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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갑진년 빛나는 새날
해가 바뀌면서 덕담으로 ‘빛나게 살라’는 말씀을 두 번 들었다. 문수선원 책상에 놓인 그림 연하장에도 <2024 갑진년 빛나는 새날>이라고 표제를 쓴 연하장이 있었다. 갑진년에는 ‘빛나게 살라’는 말씀을 세 번 들은 셈이다. 해마다 그림 연하장을 대중공양해주시는 대선스님이 올해에도 준비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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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에서 한 주 미뤄서 8일 월요일에 문수선원 화엄법회가 있었다. 많은 스님들이 용학스님이 계신 방에 들어오셔서 삼배를 올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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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과목>이라고 과목만 따로 모아서 책을 만들어 대중공양하신 스님도 오셨는데 큰스님 법명 옆에 나란히 써놓은 용학스님의 법명을 보고 이렇게 나란히 쓰면 어쩌냐고 용학스님이 난감해 하셨다. “죽여 살려?” 하며 탄식하시는 용학스님께 삼배 마치신 스님이 얼른 봉투를 올리셨다. “뇌물인가?” 하고 용학스님이 물으시자 “정보이용료입니다.” 하고 씨익 웃으셨다. 찰나만큼 늦게, 곁에 계시던 분들도 다 같이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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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은사 지원스님이 불사를 하느라고 그동안 결석을 했었다고 하셨다. 십만칠천 평의 불사였다고 하시자 용학스님이 이왕이면 십만팔천 평이라고 소개하라고 하셨다. 그렇게나 넓은 땅에 불사를 하셨으니 참배를 가야겠다고 하셔서 지원스님이 언제든 환영한다고 하셨다.
범어사 화엄경 연구원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스님도 와서 함께 공부해야 된다고 용학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지원스님이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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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학스님은 오늘 일단 여래출현품을 마치겠다고 하셨다.
“여래는 출현시켜 놓고.”라고 하시면서 “햇살이 따뜻하다.” “햇살은 먼 데서 온다.” “우주는 작다고 하던데, 우리 마음보다 작다고 하던데.” 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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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학스님께서 ‘새벽일기’라고 칭하신 <화엄경 약찬게>라는 작은 해설책이 담앤북스에서 다시 출간되어 나왔다. 오신 스님들께만 대중공양하시고 ‘너무 인기있는 책이라’ 일일이 거둬가시는 보살님을 마침 만나서 한 권을 부탁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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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무거사님이 큰스님의 생신 때 하모니카를 불어주시던 정행스님이 열흘 전에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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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아침 큰스님은 화엄경 유튜브 방송에서 정행품을 읽어주시면서 오대산에서 수두소임 보셨던 이야기를 해주셨었다.
“오대산 상원사에서 겨울철을 제가 지냈는데 어떤 스님하고 수두를, 물 담당하는 소임을 제가 같이 봤어요.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오고 그러면 그만 홈으로 받아먹던 물이 얼어가지고 참 고생했습니다. 그래 두 사람이 하루에 50짐씩 져다 날랐어요. 겨울 한 철을 그렇게 지내고는 모두 해제하자마자 가버리더라고요. 나하고 몇 명, 한 칠팔 명 되는 사람이 남았는데 물은 많이 소비가 안 되지만 그래도 저녁에 져서 날라야 돼요.
그날 해제한 날 저녁에 나와 같이 수두소임을 보던 스님은 가버렸고 나 혼자 남았는데, 달은 휘엉청 밝고 눈은 산에 쌓였고 혼자 지게를 지고 왔다 갔다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힘들어서 그런 것도 아니예요. 물이 얼은 반 철 동안, 거의 한 달 이상을 그런 생활을 했는데, 한 번도 눈물 흘린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해제한 날 저녁에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때는 젊을 때고 도반들이 다 떠나 버렸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왠지 아주 공부가 잘될 것 같아서 공부한다고 그렇게 소임을 그대로 보면서 남아 있었습니다.”
추위로 떨다가 햇빛이 들어와 그 따뜻함에 흔감하던 순간에 이 이야기를 들었다. 고속버스가 불암산 톨게이트를 지날 때라서 생생히 기억났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五十二
如來出現品 第三十七之三
三. 普賢菩薩의 說法
갑진년 양력으로 신년이 시작됐다. 오늘은 어떻든지 여래출현품을 끝내고 다음달부터는 이세간품을 공부해볼까 싶다.
가지고 계신 교재로 301페이지(민족사刊 제3권) 밑에 게송까지 지난 시간에 했는데, 게송 마지막 부분에 여래가 출현하신다는 뜻이 잘 나타나 있다.
‘여무생성(如無生性)으로 불출흥(佛出興)하시며, 마치 무생의 성품으로써, 나는 성품이 없듯이 부처님이 출현하신다. 여무멸성(如無滅性)으로, 불생불멸로 여래가 출현하신다’ 는 말씀이다.
조금 전에 우리가 의상스님의 법성게를 외웠는데, 법성게에서는 이렇게 힌트를 준다.
‘법성(法性)은 원융(圓融)해서 무이상(無二相)이다’
포괄적으로 그 한 구절에 다 제시를 해놓고 그다음 구절이 무엇인가?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이것이 바로 여래출현품이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 가서 매조질을 한다.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구래라고 하는 것은 본래부동명위불이다. 불(佛)이라고 하는 것은 적멸(寂滅)이다.
