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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법화경』이「종지용출품」이라고 하는 품을 공부하고 있는 중인데, 땅으로부터 솟아 오르는 보살 이런 뜻이죠. 땅으로부터 솟아 오르는 수많은 보살들. 모두가 그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 밖으로 나타난 그 현상은 여러 가지 인연에 따라서 사람들이 다 차별합니다. 차별이 아주 심해요. 이런 모습도 있고 저런 모습도 있고, 그 각자 그 뭐 한 가정만 하더라도 똑같은 가정이 하나도 없고 똑같은 인생이 또 하나도 없고, 예를 들어서 똑같은 처지에서 똑같은 쌍둥이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 각자 팔자가 다 다르고 인생의 길이 다 다르고 생긴건 뭐 말할 것도 없고, 그와 같이 밖으로 드러난 모습들은 그렇게 차별합니다. 그리고 차별한 것은 사실은 그렇게 영원성(永遠性)이 없어요. 변화가 아주 심합니다. 아주 변화가 심하죠.
그래서 어떤 변화의 모습을, 인생의 변화의 모습을 생각을 해서 그 분야로 깊이 이제 연구한 것이 이제『주역』같은 것이 이제 어떤 그 삶의 변화상, 변화하고 발전하고 흥망성쇠하고 하는 그러한 것들을 이제 주로 많이 연구해서 내놓은 것이 이제 소위 그『주역』이고 역학(易學)인데, 그 易이라고 하는 말이 번역할 역(易)자, 바뀔 역자거든요. 그 변할 변(變)자라든지, 바뀔 역(易)자라든지, 옮길 이(移)자라든지 이런 것들이 우리의 그 어떤 현상을 두고 하는 소리입니다. 현상은 그와 같이 계속 바뀌고 변화하고 그렇게 하기 때문에, 이게 이제 그 항상성(恒常性)이 없어요. 영원성이 없고 그야말로 참 제행무상(諸行無常)이야. 한없이 무상하다구요.
그런데 불교도 그런 현상의 무상한 입장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상당히 많습니다만은, 이 최상승 경전 부처님의 교설의 완성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법화경』같은데서는 그런 어떤 현상차별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현상차별의 이면에 있는 영원한 어떤 진실성, 사람이 됐든 물질이 됐든 그 뭐가 됐든간에 차별이 없고 평등하고 영원한 진실성 이것에 초첨을 맞춰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또 인간의 가치도 밖으로 드러난 것 보면은 서로 차별하고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뭐 큰 사람, 작은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뭐 무슨 뭐 아파트도 큰데 사는 사람, 작은데 사는 사람 뭐 빚을 지고 사는 사람, 빚을 놓고 사는 사람 별별 차별한 현상이 있기 때문에, 그건 답이 없어요. 그 문제가지고는 도대체 해결책이 없는거야.
그래서 그 보십시오. 우리가 경험해서 다 알듯이, 가장 높은데 올라갔다 가장 낮은데로 떨어지고 이것이 인생사거든요. 그게 이제 현상적인거라. 그 불교는 그런 변화무쌍한 그런 차별을 이야기한 면도 있지만은 그러나 궁극적으로 불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사실은 영원한 것 또 그리고 차별한 것 속에서 아주 평등한거, 그 면에 부처님은 눈을 떴고 깨달은 사람들은 전~부 그 면에 눈을 떴어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그 평등한 것이 보이거든요. 또 아무리 변화무쌍하지만은 아주 영원한 면이 있어. 인간은 그렇게 두 면이 있다구요. 크게 보면은, 두 가지면. 아주 변화무쌍한 면이 있는가 하면은 아주 변하지 않는 영원한, 영원성이라고 하는 그런 그 면이 또 있는거야.
그 영원성, 진실성, 평등성 이것이 사실은 우리의 본질이고 모든 존재의 본질이고 본체야. 본래의 모습이고 영원한 고향이고 그런데 그것을 이해하기란 그렇게 쉬운게 아니라. 우리는 눈뜨고 귀열고 해서 차별된 것만 늘 보아오고 들어왔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 습관은 그 차별된데 팔려 버릇했기 때문에, 그 영원하고 평등한 것에는 이해가 잘 안돼요.
