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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는말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것은 군사력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군사안보와 비군사안보는 별개가 아니라 상
호 긴밀한 곱셈(×)이다는것이 필자의 지론이
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군사력에 의해 전쟁승전
을 이룬경우와 강력한 군사력이 비군사안보
의 문제로 인해 패전한 사례를 조명한다.
■ 군사력이 전승을 결정하는 사례
1. 제 1.2 차 세계대전
제 1.2대전은 독일 주도의 동맹군들과 미국주
도의 연합군과의 전쟁이었다.
제 1차대전은 독일등 4개 동맹국과 미국주도
의 연합국 28개국과 싸웠으며, 제 2차대전은
독일주도의 8개 동맹국과 미국중심의 49개 연합국들과 전쟁이었다.
특히 당시 국력이 가장 막강한 미국의 참전은 독일 주도의 동맹국들을 굴복시키는데 결정적
인 신의한수였다.
따라서 제 1.2대전은 승패는 군사력이 결정지
었다.
2. 한국전쟁
한국전쟁도 중국ᆞ소련의 지원을 받는 북한과
미국등 16개국 참전외 전쟁물자지원 39개국
과 의료지원 6개국(독일 휴전후 민간 의료 제
공)등 총 61개국 지원받는 남한과의 전쟁이
었다.
특히 한국전쟁에 동원된 UN군 연인원 194만
여명중 미군은 179만여명에 이르며 UN군의
해ᆞ공군력중 미군의 전투력은 95%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도 제 1.2대전과 같이 군사력이 전
쟁승패를 좌우했으며 특히 미국의 절대우위
의 공군력과 핵위협은 소련ᆞ중국ᆞ북한에
게 조기휴전에 응하게 했다.
■ 비군사안보문제로 패전을 초래한 사례
1. 장개석 군대
장개석 국민당 군대는 무려 300여개의 사단
을 보유하에 미국의 군사지원까지 받았으나 결국 보잘것 없는 모택동 군대에 패하여 중국
은 공산화되었다.
중국이 공산화된 비군사적 안보는 다음과같다
첫째, 중국의 부패한 문화다.
중국 국민당 정부는 인민들을 약탈하는등 극
도로 부패하였다. 반면 모택동 홍군은 인민
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인민지지를 받았다.
장개석 정부의 고위군관들은 병사들에게 지급
되는 각종 보급품을 약탈하는것도 비일비재하
였다.
장개석 재임시 신병훈련을 받는 병사들이 자
대배치를 받기전에 심한구타로 인해 목숨을
잃은 병사들이 수백만에 이른것으로 알려졌
다.
이러한 중국의 구조적인 부패는 민심을 잃게
되고 말단 장병들 사기를 극도로 저하시켰다.
예컨데 중국의 부패한 문화는 인민들의 영혼
까지도 파괴함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둘째, 장개석 정부의 부패문화는 외교안보에
결정타가 되었다.
장개석 부인 송미령은 미국에서 제공한 군사
원조금으로 미국에 부동산을 투자함이 알려
져 이는 미국이 중국에 군원제공중단의 결정
적 계기가 되었다.
스스로 나라를 지킬 의욕도 없이 부패를 일삼
는 나라에 대해서는 하늘도 그들을 저주한다
는 소중한 교훈이다.
2. 미국의 월남전 패배
미국은 월남에 최고 50만여명의 미군을 주둔
시키면서 무려 630만톤(2차대전시 300만)
포탄을 투하했고 월남의 재래식 전투력은 세
계 5위에 이르렀으나 미국은 월남전에 패전하
였다.
미국이 월남전에서 패전한 비 군사안보분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은 베트남인들의 문화안보,즉 배타
적 민족주의를 간파하지 못했다.
베트남은 BC111년부터 1000년이상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프랑스식민지(1858~1940), 일본의 식
민통치(1941~1945), 프랑스와 전쟁(1946
~1954),베트남 내전(1955~1964),그리고
미국의 참전(1965~1973)등을 겪으면서
온갖 외세의 개입으로 대홍역을 치룬 베트민
들은 외국인들을 사무치게 증오하는 강력한 배타적 민족주의가 형성되었다.