제법의 부동을 다 깨쳐서, 적멸의 도리를 알아서,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그것이 바로 여래의 출현이다.
지난 시간에 한 것이 무엇인가?
무생(無生)의 성품으로 부처님이 출흥하시고, 무멸(無滅)의 성품으로 열반에 드셨다.
전등록에 보면 이렇게 나온다.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하면 내 제자가 아니다. 여래가 열반에 들지 않았다고 하면 더욱더 내 제자가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본래 없다’ 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본래 없다.
원효스님께서는 발심수행장에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부제불제불(夫諸佛諸佛)이 장엄적멸궁(裝嚴寂滅宮)은 어다겁해(於多劫海)에 사욕고행(捨欲苦行)이다, 모든 부처님이 적멸궁을 장엄하는 것은, 불생불멸을 알기 때문에 고행 속에 빠져들지 않았다.’
의상스님께서는 그 대목을 ‘시고행자환본제(是故行者還本際) 파식망상필부득(叵息妄想必不得)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이렇게 쭉 가다가 ‘이다라니무진보(以陀羅尼無盡寶)로써 장엄법계실보전(莊嚴法界實寶殿)’이라고 하셨다.
의상스님하고 원효스님이 똑같이 말씀하신다.
‘장엄법계실보전’인데 ‘무연선교다’ 이것이 힌트다.
무연선교가 무엇인가? 불생불멸이 바로 무연이다. 인연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여의라는 것이 우리의 일심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심, 대자유, 본래 없는 것, 그래 육조스님은 딱 잘라서 파식망상필부득, 망상을 쉴 수 없다고 하였다.
망상을 절대 쉴 수 없다, 필부득이다. 망상을 반드시 쉴 수 없을 것이다. 본래 없는 것이 어떻게 쉴 수 있겠는가?
달이 비쳐서 강물에 달이 확실히 있는데, 강물에 달은 확실히 없다. 확실히 있는데 떠보면 확실히 없는 것이다. 메아리는 확실히 있지만, 메아리에는 소리가 확실히 없다. 그것을 여래출현품에서는 여래신업이다, 구업이다, 의업이다 해서 쭉 앞에서 우리가 공부해 왔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출연하신다’ 이렇게 해놓고, ‘무생으로, 무멸로, 남 없이 나고 열반 없이 열반하신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마지막 매조지를 그렇게 했다.
말이나 모든 비유들로 할 수는 없다. 허튼소리를 하려면 차라리 혓바닥이 없는 것이 낫다. 능엄경 1권에 보면 이 대목을 자세하게 설명해 놨는데 진도상 애로사항 있기 때문에 설명은 안 하겠다.
능엄경 1권에 보면 ‘참선하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될 것인가’ 하는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써 놓았다.
힌트를 좀 드리자면 여래출현은 뭐다? 부동이다.
제법부동본래적, 본래부동명위불, 본래부동이나 구래부동이나 똑같은 말이다.
일체의성(一切義成)이, 일체 온갖 이치를 이루어서 짝할 것이 없다. 지난 시간 거기까지 공부했다.
여래출현은 불생불멸이다.
‘여래출현은 불생불멸이다’ 다른 이야기도 많지만 오늘 바로 진도 들어가겠다.
10. 如來出現의 善根
(1) 見聞親近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云何知於如來應正等覺에 見聞親近하야 所種善根고 佛子야菩薩摩訶薩이應知於如來所에 見聞親近하야 所種善根이 皆悉不虛니 出生無盡覺慧故며 離於一切障難故며決定至於究竟故며無有虛誑故며一切願滿故며不盡有爲行故며隨順無爲智故며 生諸佛智故며盡未來際故며成一切種勝行故며到無功用智地故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여래 응공 정등각을 보고 듣고 친근하여 심은 착한 뿌리를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여래가 계신 데서 보고 듣고 친근하여 심은 착한 뿌리가 모두 헛되지 않은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다함이 없는 깨달음의 지혜를 내는 연고며, 일체 장애를 여의는 연고며, 결정코 구경에 이르는 연고이니라.
헛됨이 없는 연고며, 모든 소원이 만족하는 연고며, 함이 있는 행을 다하지 않는 연고며, 함이 없는 지혜를 따르는 연고며, 여러 부처님의 지혜를 내는 연고며, 오는 세월의 경계까지 다하는 연고며, 온갖 종류의 훌륭한 행을 이루는 연고며, 하염없는 지혜의 지위[無功用智地]에 이르는 연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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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출현(如來出現)의 선근(善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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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문친근(見聞親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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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출현을 친근하여 믿음으로 이익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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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은
응운하지어여래응정등각(應云何知於如來應正等覺)에 : 여래 응공 정등각을 어떻게 알아야 하겠는가? 부처님을
견문친근(見聞親近)하야 : 어떻게 보고 듣고 친견해서
소종선근(所種善根)고 : 심은 착한 뿌리 선근, 심은 그 선근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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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응지어여래소(應知於如來所)에 : 마땅히 알아야 된다. 무엇을? 어여래소에 부처님 계신 데서
견문친근(見聞親近)하야 : 보고 듣고 친근하야, 왕복서에는 ‘견문이 위종이다’라고 해놓았다. 보고 듣는 것이 종자가 된다. 바로 이 이야기를 청량국사가 왕복서에서 견문위종(見聞爲種)이라고 해놓은 것이다.
강백스님들 중에 견문위종을 꼭 집어서 저에게 말씀해 주신 스님은 월운스님이시다.
