또 사냥을 즐깁니다. 맹호가 소굴을 떠났을 때 제압하기 쉽습니다. 다만 사냥 나가는 시기를 미리 알 수 있어야,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연칭이 말했다.
“나의 누이가 궁중에 있는데, 주군의 총애를 잃고 원망을 품고 있네. 지금 무지에게 기별하여 내 누이와 은밀히 연합하게 하고, 주군이 사냥하러 나갈 때 바로 우리에게 알리게 하면 대사를 그르치지 않게 될 것이네.”
그리하여 연칭은 서신을 써서 심복으로 하여금 공손 무지에게 전하게 하였다.
어진 공손께서는 선공으로부터 적자(嫡子)와 같은 총애를 받으셨는데, 하루아침에 봉록이 삭탈되어 모든 사람들이 불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주군의 음탕함과 어두움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정령(政令)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규구 땅에서 오래 변방을 지키고 있는데, 참외가 익을 때가 되면 교대해 주겠다고 하고서 아직도 교대해 주고 있지 않습니다. 삼군의 병사들은 모두 원한을 품고 난을 일으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기회를 틈타 대사를 도모하신다면, 저희들은 견마지로(犬馬之勞)을 다할 것이며 공손을 힘껏 군위에 추대하겠습니다. 저의 사촌누이도 주군의 총애를 잃고 궁중에서 원한을 품고 있으니, 하늘이 공손을 도와 내응할 것입니다. 기회를 잃지 마십시오!
공손 무지는 서신을 받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답서를 썼다.
하늘이 음란한 자를 싫어하여, 장군이 충정을 펼치게 하였습니다. 장군의 말씀에 감복하였습니다. 조만간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무지는 은밀히 시녀를 연비(連妃)에게 보내 연칭의 서신을 보여주면서 말을 전하게 하였다.
“대사가 성공하면 그대를 부인으로 삼겠소.”
연비는 승낙하였다.
주장왕 11년 겨울 10월.
제양공은 고분(姑棼)의 들판에 있는 패구산(貝邱山)에 짐승이 많아 사냥하기 좋다는 것을 알고, 도인비(徒人費) 등에게 다음 달 사냥을 나갈 것이니 수레와 군사들을 정돈하라고 명을 내렸다.
연비는 곧바로 궁인을 공손 무지에게 보내 그 소식을 알렸고, 무지는 사람을 규구로 보내 연칭과 관지보에게 소식을 전하면서 11월 초순에 일제히 거사하기로 약정하였다.
연칭이 관지보에게 말했다.
“주군이 사냥을 나가면 도성이 빌 것이니, 우리가 병력을 이끌고 곧장 도성으로 들어가 공손을 옹립하는 것이 어떻겠나?”
관지보가 말했다.
“주군은 이웃나라들과 친한데, 만약 군대를 빌려 토벌하러 오면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고분에 군사를 매복하였다가 먼저 혼군을 죽인 다음, 공손을 받들어 즉위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만전을 기할 수 있습니다.”
그때 규구에 있는 병사들은 오랫동안 변방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연칭은 은밀히 명을 내려, 패구산으로 가서 거사할 것이니 각자 마른 식량을 준비하라고 하였다. 병사들은 모두 기꺼이 명에 따랐다.
한편, 제양공은 11월 초하룻날 수레를 타고 사냥을 나갔다. 대신들은 데려가지 않고 역사 석지분여와 행신(幸臣) 맹양 등 소수만 거느리고 매와 사냥개들을 끌고 갔다. 먼저 고분에 있는 이궁(離宮)에 당도하여 그날 하루는 경치를 구경하며 놀러 다녔다. 주민들이 술과 고기를 바쳐, 양공은 밤늦게까지 술 마시며 놀았다.
[‘행신’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신하를 말한다. ‘이궁’은 임금이 국도의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을 말한다.]
다음 날 아침, 양공은 수레를 타고 패구산으로 갔는데, 수목이 울창하고 등나무 넝쿨이 빽빽하게 뒤엉켜 있었다. 양공은 높은 언덕 위에 수레를 세우고, 숲에 불을 지르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불길이 번져가는 뒤를 따라 숲을 포위하여 가면서 활을 쏘게 하고 매와 사냥개들을 풀어 놓게 하였다.
