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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이별후에 길 1, 2, 3, 4, 7, 이유기 그녀에게 동행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시경 봄비 그녀. 내 어머니 친구에게. 너에게 해빙기 어머니께 어떤 귀가 전화 모델하우스 꽃꽂이 강좌 이별 그리고 다시 사랑하기 불면 섬진강 일교차 공항에서 사이버 사랑 입추 (入秋) 상처 기꺼이 부르리다 오월에 쓰는 편지 내가 널 좋아하는 이유 비 저전압경고 경주남산 나는 지금 세탁 중 여름 밤 바다낚시 밤꽃의 노래 떠나는 오월에게 된장 찌개 미련 그녀의 왼손 두부 만드는 법 금지된 장난 보문호에서 가슴에 묻은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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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가야할 일만 남았다
더는 망설임 없는 초록이여 이젠 짙어질 생각만 하여라 녹음 무성하게 우거져서 태양과 견주며 오직 뜨겁게 뜨겁게 타 오르거라
뒤 돌아 보지도, 아득해 하지도 말고 점점 짙게 채워갈 일만 남았으니
너 거침없이 향기 뿜으며 맘 놓고 행복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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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후에
그렇다고 어찌 이리도 맘 닫아 버렸는지요
이쯤에서 한 번은 돌아보며 시선 내게 줄 거라 여겼습니다
움트는 그리움의 싹이 그대 가슴엔들 어찌 없었겠는지요
이별의 퍼런 칼날 지나간 후에도 움 벼처럼 다시 쏙쏙 고개드는 그리움 한 줄기
어찌 없었겠는지요,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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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1
아뿔싸 길을 잘못 들었다 좀 전에 지나친 고층 건물 앞으로 난 새 길을 향하여 우회전을 해야 하는 것을 창부타령 한 소절 들으며 흥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그만 놓쳐 버린 것이다
어쩌나 함부로 속도 늦출 수도 없는 메인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새로운 장소를 제시하는 이정표는 운전한 지 십수 년 세월인데 그것 하나 제대로 못찾느냐고 놀려대고 나는 자꾸만 목적지로부터 시속 100키로미터의 속력으로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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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2
갈림길에 설 때마다 현기증이 난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방향 잡아 달리는 차들 차들 선택에 서툰 날 앞지르며 자기 회의가 전혀 없는 나르시즘이 뿜어 내는 아득한 속도감에 그들이 내젓는 손사래에 바람이 일고
돌아 보면 백미러 뒤로 쏜살같이 사라지는 길 위에 그렇게도 바삐 질주하던 꿈들이 같은 속도로 아우성치며 멀어진다
내가 가지 않은 나머지 한 길엔 나 대신 돋움발로 내내 바라봐준 프로스트의 시선이 아득하고 그 시선 끝에는 못이룬 사랑이 하나 자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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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3
반환점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달려온 시간만큼 풀어야 할 숙제는 쌓여가고 내 목적지는 아득한 미로속으로 꼬리를 감추려 한다.
수양버들 팔 길게 벌려 어디론가 열심히 신호를 보내고 먼山은 와락 안길듯 달려오다 확 스쳐가 버린다.
이길 어딘가에 분명 또다른 출구가 있을텐데.
