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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길위의 인문학 우리땅걷기 원문보기 글쓴이: 신정일
새책 해파랑길 인문기행.
1. 책 소개
대한민국 대표 걷기 여행 코스
해파랑길을 탄생시킨 저자의 답사기
걷기 여행은 코로나19 이전부터 많은 이들에게 힐링이 되는 하나의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걷기 여행 코스에서 가장 높은 만족도를 나타낸 곳이 바로 해파랑길이었다. 해파랑길은 부산의 오륙도에서 출발해서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동해 바닷가를 따라 걷는 트레일 코스이다. 50개 코스, 750km에 달하는 이 길은 대한민국에서 유례없는 최장 거리의 걷기 길로, 2019년 개통된 이래 뜨거운 반응을 얻어 ‘코리안둘레길’의 조성으로까지 이어졌다. ‘해파랑길’이라는 이름은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와 함께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이라는 뜻으로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했다.
그러나 해파랑길이 명명되기 이전에 이미 그 길을 걷고 온 사람이 있다. 바로 문화사학자이자 걷기 여행의 선구자인 저자 신정일이다. 그는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의 대표로 활동하며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개척해 답사하며 이와 관련한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세상의 유행과 무관하게’ 걸어왔다는 그는 2007년 <동해 바닷가를 걷는 동해 트레일>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우리 땅 걷기’ 도반들과 함께 2008년 여정을 마무리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도보 답사길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이듬해에 해파랑길이 발표된 것이다. 그가 동해 바닷가 길 곳곳을 걸으며 우리 문화와 역사를 생생하게 이야기해 주는 『해파랑길 인문 기행』과 함께 걷기 여행을 떠나보자. 자신만의 페이스로 직접 걷는 길에서 만족감을 얻고, 더 나아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며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해파랑 길 인문기행>
그 길을 열아흐레 걷는 동안 힘들었던 만큼 어린애처럼 행복해지기도 했
다. 바다가 되었다가, 넘쳐서 달려오던 파도가 되었다가, 매일 태어나고 스러
지는 태양이 되기도 했던 나날이 언제 다시 내 앞에 올 것인가 생각하면 순간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는 시간들이었다.
이 길을 걷고서 책을 마무리할 무렵이 2008년 초였고, 나는 문체
부에서 조성 중인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선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길을 찾고 있었다. 문체부의 담당 사무관인 홍성운 씨에게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트레일인 ‘동해 트레일’을 국가 정책으로 조성해 줄 것을 제안했다. 문체부
에서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2010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전 국민을 대상
으로 선정해 이름 지은 ‘해파랑길’을 발표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부산시 남구청장에서부터 강원도 고성군수까지 해
파랑길이 지나는 길목의 자치단체장들을 모아서 발표하면서 나에게 마무리
발언을 부탁했다. 그때 내가 참석자들에게 했던 말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을 가건, 이웃 마을로 놀러 가던 ‘마실길’이 있고. 나
물 캐러 가던 길, 나무하러 가던 길, 과거 보러 가던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동
안에 자동차와 열차가 생기면서 잊히고 사라졌던 그 길을 ‘찾고, 설령 사라졌
으면 잇고,’ 그리고 사람들이 걸어가기만 하면 아름답고 역사적인 길이 새롭게
만들어질 것입니다. 나는 고스톱을 못 치지만 ‘찾고, 잇고, 걷고’ 그래서 ‘쓰리
고’만 하면 돈을 가장 적게 들이면서도 아름다운 길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이 길은 포구에서 포구로 이어지는 길이 환상적인 길입니다. 내연산, 두
타산, 청옥산, 설악산 등 아름다운 산과 동해 바다와 관동팔경을 따라 걷는 이
길을 휴전선에서 끝내지 말고, 북한과 협의를 해서 이순신 장군이 근무했던
두만강의 서수라까지 걷도록 합시다. 거기서 끝내지 말고, 러시아와 협의를
해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러시아를 돌아 스웨덴과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지나 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까지 가는 길을 만듭시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신정일 선생님, 혼자서 갈 수는 없겠는데요?”