미국의 월남전 개입은 월남의 공산화로 인한 공산세력확산이라는 도미노 현상을 차단하는
것이었으나 베트남내에 근본문제는 공산독재
도 출현도 문제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베트남내 배타적 민족주의였다.
이러한 베트남 민족주의의 또 따른 부작용은
우리 베트남인들은 모두가 한핏줄이라는 종족
적 민족주의에 취해 베트남 내에 도사리고있
는 악의 화신인 공산세력(월맹ᆞ베트공등)
위협을 간과하였다.
베트남인들의 배타적 민족주의는 외세에 대
해서는 증오하였지만 내부의 적(베트공) 소탕
은 소홀히 하여 49,000명(공산당원 900명,
인민혁명당원 40,000명)에 의해 공산화된
후 1975년이후 지난 30년 이상 국경봉새하
여 3,000만여명을 학살하여 한때 월남인 평
균 수명은 27세로 낮아진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1973년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후 12
개 다중안보장치를 마련하였으며 월맹에 무려
4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달러를 지원하였으
나 이러한 미국의 배려는 끝내 그들의 배타적 민족주의 앞에서는 물거픔이 되었다.
예컨데 미국은 베트남내 민족주의라는 문화적
문제를 간파하지 못한 나머지 군사적으로 월
남전쟁을 해결할여고 하니 격화소양을 범한 것이다.
둘째, 월남내 비군사안보인 정치안보 문제다.
정치안보가 문제가 있으면 이는 군사안보뿐
만 아니라 경제안보ᆞ외교안보등에도 문제
를 야기시킨다.
월남은 1960년대 1년동안 7번이나 쿠데타가 발생될 정도로 전국이 극도록 혼미하였다.
※ 오죽하면 월남 공군 파이로트가 대통령 궁
에 공중폭격을 가했겠는가?
월남군대의 극심한 부패문화는 월남군의 전
투력을 박살냈다.
※ 정치권과 군내부의 부패는 심지어 미국이 제공한 무기를 적에게 팔아넘기는 사태가 발
생하였다.
※ 월남군인 58만여명중 10만여명은 뇌물을
바친후 위장휴가를 가거나 일반 직장에 출근
하였으며 여기에는 티우 대통령 사위도 예외
가 아니었다.
미국방부의 보도자료(1967년)에 의하면 당
시 월남군의 80%정도는 비효율적이며 196
7년 월남군 12만 4,000여명(월남군의 21
%)이 탈영하였다는 것이다.
3.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실패
우크라이나 사태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전
쟁은 골리앗과 다윗이 싸우는 격이었으나 실
제 러시아 푸틴은 그의 전쟁목적 3가지 달성
을 실패하였다.
하나.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친러 괴뢰정권을
수립하는데 실패하였다.
둘. 푸틴은 러시아군의 막강한 전투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것이었으나 단지 러시아군의
한심함만 보였다.
셋. 푸틴은 미국과 NATO간 관계를 약화시킬
여고 하였으나 결과는 정반대로 결속시켰다.
그렇다면 러시아 푸딘의 전쟁패배를 초래한 비군사안보문제는 무엇인가 알아보자.
첫째, 러시아의 정치안보문제다.
독재자 푸틴의 아집과 독선은 Top down이
라는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초래하였다.
즉 러시아 정보기관인 FSB와 군부는 푸틴의
강압적 압력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푸틴에게
제대로된 보고보다는 정보를 조작하거나 군
내 전투력의 취약점을 있는 숨기는데 급급하
였다.
둘째, 러시아의 경제안보문제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경제가 침체되면 혁명
이 발생하였다. 러일전쟁패배로인한 1905년
혁명, 1917년 볼세비키혁명등이 대표적 사
례다.
2021년 러시아 경제는 - 3% 성장하는등 경
제사정이 매우 안좋았다.
경제가 가난한 나라가 전쟁하겠다는것은 빈
털터리가 맨손으로 대기업을 이루겠다는 환
상과 같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푸틴을 비롯한 정치인,
군부 고위층 밎 신흥재벌들의 부패( GDP의 80%이상을 해외에 도피)는 러시아군의 사
기와 국민의지를 치명적으로 약화시켰다.