그래서「종지용출품」이라고 하는 것은 뭐라고? 땅이 진열(震裂)한다. 막~ 흔들리면서 찢어지면서 그 속에서 정말 본래부터 보살인 그런 그 성인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그런 이야기. 오늘 또 이제 중송부분에서 이야기가 한 번 더 이야기합니다만은, 지난 시간에도 그 이야기가 있었죠. 그런데 그런것이 이제 현상 그 땅이 찢어진다고 하는 말은 현상을 말하는거에요. 현상을 초월해야, 현상을 초월해야 영원성, 평등성, 우리의 본질 이걸 이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쉬운게 아니에요. 사실은,
우리가 사람을 대하더라도 당장에 차별된 현상만 가지고 이러고 저러고 상대하지 그 사람의 본성, 영원성 누구에게나 다~ 평등한 평등성 가지고 그 상대를 못해요. 그게 안된다구요. 그래 돼있어. 현상은, 그게 또 나쁜 것도 아니고 누구나 다 그런 것이고 그게 이제 그런 그 보통 사람의 삶인데 그러나 깨달은 사람의 안목에는 그것뿐만이 아니라 내면의 세계, 진실의 세계, 영원한 세계가 눈에 보이니까 그걸 가지고 이야기하고 그걸 이해시키려고 하고, 그것은 행복과 불행을 초월한 해탈의 세계라. 행복도 불행도 아니여. 행복했다 해봐야 그 뭐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아무리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사람도 일생에 그 뭐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크게 아주 뭐 점수를 많이 줘가지고 행복하다 하더라도 한 3분의 1은 행복하고 3분의 1은 불행해. 아주 행복하고 모든 조건 다 갖춰진 사람도 3분의 1은 불행해요. 그리고 3분의 1은 행복도 불행도 아닌 그만그만한 시간들이야. 그 시간을 나눠놓고 보면 그래요. 사실은,
그 3분의 1은 아무리 불행하다한 사람도요 아주 깨가 쏟아지는 달콤한 시간들이 상당히 있어. 저기 거지들도, 다리밑에 사는 거지들도 상당히 그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몰라. 그 사람들은 3분의 1이 아니라 2분의 1정도 행복할지 몰라? 어쩌면은, 그건 뭐 개인 느낌을 행복하다 불행하다 하는 것이지 조건을 가지고는 행복하다 불행하다 하는게 아니에요. 저기 높이 올라간 사람이 행복하기로 하면 또 돈을 백조 원 가진 사람이 행복하기로 하면 그 사람들은 행복해서 매일 그냥 기절해서 24시간 기절해있어야 될게 아니여. 아니잖아요? 불행해서 기절하지 그 사람들 행복해서 기절한적 없어. 많이 가진 사람, 높이 올라간 사람 불행해서 기절한다고, 너무 불행하니까 끝까지 불행해버린 사람도 있잖아요. 사실 그런거라. 행복은 자기 느낌이거든 뭐 아무튼 이렇게 3등분으로 나누면은 거의 엇비슷해요. 아~무리 불행하다는 사람도 3분의 1은 행복해. 아무리 행복해보이는 사람도 3분의 1은 불행해.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뭐 그만그만한 시간들이야.
그래 불교는 그런 현상적인 것에는 이게 완전한 답이 안나오니까 그래서 해탈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해탈을 제시한거요. 인간의 진정한 삶, 궁극적 삶은 해탈의 삶이다. 행복과 불행에서 다 초월한 삶이다. 그런 세계가 분명히 있으니까. 어디에 그런 세계가 있느냐고 따지면은 뭐 당장에 이렇게 떡주듯이 나눠줄 순 없지만은, 분명히 그러한 내면의 세계, 우리 본질의 세계가 각자에게 다 있다고 근데 그것을 이해시킬려니까 지금까지 이게 뜸들여 온거야. 앞에도 그런 내용이 있지만은 그래도 아주 아주 그 눈에 보이듯이 아주 충격적인 그런 그 설명을 통해서 땅이 흔들리고 찢어지고 갈라진다.