나는 가속페달에서 발을 조금 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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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4
갑자기 길에게 조롱당한 느낌이 든다
그의 뒷모습 쫓아서 가슴 활짝 열고 달리던 내 바퀴는 점점 지쳐 가는데
한 번쯤 뒤 돌아다 보며 출구 열어 줄 때도 되었건만 속내를 알 수 없는 길은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정녕 그 뒷모습만이 내 몫인가
조금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 위로 어둠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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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7
결국 반전은 없었다
아직 밖은 칠흑같은 어둠 나는 갑자기 속도가 다시 그리워졌다 갈림길에서 스쳤던 그들의 나르시즘을 싹 무시하려던 나의 오만이 어둠보다 더 두려워지는 것이다
다시 합류해야 한다 그들의 속도에 발 맞출 적당한 간격을 설정하고서 길은 길로 통한다고 했으니 가속페달에 발 다시 얹어 앞 차의 꽁무니를 찾는거다
어디선가 와글와글 개구리 소리가 들려 오고 점점 커지는 그소리는 귀에 익은 박자를 더듬더니 문득, 잃었던 기억이 스멀스멀 일어나 와글거리는 소리 사이로 길 하나 열어 보인다
창부타령 한 소절이 스피커를 열고서 멈추었던 그 지점으로 다시 얼른 달려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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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기
사랑한다, 내 품 떠나서 가는 네 뒷모습을 향해 자꾸만 부풀어 오르는 젖가슴 모진 맘 먹고 칭칭 동여매고는 침한 번 꿀꺽 삼킨다 그리고 동터 오는 하늘 보며 단지, 기도한다 네 가는길이 너무 많이 돌아가는 길 아니게 해 달라고
그리도 조그만 어깨에 이제 네 몫으로 가방 하나 메고 떠나는 너 심한 몸살 앓을 것이다 아득한 길에서 빛 잃고 헤매일 때, 단단하다고 믿었던 땅 바닥마저 갑자기 출렁거려 헛디딘 발 아래로 넘어지고 나면 그냥 주저 앉아 버리고도 싶을 것이다
그 때 바닥에 귀 기울이고 잘 들어 보렴 바람 한 줄기 지나가며 네게 나누는 귀엣말을, 그 속에 네게로 내가 보내는 네 그리던 젖냄새를, 늘 널향해 흐르는 비릿한 이 사랑을 꼭 기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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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동행이 있었으면 좋겠다
동행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에게 창가에 마주 앉아 차 마시며.. 회상 함께 나눌 수 있는 동행이면 참 좋겠다 창고 깊숙이 숨겨 둔 사연 회고해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동행이면 참 좋겠다 창파 헤쳐 온 세월 서로 위로하며 회색 울음 꺼이꺼이 함께 울어 줄 동행이면 참 좋겠다 창안이 돼 버린 얼굴 예쁘다 해주어 회심의 미소 지을 수 있는 동행이면 참 좋겠다 창공 가득 밀려오는 여든 해 삶의 무상함을 함께 회의할 수있는 동행이 있었으면,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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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경
속을 제대로 들여다 보려면 먼저 다 비워야 한단다 까짓거 갈증 하루쯤 참아 내기가 무에 그리 어려울 게 있겠는가 이 거북한 느낌의 실체를 향해 물음표 끝에다 카메라 하나 달아 보고 싶었다
목젖은 잠시 잠재워 둬야 한다 카메라 지나갈 때 설움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이라도 토해낸다면 참 낭패거든 예리한 네 촉수에 마법의 주문을 외 줄 테니 너 잠시 돌이 되거라 감정 앞세우면 제대로 읽어 낼 수 없음이야 대체 언젯적 사랑이 다 타지 못한 채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길 떠나지 않고 울부짖는지 내가 내 속을 알 수 없으니 무심한 시선 하나를 빌려다 대신 물어보고 싶었던 게지
임무를 마친 카메라는 전한다 "너무 뜨거운 온도가 문제였어" 건강을 위해서는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운 사랑은 해로우니 적당히 미지근한 사랑만 나누고 살라는 처방전 한 장 무표정한 얼굴로 전하며 눈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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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 몫이었군요
그대 훌쩍 떠나간 길에서서 아득한 하늘 끝 점 하나로 설움 담았다가 숨죽여 울어야 하는 것이, 떠나는 그대 가슴 헤집고 들어 가 굳어 버린 눈물 자국들 어루만져 대신 울어 줘야 하는 일이 결국 내 것이었군요
말하는 법을 배워야 햇습니다 아플 때 아프다고 소리 내어 우는 법을 배웠어야 했습니다
