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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히브리서 13:7~17
찬송가 239장(저 뵈는 본향집, 246장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486장(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히브리서의 마무리 부분입니다. 그 중 일부였던 히브리서 13장 1절에서 6절까지는 지난 주 수요일에 살펴본 대로, 하나님 백성들은 마땅히 형제를 사랑하고 핍박으로 인하여 고난당하는 자를 기억하고 결혼을 신성하게 여기고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자족하며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하여야 한다고 사도는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히브리서 기록자인 사도 바울은 몇 가지 더 신앙 생활의 지침들을 덧붙여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사도는 과거에 그들을 인도하였던 영적 지도자들을 기억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여기서 사도는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에게 일찍이 복음의 말씀을 일러주었고 그들의 신앙 생활을 이끌어 지도해주었던 자들을 생각하라고 일러줍니다. ‘일러주고’라는 헬라어 단어 자체가 과거형이기 때문에, 이 믿음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일찍이 가르쳐주었던 다른 영적 지도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을 지도해주었고 현재는 그들과 함께 있지 아니한 영적 지도자들이니, 그들은 이미 그들 곁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사역하거나 혹은 이 편지를 쓸 당시 이미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바로 그렇게 일찍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해주었던 영적 지도자들을 잊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들의 본을 보인 신앙의 행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신앙 생활의 성숙과 성도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지켜가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신앙 지침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 단락의 마무리 부분인 17절에서도 다시 한번 이 말씀을 언급합니다.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여기에서는 현재 그들을 인도하는 영적 지도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권면입니다. 7절에서는 과거에 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가르쳐주었던 바 그 말씀을 기억하며 그들의 행실의 본을 기억하면서 그 믿음의 모습을 본받아 살라는 것이었고, 17절에서는 다시금 현재 그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영적 지도자들을 귀하게 여기고 순종함으로 잘 따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사도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편지 속에 종종 나타나는 강조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4:16,17 말씀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여 이르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 하였습니다. 여인이 아이를 해산할 때에 그 해산의 고통을 겪어서 아기를 낳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낳기 위하여 교사로서 교훈을 가르치는 정도만 아니라 그들의 생명을 낳기 위하여 영적 어머니, 영적 아버지처럼 해산의 고통을 겪으셨다면서, 자기를 영적 아버지, 어머니처럼 본받으라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도 바울을 의심하고 믿고 따르지 않는 불순종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편지에 쓰셨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1 말씀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쓰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 하였으며,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쓴 사도 바울의 옥중 서신 빌립보서 4:9 말씀에서도 가르치기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쓴 편지를 보면, 사도 바울은 그 신생 교회의 교회 지도자들에게 성도들이 순종하기를 격려하는 뜻으로 이렇게 썼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2,13 말씀에 이르기를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
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아름다운 진보와 영혼 구원의 궁극적인 열매를 맺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 권위 질서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지도자들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 가르침을 귀담아 듣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늘 그들의 아름다운 신앙의 행실을 기억하며 곱씹고 본받아 행하고자 늘 애쓴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히브리 기자인 사도가 가르쳐준 이 귀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늘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의 진리와 경건의 교훈들을 가르쳐주며 신앙의 아름다운 행실의 본을 보여준 신앙의 앞선 