예컨데 러시아의 이러한 열악한 경제안보는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는 장기전에 불가함
이 러시아의 패전을 자초할 수 있다.
셋째, 러시아의 외교안보문제다.
금번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치명적인 패
착은 국제정치무지로 인한 외교안보실패다.
푸틴은 러시아의 명분없는 우크라이나 침공
에 전 세계적인 응징보복, 즉 군사지원과 경
제보복등을 예견하지 못했다.
금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보다는 러시아와 미국주도의 전 세계와
전쟁성격을 지닌다.
왜냐하면 전 세계는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을
통해 대리전쟁을 치루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미국 상ᆞ하원의원에서는 제 2차대전
인 1941년 연합군에 무제한 무기지원법을 시행이후 만 81년만에 초당적으로 우크라이
나에 한시적으로 무제한 무기ᆞ군수물자등을 공급하기로하여 앞으로는 방어용 무기외 공격
용 무기도 제공 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폴란드는 과거 EU 가입
에 10년이 소요되었으나 금번 러시아의 명분.
없는 만행에 분노한 EU는 최단시간 내에 우크
라이나의 EU 가입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핸폰과 인터넷등 발달은 러시아군의 갖
종만행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파되어 러
시아에 불리한 세계여론조성이 되었다.
따라서 미국과 NATO등 세계적 결속은 러시
아 패전에 강한 압박이 될 것이다.
넷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문화안보 즉 국
민들의 결사항전의지를 간과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구소련 스탈린 재위시 1
천만여명 아사자 발생, 1994년 러시아의
부다페스트 합의각서 폐지 및 2014년 러시
아의 크림반도 강점등에 천인공노할 증오심
을 갖고 있다.
그러나 푸틴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증오심
을 망각한 나머지 우크라아나인들의 결사항
전정신, 국민정신을 매우 낮게 평가하였다.
※ 아이러니 하게도 금번 우크라이나 사태에 최악의 패자는 러시아지만 최고의 승자는 미
국이다. 미국은 싸우지않고 승리를 쟁취하였
다.
왜냐하면 미국은 금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이
용하여 미국과 NATO 결속력을 강화하고 우크라이나를 친서방으로 전환시켰으며 러시
아 경제를 폭망시킬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였
기 때문이다.
■ 한국안보 분야별 취약성 진단
지금까지 소개된 군사안보와 비군사안보분야
를 거울삼아 한국안보의 취약성 진단은 다음
과 같이 제시한다.
1.정치안보
정치는 전임자의 정치중 잘된것은 계승발전
해야한다.
그런데 역대정부는 전임정부의 정책은 적폐청
산으로 간주하여 전후임 정부간 정책계승이 단절되어 항상 모래위에 집을 짖는격이었다.
심화된 국민갈등은 연간 300조원 내외의 갈
등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2.경제안보
2022년 4월 6일 기준 정부부채(2200조원),
가계부채(1860조원), 기업부채(1233조는
2021년 4월 기준)를 모두 망라시 5,000조
원을 상회하였다.
특히 정치인들의 포플리즘은 국가의 재정건전
성을 크게 악화시키고 있다.
3. 군사안보
우리나라는 세계 6위 재래식 군사대국이며
북한 군사력은 28~30위에 이른다.
그러나 북핵 한발이 수도권에 떨어지면 수십
만에서 수백만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에
서 핵무기가 없는 재래식 무기효과는 별다른
의미가 적게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북핵위협에 대하여 한미간 가
시적인 조치를 서둘여야 할 것이다.
4. 외교안보
정권교체에 따라 친미? 친중외교노선등 외교
안보에 일관성을 상실하였다.
우리나라 국익을 위해 중국을 버릴수는 없지
만 그렇다고 미국보다 중국을 우선하는것은
아무리봐도 적절치 않다고 본다.
이 세계에서 미국을 우선한 독일ᆞ일본 및 한
국은 전쟁재난을 극복후 부국을 이루었지만
중국을 우선한 나라중 부국은 단 하나도 없다.