당신 머문 자리에 이는 바람 서늘한 그 흔적들 내내 폐부 찌르고 가슴에 담아둔 한 마디 말 결국은 내보이지 못한 채 그대 눈물 내 설움으로 씻어 주며 이 거리로 나서야 하는 길이 결국은 내 길이었습니다
아 그대여
당신을향한 의문부호 하나 마침표로 갈무리 하여 접어야 할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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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내 어머니
'정갈한' 이란 형용사 장식품처럼 비녀 끝에 꽂고 다니셨던 당신
그리도 아끼던 긴머리 싹둑 자르던 날 한 올의 흐트러짐도 용서하지 않았던 신앙같은 당신의 질서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갑작스런 생이별에 길 잃은 머리카락들은 허공을 향해 쭈빗쭈빗 울먹이다 결국 낯설어진 당신의 뒷모습 부여 잡고 소리 없이 통곡하는 것을
나 보았습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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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너에게
눈 감으면 가슴 속에 눈 하나 다시 생겨 세월 가르며 강 건넌다
그 언덕 아래서 나누던 설렘들이 다시 옷 갈아 입고 불쑥불쑥 다가오고
강가에 앉아보면 아! 그날의 강가에 앉아 보면
아직도 조심조심 자라고 있는 추억 하나 있어 끝내 듣지 못한 한 마디를 향해 귀 쫑긋 열어둔 채 서성이고
네게 마저 해 주지못한 단어들은 스멀스멀 일어나서 미완의 찬가를 부르고 있단다
사랑하는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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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빙기
나 이제는 그대 용서 하렵니다 서슬 퍼런 날 세우고 겨우내 쌓았던 분노 그 속에 꽁꽁 묶어 둔 무심했던 그대의 시선 끝자락에다 슬그머니 원망의 잔 하나 내려 놓으렵니다
사랑 엇갈리던 길목마다 홀로 아리랑 부르라 하던 혹독한 겨울밤은 뜨거운 눈물 한 줄기마저도 끝내 허용치 않고서 흐르다 만 채 숨막히는 침묵으로 굳어만 가라 했습니다
가끔씩 보이던 햇살 한 줄기 야속하게 스쳐 지나가 버리고 나면 내 분노의 벽은 오히려 더 두터워 질 뿐 결국 내 심장 깊숙히 흐르는 뜨거운 피 다시 솟구쳐야만 그 단단한 마법의 성에서 풀려나 다시 흐를 수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았습니다
내 안의 그대여 하여 나 이제 그대 용서해드리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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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어머니
이 것 하나만 알아 주세요
당신 불러놓고 나면 앞 다투어 ?아지는 많은 말들이 파도를 이루지만
당신의 존재가 지금도 여전히 내겐 무한한 힘이 된다는 것만 결코 짐이 아니라는 간절한 진실 하나만 오늘은 말하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팔십여년 당신의 힘겨웠던 삶은 이른 아침 들려주시던 도마소리처럼 내 인생의 교과서가 되어
늘 동그라미 가득한 미소로 다가와 등 토닥여 준다는 것 그 것 하나만 알아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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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귀가
지게 위에 아버지가 山 하나를 업고 온다 눈부신 초록이 출렁 출렁 춤을 추고 개망초꽃 무리지어 까르르 까르르 웃어 댄다
이슬 헤치며 시작한 긴 하루가 풍성한 이야기 뭉치 되어 어깨 위에서 성큼 성큼 걸어 올 때 어느 새 붉어 진 저녁 놀 이별 아프다며 애절한 눈빛 보내 오지만
山 하나 지게 위에서 묵묵히 앞만 보고 걷고 있다 가뿐 숨 미소로 뱉아 가며 등줄기 흐르는 땀과함께 그저 쉼없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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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나 왔어'
안개 낀 가지 끝에 반짝 빛이 한 줄기 지나간다.
세포들이 일제히 일렁이며 찌르르 피가 빠르게 돌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자들이 앞다투어 달려나가
긴 기다림의 끝에다 마침표 하나 꼬옥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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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하우스
눈부신 행복이 전시되어 있다.
좁은 출입문을 지나 넓은 현관으로 들어서 보면 쭉쭉빵빵 팔등신의 삶들이 확 트인 거실을 누비고, 주방인지 고급 레스토랑인지 헷갈리는 조명 아래를 누비고 다닌다.
'저희는 마감재를 최고급으로만 써요' 미로찾기를 하는 듯한 방들을 안내하면서 윗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그녀는 끝까지 행복을 보장하겠다는 다짐으로 유혹의 눈길을 보낸다.
