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밖의 한국 사찰
나성 수도사
계정스님 1972년 미국도미, 달마사 초대주지 및 이사장 역임
불교의 역사는 수도시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불교교단이 체계가 세워지고 스님들이 타지역으로 전법활동을 하러 가면 반드시 맨 먼저 수도원을 세웠다. 지난 1990년 11월 입적한 한계정스님은 나성한국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나성에 한국사찰이 처음 세워진 것은 1973년 달마사이다.
한계정스님은 이 달마사의 초대주지와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러니까 한계정스님은 나성에서 숭산 스님과 함께 한국불교를 전파하는데 앞장 선 스님이다.
계정스님 76년 수도사 창건
달마사에서 2년 상주한 뒤 계정스님은 독립해 나와 불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수도’라는 단어 를 딴 수도사를 설립했다. 즉 월셔와 크렌샤워가 만나는 좋은 지점에 달마사에 이어 나성에 두번째 한국사찰을 세운 것이다.
수도사는 이런 좋은 지리적 위치에 2층으로 된 자체건물들을 가지고 있다. 일층은 법당과 사무실 식당이 있고 이층은 스님들의 방사, 책방과 회의실이 있다. 이런 좋은 지리적 위치와 공간이 있으며 절이 개방적이어서 마땅이 갈곳이 없는 노보살님 들에게 좋은 사교장 구실을 하였다. 이곳에서 만난 노보살님들은 자신들의 삶의 역정, 그들의 기쁨과 술픔, 고민과 희망, 이민와서 살고 있는 자식 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끈끈한 유대를 맺었다. 때문에 수도사 신도들은 유대가 긴밀하며 결속력이 있다.
한계정스님은 수도사 주지로 있으면서 한의사면허를 가지고 동양건재한의원을 경영하였다. 당시의 수도사 신도들은 노보살님이 주축이었기 때문에 제정형편이 취약하였고 동양건재한의원에서 나오는 수입이 수도사 운영비용의 근간이 되었다.
수도사는 절의 창건부터 운영까지 계정스님이라는 구심점을 중심으로하여 이루어졌다. 그런데 수도사 기둥 계정스님이 1990년 11월 갑자기 입적을 했다. 수도사로서는 개원 14년후에 맞는 최대의 큰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계정스님의 재직시기가 수도사의 제1기 라면 계정스님 입적 후 현재의 주지 정산스님 재직이 제2기가 될 것이다. 수도사는 계정스님에 대한 의존도가 어떤 타 사찰보다도 높았기 때문에 계정 스님 입적 직후 많은 사람들이 수도사의 장래를 걱 정하였지만 이러한 우려를 깨끗이 떨쳐버리고 주지 정산스님을 비롯하여 신도 임원들 그리고 계정 스님과 인연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아주 잘 운영되고 있다.
수도사는 한계정스님이 주지로 있는 한동안 한국에서 나성에 오는 스님들의 정거장 구실을 하였다. 지금은 입적하셨지만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신 고암스님등이 수도사를 다녀가셨고 계정스님이 주지로 재직시는 법타스님,진각스님등이 상주하였고 정산스님 재직시는 지월스님등이 상주하였다.
수도사 청년회 돋보여
수도사 청년회는 86년에 현재 나성에서 유학전문 지 Freshman을 발행하며 유학원을 경영하는 초대회장 리유
기 씨 등이1990년도 중앙승가대 학생회장을 역임한 성광스님을 지도법사로 모시고〈수도백상청년회>라 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이 청년회에서는 불교교리도 공부했지만 그외에도 다도를 비롯한 우리민족의 고유풍습과 문화를 배우고 실습하는 프로그 램을 운영하면서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 그러나 지도법사 성광스님의 귀국, 회장 리유기씨의 타지역 이사등으로 그 세가 위촉되다가 1991년 1월에 재창립되어 대학교에 재학중인 젊은 회원들 25여명이 회장 김진석을 중심으로 모임도 활발한데 92년 1 월에 각 사찰 주지스님과 청년회원등 일백여명이 모인 재창립 일주년 기념행사에서 연극, 합창등을 선보여 그후 나성불교 청년회 수준을 높이는데 일정한 기여를 했으며 지난 1993년1월 17일 가진 재창립기념 2주년 행사에서는 발원문낭독, 시낭송, 연극,합창등 전원이 불심으로 합심하여 신도회를 감동시켰다. 이러한 활동등으로 현재 나성불교계에서 주 목을 받고 있는 수도사 청년회는 손무아씨가 한동안 지도를 하다가 현재는 김학순법사가 매월 두번씩 강의를 하고있다. 노보살님들이 절을 오고 가는 데 교통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청년회원들은 앞으로 사회봉사활동도 할 예정이다.
3층으로 층축예정
현재 수도사의 조직은 이사회, 신도회(회장: 김남용), 청년회, 관음회(한금련화), 지장회, 인등회의 조직이 있고 세대수는 약 이백세대이며 법회에는 평균 육십여명이 참석한다. 면적은 대지가 약 1에 이커, 2층건물에 법당,사무실, 책방,회의실등이 두루 갖춰져 있고 4개의 방사가 있다.
강삼품화, 한금련화, 최대복성,최지희, 윤우병, 임우남, 홍순덕씨등이 수도사 창립초기부터 지금까지10년 이상 수도사 발전에 많은 노력을 했다.
오전 10시의 매주일요정기법회, 10시 반에 갖는 청년회 법회등이 중요 프로그램이며 이 법회들을 주지 정산스님을 비롯하여 황천오법사, 김학순법사 등이 설법과 강연을 하고 있다. 그리고 월간 〈보리수>를 지난해 8월에 창간하여 월간으로 내고있다.
현재 모게지 납입금이 없어 많은 액수의 모게지를 안고 있는 타사찰에 비해 재정적인 부담감이 없는 수도사는 현재의 건물을 3층으로 증축하여 공간을 넓힐 예정이다.
좋은 위치에 넓은 공간을 확보한 수도사가 이를 잘 활용하여 수도처로써 포교지로써 명성을 얻어 한국불교전파의 산실로 빛나기를 부처님전에 기원한다.
71: Shu Doh Sah Inc. Buddhist Temple of America
674 Crenshaw Bivd. Los Angeles, CA 90005 TEL: (213)936-2210
1993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