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제목 : 그러므로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게 조심하라
설교본문 : 누가복음 20:27~44, 21:1~9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2년 6월 26일
==========================
서 론 :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이제는 믿지 않는 자들까지도 다 아는 유명한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리시도록 할 만큼
그렇게 절박하게 한 일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셔야 할 만큼 절박한 일이 무엇일까?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의 말씀이 바로 이 부분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 1 부 : 부활의 영광
오늘 본문 바로 앞구절인 누가복음 20:9~19에는
예수께서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유대의 지도자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아주 혹독하게 나무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자기들을 많은 유대인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혹독하게 나무라며 경고하시자
크게 화가 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서
대답하기 아주 곤란한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혹시 대답하다가 실수를 하면 고발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가복음 20:20~26은 먼저 바리새인이 예수께 질문했다가
예수님의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잠잠하게 된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자 그 다음에 사두개인이 나와서 예수께 또 대답하기 아주 곤란한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말씀은 사두개인의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 부활에 대한 논쟁
1) 사두개인의 질문 : 부활 때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나이까(20:27~33)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예수께 와서
28.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준 율법에 의하면
‘만일 형이 자식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형의 아내를 맞아들여서
형의 대를 이을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첫째가 아내를 취하여 살다가 자식 없이 죽고
30. 그 둘째와 셋째가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가 역시 자식이 없어 죽었고
31. 이런 식으로 일곱 형제가 다 그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나 자식이 없이 죽고
32. 마침내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33. 이렇게 일곱 형제가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부활 때에 그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이 곤란한 질문으로 예수께 올가미를 씌우려다가
말 한마디 못하고 그냥 물러났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왔습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형이 자녀 없이 죽었을 경우 형수가 시동생에게로 들어가서
죽은 형의 자녀를 낳아주어야 하는 구약의 레비리트법(신 25:5~10)을 들어서
일곱 형제가 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 살았다면
부활 후에 그 여자는 일곱 형제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2) 사두개인
유대교의 당파 중의 하나인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유한 귀족 지배 계층으로
제사장들과 예루살렘의 권력가들로 이루어진 집단이었고,
산헤드린 공의회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전 2년부터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파괴될 때까지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이들은 모세 오경만 성경으로 인정하고 예언서는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아,
내세와 부활과 영적인 세계와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행 23:8).
부활과 내세를 믿지 않았으니 오직 현실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이유로 그들은 세속적인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3) 사두개인처럼 성경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사두개인들처럼 성경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을 편식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내 마음을 부담스럽게 하는 말씀일수록 더욱 가까이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두고 ‘내 마음에 든다, 들지 않는다’
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입니다.
또, 말로는 부활과 내세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하는 것을 보면 마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오직 이 땅의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들 역시 사두개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 묵상 :
사두개인이 구약의 모세 오경만 성경으로 인정한 것처럼
어떤 사람은 바울 서신만 보고, 어떤 사람은 구약의 예언서만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신약의 복음서만 봅니다.
이처럼 성경 말씀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만 선택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만큼이나 불경스러운 일입니다.
성경 말씀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말씀을 존귀히 여기고 경청하여 들어야 합니다.
2. 부활의 영광
1)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천사와 동등이요(20:34~36)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 저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이므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사두개인의 질문에 예수님은 부한 자들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도 없으며,
다시 죽을 수도 없고, 천사와 동등이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부활한 자들이 천사와 동등이라 하신 것은
천사와 똑같은 자들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천사들처럼 영원히 죽지 않는 자들이 된다는 뜻입니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브리서 1:14).
장차 천국에서는 부활한 자들이 천사들을 종 부리듯 할 것입니다.
2)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20:35)
35. 저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이 땅에서는 사람들이 죽으니 대를 잇기 위해 결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영원히 죽지 않으니
대를 잇기 위한 결혼이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의 결혼은 특정한 두 사람만이 친밀한 관계를 맺었으나,
천국에서는 모든 자들이 다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므로
모두가 다 친밀한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질병도 슬픔도 없고,
특히 누구를 따돌리거나 누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도 없습니다.
3)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20:35)
(성경구절 위에)
그러나 천사와 같이 영원히 죽지 않고,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는 신비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은
부활의 몸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는 자들에게만 해당됩니다.
주께로부터 그 믿음을 인정받아 주님과 함께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만이
이 신비의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묵상 :
영원히 새로운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꿈과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십시오.
제 2 부 :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1.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1)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20:36~37)
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이므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37.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언급하였으니,
모세가 주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불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고,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지금 어딘 가에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 이미 죽은 자들 역시 육신만 죽었을 뿐,
그들의 실체는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단지 우리가 아직 육신을 입고 있기에 그들에게 갈 수 없을 뿐입니다.
2) 영원한 영광과 영원한 멸망
사람들이 죽은 후에는 다시는 영원히 죽을 수 없다는 것은
한편으로 기쁜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끔찍한 일이기도 합니다.
주님 안에서 영원히 즐거움을 누릴 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지만,
영원한 멸망의 자리에 들어갈 자들은
죽을 수도 없다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습니다.
