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옥의 수필세계
이동민
고영옥은 내가 운영하였던 수필문예대학의 수강생으로 등록함으로 수필쓰기 공부를 시작하였던 것 같다. 그때 내가 받은 인상은 인물에서라기 보다 목사댁이라는 사회적 위치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종교인은 자기 신념이 강하고, 태도는 딱딱하리라는 것과, 모든 생활이 선하고 바르리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감성이 위주여야 하는 수필쓰기가 너무 도덕적이고, 엄숙하면 재미가 떨어진다. 내가 기피하는 수필쓰기이기도 하다.
이후로, 그의 수필을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거리에서 읽으면서, 작가에 대하여 내가 오해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던 중에 그의 첫 수필집을 받았다. 여타 작가와는 다른 수필세계를 기지고 있음을 알고 고영옥 수필세계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수필집의 머리말에 ‘어린 시절, 바닷가에 살았던 나는 가끔 동산에 오르곤 했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을 넘어가는 붉은 해가 꼭 화가처럼 보였다.’ 해가 그려내는 그림을 자기도 그리려고 하였다. 그가 그리는 고향의 그림이 해가 그린 것처럼 아름다운 것일까. 다른 작가가 그린 그림은 샤갈의 그림처럼 환상주의적이라면, 고영옥이 그린 그림은 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렸다는 생각이다.
대구의 수필가들이 그려내는 고향 모습은 꽃이 피고, 새가 울고, 산마루로 해가 솟아오르고, 붉은 노을을 만들면서 해가 지는 아름다운 농촌 마을이다. 산골마을이 많다. 고영옥의 고향 이야기는 다르다. 우리의 익숙한 읽기에서는 낯설고 새롭다.
사람들은 누구나 유년기를 보낸 고향을 평생 동안 그리워하면서 산다고 한다. 유년은 단순히 내가 살았단 곳이라기보다는, 그리움의 대상인 이상향이 되어서 나에게 머문다. 이상향이란 그림 속의 동네이고, 그림 속의 시간이다. 고향, 유년이라고 하면 무조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고영옥이 수필집 첫 글에서 그려내는 고향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수필집의 머리말에서 그의 현실적인 삶도 이야기한다. 사실은 이 삶들이 그의 수필세계를 만든다. ‘교사시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아이들 이야기,와 동고동락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들 이다. 고영옥 수필읽기도 그 안에서 하기로 했다.
최근에 와서 그가 말하기를 수필쓰기를 익힌 것이 가장 잘 한 일이라고 했다. 왜 일까? 그는 수필쓰기에 자기를 찾아가면서 자기를 다독거려주는 의지처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의 삶이 평탄하지는 않았다. 종교가 그의 삶은 지탱해주는 기둥이기는 하지만, 수필쓰기라는 또 하나의 기둥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이제 그의 수필을 읽으면서, 우리(독자)가 그를 찾아가 보자.
그의 고향 냄새는 생선냄새이다. 남편과의 갈등도 생선에서 비롯했다. 그러나 그가 표현하는 고향의 진짜 냄새는 ‘바람에 스며드는 어물전의 비릿한 생선 냄새’ 이다. 은빛 생멸치 그리고 구운 멸치 냄새 이다. 나는 ‘비릿한’이라는 표현이 고향을 표현하였다고 본다. ‘비릿한’ 말에는 고행의 추억이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가 그리는 고향은 아름다운 풍경만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새끼가 도둑질이고!’ 라는 억센 소리. 그리고 어머니 말 ‘야, 안 일어나고 뭐하니? 죽은 줄 알았다. 멸치 구워야지.’ 이처럼 그의 고향 그림은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내가 자주 읽었던, 농촌을 그리는 수필가들의 그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