바람이 불면서 불길이 치솟자, 여우와 토끼 같은 짐승들이 이리저리 도망치는데, 홀연 큰 멧돼지 같은 이상한 짐승 한 마리가 숲속에서 뛰쳐나왔다. 소 같이 생기기도 했는데 뿔은 없고, 호랑이 같이 생기기도 했는데 얼룩무늬가 없었다. 이 짐승이 불속에서 튀어나와 양공이 있는 언덕 위로 뛰어 올라와 수레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짐승들을 쫓아 나가고 맹양만 양공 곁에 시립하고 있었다. 양공이 맹양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 멧돼지를 쏴라!”
맹양이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더니 크게 놀라며 말했다.
“멧돼지가 아닙니다! 공자 팽생입니다!”
[제25회에, 양공은 팽생을 시켜 노환공을 죽이게 하고는,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처형하였다. 팽생은 끌려 나가면서, 죽어서 귀신이 되어 복수할 것이라고 외쳤다.]
양공이 크게 노하며 말했다.
“팽생이 어찌 감히 네 앞에 나타난단 말이냐?”
양공은 맹양이 들고 있던 활을 빼앗아 친히 멧돼지를 향해 쏘았는데, 세 발이나 연이어 쏘았지만 한 발도 맞히지 못했다. 그때 멧돼지가 뒷발로 벌떡 일어나 두 앞발을 맞잡고 사람처럼 걸으면서 소리 높여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 슬프고 애통하여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깜짝 놀란 양공은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하여 수레에서 굴러 떨어졌는데, 그때 왼발을 헛디디면서 수놓은 신발 한 짝이 벗겨졌다. 멧돼지는 그 신발 한 짝을 물고는 홀연 사라져 버렸다.
염옹이 시를 읊었다.
魯桓昔日死車中 예전에 노환공이 수레 안에서 죽었는데
今日車中遇鬼雄 오늘은 수레 안에서 귀웅(鬼雄)을 만났구나.
枉殺彭生應化厲 억울하게 죽은 팽생은 귀신이 되어 나타났는데
諸兒空自引雕弓 제아는 헛되이 활만 당겼구나.
도인비와 종자들은 양공을 부축하여 수레 안에 눕히고, 사냥을 중지하라는 명을 전하고, 급히 고분의 이궁으로 돌아갔다. 양공은 정신이 황홀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 군중에서 밤 10시를 알리는 북소리가 들렸다. 양공은 왼발이 아파서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맹양에게 말했다.
“나를 좀 부축해 다오. 천천히 몇 걸음 걸어 봐야겠다.”
양공은 낮에 수레에서 떨어질 때는 정신이 없어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줄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 신을 신으려고 보니까 한 짝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공이 도인비에게 신발 한 짝이 어디 갔냐고 묻자, 도인비가 대답했다.
“그 멧돼지가 신발 한 짝을 물고 갔습니다.”
양공은 크게 노하여 말했다.
“너는 과인을 따라다니면서 신발이 있는지 없는지도 보지 못했단 말이냐? 멧돼지가 신발을 물고 갔다면, 왜 그때 진즉 말하지 않았느냐?”
양공은 가죽채찍을 쥐고 도인비의 등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도인비의 등이 피범벅이 된 뒤에야 양공은 채찍질을 멈추었다.
채찍을 맞은 도인비는 눈물을 머금고 문을 나가다가, 연칭과 마주쳤다. 그때 연칭은 부하 몇 명을 거느리고 양공의 동정을 살피러 온 것이었다. 연칭은 도인비를 보자마자 포박하고서 물었다.
“무도한 혼군은 어디 있느냐?”
도인비가 말했다.
“침실에 있습니다.”
“잠들었느냐?”
“아직 잠들지 않았습니다.”
연칭이 칼을 들어 베려고 하자, 도인비가 말했다.
“저를 죽이지 마십시오. 제가 앞장서서 장군을 인도하겠습니다.”
연칭이 믿지 않자, 도인비가 말했다.
“제가 좀 전에 채찍을 맞아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 역시 저놈을 죽이고 싶습니다.”
도인비를 웃옷을 벗어 등을 보여주었다. 연칭이 보니 등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연칭은 도인비의 말을 믿고 밧줄을 풀어주면서 내응을 부탁했다. 연칭은 즉시 관지보를 불러 군사들을 이끌고 이궁으로 쳐들어오게 하였다.
