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에게 용은 뱐화무쌍한 물의 신이었다. 연못이나 강, 바다 같은 물 속에 용이 살면서 비바람을 몰고 다닌다고 생각했다. 특히 어민들에게 바다에 사는 용왕은 숭배 대상이었고, 농사에 필수인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치를 때도 용에게 비를 내려 달라며 기원했다.
불(火)과 정반대 개념인 물을 상징하는 용은 화재 예방을 기원하는 상징으로서 여기저기에 쓰였다. 경복궁 근정전 중수공사 때 발견된 용 문양 부적이 대표적이다. 1000여 자의 작은 용(龍)자를 이용해서 커다란 하나의 물 수(水)자를 만든 부적입니다.
경회루 용은 8월 20일부터 9월 10일까지 20여 일에 걸쳐 한 쌍으로 제작되었다. 당시 제작 총 감독은 나라의 큰 일이 있을 때 특정 업무를 총괄했던 별간역別看役 김재수金在洙였다. 김재수는 정3품 오위장(五衛將)의 직함을 가진 무관이다.
당시 용은 주조하여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2년 뒤인 1867년 7월 경회루 연못에 가라앉혔다. 1997년 발견 당시에는 아쉽게도 한 쌍 중에서 한 개의 청동용만이 발견되었다.
백성들이 부주의로 화재를 일으키면 집이 타버려 재산이 일시에 탕진된다.
당시 건물은 대부분 목재라서 한 번 불이 나면 피해가 어마무시했다. 특히 초가가 대부분이었던 일반 백성들의 집은 더더욱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세종 8년인 1426년 2월에는 이틀간 큰 화재가 났는데, 이 때 2000가구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 한 노비의 집에서 일어난 화재가 겨울철 거센 바람을 타고 번져서 민가와 관아들을 태운 것이다.
이 사고로 32명이나 숨지고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한양에 있던 집 1만 8000여 채 중 10분의 1가량이 타버린 큰 불이었다. 충격을 받은 왕실에서는 화재에 대비하기 위한 소방전담기구인 ‘금화도감이 요즘으로 치면 소방서와 비슷한 일을 한 것 같은데, 어떤 조직이었다.
세종 때 설립된 금화도감은 병조, 의금부, 한성부를 중심으로 짜여진 조직이에요. 그렇지만 현대 소방청처럼 상설기구는 아니었고 임시적인 성격을 지닌 ‘도감’ 이었기에 인원수도 적었고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창설된 지 34년 뒤인 세조 대에 한성부에 통폐합되었다가 성종 대에 수성금화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생겨난다. 불이 나지 않을 때는 할 일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수성금화사는 소방임무에 더해 성문 관리 업무까지 추가로 맡았지만 오래 못 가서 비용과 인원을 절약한다는 명목으로 없어졌다. 수성금화사가 하던 소방 업무는 한성부에서 맡게 되었죠. 그러다가 1895년 고종대에 경찰과 소방 업무를 총괄하는 경무사가 생긴다. 지금과 같은 의미의 소방서가 최초로 생긴 건 1925년(경성소방서) 다.
불이 나면 의금부가 종루를 맡아 지키고, 군인들은 병조에서, 각 관청 노비들은 한성부에서 담당해 투입시키도록 정해졌다. 통행금지시간 이후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신분증인 신패를 소지했다.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통행금지 시간이었는데 이것은 어둠을 틈타 불을 지르고 도둑질하는 사람을 막기 위한 제도이기도 했다.
궁궐이나 관아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불이 다 잡힐 때까지 종을 치고, 숙직자와 궐내 시동, 궁문 경호병 등은 직접 불을 끄는 소방관 역할을 했다. 다른 군사들은 근무처를 떠나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으며 화재진압을 담당하는 사람 말고는 드나들 수 없게끔 각 문을 통제했다. 불이 난 혼란을 틈타서 반정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불이 나면 신분증인 신패를 차고, 물 떠오는 노비와 함께 현장으로 출동한다. 불이 난 곳 근처에는 높은 깃발을 세워서 위험한 곳임을 표시했다. 밧줄과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간 다음 갈고리로 기와나 짚을 걷어내고, 도끼로 찍어서 건물을 철거했다.
물을 뿌리기도 했지만, 목조주택은 불이 옆으로 빨리 번지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무너뜨려서 불길을 잡는 게 우선이었다. 요즘 소방호스처럼 물을 직접 뿌려주는 수총기는 경종3년인 1723년에 청나라에서 수입해 왔다.
건물이 화재에 취약하다 보니 비상시에 대비한 다양한 시설물이 있었다. 옛날에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지붕으로 올라가서 물이나 모래 같은 것을 뿌리며 불을 껐다.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 지붕을 오르내리기 쉽도록 처마 아래에 쇠고리를 걸어 두었다.
또 궁궐 주요 건물 곳곳에 도끼, 쇠갈고리, 밧줄, 긴 사다리 같은 것을 비치해 두었다. 주요 건물 앞에는 물을 담아두는 커다란 물항아리인 ‘드므’가 있다. 지금도 궁궐을 구경하시다 보면 곳곳에서 넓적하고 큰 항아리 같은 것을 보실 수 있다. 이 드므에는 항상 물을 받아 두어 작은 불을 빠르게 끌 수 있도록 했다. 불을 지르고 다니는 귀신인 화마(火魔)가 왔다가 드므에 담긴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라는 의미도 있었다.
궁궐 안에는 우물과 크고 작은 연못들이 많다. 이것들은 마실 물을 확보하고 조경을 아름답게 한다는 목적도 있지만 불이 났을 때 진화에 활용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기도 하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자세하게 묘사한 동궐도를 잘 살펴보면 곳곳에 드므, 우물, 크고 작은 연못들을 보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