월운스님이 범어사 우리 어른스님 방에 한 번 내려오신 적이 있었다. 그날따라 견문이 위종이다, 이것을 가지고 법문을 짧게 해주셨다. 그것이 기억난다.
‘불자야 보살마하살은 응당히 부처님 계신 데서 보고 듣고 친근하여’ 온몸으로 이렇게 느껴 보는 것이다.
소종선근(所種善根)이: 소종선근, 눈으로 심는 선근도 있을 것이고, 혀로 심는 선근도 있을 것이고, 잘 들어서 심는 선근도 있을 것이다.
안이비설신의가 온통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 선근뭉치다. 똑같은 것인데, 악을 짓는 사람은 눈으로 막 쏴보고, 귀로 들어도 꼭 남 허물만 듣고, 입을 가지고도 욕을 하고, 생각을 해도 못된 생각만 한다.
심은 바 선근이
개실불허(皆悉不虛)니 : 개실불허라. 심은 바 선근이 모두 다 헛되지 않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라서 반야심경에서는 진실불허(眞實不虛)라고 해버린다.
반야심경 마지막에 ‘능제일체고(能除一切苦) 진실불허(眞實不虛)’ 라고 했잖은가. 모두 헛되지 않은 줄을 알아야 된다. 부처님한테 심은 선근은 심은 바 없이 심었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는다.
출생무진각혜고(出生無盡覺慧故)며 : 그렇게 다하지 않는 각혜를 내는 까닭이며
이어일체장난고(離於一切障難故)며 : 일체 모든 장애와 곤란한 것, 어려움을 여의는 까닭이며
결정지어구경고(決定至於究竟故)며 : 결정코 반드시 구경에, 완벽한 데에 도달한다.
무유허광고(無有虛誑故)며 : 헛되고 속임이 없는 까닭이요
일체원만고(一切願滿故)며: 일체의 원력이 원만해지는 까닭이다. 완전무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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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진유위행고(不盡有爲行故)며 : 여섯 번째가 부진유위행이라. 유위행에 다하지 않는다. 유위행, 유위법의 욕심대로 끝까지 살지 않는다. 함이 있는 정도로는 미칠 수 없다, 다할 수 없다.
수순무위지고(隨順無爲智故)며 : 무위의 함이 없는 지혜를 따르는 까닭이다.
이것을 금강경에서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主而生其心)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금 여기서 나오는 선근이 바로 우리의 근본 지혜와 잇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 선근이
생제불지고(生諸佛智故)며 : 여러 부처님의 지혜를 내는 까닭이며, 약찬게나 법성게에 제일 유명한 구절이 무엇인가? 초발심시변정각이라. 초발심시에 선근공덕을 심어야 보리심이 나오게 되고, 그 보리심으로 인해 정각심으로 간다, 이렇게 말한다. 그런 것은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너무나 자세하게 나와 있다.
진미래제고(盡未來際故)며 : 오는 세월의 경계까지 다하는 연고며 ‘미래제가 다한다’ 이 말은 무명은 중간에 끝날 날이 있지만, 본지풍광 본래 면목은 끝날 날이 없다는 뜻이다. ‘진여는 끝날 날이 없다’고 기신론 같은 데 딱 써 놨잖은가.
성일체종승행고(成一切種勝行故)며 :이 모든 종류의 일체 종의 수승한 행을 이루는 연고이고
도무공용지지고(到無功用智地故)니라 : 무공용지에 이르는 연고다. 잎사귀 피고 꽃이 피는데 불 때서 피우는 것도 아니고 종이꽃 접듯이 만드는 것도 아니고, 저절로 잎이 피고 꽃이 피듯이, 속눈썹이 저절로 달리고, 눈썹이 저절로 달려야지 속눈썹이 머리카락만큼 길어버리면 골치 아프잖은가. 어금니가 어금니 자리에 있어야지 어금니가 앞니 자리에 있으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송곳니는 송곳니만큼, 어금니는 어금니만큼 자기 크기만 해야 된다. 참새가 황새 날개가 탐난다고 지한테 달아놓으면 날아 내나? 못 날지.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흰 것은 희게 되고 검은 것은 검게 되고, 크고 작은 것이 경중과 미끄럽고 껄끄러운 것 이런 것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소나무 이파리는 빼쪽해야 제맛이고 동백 이파리는 두꺼워야 겨울을 날 수가 있는 것이다. 은행 이파리는 부채꼴로 되듯이 애써 힘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기 형이 되도록, 정맥은 정맥대로 흐르고 동맥은 동맥대로 흐르고, 눈 같은 것의 조리개도 그렇고 신경이 다 그렇게 되어있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자연 수행해서 자연히 결과가 미친다. 감꽃이 피는데 사과가 열릴 리가 없지 않은가. 모래밭에 있는 것은 좀 사각거릴 것이고, 황토밭에 있던 것은 찐득거릴 것이고, 보나 안 보나 뻔하잖은가? 과일맛을 딱 보면 ‘아 요거는 모래밭에서 난 거구나, 요거는 황토밭에서 난 거구나, 요거는 아주 냄새가 꾸리꾸리한데 보니까 어디 진창에서 난 거구나’ 이렇게 맛을 보면 다 알 수가 있다.
