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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빌 4:1,4-9절
제 목 : 사랑하는 자들아 주 안에 서라
일 시 : 2023. 10. 22.
빌립보서 4:1,4-9/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바라보는 사도 바울의 관점입니다. 성도를 어떻게 바라봅니까? 1)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이라고 했으며, 2)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빌립보교회를 개척한 사도 바울 개인이 성도들을 바라보는 관점이면서 동시에 바울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께서 그들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사랑하고 존귀한 성도들에게 권면하시는 말씀은 주 안에 서라고 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몹시 사랑스럽고 존귀한 자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대충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고 반드시 주 안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끝까지 그들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요 존귀한 면류관과 같은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아름다운 보석으로 표현했습니다. 보석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주 안에 서야 합니다.
주 안에 서라고 했는데 서라란 스테코 라고 하는데 현재 능동태 명령법으로 정지하다, 즉(상징적으로)참다, 견디다, 굳게 서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원래 병사가 전쟁 중에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지켜야 할 초소에 계속해서 굳게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어려운 상황들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 있어야 했으며, 그것은 주 안에서(엔 퀴리오)만 가능했습니다. 성도들이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 굳게 그리고 진실되게 설 수 있는 것은 항상 주와 동행할 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군인이 적들이 처 들어오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초소에서 굳게 서 있는 것처럼 성도가 주 안에서 굳게 서 있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본문에는 성도가 주 안에서 굳게 서 있어야 할 일과 과제는 다섯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 안에 굳게 서는 것은 곧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기뻐하라는 카이레테(카이로)라고 하는데 현재 능동태 명령법으로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 안에 굳게 서는 첫 번째 특징이자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천국을 소유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자신이 곧 천국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특징은 세 가지입니다. 롬14: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는 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같은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희락은 기쁨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안에 있으면 즉 주 안에 굳게 서게 되면 가장 먼저 항상 기뻐하게 됩니다. 빌립보서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는 말씀을 전하는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감옥 갇힌 상태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기뻐하면서 이 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2:17-18/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과거에 사도 바울이 고난과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믿음에 굳게 서서 기뻐한 것(행16:19-25)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이 말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더 큰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한편 주 안에서(엔 퀴리오)는 바울의 기쁨의 원천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성도들이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할 충만한 근거가 됩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세상과 환경과 외적인 환경이 어떠하든지 기뻐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어떤 사람이 항상 기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주님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일과 주님 안에 있는 것은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2.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5절에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했습니다.
1)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관용이란 에피에이케스 라고 하는데 적당함, 함축적으로 온화한, 너그러운, 절제하는, 인내하는이라는 뜻으로 손해나 역경을 당해도 쉽게 동요되거나 넘어지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영적인 인내를 가리킵니다. 또한 이것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태도를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 심지어 자신을 핍박(逼迫)하는 사람까지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보여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닮은 너그럽고 온화한 성품을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정말 인간 같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구별하지 말고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가까우시기 때문입니다.
2) 그래서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관용의 태도로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말은 호 퀴리오스 엥귀스라고 하는데 주께서 가까이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엥귀스는 공간적으로는 가까이에 at hand 라는 뜻이고, 시간적으로는 임박하여 곧 일어날 일과 관련해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선악간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실 주님께서 곧 오실 것인데 그것을 안다면 모든 핍박을 인내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도 동일한 말씀으로 권면합니다. 약5:7-9/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도 사도는 두 번이나 주님의 오심이 가깝다고 표현합니다. 먼저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고 했으며, 두 번째로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심판하실 재림의 주님께서 저 문 밖에서 문을 열고 금방 들어오실 것처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문 밖에 계셔서 곧 문을 열고 들어오실 텐데 어떻게 서로 싸우고 다투고 얼굴을 붉히고 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용납하고 품고 용서할 수 밖에 없습니다.
3.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로 주 안에 굳게 선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기도생활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6-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다시 강조합니다.
주님 안에 굳게 선 사람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와 필요를 아시고 또한 우리가 기도하고 구하는 것마다 다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 굳게 선 사람들의 참된 기도의 특징에는 세 가지가 요소가 들어있어야 합니다.
1) 첫 번째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아야 합니다.