그때 내가 즉답을 했다.
“삼대가 이어서 걸어가면 되지요.”
해파랑길의 표어인 ‘부산 오륙도에서 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까지’라는
말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 행사가 끝나자 ‘신정일 선생님, 파이팅’ 하는 말이 들렸다. 문체부 장관
정책 보좌관이었다. “왜지요?” 하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주창한 ‘쓰리 고’로 ‘해
파랑길’을 만들면 지자체에서 더 이상 돈을 더 달라고 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라고 답한다. 길은 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애정 어린 마음과 아이디어로,
만드는 것이다. 어디든 거미줄처럼, 아니 그물코처럼 촘촘히 짜인 길을 찾고,
잇고, 걷다가 보면 새로운 문화 운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프롤로그-
동해 바닷가를 따라 걷는 길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와 역사의 순간들
『해파랑길 인문 기행』은 저자가 2008년 지금의 해파랑길을 걸었을 때의 기록이다. 저자는 동해안의 바닷길을 걸으며 길 곳곳에 숨겨진 문화 역사적 흔적들을 발견해 소개해 준다. 울산의 처용바위를 지나며 『삼국유사』 속 처용 전설을, 치술령에서는 박제상의 이야기를 풀어주고, 문무왕 수중릉에 얽힌 문헌 기록과 대조하며 실제 전경을 묘사한다. 호미곶에서 비롯된 형국론뿐만 아니라 포항의 연오랑 세오녀 전설과 이 설화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밝혀준다.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국가 지질공원이 된 경주 읍천리의 주상절리를 최초로 발견하기도 하고, 이문열 등 고전 작품의 배경이 된 곳에서 잠시 땅의 호흡을 느끼며 쉬어가기도 한다. 동학의 1대 교주인 최제우의 이야기와 신돌석 의병장의 영해민란이 벌어진 역사의 무대를 조명하고, 정약용 형제의 유배지, 허난설헌과 허균의 생가, 신라 화랑들의 순례길까지 동해안 바닷길을 따라 남아 있는 문화유적지를 살펴본다.
현재의 동해안과 과거의 길이 만나는 자리
한 번쯤 걸어봐야 할 해파랑길
저자는 우리나라의 잊힌 길을 찾아 걷고 지역과 지명에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해 주며 길이 갖는 의미를 더욱 넓혀나간다. 현재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역사적 순간들이 깃든 곳을 지나쳐 가도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다 알지 못한다면 그저 단순한 길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해파랑길 인문 기행』에서는 21세기 동해안의 풍광을 담은 사진들과 더불어 저자가 이야기해 주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순간들이 한데 합쳐지며 또 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만약 해파랑길 걷기 여행을 계획 중에 있다면, 『해파랑길 인문 기행』과 함께 떠나보자. 현재 트레일 코스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북녘 땅에서의 기록까지 엿볼 수 있다. 혹은 해파랑길 완주를 마친 이라면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길을 걷는 나그네로서의 감정에 공감하고, 이전에는 다 알지 못했던 길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 저자 소개
신정일(辛正一)
문화사학자 신정일은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의 대표로 현재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걷기 열풍을 이끈 선구자다. 40여 년간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종횡무진으로 걸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걸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도보 여행가이자 현대판 김정호, 현대판 김삿갓, 현대판 이중환, 방외지사 등으로 불리며 역사와 문화 관련 저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이다. 1981년 가을 간첩 혐의를 받아서 안기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 국토를 걷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쳤다.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으며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에 참가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였던 김개남, 손화중 장군 추모사업회를 조직하여 덕진공원에 추모비를 세우는 데 노력하기도 했다. 한국의 10대 강과 조선시대의 옛길 도보 답사를 기획해 답사 후 책을 펴냈다. 소백산 자락길과 변산 마실길 등을 만드는 데 기여했으며, 서해안과 남해안, 휴전선 길을 걷고 500여 개의 산을 올랐다. 다음 카페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에 지속적으로 글을 올리면서 우리나라 옛길의 재발견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저자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과 산림청 국가 산림문화자산 심의위원을 지내며 대기업과 지자체 등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로 『신정일의 신 택리지』(전 11권)와 『왕릉 가는 길』, 『길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것들』, 『나는 그곳에 집을 지어 살고 싶다』 1~2권,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천재 허균』,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 『지옥에서 보낸 7일』, 시집 『꽃의 자술서』 등 107여 권이 있고, JTV 전주방송에서 〈신정일의 천년의 길〉을 오랫동안 진행했다.