무공용지라고 하는 것은 8지보살 이상, 색자재지에 올라가야 된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2) 親近利益의 三種譬喩
佛子야 譬如丈夫가 食少金剛에 終竟不消하고 要穿其身하야 出在於外하나니 何以故오 金剛은 不與肉身雜穢로 而同止故인달하야 於如來所에種少善根도亦復如是하야 要穿一切有爲諸行煩惱身過하야 到於無爲究竟智處하나니 何以故오此少善根이 不與有爲諸行煩惱로而共住故니라 佛子야 假使乾草를 積同須彌라도 投火於中을 如芥子許하면 必皆燒盡하리니 何以故오 火能燒故인달하야 於如來所에種少善根도亦復如是하야 必能燒盡一切煩惱하고 究竟得於無餘涅槃하나니 何以故오此少善根이性究竟故니라 佛子야 譬如雪山에 有藥王樹하니 名曰善見이라 若有見者면 眼得淸淨하고 若有聞者면 耳得淸淨하고 若有齅者면 鼻得淸淨하고 若有嘗者면 舌得淸淨하고 若有觸者면 身得淸淨하고 若有衆生이 取彼地土라도 亦能爲作除病利益인달하야 佛子야 如來應正等覺無上藥王도 亦復如是하야 能作一切饒益衆生하나니 若有得見如來色身이면 眼得淸淨하며 若有得聞如來名號면 耳得淸淨하며 若有得齅如來戒香이면 鼻得淸淨하며 若有得嘗如來法味면 舌得淸淨하야 具廣長舌하고 解語言法하며 若有得觸如來光者면 身得淸淨하야 究竟獲得無上法身하며 若於如來에 生憶念者면 則得念佛三昧淸淨하며 若有衆生이 供養如來의 所經土地와 及塔廟者라도 亦具善根하야 滅除一切諸煩惱患하고 得賢聖樂이니라
“불자여, 비유하면 장부가 금강을 조금만 삼켜도 마침내 소화되지 아니하고 몸을 뚫고서 밖에 나오느니라. 왜냐하면 금강은 육신의 더러움에 섞여서 함께 있지 않는 연고이니라. 여래에게 조그만 착한 뿌리를 심은 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일체 함이 있는[有爲] 모든 행과 번뇌의 몸을 뚫고 지나가서 함이 없는 가장 높은 지혜에 이르느니라. 왜냐하면 이 작은 착한 뿌리는 함이 있는 행과 번뇌와 더불어 함께 머물지 않는 연고이니라.
불자여, 가령 마른풀을 수미산처럼 쌓았더라도 그 가운데 겨자씨만한 불을 던지면 모두 다 타버리고 마느니라. 왜냐하면 불은 능히 태워버리기 때문이니라. 여래에게 조그만 착한 뿌리를 심은 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반드시 모든 번뇌를 태워버리고 구경에 남음이 없는 열반을 얻느니라. 왜냐하면 이 작은 착한 뿌리의 성품이 끝까지 가는 연고이니라.
불자여, 비유하면 설산(雪山)에 약나무가 있으니 이름이 선견(善見)이라. 만약 보는 이가 있으면 눈이 깨끗해지고, 듣는 이가 있으면 귀가 깨끗해지고, 냄새를 맡는 이가 있으면 코가 깨끗해지고, 맛을 보는 이가 있으면 혀가 깨끗해지고, 몸에 닿는 이가 있으면 몸이 깨끗해지며, 만약 어떤 중생이 그 흙을 가져오면 또한 병을 없애는 이익을 짓게 되느니라. 불자여, 여래 응공 정등각의 위없는 약왕(藥王)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이익하게 하느니라.
만약 여래의 육신을 보는 이가 있으면 눈이 깨끗해지느니라. 만약 여래의 이름을 듣는 이가 있으면 귀가 깨끗해지느니라. 만약 여래의 계행(戒行)의 향기를 맡는 이가 있으면 코가 깨끗해지느니라. 만약 여래의 법의 맛을 맛본 이가 있으면 혀가 깨끗하여져서 넓고 긴 혀를 갖추어 말하는 법을 잘 아느니라. 만약 여래의 광명에 닿은 이가 있으면 몸이 깨끗해지고 구경에 위없는 법신(法身)을 얻느니라. 만약 여래를 생각하는 이가 있으면 염불삼매(念佛三昧)가 청정하여짐을 얻느니라. 만약 중생이 여래가 지나가신 땅이나 탑에 공양하는 이가 있으면 역시 착한 뿌리를 갖추어서 일체 모든 번뇌와 근심을 소멸하고 성현의 즐거움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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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이익(親近利益)의 삼종비유(三種譬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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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비여장부(譬如丈夫)가 : 비유하건대 어떤 대장부가
식소금강(食少金剛)에 : 금강을, 금덩어리 다이아몬드를 조금만 삼켜도 조금만 선근공덕을 가지고 야무지게 해놓아도, 이것은 유통기한이 없잖은가. 금은 유통기한이 없다. 우유 같은 것은 유통기한이 있어서 변질이 될지 모르지만 금덩어리는 여기 가나 저기 가나 신라 땅에 묻어 놓든지 어떻든지 유통기한이 없다. 그 유통기한이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불생불멸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것도 경전에 나온다. 화엄경에 불생불멸을 심은 사람은 불생불멸을 얻을 것이고 생멸을 심은 사람은 생멸의 과보를 얻을 것이다, 이렇게 나오잖는가.