염려하는 것 자체가 곧 불신앙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많이 불렀던 복음 송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기도한다면 염려라는 것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염려하며 근신걱정에 사로잡힌 분들이 있다면 정신을 차리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주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주님 안에 있다면 염려할 것이 아무 것도 없어야 합니다.
2) 두 번째는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의 반대는 원망 불평하는 것입니다. 민수기를 읽어보면 출애굽해서 광야를 여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조그마한 어려움이 생겨도 즉시 하나님과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불평을 토했습니다. 처음에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 언약을 맺으시기 전에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망불평 하면서 요구하는 것도 다 용납하시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지만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고 난 후에는 원망불평 하면 즉시 심판하셨습니다. 불 뱀이 나와서 물든지, 아니면 불이 내려와서 태우든지 아니면 땅이 입을 벌려서 산채로 삼켜 버리든지 하는 즉각적인 벌을 내리셨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하나님을 향한 원망불평은 자신을 무너뜨리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 불평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자신이 잘못해 놓고 하나님께 원만 불평을 퍼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스스로 멸망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에는 감사가 들어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3) 세 번째는 마음에 하나님의 평강이 찾아와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었다면 반드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게 됩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기도한 사람에게 주어질 응답의 전조현상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기도응답의 선구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전에 먼저 평강을 주십니다. 마음에 평강이 있다는 것은 곧 응답해 주신다는 신호입니다.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기도하셨다면 평안한 가운데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곧 응답이 도착할 것입니다.
4.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 받을 만하며 칭찬 받을 만하며 이것들을 생각하라.
주 안에 굳게 서는 네 번째 삶의 특징입니다. 8절에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무엇에든지란 호소스라고 하는데 만큼(많은, 큰, 깃등), 모두, 얼마나 큰(많은), 더 많이, 매우(큰, 든지), 어디든지 라는 뜻입니다. 무엇에든지란 모든 일에 또는 어디에서든지 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주 안에 굳게 서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경건하고,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 받을 만하며, 칭찬 받을 만해야 합니다.
8절 말씀은 성도들이 정신적인 영역에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여덟 가지 덕목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참되며란 알레테스 라고 하는데 (숨기지 않으므로)참된, 참으로, 참 이라는 뜻으로 허위 또는 거짓과 상반된 개념으로 이것은 원래 하나님의 속성이며(롬3:4) 믿는 자의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항상 참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동기를 숨기지 말고 솔직해야 합니다.
2) 경건하며란 셈나(셈노스)라고 하는데 존경할 만한, 즉 공경할 만한, 장중한, 정직한 이라는 뜻으로 바울 서신에만 나타나는 이 말(딤전3:8,11,딛2:2)은 특히 교회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입니다.
3) 옳으며란 디카이아(디카이오스)라고 하는데 (성격이나 행위에)공정한, 흠 없는, 거룩한, 의로운, 적당한, 의(의로운)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옳다 인정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4) 정결하며란 하그나(하그노스)라고 하는데 본래적 의미로는 청결한, 즉(상징적으로)결백한, 신중한, 완전한, 순결한, 깨끗한, 순진한 이라는 뜻으로 도덕적인 정숙함을 강조하며 엄격한 의미의 순결(純潔)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도덕적으로 성적으로 영적으로 순결하며 깨끗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5) 사랑할 만하며란 프로스필레(스) 라고 하는데 ~대하여 친절한, 즉 용납할만한, 기쁘게 하는, 사랑스러운 이라는 뜻으로 신약성경을 통틀어 이곳에만 나오는 단어로 즐겁고 유쾌하며 사랑스럽다 라는 뜻입니다.
6) 칭찬할 만하며란 유페마(유페모스)라고 하는데 칭찬하는, 즉 칭찬할 만한, 좋은 소식의 라는 뜻으로 이 단어 역시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로서 정중한, 고상한, 우아한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7) 덕이란 아레테라고 하는데 (본래적 의미로)남자다움, 즉 탁월함, 칭찬, 미덕이라는 뜻으로 도덕적으로 뛰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도덕적으로 지저분한 사람이 있습니다. 돈 문제에서도 지저분하고, 약속에서도 지저분하고, 시간문제에서도 지저분한 사람이 있습니다. 돈도 빌려 가 놓고 갚지 않고, 약속도 안 지키고, 시간도 잘 지키지 않고 지각하는 것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지저분한 사람입니다.