당신은 죽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다시는 죽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이 당신에게 복음이 되려면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사는 동안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사는 동안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천사와 같은 존재로, 아니 천사를 몸종으로 부리는 존재로
하나님의 가족으로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 묵상 :
나의 영원한 삶이 어떤 것이 될 것인가가
오늘 나의 삶으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그날을 두려움으로 바라보며
오늘을 신실하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의 주님이시라는 것
1) 태초부터 계셨던 예수님(20:44)
44.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불렀으니
어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하시니라.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는 분명히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의 집안인 요셉의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실상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다윗보다도 높으신 다윗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다윗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인 태초부터 계셨습니다.
2)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온 것은,
예수께서 다윗의 왕권을 회복하실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이런 기대감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인 이때에 예수께서 세우려는 왕국은
다윗의 왕국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십니다.
다윗의 왕국이란 유대인만의 왕국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왕국을 회복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셔서
그들이 모두 다 함께 참여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단지 유대인의 왕으로서만이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 오셨음을 지적하기 위해
그리스도는 결코 다윗의 후손이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시 110:1)
1) 시편 110:1을 인용하신 예수님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시편 110:1)
시편 109편은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시리라는 것을 예언한 시입니다.
예수께서 여기에서 인용하신 시는 바로 그다음인 시편 110:1절입니다.
예수께서 이 시를 인용하심으로
이제 다가오는 고난을 당하신 후 승리의 영광을 얻게 될 것임을 예언하십니다.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이 원수들인 악한 영들을 멸하기 위한 일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기까지(42~43절)
42. 다윗이 시편에서 친히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주님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43.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네 발아래에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시 110:1) 하였느니라.
네 원수가 네 발등상이 되리라는 것에는 다음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➀ 주님의 백성들 앞에 마귀들이 힘을 잃게 되리라는 것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원수들인 마귀와 사탄은
예수님의 발아래 굴복되어 완전히 그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전에도 마귀는 예수님 앞에 꼼짝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로
예수님의 그 힘과 권세가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예수님 앞에서 마귀들이 꼼짝 못 했던 것처럼
이제는 주님을 믿는 백성들 앞에서도 꼼짝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➁ 마지막 날에 완전히 멸망을 당하리라는 것
이 말씀은 또한 주께서 다시 재림하여 오실 때에
주님의 원수들인 마귀와 사탄은 모두 포박되어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지옥은 바로 그 원수들을 위한 멸망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굳이 그 멸망자들을 따라가니
마귀와 사탄의 감옥에 사람들이 함께 들어가는 것입니다.
3) 그러나 그 영광을 위하여 먼저 고난을 받으셔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 영광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은 반드시 고난의 길을 걸으셔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제 곧 그 엄청난 고난의 길을 걸으시게 될 예수님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 민족의 영광만을 생각하니,
예수께서 그리스도는 다윗보다 크신, 다윗의 주님이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묵상 :
먼저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은,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오직 내 뜻만 구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당시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의 뜻과는 다르게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봅시다.
제 3 부 : 그러므로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게 조심하라
1. 성전 파괴의 예언 : 너희는 이 성전의 화려함을 보느냐?
1) 헤롯의 성전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21:5)
5. 어떤 사람들이 그 미석(美石, 아름다운 돌)과 하나님께 바쳐진 봉헌물로
화려하게 꾸며진 성전을 보고 감탄하여 말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어서 어떤 사람들이 헤롯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감탄을 합니다.
헤롯의 성전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본래 이방인 출신으로 유대인의 왕이 되었으므로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예수님 당시까지
무려 46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성전을 지었으니 얼마나 화려했겠습니까?
2) 성전 파괴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21:6)
6. “너희가 보고 있는 이것들이
돌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날이 올 것이라.”
그러나 예수님은 그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완전하게 무너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겉만 아름답고 속은 더러운 탐욕으로 가득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 묵상 :
교회의 부흥은 결코 성전 건물의 부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신앙의 부흥이 교회의 진정한 부흥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성전 건물을 짓는데 반세기를 지냈습니다.
그 결과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는 많이 부실해져서
하찮은 사교집단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회는 교회를 무슨 이익집단 보듯 합니다.
겉만 화려하고 속은 검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진노하셨던 주님을 기억하고,
신령하고 신실한 교회가 되도록 힘써 기도합시다.
2.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 마지막 때의 큰 재앙이 일어날 징조에 대하여(21:7~9)
7.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이런 일이 언제 있겠사오며,
또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어떤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미혹을 받지 않도록 (속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하고 말하거나,
‘때가 가까이 왔다’하고 말할 것이라. 그러나 결단코 그들을 따르지 말라.
9. 난리와 소란(전쟁과 난리)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하되, 곧바로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니니라.”
사람들이 예수께 언제 이런 일이 있겠으며,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어떤 징조가 있을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기저기에서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말하거나,
‘때가 가까웠다’하고 미혹하는 자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결단코 그들을 따르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앞으로 주님 오시는 날이 가까이 올수록 가치관의 혼란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진리는 무시되고, 죄와 탐욕과 더러운 것들이 의와 정의로 포장이 되어
거짓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꿩 잡는게 매’라는 말처럼
무슨 짓을 해서라도 성공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더욱 지배를 할 것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기 위해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곧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니니라(21:9)
9. 난리와 소란(전쟁과 난리)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하되, 곧바로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니니라.”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의 때와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같이 섞어서 기록하지만,
누가복음은 성전 파괴의 재앙과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분리해서 증거합니다.