종경불소(終竟不消)하고 : 마침내 그 비바람에 깎이지 않는다. 온갖 풍상을 겪어도 거기에 깎이는 것은 생멸법이다. 허공에 바람이 분들, 비가 온들, 날씨가 추운들, 날씨 더운들 허공이 깎이고 녹는 법은 없잖은가? 금강을 조금만 삼켜도 소화되지 않고 마침내 영원히 낭중지추, 주머니의 송곳처럼 뾰족이 나온다는 것이다.
요천기신(要穿其身)하야 : 그 몸을 뚫고서
출재어외(出在於外)하나니 : 밖으로 뾰족이 나온다.
우리가 금강 진심을 심어 놓은 자리는 진실불허라.
반야심경의 진실은 불허라.
하이고(何以故)오 : 어떠한 까닭이냐
금강(金剛)은 : 금강은
불여육신잡예(不與肉身雜穢)로 : 오욕락에 찌들어 있는 무명 번뇌하고 오온 하고는 같이 달라붙어 있지 않다. 불여육신잡예라. 섞여서 살긴 하지만
이동지고(而同止故)인달하야 : 같이 이동지고인달하야, 그러니까 오죽하면 어리석은 사람, 공부 안 하는 수행자를 ‘어리석은 고기덩어리’라 하지 않는가.
어리석은 고기덩어리, 설마 우리는 아니겠지.
금강은 육신의 더러움에 섞여서 함께 있지 않는 연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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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래소(於如來所)에 : 부처님 처소에
종소선근(種少善根)도 : 조그만 착한 뿌리를 심은 것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또한 이와 같아서
요천일체유위제행번뇌신과(要穿一切有爲諸行煩惱身過)하야 : 유위법의 모든 행과 번뇌의 몸을 통과해서 번뇌신을 뚫고 지나가서
도어무위구경지처(到於無爲究竟智處)하나니 : 무위의 구경지, 구경이라고 하는 것은 ‘완벽하다’라는 뜻이다.
반열반 할 때, 구경열반이라 한다. 완벽하다. 완전 증입했다, 퍼펙트한 것, 이것을 구경이라고 한다.
무위의 가장 높은 지혜에 이르나니, 무위의 가장 높은 지혜는 망상을 없애지도 않고 진실을 구하지도 않는다. 화엄경의 종지가 늘 그것이다.
진심과 망심, 진망(真妄)이 교철(交徹)이라. 모세 혈관 끝에 있는 혈액이나 심장에 있는 혈액이나, 근원에 있는 자리나 지류에 있는 자리나 똑같다는 것이다.
선악시비 희로애락은 지류에 해당하고 그 근원의 자리에서는 불생불멸이다.
보현보살이 항주일상이라 늘 한 모습으로 머무는데 그 모습은 소위 무상이라. 무상으로 머문다.
그래서 육조 스님이 금강경을 해석하시면서 그래 놓으셨다. ‘부금강경자(夫金剛經者)는 무상(無相)으로 위종(爲宗)하고 무주(無住)로 위체(爲體)하고 묘유(妙有)으로 위용(爲用)이니라’ 무주로 본체를 삼지만 종지라고 하는 것, 근본적으로는 무상이다.
여기 여래출현은 뭐냐? 무상이다. 또 여래출현은 무성이다. 안쪽으로는 무성이요 바깥으로 무상이다, 이렇게 보면 될 것 같다.
하이고(何以故)오 : 왜냐하면
차소선근(此少善根)이 : 비록 작다고 하지만, 이 작은 선근이 완벽하기 때문에
불여유위제행번뇌(不與有爲諸行煩惱)로 : 유위법의 여러 가지 제행번뇌라고 하는 것은 5온을, 예를 들어서 행온마이다. 그런 번뇌로
이공주고(而共住故)니라 : 함께하지 않는 연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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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가사건초(假使乾草)를 : 가령 바싹 마른 풀을
적동수미(積同須彌)라도 : 수미산까지 산더미같이 쌓아놨다 하더라도
투화어중(投火於中)을: 그 가운데 불씨를 탁 던지면
여개자허(如芥子許)하면 : 조그만 성냥개비 만한 불만 탁 던져도 그냥 화약고처럼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이라’ 천수경은 그렇게 한다.
필개소진(必皆燒盡)하리니 : 반드시 모두 다 홀딱 다 타버릴 것이다
하이고(何以故)오 : 왜냐하면
화능소고(火能燒故)인달하야 : 불이 능히 태우는 연고와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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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래소(於如來所)에 : 부처님 처소에, 제가 어른 스님께 “스님 혹시 좋아하시는 구절이 이런 거 말고 더 있습니까?” 제가 도표를 만들면서 물으니까 스님께서 방금 했던 그 구절 ‘조그만 겨자만한 작은 불씨’ 그 구절을 추천해주셨다. 어떻게든지 노력해서 작은 선근 공덕이라도 야무지게 부처를 향하는 길을, 초발심을 심어라.
그러면 이제까지 쌓아 왔던 우리의 백겁적집죄가 한 방에 해결될 수도 있다고 하시는지, 그 구절을 저한테 추천하신 기억이 난다.
종소선근(種少善根)도 : 부처님 처소에 조그맣게 선근을 심은 것도, 저 낙랑장송도 조그만 솔씨 하나지 뭐겠는가.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그와 같아서
필능소진일체번뇌(必能燒盡一切煩惱)하고: 반드시 능히 소진시킬 수 있다. 필능 반드시 할 수 있다 소진시킬 수 있다. 일체 번뇌를.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왔든지 상관없이, 부처를 향하는 길이 야물딱지다면, 자기 본심을 향하는 길에 확신이 섰다면, 확신을 가졌다고 하면, 그 번뇌를 다 태워버리고
구경득어무여열반(究竟得於無餘涅槃)하나니 : 구경에 마침내 끝내는 득어무여열반 하나니, 필경에 남음이 없는 열반을 얻는다.