8) 기림이란 에파이노스라고 하는데 칭송, (구상명사)찬양할 만한 것, 찬양 이라는 뜻으로 도덕적으로 인정이 되어 칭찬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덕 즉 도덕적인 면에서 흠이 없고 칭찬을 받을 만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5.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했습니다.
주 안에 굳게 서는 삶의 다섯 번째 특징은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곱 가지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베푼 가르침은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이 있고 행동으로 실천되어야할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본보기로서 빌립보에서의 자신의 생활을 실례로 들고 있습니다.
본절에 나타난 네 개의 동사는 두 그룹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배우고(에마데테)와 받고(파렐라베테)라는 말은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에게서 받은 교훈을 강조합니다. 2) 듣고(에쿠사테)와 본(에이데테)이라는 단어는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말과 행동에 대해 관찰한 것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의 가르침을 통해 받은 것과 그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받은 것, 그리고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생활을 직접 관찰함으로써 깨달은 모든 것을 본받아 행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생활의 표준(標準)을 사도들의 말과 행실에 두고 있었습니다.
1) 배우다란 만디노 라고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든지)배우다, 이해하다 라는 뜻입니다. 배우다란 이해할 때까지 또는 그것이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받다란 파랄람바노라고 하는데 데리고 오다, 받아들이다, 즉(친밀한 관계가 있는)어떤 사람과 교제하다, (유추적)취임하다, (상징적)배우다, 받다, 취하다 라는 뜻입니다. 받다란 받아들려서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듣다란 아쿠오라고 하는데 (여러 감각에서)듣는다, 청취하다, 들려 오다, 보고되다, 들어서 깨닫다 라는 뜻입니다. 듣다란 들어서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버리는 것이 아니라 깨달을 때까지 반복해서 듣는 것입니다. 제대로 들었으면 지켜 행해야 합니다. 전도하다보면 많이 들어서 압니다. 라고 말하는데 전혀 실천하거나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대로 들은 것이 아닙니다.
4) 본 바란 두 단어의 합성어인데 보다란 호라오 하고 하는데 직시하다, 즉(함축적으로)보여질 수 있는, 볼 수 있는 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란 호스라는 이것 저것을 의미하는 대명사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보고 알고 경험한 모든 것들을 의미합니다.
5) 행하라는 프랏소 라고 하는데 행하다, 즉 계속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수행하다, 성취하다, 즉 특별히 세금을 징수하다, (개인적으로)요금을 내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국세와 지방세를 반드시 내야 하는 것처럼 사도 바울을 통해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계획적으로 습관적으로 실행하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들었어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주 안에 서라는 말씀 다섯 가지는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말씀이지 그냥 듣고 즐기고 끝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했으며, 마7:24-27/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했으며, 마28: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했으며, 눅8:21/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딤후3:13-17/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읽고 듣고 배우는 사람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약2: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으며, 약2: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신 다섯 가지를 행함으로 반드시 주 안게 굳게 서야 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 홀로 앉으십시오.
1. 빌4:1,4-9절을 읽고 주님 안에 서 있는 증거들을 찾아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성도는 어떤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2.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하는 바울의 현재 상황은?
3. 모든 사람을 품고 관용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주 안에 굳게 선 성도들의 기도의 세 가지 요소는 무엇입니까?
5. 성도들이 정신적인 영역에서 명심해야 할 여덟 가지 덕목은 무엇입니까?
6.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과 생활의 표준을 어디에 두었습니까?
7. 믿음과 행함의 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즉 분리할 수 있습니까?
아멘
1.하나님께서 보실때 몹시 사랑스럽고 존귀한자이기에 대충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고 반드시 주안에 서야 합니다
2.로마감옥에 갇힌상태입니다
3.주께서 가까우시기때문에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사람을 향해 예수님을 닮은 너그럽고 온화한 성품을 모든사람에게 알게해야합니다
4.1)아무것도 염려하지않아야합니다 2)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야합니다 3)마음에 하나님의 평강이 찾아와야 합니다
5.참되며,경건하며,옳으며 정결하며,사랑할만하며,칭찬할만하며,덕(탁월함.칭찬.미덕),기림(찬양할만한것)
6.사도들의 말과 행실
7.믿음은 곧 행함입니다 그래서 분리할 수 없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