갑자기 구질구질 흩어져 있던 내 삶이 굵어진 허리통 뒤로 달려와 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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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꽂이 강좌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예쁘다고 무작정 다 꽂았다가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거든요 가장 간절한 사연 하나만 남기고는 모두 잘라 버리세요
1주지와 2주지 사이에는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터 주고 빈 공간에다 잘려나간 꽃들의 노래를 흐르게 하세요 침묵하는 법을 알아야 좋은 詩가 나오듯 꽃으로 피고 싶은 언어들 잠재워야만 비로소 여백의 美까지도 수반위에 꽂을 수 있답니다
마지막으로 천천히, 아주 조금씩 물 흐르게 하세요 사라진 꽃들의 향기를 불러다가 날카로운 침봉 아래서 다시 뿌리 내리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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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리고 다시 사랑하기
한 밤중,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보니 낯선 공간 속에 내가 있다
어딜까,여기가 어딜까 분명 현재 진행형이었는데, 목울대 치밀고 올라와 숨 컥컥 막히게 하던 것들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있다 누굴까 도저히 걸러질 것 같지 않던 혼돈의 잡동사니들 그 대책없는 혼합물에 거름망 대고 걸러준 이가
작은 알갱이들 망 사이로 쏙쏙 빠져 나가며 외친다 내겐 쭉정이만 남아 있으니 이제 더이상 촉촉해질 일 없을거라고 하지만, 가끔씩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들어야 할거라고
알갱이들 따라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의 파편들 그 아우성에 마침표 쿡 찍으며 불쑥 다가서는 느낌표 하나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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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
결국 우리는 머물 수 없는 바람들이었어 그리움의 고리 주렁주렁 매달린 저녁 하늘 툭툭치며 무심히 흘러야 하는 바람이었어 못내 아쉬운 가지들 제 무게에 겨워 출렁이다 초록빛 설움 뚝뚝 흘리는 오월 어스름과 캄캄함 사이에 난 길로 모퉁이 하나씩 안고서 발길 재촉해야 하는 바람이었어
사랑한다 널 아직도 사랑하는 날 사랑한다 미워한다 널 그래도 미워하지 못하는 날 미워한다
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허공 떠돌던 우리들의 노래가 어느 한적한 집 오월의 햇살 홀로 노닐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득한 유년을 닮은 마당 위에서
우리 소매 한자락이라도 스칠 수 있을까 하여 우리들 거부했던 굳은 대지 용서하며 눈물 되어 내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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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구불 구불
네 가슴 빠져 나온 내 삶이 늘 그랬다
다시는 뒤돌아 보지 않고 곧장 가리라 툴툴 털고 나선 길 이었는데 원심력과 구심력이 상존하는 가슴 안고는 널 결코 떠날 수 없었기에 굽이굽이 네 주변 맴도는 노래 되어
내내 너와 함께 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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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교차
비 그친 아침이 감쪽같다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인가 밤 새 쏟아내던 네 눈물은 내 기관지 자극해 자꾸만 기침 해 대는데 어느새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널 따라 환하게 웃어 보란다 눈물 자국 아직도 남아 있는 이파리 위로 태양 불러 올리며 또 한 번 뜨거워지잔다
내 사모곡은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네 가슴 향해 다시 목청 가다듬으며 오월의 찬가를 부르자 하고 신열 가득한 이마 위로 아득한 아침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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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가방에도 외로운 뒷모습이 있다는 걸 널 보내는 이 저녁 비로소 알았다
고리없는 짧은 사랑은 가방 속에서 설움되어 입 꾹 다문 채 출렁거리며 조금씩 멀어져 가고
어둠 짙어 오는 아득한 하늘아래 나 문득 미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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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사랑
화면 위에서 사랑이 춤을 춘다 톡.톡.톡 ... 조금씩 열리는 마음들이 한 줄씩 차례로 선보이고는 자리 물려주며 승천한다