금강경에도 ‘약난생(若卵生)과 약태생(若胎生)과 약습생(若濕生)해서 구류중생을 아개영입무여열반(我皆令入無餘涅槃)케 하리라. 내가 모두 다 무여열반에 들게 하겠노라’ 이런 구절이 있지 않은가.
하이고(何以故)오 : 하이고오 어떠하냐
차소선근(此少善根)이 : 이 작은 선근이
성구경고(性究竟故)니라 : 그 성품 자체가 퍼펙트하다. 완벽하다.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을 했기 때문에 구경열반이다.
발심필경(發心畢竟)은 이불별(二不別)이라. 발심, 초발심과 필경심, 구경심, 구경열반심이 이불별이라. 두 개는 절대 다른 것이 아니다. 아주 야무진 씨앗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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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비여설산(譬如雪山)에 : 비유하자면 저 설산에, 설산이라면 무조건 약초를 이야기한다. 비니향초, 약초, 설산에 있는 풀은 막 뜯어 먹어도 똥 냄새가 안 난다. 향기가 난다.
능엄경의 능엄단을 짤 때도 설산에 백우가 싼 소똥을 모아서 시멘트처럼 발라서 능엄단을 만들잖는가.
비유컨대 설산에
유약왕수(有藥王樹)하니 : 약나무가 있어서
명왈선견(名曰善見)이라 : 이름을 선견이라 하나니. 그 나무를 선견이라고 한다.
입법계품에 선견비구가 나온다. 입법계품에 보면 선견비구, 또 해당비구가 나오는데 그 두 분은 가슴에 만(卍)자가 있다. 다른 비구 스님들은 가슴에 만(卍)자 잘 없다.
선견비구도 가슴에 만자가 있고, 해당비구도 가슴에 만자가 있다.
80 화엄경에 만자가 나오고 60 화엄경이나 40 화엄경에는 똑같은 대목에 가서도 절 만(卍)자를 안 쓴다. 안 나온다. 덕(德)자를 써버리기도 한다.
선견이라고 하는 것은 자비로운 눈이 있고 또 지혜로운 눈이 있다는 것이다. 자비롭고 지혜롭고, 법을 판단할 만한 눈이 있어야 된다. 그래서 선견비구가 사는 데는 삼안국(三眼國)이라고 하지 않는가.
삼안(三眼) 눈이 세 개면 두 개보다는 밝지 않은가. 눈이 한 개 있는 사람보다는 두 개 있는 사람이 좀 더 밝게 보고, 두 개보다는 세 개가 더 밝고, 관세음보살은 얼마나 눈이 지혜롭고 자비롭게 살피는지 천수천안이라 하잖는가. 천안(千眼) 천 개다.
여기서 선견이라고 했을 때 이미 모든 번뇌병을 다 환하게 자비롭게 지혜롭게 법의 이치를 알아서 꿰뚫어서 치료한다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약왕수가 사는 데도 사는 곳이 다르다.
공부하는 사람은 도량이나 스승이나 도반같이 그 옆에 갖춰진 품새가 다르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봐도 그렇다.
우리는 말할 것도 없이 사자 같은, 문수보살님 같은, 어른스님을 모시고 여기서 같이 공부하니까, 여러분들이 친견하시려면 얼마든지 가서 친견하실 수 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좋은가?
저는 요즘 가만히 생각해보면 수지하고 독송하고 오종 법사가 있잖은가. 화엄경 보현행원품에도 그대로 나오고 법화경에도 나오지만, 수지하고 읽고 외우고 쓰고 서사하고 해설하는데 그걸 매일 하라고 하시는데 어른스님은 보니까 수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매일 읽으시고 매일 외우시고 매일 쓰시고 매일 유튜브로 법문을 하신다.
그래서 이제는 한 개를 더 붙여야 된다.
수지 독송 서사 해설 그리고 방송이라고 유튜브를 한 개 더 붙여야 된다.
제가 안이비설신의 이것이 사람이다 그랬는데 요즘은 더 붙여서 폰(phone)도 넣어야 된다. 사람이 범죄를 지으면 휴대폰부터 압수하잖는가. 그다음에 차, 카(car)가 어디로 다니는지 CCTV로 본다. 컴퓨터도 바로 압수하고 은행이자가 어디 붙는지 조사한다.
그래서 요즘은 ‘안이비설신의 폰, 카, 컴, 뱅’ 이렇게 열 개 같다. 사람하고 똑같다. 이제는 휴대폰이 눈처럼 사람하고 같이 달라 붙었다.
그러니까 수지 독송 서사 해설 방송 유튜브다.
어른스님은 하루도 안 쉬시고 화엄경 유튜브 방송을 하신다. 어른스님께서 <81권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을 회향하시고 제가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할 때 ‘어른 스님이 어떤 분입니까?’ 묻길래 ‘태양이 휴가 가는 거 봤습니까? 휴가 안 가십니다. 저희들은 은해사 때 잘못 잡혀 가지고 1월 1일 날도 공부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문수선원의 우리들은 지난주 1월 1일에 공부를 안 했는데 아마 어른 스님이 강의하셨으면 1월 1일날 여기 오셔서 공부하셨을 것이다.