누가복음은 주후 70년 예루살렘 파괴 이후 기록된 복음서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은 13:6~9의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
성부 하나님께 1년씩 재림의 때를 늦춰주실 것을 간청하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가는 이런 징조가 있더라도 곧바로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니라고 증거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늦춰진 것이 벌써 2,00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그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묵상 :
마지막 때의 혼란을 절대로 만만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나도 실족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각자 굳건한 믿음을 갖도록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3. 그러므로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게 조심하라
1) 그러나 빛의 자녀들은 그날을 미리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데살로니가전서 5:3~5)
주후 70년의 징조가 마지막 때에 동일한 방법으로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빛의 자녀들에게는 주께서 어떤 방식으로든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자들에게는
그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게 하셔서 주의 날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2) 그러므로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십시오(21:34).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그러나 방탕함이나 술 취함에 빠져 있거나 세상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면,
주님께서 주후 70년에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재앙을 내리셔도
그 징조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그저 눈앞에 있는 재앙을 막을 준비를 하느라
더 무서운 재앙인 심판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태풍이 올 때 유리창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유리창에 방탄필름을 붙이는 준비도 해야 하겠지만,
주께서 곧 오시리라는 주님의 경고로 받아들이고
그날을 준비하는 일도 함께 해야 합니다.
● 묵상 : 가장 무서운 죄는 교만 죄와 마음이 둔해지는 것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앙 중에서 가장 무서운 재앙은
교만과 내 마음이 둔해지는 것입니다.
교만은 심판대 앞에 서는 바로 그 순간까지
내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자라고 자신만만해하다가 멸망 당하게 되니 두렵고,
마음이 둔해지면 죄의 감각을 잃게 되어 회개를 할 수 없으니 두렵습니다.
교만과 마음이 둔해지는 것은
둘 다 내가 심판을 받을만한 아주 무서운 죄를 짓고 있음에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자가 되므로 회개가 불가능합니다.
마음이 둔해지면 나를 평강으로 인도하는 길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또 재앙이 바로 눈앞까지 와도 알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심판의 재앙이 마치 덫과 같이 갑자기 닥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게 항상 깨어서 기도하십시오.
결 론 : 기억하고 기념하라
1.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1) 부자의 헌금과 과부의 헌금의 대조(21:1~4)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은 것을 보시고
3. 예수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도다.
4. 저 사람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부자들이 헌금궤에 헌금을 넣는 것을 보십니다.
이어서 한 가난한 과부가 남이 볼세라 조심스레 동전 두 렙돈을 넣는 것을 보십니다.
동전 두 렙돈은 오늘날의 500원짜리 동전 두 개와 비슷한 정도의 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가난한 과부가
저 부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헌금을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부자들은 풍족한 중에서 헌금한 것이지만,
이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돈의 가치가 아니라 헌금을 하는 자의 정성을 보십니다.
그 헌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가 흘린 땀의 정성,
그리고 그 예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정성을 보십니다.
2) 예배는 기억과 기념
예배를 드릴 때의 두 가지 자세는 ‘기억’과 ‘기념’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그 일에 합당한 기념으로서 찬양과 감사와 헌신을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물을 드릴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은혜를 기억하며 그에 합당한 예물을 정성을 담아 드립니다.
예수께서 과부의 헌금을 더 크게 보신 이유는
그의 헌금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억과 감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자기가 얼마나 많은 헌금을 하는지 자랑만 했으니
결국 자기 자신만 기념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헌신이 담겨 있지 않은 예배와 예물은
주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 묵상 :
예배와 예물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주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받으신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고,
그 일을 감사하며 드리는 예배와 예물이 되십시오.
나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념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2.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1) 특별한 징조를 기다리지 말고
그런데 역사 속에서 지진과 태풍과 화산 폭발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그런 재앙 중에서 어느 정도 이상이 되어야 주께서 오시는 징조로 보아야 랍니까?
몇 년 전에 일본에서 있었던 지진과 쓰나미는 그 경고일까요?
아니면 그보다 큰 징조를 더 기다려야 할까요?
우리들 중에 이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런 재앙 중에 주께서 보내시는 징조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2) 항상 주와 함께 사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재앙들이 있을 때마다
그것들을 모두 주께서 보내시는 징조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일들을 통해서 혹시 세상 죄에 빠졌든지,
세상 염려로 주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했던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 묵상 :
제일 좋은 것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습관처럼 항상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영의 세계로 인도하는 좋은 습관입니다.
주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오늘을 신실하게 살게 하옵소서.
주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가르치게 하옵소서.
겉만 치장하는 신앙이 아니라
내면을 아름답게 하는
참된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마지막 때의 큰 혼란을 이길
굳건한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게
항상 깨어 있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