3. 목차
1장 해파랑길 첫 번째 구간
014 부산에서 시작한 도보 답사 ~첫째 날, 2월 22일
022 청량한 파도 기장으로 ~이틀째, 2월 23일
031 울산에서의 해맞이 ~사흘째, 2월 24일
043 경주에 접어들다 ~나흘째, 2월 25일
052 주상절리 지나 다다른 포항 ~닷새째, 2월 26일
066 유배객의 땅 포항 ~엿새째, 2월 27일
079 맹호의 기상 호미곶 ~이레째, 2월 28일
095 화진리 경계에 이르다 ~여드레째, 2월 29일
110 동쪽에서 끝나는 땅 영덕 ~아흐레째, 3월 1일
125 울진에서의 마무리 ~열흘째, 3월 2일
2장 해파랑길 두 번째 구간
136 후포에서 다시 시작 ~열하루째, 4월 12일
158 경상도의 마지막 마을 ~열이틀째, 4월 13일
174 강원도 삼척에 이르다 ~열사흘째, 4월 14일
3장 해파랑길 세 번째 구간
186 동해에서 다시 만나다 ~열나흘째, 5월 3일
200 새로운 비경 정동진 ~열닷새째, 5월 4일
228 허균의 고향 강릉 ~열엿새째, 5월 5일
4장 해파랑길 네 번째 구간
238 주문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열이레째, 6월 6일
257 설악산 넘어 큰 나루 거진 ~열여드레째, 6월 7일
272 모래가 울고 해당화 피는 화진포 ~열아흐레째, 6월 8일
277 걸어가고픈 땅 북녘 해파랑길 ~2년 뒤, 5월 3일
4. 추천의 말
우리가 사는 지금, 김정호 선생을 닮은 사내가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산을 오르기 시작한 그가 다음은 강 길을 걷더니, 이제는 아예 우리나라 전 국토를 이 잡듯 뒤지며 걷고 또 걷는다. 나는 그를 보며 나는 ‘저 사내 틀림없이 김정호 귀신이 씌었지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한다. 현대판 김정호, 그가 바로 신정일이다.
_김용택 (시인)
신정일 선생은 촌놈 같기도 하고 동학군 같기도 하여 어수룩해 보인다. 그런데 이 ‘촌놈’의 얘기가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절로 무릎을 치게 한다. 신정일은 무당처럼 답사를 한다. 이렇게 혼이 실리고 신명나는 답사의 궤적을 따라가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다.
