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일대를 시계 방향으로 순례하는 마을버스 '동대문05'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동대문은 어디에 있을까? 행정구역상 동대문, 즉 흥인지문은 종로구에 속한다. 종로의 대로를 거쳐 흥인지문을 지나 신설동 로터리가 나오면 동대문구 영역이 시작된다. 동대문이 없는 동대문구의 중심 지역은 청량리다. 마을버스 ‘동대문05’가 청량리 곳곳을 연결한다.
청량리역 환승센터의 정류장에 정차한 마을버스 '동대문05'.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동대문과 청량리
서울에 구(區)제도가 시작된 1943년에 동대문은 동대문구에 속했었다. 행정구역이 동대문을 중심으로 편성됐기 때문에 구의 이름을 동대문에서 따오게 되었다. 동대문 인근에 자리한 창신동과 숭인동도 동대문구 영역이었다.
하지만 1975년에 창신동과 숭인동이 종로구에 편입되며 두 동과 인접한 동대문은 종로에 속하게 되었다. 대신 청량리가 동대문구의 중심 지역이 되었다. 청량리는 또한 서울 동북부의 중심 지역이기도 하다.
과거 광화문을 도심으로, 즉 서울의 중심으로 보는 관점에서 서울 도심 외곽의 여러 곳을 부도심으로 개발했었다. 영등포와 신촌, 그리고 청량리가 여기에 속했고 가장 늦게 강남이 개발됐다.
청량리는 조선시대에 흥인지문 바깥의 성저십리에 속한 지역이었다. 행정구역상 한성부 동부 인창방에 속했다. 조선총독부가 들어서며 청량리는 한동안 경기도에 속했다가 1936년에 다시 경성부에 속하며 청량리정이 되었다. 1943년에 동대문구에 편입되었고 1946년에는 청량리동으로 이름이 바뀐다.
청량리가 큰 주목을 받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1899년 5월 4일 조선 최초의 전차가 개통되면서부터였다. 최초의 전차는 서대문과 청량리 인근의 홍릉을 연결했다. 홍릉에는 명성황후의 묘가 있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전차는 고종의 홍릉 방문을 위한 편의 제공의 의도도 있었다.
청량리역을 출발한 열차.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청량리가 서울 동북부의 중심이 된 배경 중 하나는 청량리역의 존재에 있다. 청량리역은 1911년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의 역으로 출발했고, 1939년에는 중앙선이 연결되었다. 1971년에는 경춘선 열차가, 1974년에는 서울지하철 1호선까지 연결되며 청량리역은 교통 거점으로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오늘날 청량리역은 KTX 등 다양한 종류의 열차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역이고, 역 주변으로는 서울 시내는 물론 경기도 일원까지 연결하는 각종 버스가 다니고 있다. 마을버스 ‘동대문05’도 청량리역을 지난다.
홍릉과 청량사
마을버스 ‘동대문05’는 답십리에서 출발해 청량리역 일대를 시계 방향으로 크게 한 바퀴 돌고는 답십리로 돌아간다.
청량리(淸凉里)의 ‘리’가 지역을 나타내는 단어라면 답십리(踏十里)의 ‘리’는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조선 초기 무학대사가 도읍을 정하려고 도성에서 10리 떨어진 이곳을 밟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청량리 인근에는 ‘홍릉’으로 불리는 지역이 있다. 마을버스 ‘동대문05’가 그 근처를 지나는데 ‘영휘원사거리. (구)홍릉사거리’ 정류장이 그곳이다.
사거리 이름이 바뀐 이유는 홍릉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실제 홍릉은 남양주 금곡동에 있는데 고종이 죽은 후 명성황후를 이장해 합장한 능을 말한다.
사거리 이름으로 쓴 ‘영휘원’은 고종의 후비인 순헌귀비 엄씨의 묘를 뜻한다. 영휘원이 자리한 옛 홍릉 일대는 카이스트 등 다양한 연구기관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이 기관들을 설명할 때 홍릉이라는 지명과 함께 소개해 이 일대가 사람들에게 홍릉으로 각인된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청량리 일대를 자주 찾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영휘원사거리보다 홍릉사거리라는 지명이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청량사. 청량리 지명의 유래가 된 청량사는 아파트 단지로 둘러 싸여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동대문05’의 ‘영휘원사거리’ 다음 정류장은 ‘청량사 입구’이다. 청량사(淸凉寺)는 청량리 지명의 유래가 된 사찰이다. 신라 말에 창건된 청량사는 원래 홍릉 영휘원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1896년 청량사 터에 홍릉을 조성하게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사찰이 처음 이곳으로 옮겨왔을 때는 산자락이었겠지만 지금은 주변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지금도 바로 옆으로는 아파트 단지 건설을 위한 기초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마을버스가 지나는 도로에서는 아파트에 가려 사찰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사이 언덕길을 잠시 오르면 사찰 건물들이 보인다. 주변 아파트보다 키가 작지만, 청량사의 건축물들은 존재감만큼은 커 보였다.
청량리의 지역성
‘동대문05’의 청량사 입구 정류장에서 서울시립대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높은 담이 쳐진 곳이 나온다. 철제 대문이 닫힌 담 너머로 한 건물이 보였다. 건물에는 ‘청량리정신병원’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1945년 8월에 문을 연 청량리정신병원은 진료는 물론 의료진 양성 등 우리나라 정신 건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병원은 2018년에 폐업했다.
떡전교 위를 지나는 마을버스 '동대문05'.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마을버스 ‘동대문05’의 정류장 중에는 ‘떡전교앞’이 있다. 전농동 서울시립대 사거리에서 청량리역 방향으로 가려면 철로 위에 놓인 다리를 지나야 하는데 거기가 떡전교이다.
떡전교는 인근에 떡집이 많아 떡점거리 혹은 떡전거리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오래전 한양으로 오던 나그네들이 동대문을 앞두고 떡을 먹으며 잠시 쉬었다 가는 동네였다고 한다.
현재 있는 다리는 옛 다리를 철거하고 새로 건설한 것이다. 교량의 이름도 ‘청량제2교’로 바뀌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이 다리를 떡전교로 부르고 있는데 인근의 ‘떡전교앞’ 정류장과 ‘떡전교사거리’가 옛 흔적으로 남았다.
영휘원사거리, 즉 옛 홍릉사거리를 지나온 마을버스 '동대문05'.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청량리는 좁게는 청량리동을 의미하지만 인근 지역까지 청량리라는 지역으로 포괄될 때가 많다. 아마도 청량리역의 존재감 때문에 그렇게 된 경향이 짙을 것이다. 사실 청량리역의 많은 영역이 전농동에 속해 있다.
인근의 시장도 마찬가지다. 청량리전통시장은 제기동에, 청량리수산시장은 용두동에 있지만 청량리라는 명칭이 붙었다. 때로는 제기동의 경동시장과 약령시장도 청량리에 있다고 소개될 때가 있다.
그만큼 청량리는 서울 동부를, 강남이 서울로 편입된 후에는 서울 동북부를 상징하는 지역이다. 그런 청량리가 변화하는 모습이다. 특히 청량리역 인근에는 옛 흔적을 지워가며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스카이라인이 높아지며 달라지는 청량리 일대를 마을버스 ‘동대문05’가 순례한다.
청량리역. 민자 역사로 개발됐고. 인근에는 고층 건물과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첫댓글 대외비아녀. 혹시. 북 괴도당들이 눈치채면. 큰일인데. 나의서울말씨. ㅎㅎㅎㅎㅎ
청량리 역 일대가
크게 변모했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