지진의 강도 보통 7.0되면 대단한 지진이잖아요. 8.0도 잘 없어요. 8.0되면 큰일나는거요. 그런데 이거는 강도가 1000이야. 강도 일천 도의 강도와 같은 그런 지진, 그래서 땅이 찢어지고 그 안에서 수억만 보살이 올라 올라면은 강도가 한 1000은 돼야 될거야 아마. 그와 같은 충격적인 표현을 통해서 우리가 현상에 이렇게 속박돼있고 습관화돼있고 거기에 젖어있고 거기에 하~ 너무나 때가 묻어있거든요. 우리 중생들은, 그러니까 그것을 찢어버리고 그걸 깨트려버리고 그것을 초월하게 한다고 한 그런 표현이 이게 땅이 진열한다. 그래야 우리의 본성이 그 속으로부터 솟아 오른다. 참 얼마나 근사한 표현입니까? 그래서「종지용출품」을 제일 좋아한다니까. 아주 박력있잖아요. 우리가 깨져야 어딘가 부서지고 깨져야 뭔가 새로운 어떤 그 삶이 그때부터 전개되는거에요.
그래서 참「종지용출품」의 의미가 기가 막힙니다. 그래서 그것이 이제 그 이야기가 쭈욱 이렇게 전개돼가지고 그 끝에 저 다음 품에 가면은, 그「여래수량품」에 가면은 우리가 사경하라고 자아게(自我偈)를 많이 찍어놓고 자아게를 쓰는데『법화경』의 안목,『법화경』의 눈이라고 하면은 자아게「여래수량품」에 있는 짧은 게송있잖아요. 한 장으로, 모두 가져가서 쓰시죠. 自我偈 그건 최소한도 백 번 이상은 쓰셔야 돼. 한 장으로 돼있으니까. 그 자아게에서 우리의 진실성, 우리의 영원성, 우리의 참얼굴 그리고 그 얼굴은 우리의 부처님의 무량공덕생명 그대로 우리 생명이다하는 그런 이야기로 이제 그 전개돼가고 있어요.
그 얘기가,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 땅이 찢어지는 이야기, 거기서 보살이 솟아 오르는 이야기 뭐 등등 그런 그 주변의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가 뭐 회사를 경영하든지 하다못해 조그만한 구멍가게를 하든지 자기의 어떤 그 인생을 좀 더 업그레이드(upgrade)하든지 자기 습관을, 못된 습관을 하나 고친다든지 아니면은 자기가 정말 하고 싶었던,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나 해본다든지 뭐 기술을 배워본다든지 아니면 예능을 익혀본다든지 이런 것이 정말 하고싶은 그런 일이 있으면은 모든걸 두드려 깨야 돼. 그동안 생활 그 어떤 그 패턴을, 자기가 그동안 생활해 온 패턴을 다 두드려 깨버리고 무시해버리고 그 일에 매진해버려야 된다구요.
피아노 내가 한 번도 만져본적이 없는데 꼭 그 금생에 피아노 한 번 소나타라도 쳐볼 수 있도록 내가 한다. 그런 마음 있으면은 다 두드려 깨야 돼. 일상생활 다 부셔야 된다고, 강도 1000도쯤 되는 그런 지진이 인생에 있어서 한 번 일어나야 그래야 뭐 하나 해낸다구요. 안그렇겠어요? 그러지않고는 이게 뭐가 하나 나오질 않아.