톡.톡.톡. 'ㅂ' 字가 어둠 뚫고 튀어 오르고 'ㅗ' 字가 그 아래에 바로 달려 오면 '보고싶다' 고백하는 바다같은 용기가 생겨 나 더운 가슴이 된다
이미지 하나 어른거리며 화면위로 떠 와 사랑노래 부르면 숨죽인 가슴 지하에서 맘 졸이고 있다가 튀어 오르며 화답하고 사랑 한 줄기 밤하늘에 퍼지며 톡.톡.톡. 가슴 벅차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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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추 (入 秋)
백지가 되리 사랑의 흔적들 남김없이 지워낸 자리에서 장송곡 슬프게 부르나니
백자처럼 은근하게 타 올라 끝내 사무쳤던 여름 밤들이여 잘 가거라 장면 장면들 여기저기서 나타나 반갑다 아는 체 해도 백열등 다시 켜지 않고 잠 재우리 사랑 하나 불쑥 찾아 왔다가 세차게 흔들고 가버린 하늘 끝 장막 뒤로 아직은 더운 태양 백기 들고 투항할 때 사려깊은 그림자 하나만 장대처럼 길게 남겨 두리라. 하여 백과 영글어 벅차 오는 날에 사모곡 간절히 다시 부르며 장대한 꿈으로 느리게 느리게 흐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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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참 다행이네요 이 부위는 주름이 지는 곳이라서 나이 들 수록 상처가 숨어 버리지요
바느질을 마무리한 환부에 반창고를 붙이며 의사는 말한다 상처치료 전문가라는 반백의 그는 어쩌면 상처 날 부위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저물 녘, 피 철철 흐르는 이마를 감싸고 그를 찾아온 '사랑'이란 면역없는 이름의 병, 그 무모한 스토리의 에필로그를 미리 읽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환부에서 흐르는 피를 세월의 흔적 지나는 길목으로 안내하는 기막힌 재주라도 있단 말인가
저 익숙한 손놀림의 정확한 박자 속에는, 반백의 머리칼 아래로 흐르는 무심한 표정뒤에는, 얼마나 많은 상처가 주름인 양 깊숙이 자리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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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부르리다
그녀 종종걸음치며 장거리 달려온 날
저물무렵 하늘끝에 걸린 노을이
회소곡을 불러 주란다 그래야 자신의 모습 더 빛나니 안그래도 숨찬 그녀더러 회소곡 한곡만 부르란다
까짓거 부르지뭐 기꺼이 목청에서 피 나도록 구슬픈 곡조 만들어 멋진 저녁노을 가는 길에 찬란한 슬픔의 목걸이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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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에 쓰는 편지
문득 네가 보고 싶었어
참았던 울음보 터지듯 철 이른 장마같은 비가 밤새 오월을 밀어내고 있었지 겁 없이 짙어가던 초록들 잠시 빗방울 끝에다 쉼표 찍으며 다음 계절을 향한 숨고르기를 할 때 봄은 제 3막의 커튼을 서서히 내리고 있었고 그 느슨해진 속도의 틈을 타고 빗소리가 와락 내 품으로 안겨들던 밤이었어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도록 네가 보고싶은 거 있지 밤새 내리던 비 그치고 나면 새 옷 갈아입은 채 시치미 뚝 떼고 있던 아침처럼 네가 낯설어지면 어쩌나 두려워지는거야
그래서 빗줄기 속으로 내 가두었던 그리움을 풀어버렸지 용수철 되어 튀어 나가는 그 힘을 되돌려 놓을 수도 없었어 지금쯤 밀림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오월의 밤을 가르며 널 향해 가고 있을거야
잘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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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좋아하는 이유
깊이를 알 수 없는 물과 같아서
하지만 가끔 물결 일으킬 줄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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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한랭전선 지나는 자리에 세월이 목놓아 운다 위성들 모두 숨 죽인 한 밤중 가슴 다 풀어 헤친 설움 하나가 위태로운 밤길을 정신없이 간다
한 시절 뜨거웠던 사랑은 가시 되어 목젖 아프게 찔러 오고 위치 가늠할 길 없는 깊은 곳에서 한스런 기억들 위선 벗어 던진 밤 하늘 부여 잡고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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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전압 경고
삐삐삐..., 이 전화기는 곧 꺼질 겁니다. 그러니, 아직 못한 한 마디 있거든 어서 말하도록 하세요. 그대가 전화선에 실려보낸 말없음표는 '속도 무제한'의 이 시대에 미처 '말'이 되지 못했으니 반드시 소리내어 다시 말해야 합니다.
이제 단절의 벽 속에 우리들의 언어를 가두어야 하는 암흑같은 밤이 오고 있습니다 시간은 끝없이 추락하여 혼돈의 바다에 이르고 우리는 결국 'on'으로 향하는 플러그를 다시는 찾을 수 없을지 모릅니다.
