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
며칠 전 축구에 흠뻑 빠져있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빠, 왜 유럽에서는 박지성 선수를 지성박이라고 부르지요?, 우리는 박지성이라고 부르는데요!” 대답으로 가문과 뿌리를 우선시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특성과 개인을 가문보다 중시하는 서양의 문화적인 차이를 설명하면서, VR룸에서 게임하면서 독백하는 제누의 말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성을 지키는 병사에게 신분을 추궁당했을 때, ‘사람들이 중시하는 신분이나 생물학적 뿌리가 특정한 사람을 판단하는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말이었습니다. NC의 아이들은 비록 생물학적인 부모에게 버림받았지만, 부모역할을 담당했던 가디의 보살핌 덕분에 바람직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마주할 차별적인 시선과 편견 또한 성장의 밑거름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NC의 규칙상 이름을 알 수 없기에 ‘박’과 ‘최’로 불리는 가디의 역할은 누군가의 훌륭한 보호자가 되기에 충분함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으로 대변되는 뿌리나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제누는 성숙한 자아의 소유자였습니다. 물리적으로 성장한 어른들의 심리까지도 잘 이해하는 깊은 심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첫째 사례는 룸메이트 동생인 아키가 새로운 부모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상처받지 않도록 조언하는 언행이나, 또래 친구인 노아와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깊은 안목을 느꼈습니다. 둘째 사례는 센터장이었던 ‘박’의 속마음에 공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피보호자의 입장이던 사람이 보호자인 센터장의 개인적인 고민을 알아채는 일은 쉽지 않지만, 노아에게 가볍게 폭력을 가하는 다소 무리한 방법을 선택해서라도 가디의 고민을 나누고자 했던 제누의 모습에서 또 다른 성숙함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디들도 반대한 프리포스터와의 만남에서 제누의 성장과정을 종합적으로 보았습니다. NC의 상황이나 아이들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없이 어설픈 행태로 등장한 부부에게서 진솔함을 발견하고 자신도 같은 태도로 일관성을 보이면서 미심쩍어하던 가디들을 설득하고, 부부에게 자신들을 성찰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3차 면접을 마치고 합숙을 기대했던 가디들과 부부에게 더 이상 페인트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반전 장면은 그동안 쌓아온 신뢰의 부정보다는 미래 친구로서의 래포 형성에 더 크게 집중하는 완숙하고 깊이 있으며 미래지향적인 인간미를 보여주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공식적으로 NC의 문을 나선 후 만나게 될 사회에서도 내면의 성숙함이 빛을 발하리란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은 센터장 ‘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NC의 아이들의 눈에 비친 센터장은 항상 규칙을 중시하고 꼼꼼한 모습이었기에 모범적인 집안에서 성장했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말에도 NC를 벗어나지 않고, 아이들에게 헌신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년 시절 부모로부터의 학대가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NC의 아이들에게 페인트라는 과정을 통해 좋은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 노력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을 싫어하고, 그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았다는 것 자체도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센터장인 ‘박’도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비슷한 번뇌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가디이자 후배 역할인 ‘최’의 조언과 깊은 내면 성찰을 통해 악연으로 여겼던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함으로써 비로소 부정의 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NC 조직의 센터장으로 그는 가장 어른스런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상처가 있고 그 아픔을 극복해 낸 성숙한 존재였습니다.
NC의 아이들은 가디와 또래 친구들과 더불어 잘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페인트를 위해 찾는 프리포스터 일부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 부모의 역할을 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NC의 설립 배경도 나라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사물인터넷과 로봇기술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는 엄청난 기술적인 지원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에는 부족함이 보였습니다. NC의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상처가 있고, 앞으로 마주하게 될 사회의 차별과 편견을 극복해야 하는 난관도 있습니다. 하지만, NC의 아이들 주변에는 헌신적인 가디와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NC 내에서 자가면역력을 키우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이들의 미래 삶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연착륙하도록 도와줄 사회적 인식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할 때인 것 같습니다. 사람을 신분이나 근본, 출신이란 색안경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 Wordsworth의 시 The Rainbow에는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란 의미로, 비단 NC의 아이들 뿐 아니라, 우리 사회 각지에서 아픔을 극복해 내고 내면적으로 성숙한 수많은 아이들을 성인으로 존중하고 받아들일 인식의 제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