선배들을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늘 마음에 그들의 가르침과 행실들과 그들의 행실의 결말들을 주의 깊게 생각하여 믿음의 본보기로 삼고 뒤따라 가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언급된 믿음의 선배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본받고, 히브리서 12장 1~3절에서 사도가 제시한 바대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믿음의 시선을 고정하고 그가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진정한 영광의 길을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사도들과 기독교 역사 속에서 교회와 성도들을 지도해주신 믿음의 귀한 종들과 하나님의 귀한 성도들의 기억하면서 그들을 본받고자 힘쓰고, 우리 주변에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귀중히 여기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늘 교훈과 가르침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들은 마치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장차 주님 앞에서 계산을 할 자처럼 그렇게 늘 깨어 기도하며 수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위하여 수고하는 자들을 기쁨으로 일하게 하고 근심으로 일하게 하지 않는 자는 영혼의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도의 이 권면을 마음이 두고 순종하여 영적인 진보의 열매와 영혼 구원의 최종적인 열매들을 풍성히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복음 진리 말씀을 굳게 붙들고 이런 저런 다른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8절과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시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 말씀을 사도가 갑자기 언급하는 이유는 아마도 편지를 받은 성도들을 일찍이 지도하며 복음의 진수들을 가르쳐주었던 분들이 이제 그들 곁을 떠났거나 아니면 세상을 이미 떠났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 성도들이 그들이 전해주었던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기록자는 그들을 가르쳐주었던 주의 종들이 그들 곁을 떠났을지라도 그들이 전해준 그 복음 진리의 주인공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여전히 변함없다는 점을 알려주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한결같으신 분이요 우리가 받고 믿고 그 위에 서 있는 복음 진리 말씀이 계시한 바와 동일하게 같은 분이요 그 성품이나 능력이나 그 하신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는 신실성에 있어서 한결같은 분이요 영원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지도하던 주의 종이 세상을 떠나거나 우리를 지도하다가 다른 지역으로 간다거나 혹은 이런 저런 부족한 점이 좀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복음 진리의 핵심이 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과 불변성을 기억하고 들은 바 복음 진리의 터 위에 굳게 서서 요동하지 아니하는 굳센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특별히 사도는 여기서 당시 이 편지를 받는 신자들에게 이런 저런 이상한 가르침에 유혹을 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 당시 편지를 받는 주 대상이었던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율법으로 돌아가고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동물 제사로 돌아가고 아론의 후손인 제사장들의 중보 사역 아래 돌아가려는 시험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여기서 그들에게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마임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루살렘의 성전 제사에 참여하는 자는 제사장이나 그 제사를 드린 사람들이나 그 제사를 드리는 자와 동행하여 함께 성전에 간 사람들이 그 속죄제물이나 화목제물을 먹었는데, 그것들은 그 사람의 죄를 온전히 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과 온전한 화목의 은혜를 누리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진정한 유익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영적 축복은 어떻게 누리는 것입니까? 그것은 마음에 은혜로써 굳게 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속의 짐을 지시고 단 한번으로 영원한 속죄 제물로 자신을 드림으로써 우리 죄를 다 하시시고 하나님과 화목제물이 되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해주셨기에, 이제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놀라운 이 속죄와 의롭다 함과 화목하게 됨과 하나님의 자녀 됨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저 영원한 하늘의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되었으니, 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이 굳건하게 세워지는 것이 훨씬 나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제물의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과 같은 행위를 통하여 은혜를 얻고자 하는 자는 도리어 복음이 베풀어놓은 풍성한 은혜를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오직 은혜의 주 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극히 복된 은혜로써 우리 마음이 굳건하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가르칩니다.