한편, 도인비는 몸을 돌려 침실로 들어가려다가 석지분여를 만났다. 도인비는 석지분여에게 연칭이 난을 일으킨 일을 얘기하고, 침실로 들어가 양공에게 고하였다. 양공은 너무나 놀라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도인비가 말했다.
“일이 이미 급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주군인 척하고 침상에 누워 있고, 주군께서는 문 뒤에 숨어 계십시오. 저들이 서두르다 보면 요행히 분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주군께서 빠져나가시면 됩니다.”
맹양이 말했다.
“신은 주군께 분에 넘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신이 주군을 대신하여 죽겠습니다.”
맹양은 침상에 올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누웠다. 양공은 자신의 비단 도포를 벗어 맹양을 덮어 주었다. 양공이 문 뒤에 숨으면서 도인비에게 물었다.
“너는 이제 어찌하려느냐?”
도인비가 말했다.
“신은 석지분여와 협력하여 적을 막겠습니다.”
“등의 상처가 아프지 않느냐?”
“신은 죽음도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까짓 상처가 대수겠습니까?”
양공이 탄식하며 말했다.
“충신이로다!”
도인비는 석지분여로 하여금 사람들을 데리고 중문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단신으로 날카로운 칼을 품고서 연칭을 맞이하는 척하다가 찔러 죽이려고 하였다.
그때 반란군은 이미 이궁의 대문을 들어섰다. 연칭은 검을 뽑아 들고 앞장서서 길을 열고, 관지보는 문 밖에 군사들을 늘여 세우고 다른 변고에 대비하였다.
도인비는 연칭이 들어오는 기세가 흉맹한 것을 보고, 생각할 틈도 없이 곧바로 다가가 칼로 연칭을 찔렀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연칭은 안에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칼이 들어가지 않았다. 깜짝 놀란 연칭이 검으로 가로막으며 내려치자 도인비의 손가락이 잘려나갔다. 다음 순간 연칭이 몸을 돌려 다시 한 번 검을 내려치자, 도인비의 머리가 잘려 땅에 떨어졌다.
석지분여는 창을 들고 나와 연칭과 싸웠다. 10여 합을 싸웠는데, 연칭이 검을 휘두르며 밀고 들어가자 석지분여는 점점 뒤로 물러서다가 돌계단에 걸려 비틀거리는 순간 연칭의 한칼에 베어져 쓰러졌다.
마침내 연칭이 군사들을 이끌고 침실로 뛰어 들어갔다. 시위들은 놀라서 다 달아나 버렸다. 꽃무늬가 그려진 휘장 안에 한 사람이 누워 있었는데, 비단 도포가 덮여 있었다. 연칭이 검을 들어 내려치자 머리가 침상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런데 등불을 들어 비추어 보니, 수염도 없는 젊은이였다. 연칭이 말했다.
“이 자는 주군이 아니다!”
연칭은 군사들에게 방안을 샅샅이 수색하게 하였는데, 양공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연칭은 직접 등불을 들고 여기저기 비춰 보고 있었는데, 홀연 문짝 아래에 수놓은 신발 한 짝이 보였다. 연칭은 문짝 뒤에 누군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제아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연칭이 문짝을 젖히고 보니, 혼군이 발이 아파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한쪽 발에만 수놓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연칭이 발견한 신발 한 짝은 낮에 멧돼지가 물고 간 것이었는데, 어떻게 그것이 문짝 아래 놓여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히 원귀가 한 짓일 터이니,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연칭은 제아임을 알아보고, 마치 병아리를 낚아채듯 한손으로 붙잡아 땅바닥에 내던지고 큰소리로 꾸짖었다.
“무도한 혼군아! 너는 해마다 군대를 일으켜 함부로 전쟁을 일삼아 백성을 괴롭혔으니, 그것은 불인(不仁)이다. 부친의 명을 어기고 공손을 소원하게 대하였으니, 그것은 불효이다. 오누이 간에 음행을 저지르고 공공연히 함께 다니면서도 거리낌이 없었으니, 그것은 무례(無禮)이다. 멀리 변방에서 고생하는 군사들은 생각지 않고 참외가 익었는데도 교대해 주지 않았으니, 그것은 무신(無信)이다. 그처럼 인효예신(仁孝禮信)의 네 가지 덕을 모두 잃었으니,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내 오늘 노환공을 위하여 원수를 갚아 주겠노라!”
