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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스크랩 공세리 성당
한국의산천 추천 0 조회 37 07.09.02 20:4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아름다운 성당  공세리 성당

 

비로 인하여 산행지 답사는 취소되고 답사를 떠났다.

답사코스 : 아산 공세리 성당 - 예산 향천사  [답사 : 2007. 9. 2. 비가 많이 내리는 일요일   한국의산천 

 

오늘도 한손에는 우산 한손에는 카메라...

줄기차게 내리는 비로 인하여 카메라와 카메라 렌즈를 연신 ?으며 촬영을 했다.

 

  

▲ 공세리 성당 ⓒ 2007 한국의산천

 

1895년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드비즈 신부는 이곳에 부임해서 400년이 지난 세곡 창고터를 헐고 그야말로 복음 창고인 성당을 1922년 10월 8일 봉헌함으로써 내포지방의 신앙의 못자리를 틀게 되었다.

그는 지역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신이 직접 조제한 한방 의술을 활용, 한약을 조제하였으며 '이명래 고약'으로 유명한 이명래(요한)씨에게 이 고약의 비법을 전수하였다. 이 고약은 처음에는 드비즈 신부의 한국명인 '성일론고약'으로 불렸었다.

 

 

▲ 공세곶고지 내력 ⓒ 2007 한국의산천

 

 ▲ 삼도해운 판관비와 공세창고가 있던 터 ⓒ 2007 한국의산천

 

공세리 지명

공세리는 조선시대에 충청도 일대에서 관곡을 수합하여 서울로 운송해 가던 창고집이 있던 곳이다. 마을 이름도 세금을 바치던 공세 창고가 있는 곳이라는 데에서 온 것이다. 

 

조선조 성종9년(1478)부터 이곳에 세곡해운창을 설치, 운영해오면서 매년 15척의 조운선으로 서해 물결을 따라 삼도의 세곡을 한양으로 운반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 삼도해운 판관비 내력 ⓒ 2007 한국의산천

 

 ▲ 공세리 성당 입구에서 ⓒ 2007 한국의산천

  

 

▲ 고색 창연한 성당의 모습. ⓒ2007 한국의산천      

 

화려하지 않은 고색창연한 고딕 양식 공세리 성당은 1895년 프랑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드비즈 신부가 이곳에 부임해서 400년이 지난 세곡 창고 터를 헐고 중국인 기술자를 데려와 지었다고 한다. 성당을 1922년 10월 8일 봉헌함으로써 내포지방의 신앙의 못자리를 틀게 되었다. 

건축 당시에 아산 지방의 명물로서 이름을 날리며 멀리서부터 많은 구경꾼을 불러왔다고 한다.

공세리 성당의 초대 주임을 지냈던 드비즈 신부는 2대 기낭 신부가 1년 만에 전임하자 다시 3대 주임으로 부임해 1930년까지 무려 34년 동안이나 머물며 성당의 기반을 굳건히 다졌다. 

 

드비즈 신부는 지역 교육사업과 의료사업 등에 많이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자신이 직접 조제한 한방의술을 활용해 백성들을 살폈는데, 유명한 ‘이명래 고약’은 드비즈 신부가 제조한 것이라 한다. 이 고약은 처음에는 드비즈 신부의 한국 이름을 따서 ‘성일론(成一論) 고약’이라 했고, 나중에 드비즈 신부의 심부름꾼이었던 이명래에게 전수되면서 ‘이명래 고약’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공세리 성당은 천주교 신자들에겐 순교성지다. 조선 후기의 4대 박해에서 희생당한 총 순교자는 1만 명 정도라 한다. 이중 아산, 서산, 당진, 홍성, 예산 등 내포를 비롯한 충청권의 희생자가 무려 60~70% 정도나 된다고 한다. 공세리 성당 출신의 순교자도 28명에 이르고, 이중 박의서(사바스), 원서(마르코), 익서(미상) 3형제 순교자의 기념비가 성당 옆에 있다.

 

 ▲ 공세리 성당의 성모상 ⓒ 2007. 한국의산천

 

 ▲ 삼위 순교자 헌양비 ⓒ 2007 한국의산천 

얼마전까지도 묘 3기가 있었으나 (아래 사진 참고) 현재는 이렇게 바뀌었다.(위의 사진)

  

 

 

 

 ▲ 성당 내부 ⓒ 2007 한국의산천

 

 ▲ 공세리 성당 ⓒ 2007. 한국의산천 

 

성당의 벽에는 아직도 고어체로 쓰여진 글씨가 남아있다. 