10절과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사도는 신약 성도들에게도 제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제단을 가리키는 것이지 예루살렘 성전의 보이는 제단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 진리를 받은 성도들에게는 제단에서 먹는 고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구주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대속죄일에 죽은 속죄의 송아지와 속죄 염소와 같기 때문입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잡아서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고 그 송아지는 성전 밖 예루살렘 성 밖에 제물의 똥과 내장들을 태우는 곳에서 태웁니다. 속죄 염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장로들이 손을 얹고 죄를 고한 다음에 잡은 속죄 염소를 잡아서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가지고 가서 피를 뿌립니다. 그리고 그 속죄 염소 역시 고스란히 가지고 나가서 성밖에 그 제물을 태우는 곳에서 다 태웁니다. 그리고 지성소에 그 피를 가지고 간 제물들의 고기는 일체 먹지 못하도록 율법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구주 예수님 역시 하나님의 택하신 모든 백성들의 죄를 다 짊어지고 고난당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밖으로 가서 그 육체가 다 불태워지는 듯한 골고다 십자가의 죽음을 겪으신 것입니다. 12절 말씀이 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신약 성도들 역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성문밖으로 끌려나가시고 치욕을 짊어지시고 고난의 죽음을 당하신 주님과 함께 영문 밖으로 나가는 고난을 기꺼이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문 밖은 공동체에서 버림당하고 배척당하는 장소입니다. 문둥병자도 병에 걸리면 공동체에서 내어쫓깁니다. 백성의 죄를 뒤집어쓴 대속죄일의 수송아지와 속죄 염소 역시 영문 밖으로 나가서 불태워지는 것 역시 죄로 인하여 백성드레게 버림당하고 배척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구주께서 우리를 살리려고 그처럼 유대인들의 공동체에서 저주받은 자로서, 부정한 자로서 그렇게 영문밖으로 끌려나가 정죄를 당하고 욕설을 당하고 침뱉음을 당하고 피 흘려 저주받은 자로서 죽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고 공동체 안에서 남아 인정받고자 하지 말고, 도리어 그리스도의 치욕을 함께 짊어지고자 영문밖으로 그에게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사도는 당시 흔들리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엄중하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고, 믿지 않는 친척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고난을 피하려고 어떻게 해서든지 믿음을 숨기려 하지 말고 도리어 우리 주님이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밖으로 순순히 끌려나가셨듯이, 우리도 기꺼이 세상의 공동체 밖으로 끌려나가는 수치의 길을 걸어가는 자가 됩시다.
그러면 우리에게 어떤 은혜가 주어질까요? 14절 말씀에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성조차 사실 영구한 도성이 아닙니다. 그 도성도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되고 그 안에 있던 유대인들은 철저히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땅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상의 완전한 도성이 아닌 장차 올 완전한 도성을 바라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찾고 구하던 그 하늘의 성이요 히브리서 12장 22절에서 사도가 일러준 바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가 있는 천국 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꺼이 이 흔들리고 파괴되고 마는 이 세상의 도성 대신에 장차 올 영원한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면서, 기꺼이 우리 주님과 함께 복음과 함께 기꺼이 고난을 당하며 영문 밖 우리 주님께로 나아가는 자가 됩시다. 그리할 때에 우리 주님께서 얻으신 그 놀라운 영광처럼 우리도 영원한 도성에서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 성도가 드리는 제사는 찬양과 구제의 제사입니다.
15절과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나누어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이제 복음 진리로 말미암아 우리 구주께서 단 한번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려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 제단에서는 동물 제사가 없습니다. 그 대신 우리를 구원해주신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찬송의 제사가 늘 그 제단에 제물로 올려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물인 줄 믿습니다. 늘 우리를 구원해주신 완전한 대제사장이자 제물이나 성전 그 자체이신 구주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늘 찬송의 제사를 올려드리는 성도들이 됩시다.
또 한 가지 복음의 제단에 향기로운 제물로 드려지는 것은 선행과 나눔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선을 베풀고 구제의 손을 펼 때 그것은 하나님의 제단에 올려지는 향기로운 제물로서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기뻐하시고 한없는 복과 은혜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사도가 성도들에게 당부한 신앙 생활의 지침 몇 가지를 명심합시다. 첫째로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복음을 가르쳐주는 주의 종들을 늘 기억하고 본받고 순종하고 알아줍니다. 앞선 선지자들과 믿음의 선배들과 현재도 우리를 지도하는 주의 종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합시다. 그것이 우리의 영혼의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교훈들에 이끌리지 맙시다. 성령의 은혜만이 우리 심령을 굳건하게 해줍니다. 주님의 복음과 함께 고난을 당합시다. 그것이 장차 영구한 도성에서 우리의 상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로서 합당한 제사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항상 감사와 찬송의 제사와 선행과 나눔의 제사를 드립시다. 이러한 삶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 나그네 길 다 가고 저 영구한 도성 우리의 하늘 집에 들어가는 기쁘고 안전한 여행 길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