국내 반미감정(정치인과 민간인) 과 주한미군
철수주장은 국가안보의 최후보고인 한미군사
동맹을 고사시킬 수 있다.
북한을 함께 가야할 생명공통체로 인식하는 종족적 민족주의는 배타적 민족주의로 작용
하여 한미동맹을 이간하고 한국내 반정부세
력 확장을 초래할 수 있다.
※ 앞서 언급한 바와같이 극단적 민족주의에
취해 공산세력까지도 동족으로 착각한 오류
가 무려 3.000만여명을 학살한 월남의 비극
을 잊어서는 안된다.
5 . 문화안보
필자가 우리국민들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중 가장 큰문제는 안보불감증으로 본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 "무장안된 부자는 무
장된 가난한자의 먹이감으로 전락한다"고 일
갈하였다.
최근 무장안된 러시아군은 무장된 우크라이
나군의 호구로 전락하였다.
고 황장엽씨는 "한국내 약 5만여명 간첩이 있
으며 이들중 상당수는 정부기관에 활동하고
있다"면서 "한국민의 안보이념은 반신불수 상
태라고 혹평하였다".
탈북인 김국선(가명)씨는 대한민국체제전복
을 노리는 가치파괴 세력들은 북한당국과 긴
밀한 내통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누차. 언급하
였다.
양동안 박사는 수년전 "우리나라는 느슨한 형
태의 내전양상이다고 언급하였다."
1917년 러시아가 공산화될 당시 러시아 국민
들 전체의 0.016% 공산당원에 의해 공산화
되었음은 눈여겨 볼 일이다.
최근의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결사항전의지는
우리국민들에게 크나큰 귀감이 되길 바란다.
■ 제언
상기 뼈아픈 교훈들을 타산지석으로 활용하자
안보는 군사안보뿐만 아니라 정치ᆞ경제ᆞ문
화등 비군사안보도 중요함으로 안보는 군인뿐
만 아니라 온 국민들이 함께해야 한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에 "무장안된 부자는 무장
된 가난한자의 도륙(먹이감)이 될 수 있다"는 명언에 우리 모두는 주목을 요한다. - 끝
한국문화안보 연구원. 부원장. 김명수 박사.
2022년 4월 11일
첫댓글 능화의 분석에 감사드립니다. 비군사력 안보에 대해 배우고 갑니다.
능화의 글을 보며 비군사안보가 갖는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네요.한국전이 미국의 공군력과 핵위협이 우리를 보호해 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장개석 군대가 300개 사단을 보유하고도 그 부인까지 부패한 점이 그들 군대의 영혼까지 썩었으니 무슨 제대로된 전투력을
갖출 수 있겠는가! 또한,월남전에서는 630만톤의 포탄을 투하하고도 그들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읽지 못하여 물러나야만 했군요.
우크라이나전도 전투의지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해준 점과 푸틴의 Top down 리더쉽이 참모들에게 경직을 가져와 오판을 한 결과가 아닌
가 하네요.결국,비군사안보도 정치.경제.군사.외교안보가 두루 갖추어질 때 제대로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배웠어요.
군사적 안보애 추가하여 비군사적 안보의 중요성을 세계사의 사례를 통회여 잘 설명 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부족한 점이 보완되어 명실상부한 선진문화 군사강국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둘로 나뉘어진 국론 통일이 절실합니다. 뿌리가 너무 깊어 치유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듯 하네요. 같은 교훈을 놓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니까요. 참으로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비군사적 안보를 말씀하시니 전에 읽은 양동안 박사의 글이 생각납니다. 그분의 글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허약성에 대해 잘 설명해 주셨더군요. 늘 수고가 많으십니다.
군사력만으로 안보를 지탱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힘이 뒷받침되는 정신전력과 항전의지가 뒤따라야 하지요.
하지만 우리와 같이 거대 강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 또한 안보를 장담할 수 없는 서글픈 처지이지요. 미국이라는 선린 우방이 있음으로해서 우리의 현대 안보가 지켜질 수 있었지요.
능화께서 평소에 지론으로 주장하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우리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가치의 공유와 상호신뢰가 전제되어야 하구요. 새 정권이 그간 약화된 한미동맹에 큰 의미를 두는 점이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