약유견자(若有見者)면 : 보는 이가
안득청정(眼得淸淨)하고 : 눈이 청정하고
약유문자(若有聞者)면 : 듣는 이는
이득청정(耳得淸淨)하고 : 귀가 청정하고. 듣는 사람이 귀에 피가 난다든지 눈이 막 눈꼴사나워졌다든지 하면 골치 아프다. 부처님은 보기만 해도 청정해지니까, 선견이니까, 선견을 자세히 보면 안쪽에서 무아상(無我相)이 전제 조건이다.
그다음에 여기 말초 신경에 끄달리면 냄새가 나서 온 데 음식점에 가면 음식을 타박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잖은가.
안 먹으면 되지 그걸 왜 음식을 타박까지 하는가.
약유후자(若有齅者)면 : 냄새 맡는 이가 있으면
비득청정(鼻得淸淨)하고 : 비득청정하고
약유상자(若有嘗者)면 : 맛보는 게 있으면
설득청정(舌得淸淨)하고 : 설득청정하고
약유촉자(若有觸者)면 : 몸에 닿는 것도
신득청정(身得淸淨)하고 : 몸이 청정하고, 낮이 되어 환해졌다고 견성이 더 밝아지는 것도 아니고, 캄캄해졌다고 견성이 더 어두워지는 것도 아니다.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내 듣는 성품이 더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큰 종소리를 듣는다고 내 듣는 성품이 더 늘어나고 꽹과리 소리 듣는다고 성품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문성도 본래 없는 것이다. 그걸 청정이라고 한다.
맛보는 것도 내가 컨디션이 안 좋으면 쓰고, 컨디션이 좋으면 단데, 단 거 먹었다 해서 내 미성이, 맛보는 성품이 더 좋아진다든지, 쓴 걸 먹었다고 맛보는 성품이 쪼그라든다, 이런 것은 아니잖는가.
청정이라고 하는 것, 본래 없다고 하는 것이 이런 기준인데 이것이 우리는 안 되고 집착 때문에 늘 말초신경에 따라가 버린다.
여기서 몸도 이렇게 촉감이 따뜻하다 해서 느끼는 성질이 좀 늘어나고, 춥다 해서 쪼그라들고 그런 것도 아니다. 전부 다 그런 뜻으로 되어있다.
우리가 생각을 하는데 예를 들어서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선한 생각을 일으켰다 해서 마음이 풍부해지고, 악한 생각을 해야겠다 해서 마음이 쪼그라들고 이런 것도 아니다. 불생불멸이다. 마음하고 선악시비 희로애락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것이 청정 쪽으로 이렇게 되어있다.
약유중생(若有衆生)이 : 만약 어떤 중생이
취피지토(取彼地土)라도 : 그 흙을 가져오면
역능위작제병이익(亦能爲作除病利益)인달하야 : 병을 없애는 이익을 짓게 되느니라.
약나무를 먹어도 좋지만 약나무가 자라는 그 흙만 파먹어도 영험이 있나보다. 그러니까 귀에 한 번 스쳐만 놔도 괜찮다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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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응정등각무상약왕(如來應正等覺無上藥王)도 : 여래 응 정 등각 무상약왕도, 위없는 약왕도 모든 병을 치료해 주시는 부처님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그와 같아서
능작일체요익중생(能作一切饒益衆生)하나니 : 모든 중생을 넉넉하게 이익되게 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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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유득견여래색신(若有得見如來色身)이면 : 만약에 여래의 색신을 본다, 32상 80종호를 보게되면
안득청정(眼得淸淨)하며 : 눈이 맑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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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유득문여래명호(若有得聞如來名號)면 : 여래의, 부처님의 이름을 듣게 되면
이득청정(耳得淸淨)하며 :이득청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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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유득후여래계향(若有得齅如來戒香)이면 :여래계향의 냄새를 맡는 이는
비득청정(鼻得淸淨)하며 : 코가 청정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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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유득상여래법미(若有得嘗如來法味)면 : 여래의 법의 맛을 본 사람은
설득청정(舌得淸淨)하야 : 혀가 청정하고, 우리가 청정한 곳에 영가를 잘 인도하기 위해서 ‘나무다보여래(南無多寶如來) 나무다보승여래(南無多寶勝如來) 나무묘색신여래(南無妙色身如來), 나무광박신여래(南無廣博身如來)’ 하잖는가? 이런 것하고 똑같은 것이다. 혀가 청정해서
구광장설(具廣長舌)하고 : 넓고 긴 혀를 갖추고
해어언법(解語言法)하며 : 말하는 법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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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유득촉여래광자(若有得觸如來光者)면 : 만약에 여래광명을 닿는 이는, 요 대목은 화엄경을 하니까 찝어 놓겠다. 광명각품을 보면 군데군데 나온다.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나에게 닿아서 다시 내가 부처화 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신득청정(身得淸淨)하야: 신득청정하야
구경획득무상법신(究竟獲得無上法身)하며 : 구경에 필경 에 무상 법신, 최고의 법신을 획득한다. 내 색신이 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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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어여래(若於如來)에 : 만약에 여래를
생억념자(生憶念者)면 : 생각하는 자는
즉득염불삼매청정(則得念佛三昧淸淨)하며 : 즉득염불삼매가 청정하여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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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유중생(若有衆生)이 :만일에 중생이
공양여래(供養如來)의 : 공양하는 것
소경토지(所經土地)와: 부처님께서 지나가신 땅이나
