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제(閔霽)는 자가 중회(仲晦)이며,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였으며 맑고 소박하여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독서를 좋아해서 한번만 읽어도 바로 기억하였으며, 특히 사학(史學)에 뛰어났다.
공민왕 때 19살로 과거에 급제하여 국자직학(國子直學)에 보임되었다가 선발되어 춘추검열(春秋檢閱)이 되었으며, 차츰 옮겨서 전리정랑 지제교(典理正郞 知製敎)가 되었으며, 성균사예(成均司藝)와 전교부령(典校副令)을 역임하였다. 우왕(禑王) 때 여러 관직을 거쳐 판전의사(判典儀事)가 되었다가 〈외직으로〉 나가서 지춘주사(知春州事)가 되어 선정을 베풀고, 〈내직으로〉 소환되어 판소부시사(判少府寺事)가 되었다가, 다시 전공예의판서(典工禮儀判書)로 옮겼다. 창왕(昌王) 때 개성윤 상의밀직사사(開城尹 商議密直司事)로 임명되었다. 공양왕(恭讓王) 원년(1390)에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으로 임명되었다가 첨서밀직사사 예조판서(僉書密直司事 禮曹判書)로 옮겼다.
민제는 젊어서부터 예(禮)를 잘 안다고 소문이 났으므로 추부(樞府)에 승진한 뒤로는 항상 예조(禮曹)를 겸직하였다. 또 이단(異端)과 음사(淫祀)를 미워하여 화공을 시켜 노복이 몽둥이를 들고 개를 몰아 승려와 무당을 쫓아내는 모습을 벽에다 그리게 하고는 보았다. 하루는 왕이 경연(經筵)에 나가서 민제에게 말하기를, “듣자하니 예조에서 복색(服色)을 정하고 불사(佛事)를 줄인다고 하는데 그러한가?” 라고 하였다. 민제가 대답하기를, “복색은 다른 나라의 물건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며, 불사는 봄과 가을의 장경도량(藏經道場) 외에는 마땅히 모두 없애야 합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왕이 말하기를, “다른 나라의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참으로 미덕이니 나도 면포(綿布)를 입겠노라. 〈그러나〉 불사라면 앞선 임금들께서 행하신 것인데 내가 어찌 감히 함부로 없애겠는가?” 라고 하였다. 다시 개성윤(開城尹)으로 임명되었다가 〈외직으로〉 나가서 한양부윤(漢陽府尹)이 되었다. 이 때 이후부터는 조선(朝鮮)[본조(本朝)]에 기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