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진해군항제와 비슷한 시기에 세계 외교 1번지인 미국 워싱턴D.C.에서도 벚꽃 축제가 열린다. 포토맥 강변을 따라 만개한 벚꽃을 즐기기 위해 전 세계에서 100만 명 이상이 찾는다고 한다. 이곳 벚꽃 거리는 1912년 미국과 일본 우호의 상징으로 당시 도쿄시장이던 오자키 유키오가 3000여 그루의 벚나무를 기증하면서 조성됐다. 매년 열리는 축제에는 일본 문화 행사가 열리는 등 일본을 홍보하는 거대한 문화 상품이 됐다.
일본의 벚나무 기증은 일제(日帝)의 조선 강점 도화선이 된 미·일 간 '가쓰라-태프트 협약' 이후 양국이 가까워진 것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워싱턴 벚꽃 축제의 이면에는 이 협약을 통해 조선의 보호권을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고, 벚꽃을 미·일 친선 외교에 이용한 두 얼굴의 일본이 숨어 있는 것이다.
당초 이곳의 벚꽃은 일본이 주산지로 알려져 '재패니스 체리 트리(Japanese Cherry Tree)'라고 불렸는데, 사실은 한국이 원산지라는 것을 알린 이가 이승만이다. 사연은 이렇다.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자 미국에서는 벚나무들을 베어버리자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미국에 망명 중인 이승만은 자신이 설립한 한미협회를 통해 미국 정부에 "저 재패니스 체리의 원산지는 한국의 제주도와 울릉도이며, 삼국시대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니 이름을 코리안 체리(Korean Cherry)로 불러달라"고 요청하고 벌목을 막았다. 미 의회도서관에서 일본 백과사전을 뒤져 일본의 왕벚꽃이 한국에서 전래되었다는 내용을 찾아내 미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미 정부는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승만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대신 '오리엔탈 체리(Oriental Cherry)'라는 중립적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이승만이 실망하자 한국에서 선교사 활동을 했던 폴 더글러스 아메리칸대 총장이 "그럼 우리 학교에 한국 벚나무를 심자"고 제의했다. 이승만은 1943년 4월 8일 워싱턴DC 아메리칸대 교정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24주년을 기념하는 제주 왕벚나무 심기 행사를 열었다. 미국의 일간지 아메리칸 이글(THE AMERICAN EAGLE)은 같은 해 4월 13일 자에 "일본산으로 잘못 알려진 워싱턴의 벚나무들에 진짜 이름을 찾아주기 위해 이승만 박사 등이 한국 벚나무 네 그루를 심었다"고 보도했다. 표석에는 '이승만 박사가 한국 독립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담아 식수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날 제주 왕벚나무 식수는 30여년 동안 일본 이름으로 불려온 우리 벚나무의 또 다른 '독립선언'이었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의 김찬수 박사는 지난 2008년 워싱턴을 방문해 포토맥 강변의 벚나무 표본을 채취해 수차례 유전자(DNA) 검사를 한 결과, 제주산 왕벚나무와 같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승만이 독립을 염 원하며 심은 벚꽃나무는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했고, 이것이 인연이 돼 2011년에는 아메리칸대 교정에 '한국정원'이 들어섰다.
100여년 전 일본은 벚꽃을 미·일 간 친선의 상징으로 삼으려 했고, 이승만은 한국 벚나무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면서 민족의 염원을 담아 벚나무를 심었다. 워싱턴 벚나무의 우리 이름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것은 또 다른 독립운동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