_이정만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오래전부터 신정일 선생은 묵묵히 산을 오르고 강과 옛길, 그리고 바닷가 길을 걸었다. 민속학자인 임재해 선생은 그를 ‘산을 밟는 답산가(踏山家)’이자, ‘산에서 노닐며 산과 대화를 나누는 유산가(遊山家)’ 라고 평했고, 김지하 시인은 “그가 유목민으로서 삼남 일대의 남조선을 걸어 다니는 민중사상가로서의 실천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한, 우리가 지향하는 고조선의 원시반본(原始返本) 즉 ‘정착적 노마디즘’을 반드시 실현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라고 평했듯이 그에게 우리 국토는 이 나라의 역사이자 민중들의 삶이었던 것이다. 호사가들이 그를 ‘현대판 김정호’ ‘현대판 김삿갓’으로 부르는 이유는 그가 바로 길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_이덕일 (역사학자)
신정일 선생은 길 위에 모든 것이 있다고 설파한다. 두 갈래 길을 만날 때마다 그가 선택한 길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강호(江湖)의 낭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강호파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 들어가 보는 사람이고, 그런 신념이 우리나라의 강과 산, 그리고 옛길과 해파랑길을 걷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북한의 총석정, 칠보산을 지나 두만강에 이르고, 케이프타운까지 걷겠다는 돈키호테와 같은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_조용헌 (강호동양학 연구소장)
책 속으로
신문왕이 동해 바다를 아무리 바라보아도 용이 나타나지 않자 기다림에 지쳐 깜빡 잠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 놀라 깨어보니 사방이 안개로 자욱해지며 용바위로부터 큰 용이 나와 하늘로 올라갔고, 그때 왜구들의 근거지로 알려졌던 12개의 섬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뒤로 건물을 짓고 이견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061p, 「1장 해파랑길 첫 번째 구간」 중에서
당시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호미등에 불이 켜지면 범이 꼬리를 흔들어 등대를 넘어뜨릴 것이고, 그러면 주변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등대 착공 후 이사를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곳 호미등에 일본인 등대수가 배치되고 두어 달 만에 밤중에 괴한이 침입해서 등대수와 가족을 몰살시킨 사건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그 일을 두고 호미등에 불을 켠 것에 대해 천벌이 내린 것이라고 했다.
-082p, 「1장 해파랑길 첫 번째 구간」 중에서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인근 마을 사람들이 이 산에 올라 달맞이를 한다. 그날 떡봉과 밥봉에서 달이 뜨면 풍년이 들고 만약 죽봉으로 달이 뜨면 흉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어 떠오르는 달을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뒷당 남쪽으로는 신선이 놀다 갔다는 옥랑봉(玉郞峯)이 있다.
-167p, 「2장 해파랑길 두 번째 구간」 중에서
추암 동쪽 바닷가에 촛대처럼 삐쭉하게 솟은 촛대바위가 있다. 새해 첫날, 그리고 주말이면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모여든 많은 인파로 붐비는데 언젠가부터 방송 시작을 알리는 애국가 연주의 배경이 되어 일명 ‘애국가 바위’라고 불리기도 했다.
-196p, 「3장 해파랑길 세 번째 구간」 중에서
둘레가 30리쯤 되는 사진리 영랑호(永郞湖), 호숫가에 기암괴석이 많고 호수 가운데로 솟은 작은 봉우리 위에 옛 정자 터가 있다. 이곳 풍광이 얼마나 빼어났던지 신라시대 무술대회를 치르기 위해 길을 나선 네 화랑이 이곳 호수를 지나게 되었을 때, 화랑 영랑이 호수의 풍취에 매혹되어 무술대회 참가조차 잊을 정도였다고 한다.
-263p, 「4장 해파랑길 네 번째 구간」 중에서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두 발을 내딛어 국토 남단을 흐르는 동해를 바라보며 걸어온 우리의 여정은 3·8선을 앞에 두고 발이 묶였다. 그리고 꿈결을 더듬듯 마음의 길을 열어 3·8선 이북의 동해길을 추적해서 국토 최북단 녹둔도에 이르렀다. 이제는 러시아로 귀속된 녹둔도에서 러시아 해변을 따라가다 보면 유럽에 닿을 것이고, 길은 유럽에서 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우리 국토 해안 길을 따라 시작한 동해 트레일은 세계에서 가장 긴 장거리 도보 답사길이 되지 않을까.
-309p, 「4장 해파랑길 네 번째 구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