슈고하는 자와 무거은 짐 진 쟈는 내게로 오라. 나 너희를 도으리라

 

 

 ▲ 공세리 성당의 노거수 느티나무 ⓒ 2007. 한국의산천

 

공세리 성당 안에는 인조 9년경 세곡 상,하역 작업를 위해 노역자들의 그늘막으로 심은 나무들이 지금은 아주 큰 고목으로 6~7그루 남아있다 

 

 

 

 

▲ 공세리 성당 ⓒ 2007. 한국의산천  

 

 ▲ 공세리 성당의 가을 2006년 촬영 ⓒ 2007 한국의산천

 ▲ 공세리 성당의 가을 2005년 촬영 ⓒ 2007 한국의산천

 

봄에는 영산홍이 피고, 여름에는 상사화가 화려하다. 성당 주변에는 수령 300년 이상의 고목만 7그루나 된다. 단풍도 곱고 눈 덮인 겨울 풍광도 곱다. 그래서 영화 감독과 PD들은 공세리 성당을 배경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찍었다. 

드라마 ‘모래시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불새’ ‘고스트맘마’ 등에서도 성당이 배경이 됐고 가수 god도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아산, 어떤곳인가 [민병준의 향토기행 참고]


충청남도 북부에 있는 아산시(牙山市)는 동쪽은 천안시, 서쪽은 당진군, 남쪽은 예산군·공주시, 북쪽은 아산만을 사이에 두고 경기도 평택시와 접한다. 남동쪽에는 금북정맥이 지나면서 광덕산(廣德山·699m)·망경산(望京山·600m)·봉수산(鳳首山·534m)·설화산(雪華山·441m) 등이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북부에는 영인산(靈仁山·364m)·고용산(高勇山·294m) 등을 중심으로 저산성 구릉이 발달했다. 

 

북서부에는 아산만이 내륙 깊숙이 만입해 있고, 아산만으로 유입하는 삽교천·안성천 하구에 삽교호·아산호가 조성되어 있다. 또 곡교천(曲橋川)이 남쪽의 금북정맥에서 발원해 북류하며 중앙을 관통하여 아산만으로 흐르고, 무한천(無限川)이 선장면(仙掌面)과 예산군 신암면(新巖面)의 경계를 따라 흘러 삽교천에 합류해 삽교호로 들어가며, 둔포천이 시 북부 경계를 따라 서쪽으로 흘러 아산호로 유입한다. 이들 하천유역에 탕정평야 등 넓은 퇴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아산은 백제의 아술현(牙述縣)으로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음봉현(陰峰縣)으로 개칭, 탕정군(湯井郡·溫陽)의 영현이 됐다. 고려 초인 940년(태조 23) 음봉현을 인주(仁州)로, 기량현(祈梁縣)을 신창현(新昌縣)으로, 탕정군을 온수군(溫水郡)으로 각각 개칭했다. 1018년(현종 9) 천안군에 속현으로 병합됐다가 뒤에 아주(牙州)로 고치고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아주를 아산으로 개칭했고, 1414년 온수군을 신창군과 병합, 온창현(溫昌縣)이라 했다가 1416년 다시 온수현을 분리했다. 1442년(세종 24) 온수현을 온양군으로 승격시켰으며, 1458년(세조 4) 아산현을 온양·평택·신창으로 나누었다가 1464년 다시 복귀시켰다. 1895년 아산현은 홍주부 아산군이, 온양군은 홍주부 온양군이 됐으며, 1896년 각각 충청남도에 소속됐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아산군·온양군·신창군을 아산군으로 통합하고 12개면을 두었다. 1941년 온양면이 읍으로 승격됐으며, 1986년 온양읍이 온양시로 승격되어 아산군에서 분리됐으며,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온양시와 아산군이 아산시로 통합됐다. 현재 1읍 10면 6동을 관할한다. 

 

기후는 여름과 겨울의 구분이 뚜렷한 대륙성기후로 연평균기온 12℃, 1월 평균기온 -2.1℃, 8월 평균기온 24.9℃이며, 연강수량은 약 1,200mm이다. 기후가 온화하며, 수리시설이 잘 정비되어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했다. 농촌과 어촌을 동시에 형성하고 있으며, 수도권에 인접해 있고, 서해안 지역발전의 입지조건이 양호한 곳으로 아산항 종합개발, 고속철도 역세권 개발, 현충사·도고온천·아산온천·광덕산·삽교호 등 유수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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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9.02 21:15

    첫댓글 공세리 성당 순교자 28명을배출한 복음의 전당이며 성지입니다 이조말 탕관오리들의 학정에 핍박받는 서민들을 위하여 이명래 고약등으로 서민들의 생활을 돕고 일으켜 주는 구심점이 된 곳입니다. 비가 오는 중에도 아름답고 무계감이 더 실린 영상을 봅니다 꽃삽 어딨지?

  • 07.09.10 22:30

    공세리성당의 고전적인 건축양식이 멋있습니다. 저도 일년에 몇번은 찾는 곳입니다. 집사람과 둘이 성당에 들러 미사를 봉헌 할때도 있고, 성체조배실이 열렸을때는 조용히 묵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천수만으로 건너가면 굴밥도 맛있지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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