삐삐삐 그러니, 서두르세요 입에서 맴돌다 삼켜버렸을 한마디 풀어서 마지막 경고음에 속히 걸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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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남산
기다림의 끝은 어디일까 천년의 세월을 담아 온 가슴 하나가 머리 잃어버린 채 슬픈 목 아래에 그저 앉아있다
다만 가슴으로 말 하리라 바위에 아로 새기던 신라인의 애틋한 숨결을 간절한 바램을 천년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데워진 뜨거운 사랑을 오직 가슴으로 말하리라
임 그리는 한결같은 마음은 얼굴 없는 곳에서 더욱 아름다운 미소로 피어나고 은은한 향내음 소나무 허리마다 감돌아 퍼지는데
냉골 언저리에 그대 그렇게 앉아 있고 나 숙연한 손바닥 합장한 채 발길 돌리지 못하고 그대에게 향하는 겁 풀어 가을 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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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세탁 중
한 때 우리는 동고동락 했었지만 가루 비누 한 스푼의 위력 앞에선 사랑 그렇게 접어야 하네
가닥 가닥 서려 있는 희로애락들 위로는 커녕 서로 짐이 된다는 걸 왜 진즉 몰랐을까.. 가다듬고 보듬으며 함께 했던 애증의 기억들이 한낱 거품으로 사라져야 한다 하네
가까이 있을 수록 위험해 지는 우리 숙명이라 하니 한바탕 물속 유희 즐기고 나서는 헤어져야 하네 위로 가서 태양만나고 아래로 가서 강물 만나고 그렇게 서로 갈 길 가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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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밤
밤꽃향기 그윽한 밤 하늘에 걸린 반달이 다 채우지 못한 그리움에 목말라한다 어둠 짙어질수록 더욱 피어나는 향기 속을 비람 한줄기 지나가며 말 건넨다
서러워 말라 다시 올 사랑이니 너 그리 서러워 말라
밤꽃 향기 어둠속에 피어 오르고 반달 뒤에서 여름 밤이 싱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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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낚시
"내 꿈의 현주소를 찾아라"
나는 지금 동해의 한 모퉁이 세워 앉아 지렁이 세마리에게 지령을 내린다
"너는. 평생 꿈틀거림만으로 횡주하던 너는, 동강난 몸으로도 끝까지 절규하는 법을 배운 너는, 거뜬히 해 내리라 믿는다
출전 준비를 마친 미끼는 스타트신호를 기다리며 몸 풀기를하고서 등대처럼 몸 빙빙 돌려가며 바다를 살핀다
가장 치열한 접전지점이 어디였더라? 포말로 사라졌던 옛 기억들 속에서 가까스로 지도 하나 복원해 보니 아무래도 저기 같다
물빛과 하늘빛이 맞닿아 있는 저 물결 아래일 것 같다
휘익! 드디어 수색작전이 시작되고 나는 미궁으로 빠질지도 모를 시선 꽂아둔 채 내내 기다리기로 하며 엉덩이 더욱 넓혀서 다시 퍼질러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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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꽃의 노래
하얀 밤 지새우고도 다함 없는 꿈 살펴 몸 속에 싣느라고 바람결에 향기 내어 흔들리는 마음 어느 다음 날 내 앞에 헤쳐야 할 무성하게 돋아나는 가시밭길 그 운명의 강 힘겹게 건너야만 비로소 열매 되어 웃을 수 있기에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곤한 잠을 뿌려 놓고 싶은
밤새 회한으로 몸부림치고도 소리내어 울지 못하는 무딘 가슴이 있기도 하는지 밤 깊어 그리움 깊어진 향기의 흔적을 본다 산 굽을 돌아 나오며 뒤틀린 가지에 잎새처럼 핀 꽃은 꽃잎을 떠난 영혼의 가시밭길인가 하얗게 흔들리는 무념의 꽃인가
마침내 붉은 열매 여물어 밤알로 나란히 익어 가는 가을날 단단하게 새긴 고요 저무는 산그늘 목에 두르고 찬란했던 아픔들이 굳어 단단해진 가슴은 꽃 속에 머문 붉은 꿈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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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오월에게
내가 이제라도 맘만 먹으면 널 배반할 수 있다는 것 넌 모르지?
장미 울타리 앞에서 절정으로 치닫던 네 춤사위를 난 정말이지 못 본 척하고 지나쳐 버릴 수 있거든.