그 서정주씨 그 당신 시인으로서 당대 최고의 시인인데도 불구하고 나이 70얼마가 돼가지고 러시아에 유학을 갔잖아요. 야~ 대단한 분이여. 그런 열정을 가지고 살았어.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존경받는 문인들로부터, 시인들로부터 최고의 존경을 받는 그런 그, 스님들 시인, 문인들은 전부 그 사람한테 서정주 시인한테 가가지고 그 저기 저 사사해가지고 거기서 등단인가를 받은거요. 그래서 전부 그 사람을 통해서 시 부분에 등단하고 그런 그 스님들이 아주 코스인데, 그 정도로 아주 존경받는 분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70얼마가 돼가지고 75세인가 6세인가 돼가지고 러시아가서, 러시아문학 공부하겠다고 가서 러시아어 공부해가지고 가서 유학하겠다고 갔었어요. 실패하고 돌아오긴 했어. 건강이 안좋아가지고, 워낙 연세가 많다보니까. 그렇게 열정이 넘쳤다고요. 70대 중반까지도, 그러니까 젊어서도 그런 열정을 가지고 살아 온 것이니까 그런 그 아주 그 멋진 그 문학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 이「종지용출품」은 그 이『법화경』의 진정한 의미는 우선 어려우니까 제쳐놓고 그것을 가지고 우리 일상, 내 개인 또 한 가정, 한 가게, 한 회사를 경영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경영이든, 회사의 경영이든 그것을 경영하는데 있어서 한 번쯤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기가막힌 가르침이라. 이거는
그 정주영씨 같은 이들도 그 집에서 도망나올 때, 세 번인가 도망나와가지고 결국 성공했대잖아요. 시골에서 이렇게 있어봐야 안되겠다 이거여. 시골 화장실엔 쥐가 많잖아요. 보면은, 똥을 먹는 쥐가 많아. 이렇게 내려다보면은 쥐가 왔다 갔다 하고 김나는 뜨끈뜨근한게 떨어지기를 기다리는거야. 그런데 그 놈은 맨날 거기 화장실에서 살아. 그래 그걸보고 깨달았다. 화장실에 있는 놈은 항상 똥만 먹고 산다. 그런데 쌀창고에 있는 쥐가 또 있어. 그 쌀창고에 있는 쥐는 항상 쌀만 먹고 살아. 거기서‘내가 이 시골에 살아가지고는 촌놈밖에 안되겠다. 시골에 묻혀가지고 아무리 시골에서 무슨 뭐 부장, 반장 다 해봤자 시골 촌놈이지 그 논 몇 마지기 더 가진 시골 촌놈이지 별 수 없다.’딱 생각하고 도망을 나왔잖아요.
그 사람 저기 저 대통령출마했을 때, 불교 라디오방송에 가가지고 대담할 때 그때 내가 총무원에 있을 때라서 가서 이제 들었어요. 들어서 불교하고 인연을 이야기하라 그러니까 도망나오다가 그 금강산 어느 절에 가가지고 잠깐 들려서 하루밤인가 이렇게 자는데 마침 가니까 그 저기 저 재가 있더라는거야. 그때 재를 하면 한 3일씩 이렇게 하거든요. 그래 쉬면서 재하는거 구경하고 음식 잘얻어먹고 갈 때는 그 노스님이 또, 그 백지미라고 알아요? 잘 모르지. 요즘 사람들은, 그 흰떡. 쌀가루로, 그 가루로 가지고 해놓으면 그거 굳어놓으면 돌덩이처럼 딱딱해요. 그럼 그것을 한 보따리 싸주더라는거요. 어디에 있던걸, 이걸 가지고 다니면서 물에 녹여가지고 먹어도 되고 쪼가리 입에 넣고 가면서 먹어도 되고, 너무 좋은 양식이라. 그보다 더 좋은 양식이 없다는거요. 그래 그걸 얻어가지고 몇 날, 며칠을 그걸 먹고 살았다는거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어린 소년이 도망나오면서 무슨 돈이 있었겠어요. 돈 좀 훔쳐 나와도 그거 쓸 수도 없는거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오늘날 자기가 됐다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불교에 은혜도 많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걸 들었는데, 그렇습니다. 사실 그런 것들도「종지용출품」하고 연관이 되잖아요. 기가 막히게 아주 연관이 되는거야. 이건, 어디에다 갖다 붙여도 이건 우리 인생을 아주 한 번 확 다르게 만들어놓는 업그레이드시키는 그런 그 교훈이 되는 그런 내용입니다.
이 본래의 내용은 그렇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현상차별에 우리가 팔려서 살고 집착해서 사는 거기에서 우리가 깨져야 그거 관념이 깨져야 비로소 우리의 본성을 보게 되고 영원성을 보게 되고 우리 인간의 진실성, 정말 소중한 가치를 거기서 보게 된다. 하다못해 뭐 구리를 캐고 금을 캐고 석탄을 캐는데도 얼마나 그 저기 위에 걷어내는 그 흙이 많습니까? 심지어 금쯤 캘려면은 그 금 조그만한 것 얻기위해서 그 저기 저 저 산을 얼마나 파헤쳐야 된다구요. 산을 무진장 파헤쳐야 그 금을 조금 얻을 수 있는거요. 그런 것도 이「종지용출품」하고 너무 잘 맞는거라.
