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탐조기
밤새 수도권과 호남에는 폭설이 내린 설날 연휴에 든 일월 하순 화요일이다. 아침이면 지기들에게 보내는 시조는 ‘까치 집짓기’로 안부를 전했다. “동구 밖 맴돌면서 텃새로 사는 까치 / 신춘에 둥지 틀어 식구를 불릴 요량 / 앙상한 은행나무에 떼를 지어 모였다 // 어디로 날아가야 먹이가 있으려나 / 누구랑 짝이 될까 곁눈질 흘끔 보고 / 눈 맞은 암수 두 녀석 꼬챙이를 나른다”
곁들인 사진은 새해 첫날 수산교 일출을 보고 명례로 가던 강둑에서 떼 지어 지저귀는 까치 모습과 엊그제 고향 집을 찾았을 때 고샅의 아름드리 은행나무에 지어 둔 둥지였다. 텃새로 집 근처 사는 까치는 한겨울에 둥지를 틀어 봄이 오는 길목에 알을 품었다. 까치에게는 애벌레가 나와 꿈틀거리기 전에도 민가 주변에서 찾는 먹잇감이 있기에 다른 새들보다 서둘러 새끼를 쳤다.
어제에 이어 공공도서관은 휴무라 집에 머물러야 할 형편이라 미리 대출해 둔 책을 벗으로 삼았다. 며칠 전 북면 무동 최운덕도서관에서 ‘조선생’이란 책을 읽었다. 성이 조 씨인 선생 이야기가 아니고, 새를 지칭한 ‘조선생’으로 생물학이 아닌 인문 사회학을 공부하고 공직과 언론계에서 은퇴한 곽정식이 새를 관찰한 책이었다. 그는 이 책 이전 벌레에 관한 ‘충선생’도 남기기도 했다.
엊그제 창원도서관에서는 ‘초보 탐조기’라는 책을 빌려왔는데 아침부터 펼쳐 읽었다. 이 책을 쓴 우재욱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생태학을 더 공부해 자연과 생명에 관한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했다. 서울 강북 산기슭 아파트에 살면서 초보 탐조를 나선 3년간의 기록을 책으로 묶어냈다.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부터 시작해 조금씩 넓혀 고궁이나 우리 지역 우포까지 탐조를 다녀갔더랬다.
나는 산책이나 산행을 통해 철 따라 피고 지는 야생화에 관심이 많아 휴대폰에 사진을 담아 글감으로 삼아 시나 수필로 남기기 일쑤다. 교직 말년 임지가 거제로 정해져 주중 일과 전이나 퇴근 후 갯가나 산을 올라 낯선 풍광에 매료되고 새로운 글감을 찾아냈다. 그곳에서 3년을 보내면서 근무지 근처 정한 연사리 원룸 숙소는 전형적인 농촌으로 연초천이 흐르는 냇가와 가까웠다.
아침 출근길은 천변 들녘을 30분 넘게 걸어 학교로 출근해 퇴근길도 그곳을 되돌아오길 반복했다. 이태를 보낸 3년째 가을에 연초천에는 처음 본 커다란 철새가 네 마리 날아와 눈길을 끌었다. 무슨 새인지 궁금했는데 어떻게 알아본 결과 천연기념물인 개리로 드물게 남녘으로 찾는 겨울 철새였다. 연말에 삵인지 모를 상위 포식자에 한 마리가 희생되어 세 마리만 남아 안쓰러웠다.
아침에 지기들에게 보낸 까치 사진은 새해 첫날 제1 수산교에서 강심에 비친 일출을 보고 명례로 가던 둑길에서 본 녀석 사진이다. 열 마리도 넘을 까치들이 나목인 벚나무 가지 꼭대기에 앉아 지저귀었다. 외양이 같아 암수가 구분되지 않았는데 서로는 짝짓기 대상에 잘 보이려는 구애의 소리로 들렸다. 세밑에 고향 집을 찾으니 고샅 은행나무에 까치는 둥지 속에서 꽁지가 보였다.
지난여름 근교 강가로 나간 1번 마을버스 종점 신전 농가 골목을 지나다가 새끼를 친 제비가 둥지를 떠나는 모습을 가까이서 살폈다. 한 배태로 알에서 깬 예닐곱 마리 새끼가 처음으로 나래짓을 펼쳐 바깥으로 나오는데 어미 제비는 건너편에서 지켜만 봤다. 형은 먼저 나와 전깃줄에 앉았고 동생은 겁을 집어먹고 처마 밑 둥지에서 나래를 펼치지 못하고 머뭇거림이 신기해 보였다.
섣달그믐 집에 머물며 수도권 한 소시민이 남긴 ‘초보 탐조기’를 통해 잊었던 자연에 대한 감성을 일깨웠다. 도회지에 살면서 새를 찾아가는 이로부터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살리는 모습을 읽어냈다. 나도 어느 때부터인가 새들과 같이 한 장면이 제법 된다. 인공물의 영향과 지배를 받는 현대인이 숲과 더불어 사는 새를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원리를 터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5.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