급탑묘자(及塔廟者)라도 :탑에 공양을 올리면, 부처님이 한참 지나가신 뒤에 그 땅에도 공양한다면
역구선근(亦具善根)하야 : 또한 이와 같은 선근을 갖추어서
멸제일체제번뇌환(滅除一切諸煩惱患)하고: 일체 제번뇌의 근심 걱정을 멸해지고
득현성락(得賢聖樂)이니라 : 성현의 낙을, 제대로 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不信의 善根
佛子야 我今告汝호리니 設有衆生이 見聞於佛하고 業障纏覆하야 不生信樂이라도 亦種善根하야 無空過者며 乃至究竟入於涅槃이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於如來所에 見聞親近하야 所種善根이 悉離一切諸不善法하고 具足善法이니라
“불자여,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하노니, 설사 어떤 중생이 부처님을 보거나 들으면서도 업장에 얽히고 덮여서 믿고 좋아함을 내지 못하더라도, 또한 착한 뿌리를 심게 되어 헛되지 않을 것이며, 내지 구경에는 열반에 들게 되느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여래가 계신 데서 보고 듣고 친근하면 그 착한 뿌리로 일체 모든 나쁜 법을 떠나고 착한 법을 구족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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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不信)의 선근(善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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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아금고여(我今告汝)호리니 : 내가 너에게
설유중생(設有衆生)이 : 말하리니 설사 어떤 중생이 있어서
견문어불(見聞於佛)하고 : 부처님을 보거나 들으면서도
업장전부(業障纏覆)하야 : 업에 꽉 묶여서 누에고치처럼얽히고 덮여서
불생신락(不生信樂)이라도 : 설사 믿고 좋아함을 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부처님이고 나발이고 귀찮아 죽겠다’ 하더라도 그 와중에서
역종선근(亦種善根)하야 : 또한 조그만 선근을 심게 되어서
무공과자(無空過者)며 : 헛되지 않을 것이며
내지구경입어열반(乃至究竟入於涅槃)이니라 :내지는 구경에는 반드시 열반에 들어가게 된다.
이 대목은 화엄경 근본법회에도 나온다. 입법계품 근본법회에 보면 ‘내가 설사 지옥에 있더라도, 힘들게 삼악도에 살더라도, 띵가띵가 잘 먹고 잘 살면서 부처님의 이름을 안 듣는 것보다도, 지옥 같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부처님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겠다’라고 하는 게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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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응여시지어여래소(應如是知於如來所)에 : 응당히 이와 같이 부처님 여래께서 계신 데
견문친근(見聞親近)하야 : 견문 친근하여 보고 듣고 하면
소종선근(所種善根)이 : 이른바 소종선근이
실이일체제불선법(悉離一切諸不善法)하고: 일체 모든 악법, 선하지 않은 법을 다 여의고
구족선법(具足善法)이니라 : 선법을 구족할 것이다.
(4) 結
佛子야 如來가 以一切譬喩로 說種種事호대 無有譬喩로 能說此法이니 何以故오 心智路絶하야 不思議故니 諸佛菩薩이 但隨衆生心하야 令其歡喜하사 爲說譬喩나 非是究竟이니라
“불자여, 여래가 모든 비유로 여러 가지 일을 말하더라도 이 법을 말할 비유는 없느니라. 왜냐하면 마음과 지혜의 길이 끊어져서 생각할 수가 없는 연고이니라. 모든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다만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기쁘게 하려고 비유를 말할지언정 완전한 것[究竟]은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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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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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如來)가 : 여래께서
이일체비유(以一切譬喩)로 : 일체 모든 비유로써
설종종사(說種種事)호대 :가지가지 일을 말씀하시더라도
무유비유(無有譬喩)로 : 비유로써는
능설차법(能說此法)이니: 이 법을 말할 수가 없다.
오죽했으면 열반경 같은 데에는, 이 세상에 불법을 비유로 참 많이도 해놨지만 자타카나 본생담 같은 데도 많이 있지만, ‘그 어떤 비유라 하더라도 부처님의 선근공덕 내지는 우리 불심, 일심에 대해서 비유할 수 없고 오직 하나는 허용한다. 허공은 얼추 비슷하다’라고 해놓았다.
허공은 부처님의 마음, 불심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해놓았다.
하이고(何以故)오 : 어찌한 까닭이냐
심지로절(心智路絶)하야 : 마음 지혜의 길은 다 끊어졌고
부사의고(不思議故)니: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는 연고다.
달마스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언어도단(言語道斷)이요 심행처멸(心行處滅)이라. 심여장벽(心如墻壁)하야 가이입도(可以入道)라, 언어도가 끊어지고 마음 생각 길도 끊어져서 부사의한 길이다’ 이 말이다.
제불보살(諸佛菩薩)이 :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단수중생심(但隨衆生心)하야 :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영기환희(令其歡喜)하사 : 그들을 기쁘게 하려고
위설비유(爲說譬喩)나 : 그 수준에 맞춰서 비유를 하기는 하지만
비시구경(非是究竟)이니라 : 그것은 최고법이 아니다.
고수가 안되면 그 수가 안 보인다. 바둑을 두다가도 고수가 아니면 그 수가 안 보인다. 하수가 고수 것을 못 보니까 할 수 없이 유치원생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한 것인데 그걸 가지고 구경법인냥 알아듣지는 말아라, 이런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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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劫積集罪 一念頓蕩盡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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