이게 이것은 우리가 이 뜻을 잘 이렇게 설명해드렸으니까 잘 이해해서 각자 자기의 인생에도 활용을 하고 또 한 가정의 어떤 그 경영에도 활용을 하고 또 자녀들 어떤 삶에도 활용이 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요. 사실 이건 책장을 한 장이라도 넘기기가 아까워서 이렇게 지금 내가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288쪽 저 밑에 23번이죠.
23 爾時諸大菩薩이 而說偈言하니라
이시제대보살 이설게언
爾時諸大菩薩이 而說偈言하니라
그때에 諸大菩薩이 게송을 설해 말씀하사대
24 善哉善哉라 大雄世尊이시여 諸衆生等을 易可化度하시며
선재선재 대웅세존 제중생등 이가화도
能問諸佛의 甚深智慧하고 聞已信行일새 我等隨喜하노이다
능문제불 심심지혜 문이신행 아등수희
善哉善哉라 大雄世尊이시여
하 훌륭하고 훌륭하다. 큰 영웅 세존이시여, 우리가 그래서 세존 모신데를 대웅전(大雄殿) 그러잖아요. 이런데서 다 나온 것입니다. 大雄世尊 그러잖아요. 큰~ 영웅, 세상에선 영웅을 알아주듯이 표현을 이제 그렇게 합니다.
진짜 부처님은 뭐 정말 남의 집에, 죽을 때까지 남의 집에 다니면서 걸식(乞食) 얻어먹고 살았는데도 이렇게 영웅대접 받잖아요. 영웅대접 받는 大雄世尊 그 훌륭한 삶을, 큰 삶을 사는 것은 뭐 역사에 길이 남고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큰 업적을 이룬 것이 아니라, 물론 뭐 석가모니야 업적으로봐도 크지만은, 당신은 업적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고 그저 당신의 깨달음이 하도 위대하니까 그 깨달음을 한 사람이라도 가르쳐주기 위해서 일러주기 위해서 그렇게 참 그 전법(傳法)의 길을 고생하면서 그저 그 걸어다니시면서 전했다고 하는 이 사실뿐입니다. 그거 뿐이에요. 무슨 뭐 국가를 통일하고 무슨 큰~ 것을 발명해내고 그런 일은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大雄世尊 참 근사한 표현이죠. 보살들이 부처님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大雄世尊이시여
諸衆生等을 易可化度시며
이럴 때는 易가 바꿀 역(易)자지만은, 이제 쉬울 이(易)라고 하는거요. 모든 중생들을 쉽게 가히 교화하고 제도하시며
能問諸佛의 甚深智慧하고
능히 모든 부처님의 매우 깊은 지혜를 능히 묻고 능히 묻고 또 물으면 답하는 말씀이 있을 것 아니요.
聞已信行일새 我等隨喜하노이다
그 답하는 말씀을 듣고나서 信行 믿고 실천하실새, 행하실새 우리들은 따라서 기뻐하노이다. 이렇게 이제 세존을 향해서 덕담을 이제 보살들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종지용출품-우리가 깨져야 어딘가 부서지고 깨져야 뭔가 새로운 어떤 그 삶이 그때부터 전개되는거에요...현상차별에 우리가 팔려서 살고 집착해서 사는 거기에서 우리가 깨져야 그거 관념이 깨져야 비로소 우리의 본성을 보게 되고 영원성을 보게 되고 우리 인간의 진실성, 정말 소중한 가치를 거기서 보게 된다._()_ _()_ _()_
영원성, 진실성, 평등성 이것이 사실은 우리의 본질이고 모든 존재의 본질이고 본체야.
본래의 모습이고 영원한 고향이고 그런데 그것을 이해하기란 그렇게 쉬운게 아니라.
우리는 눈뜨고 귀열고 해서 차별된 것만 늘 보아오고 들어왔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 습관은 그 차별된데 팔려 버릇했기 때문에, 그 영원하고 평등한 것에는 이해가 잘 안돼요.
...현상을 초월해야 영원성, 평등성, 우리의 본질 이걸 이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쉬운게 아니에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