연칭은 양공을 여러 토막 내어 침상에 있던 이불로 그 시신을 싸서, 맹양과 함께 문 아래에 묻어 버렸다.
양공의 재위 기간은 3년에 불과하였다. 사관은 이 일을 두고 이렇게 논평하였다.
“양공은 대신들을 멀리하고 소인배들만 가까이하였다. 석지분여·맹양·도인비 등이 평소 사사로운 은혜를 입어 혼란한 와중에도 주군을 버리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그것이 충신의 큰 절의라고 할 수는 없다.
연칭과 관지보가 오랫동안 변방을 지키다가 교대해 주지 않아 주군을 시해했는데, 그것은 이미 양공의 죄악이 가득 찼기 때문에 하늘이 두 사람의 손을 빌린 것뿐이다.
팽생이 사형을 받으면서 큰소리로 외치기를, ‘죽어서 귀신이 되어 너의 목숨을 앗아가겠다!’고 하였는데, 큰 멧돼지가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도인비와 석지분여 등이 난중에 죽음을 당한 일을 읊었다.
捐生殉主是忠貞 주군을 위해 목숨 바쳤으니 그것은 충정이나
費石千秋無令名 도인비와 석지분여는 천추에 좋은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假使從昏稱死節 혼군을 쫓아 죽은 것을 절의를 지켰다고 한다면
飛廉崇虎亦堪旌 비렴(飛廉)과 숭호(崇虎)도 표창해야 하리라.
[비렴과 숭호는 은나라의 폭군 주왕(紂王)이 총애하던 신하들이다.]
염옹이 또 시를 지어 제양공을 탄식하였다.
方張惡焰君侯死 바야흐로 악의 불길 치솟아 군후가 죽었으니
將熄兇威大豕狂 흉악한 위세 꺾고자 멧돼지가 날뛰었도다.
惡貫滿盈無不斃 악이 가득차면 죽지 않는 자 없으니
勸人作善莫商量 사람들에게 선을 권해야 함을 말해 무엇 하랴.
연칭과 관지보는 군용을 다시 정비하여, 도성으로 달려갔다. 공손 무지는 미리 사병들을 모아 대기시켜 놓았는데, 양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을 열어 연칭과 관지보를 맞이하였다. 연칭과 관지보는 선군으로부터 유명(遺命)을 받았노라고 칭탁하고 공손 무지를 즉위시켰다. 무지는 연비를 부인으로 삼고, 연칭을 정경(正卿)에 임명하여 국구(國舅)라고 불렀다. 관지보는 아경(亞卿)이 되었다.
여러 대부들은 어쩔 수 없이 반열에 섰지만, 심중으로는 복종하지 않았다. 오직 옹름만 재삼 머리를 조아리고 지난날 道에 관해 말다툼을 한 죄를 사과하였는데, 극히 자신을 낮추고 순종하였기 때문에 무지가 용서하고 그대로 대부로 삼았다.
[앞서 관지보가 연칭에게 한 말 가운데, 공손 무지가 옹름과 道에 관해 말다툼을 하여 양공의 미움이 사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한 사람은 예전에 道에 관해 말다툼했었던 일을 사과하고, 또 한 사람은 그 사과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누가 잘못된 것일까? 사과하는 사람이 아첨을 잘하는 자일까? 아니면 사과를 받는 사람이 아첨을 좋아하는 자일까?]
원로대신인 고호(高虎)와 국의중(國懿仲)은 병을 핑계대고 조회에 나오지 않았는데, 무지는 감히 축출하지 못하였다. 관지보는 무지에게, 방을 내걸어 현인들을 초빙함으로써 사람들의 신망을 얻으라고 권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친족인 관이오(管夷吾)를 천거하였다. 무지는 사람을 보내 관이오를 불렀다.
[드디어 관이오가 등장한다. 관이오는 바로 관중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으로 일컬어지는 사람이며, 제갈공명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관중의 등장으로 춘추시대의 새 역사가 시작된다. 앞으로 관중이 어떤 활약을 할 것인지 주목하라.]
첫댓글 ㅡ 여기서 ‘과만(瓜滿)’ 혹은 ‘과기(瓜期)’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참외가 익을 시기’라는 뜻으로, 벼슬의 임기가 다 되었거나, 여자가 혼인할 나이가 다 찼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ㅡ
오늘은 이거 하나 배운 걸로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일찍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문강이 노장공과 함께 제나라로 갔을 때(노장공---->노환공)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