덩달아 넋을 잃고 출렁이던 물결들도, 결국 오동나무 꽃 흔들어 내뱉아 버린 네 부족한 인내력도, 밤이면 더욱 빠르게 짙어가던 초록들, 그리하여 자꾸만 더 성급해지던 동쪽하늘도,
내가 맘만 먹으면 다 지워 버릴 수도 있다는 걸
이제 날 떠나려 하는 야속한 넌 절대로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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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 찌개
감도는 혀끝
성질 급한 후각이 나서서 먼저 맛을 보며 보글보글 즐거운 소리를 전하면 무심했던 귀가 덩달아 들썩들썩 열린다
감수해야만 했던 인고의 시간들이 나른해 져 허리띠를 제각기 풀고 한판 어우러질 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뚝배기 안에서 글자들이 행복하게 부풀어 올라 나풀 나풀 향기 되어 퍼져나가고
무풍지대의 저녁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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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
어느 날 혹시 네가 문득 전화 할까 봐 난 늘 하루 중 귀퉁이 하나를 비워두고 살았다
너무 꽉 찬 그림 속에는 널 그려넣을 자리 없을까 봐 늘 널 위한 여백 남겨두고 살았다
아 바보같은 나는 오월의 노래를 아직도 미완으로 두고 있다 그 마지막 소절의 오선지 위에는 '너'라는 음표를 그려넣고 싶어서
지금도 내 노래는 계속해서 되돌이표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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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왼손
동작 멈춰버린 그녀의 왼손 창공 속으로 회신 보낸다
동사(動辭)로 한번만 다시 살고파 창창한 힘 솟는 푸른 정맥 속에서 회색 하늘향해 분노 한번만휘두르고파
동트는 하늘아래 창연히 기죽어 있는 그녀의 왼 손 돌아갈 길 없는 그녀의 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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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만드는 법
이제 우리 화합해야 합니다.
단단한 껍질을 벗고 속살끼리 부대껴 엉기는 새로운 질서 하나 만들 시간이 왔습니다.
꽃 진 자리에서 아프게 열매 맺던 기억들과 무더위 견디며 둥글게 영글어가던 여름날의 사연 마침내 단단한 가슴 뽐내며 세상 나들이 하던 경쾌한 울림까지 참으로 기나긴 여정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모두 딱딱한 껍질 벗고 하나되어 춤을 춥시다.
그 춤, 절정에 이르렀을 때 소금의 눈물 몇 방울 성수처럼 뿌려서 우리 사랑 영원히 하나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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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장난
정리하렵니다. 모든 걸 없었던 걸로 하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 정신없이 바쁘게 살고 싶습니다. 모름지기 삶이란 물처럼 순리대로 흘러야 하는 일반통행이더이다.
정도를 벗어난 주행은 모순덩어리의 난관으로 향하고 일탈 허용되지 않은 굳은 레일 위에서 정지신호 맞습니다. 모세혈관속의 전율들 일제히 들고 일어나 아우성치며 정적뿐인 밤하늘에 모놀로그로 퍼져나가다 결국 일일칭 희곡으로 남습니다.
정리하렵니다, 이쯤에서. 맘 거듭 고쳐먹으며 일렁이며 자꾸만 다가오는 情 하나를 모르는 체 외면하고서 일반통행길로 정주행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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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호에서
해 지는 보문호에 가던 바람 엎드리고 나무들 두 손 모아 일제히 국궁할 때 노을만 침묵 따라서 길 하나 열어 온다
호수에 번진 노을 가슴까지 스며들어 잠재웠던 기억들을 어쩌자고 깨우는가 아득한 세월의 강을 돌아본들 무엇하리
어느덧 내 곁에는 산 그림자 와서 앉아 숨 죽인 호수 향해 꺼이꺼이 울자하니 오월이 지는 저 하늘 뜨거운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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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묻은 한 마디
나는 끝내 당신께 말하지못했습니다
대숲에서 댓잎 스치는 소리, 별 자리 함께 찾던 밤 하늘, 느티나무가 있던 마을 앞 공터
바람 지나는 자리마다 당신과 함께하던 흔적들 물결치는데 마음 들킬세라 대문에 기대어 뜨겁게 불러 봤던 그 한 마디
이제 먼 길 떠나신 그대여 허겁지겁 뒤따르던 내 한마디는 홀연히 사라진 당신 뒷모습에 퇴로조차 찾지 못한 채 허공 서성이다 빗소리 진혼곡 되어 흐르는 이 밤 다시 내 품에 안겨 옵니다
아, 나는 이제 가슴 깊숙히 묻어 두렵니다 내내 촛불 되어 타오를 그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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