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파를 고루 등용하여 나라의 발전을 도모한
영조(英祖)의 탕평책은 화합의 정치로 본 받아야 할 역사의 교훈.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암투,
서인과 남인의 당파싸움에 지친 숙종을 따뜻하게 안아 주었던
숙빈 최씨 소생의 왕자 연잉군(延礽君), 훗날 장희빈 소생의 경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된다.
노론에 의해 추대 되었으나 소론과 일부 남인도 등용하는
탕평책으로 권력이 편중되지 않도록 하였고 균역법(1년 2필을 1필로 감세)을
통해 팍팍했던 백성을 위로했다.
탕평이란
“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무편무당 왕도탕탕 무당무편 왕도평평)”
인군(人君)의 정치가 편사(偏私)가 없고 아당(阿黨)이 없는
대공지정(大公至正)의 지경(皇極)에 이른 것
성균관에 세워진 탕평비
첫댓글 "중도"의 정신이 깃든 영조의 탕평책으로 만백성이 태평성대의 세월을 살았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조선조 임금중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여
실력으로 신하들에게 위엄을 보였던 왕이었죠
안녕하세요
편안한 잠자리 되세요
청파님
짱이십니다
녹슨 머리를 열어 주시네요~ㅎ
82세까지 장수한 영조,
51년 동안 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