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이 아니다.
소흔 이한배
“월남이 망하고 승리한 월맹이 숙청을 대대적으로 했는데 어떤 사람들을 먼저 죽였는지 아십니까?”
가이드가 물었다.
“월남 정부 관련자들이오.”
관광객 중에 누가 말했다.
“아닙니다.”
가이드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듣고 있던 내가 말했다.
“제일 먼저 죽인 사람들은 월남에서 자기들에게 부역한 사람들입니다.”
“맞습니다.”
베트남 푸꾸옥에 3박 5일 여행하던 중 마지막 날 코코넛 수용소로 출발하면서 가이드가 수용소 설명을 하기 전에 관광객들과 나눈 대화다.
정식 명칭은 ‘푸꾸옥 포로수용소’이다. ‘코코넛 수용소’란 이름은 수용자들이 코코넛 껍데기를 갖고 땅굴을 파서 탈출을 시도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코코넛 껍데기는 아주 단단해서 땅을 팔 수 있다고 한다. 문득 우리나라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떠 올랐다. 관광 안내서에는 프랑스 식민 지배 시절부터 월남전 때 베트콩들이 수용당하여 고문을 당했던 곳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푸꾸옥섬 전체가 수용소였다고 한다.
차에서 내려 바라본 수용소 풍경은 글자 그대로 포로수용소였던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댈 것도 아닐 만큼 살벌했다. 철조망이 대여섯 겹도 넘는다. 도저히 탈출은 불가능해 보였다. 안에 들어가 보니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문 광경을 재현해 놓았다. 열대의 뜨거운 햇볕 아래 철조망을 얕게 만들어 눕거나 엎드려 움직일 수 없게 가두어 놓기도 하고, 무릎에 쇠말뚝을 박는 등 고문당하는 조형물들이 말로 표현하는 거조차 몸서리가 쳐질 만큼 참혹하다.
마지막에 들른 막사에는 땅굴이 있다.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 프레인’이 땅굴을 파서 탈출하는 걸 보면서 영화니까 했었는데,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코코넛 껍질로 땅굴을 파는 모형과 땅굴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안타까운 건 그렇게 어렵게 탈출했는데 섬이라 탈출을 못 하고 다시 붙잡히고 말았단다.
고문하는 사람은 미군 복장을 하고 있다. 결국 월남 군인이 월맹 포로를 잡아다가 그랬다는 거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북쪽에 월맹군은 여기보다 더 잔인하게 했지만, 자기네들이 이겼기 때문에 자기네들 행위는 감추고 월남 수용소만 보존하여 관광 상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가이드 질문의 답을 애초에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동남아가 공산화된 뒤에 ‘킬링 필드’라는 영화를 봤을 때 알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가 공산화될 때 벌어진 실제로 있었던 대학살 사건을 ‘킬링 필드’라 일컫는다. 영화 ‘킬링 필드’는 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거다. 영화에서 소년들을 시켜 뒤에서 비닐을 씌워 질식시켜 죽이는 장면을 보고 소름이 돋았었다. 그것도 자기들에게 부역했던 사람들을 골라서 죽였다. 처음엔 의아했었다. 자기들에게 도움을 준 자들을 왜 죽일까? 그건 한 번 배반한 자는 또다시 배반한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그걸 보면서 ‘그 말은 맞네’ 하며 쓴웃음이 났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당연한 말을 그럴듯하게 앞세워 우매한 백성을 현혹한다. 그게 선동이다.
그때 해골이 산더미같이 쌓인 사진을 신문에서 보고 체제가 바뀐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에 대해 알았다. 어려서부터 ‘반공’에 대해 교육을 받았고, 실제로 수시로 벌어지는 북한의 도발을 보면서 알고는 있었지만, 킬링필드를 보면서 확실한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반공주의자라면 구시대의 꼰대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한시도 반공을 포기한 적이 없다. 특히 데모꾼들이 친북하면서 더욱 그들을 주시하게 되었다.
우리는 북한이라는 공산국가를 머리에 이고 살고 있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갈등을 겪는 핵심이다. 그것이 우리가 겪는 불행의 원천이고 우리가 극복해 내야 할 궁극적 목표다. 해방 이후 일어난 갖가지 폭동이나 데모의 원인은 대부분 그 이념 갈등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이것은 명제 중의 명제다. 그걸 부정하면 용서할 수도 없고, 용서해서도 안 된다. 자유를 찾아 북한 주민들이 탈북하여 남한으로 오는 것처럼 북쪽 체제가 좋은 사람들은 이북으로 갔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 거 같다.
어려서 어머니가 물동이 이고 가는 게 쉬워 보여 나도 해보겠다고 떼를 쓴 적이 있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긴 했는데 기우뚱기우뚱해지는 거다. 아무리 꼭 잡아도 중심이 흐트러져 온몸에 물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우리 머리 위에 있는 북한은 이처럼 까닥 잘못하면 온몸을 빨간 물로 뒤집어서 쓰게 돼 있는 아주 위태로운 존재다. 이고 가던 물동이의 물은 말리면 된다지만 북한의 빨간 물은 킬링필드 이상의 가혹한 시련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육이오 때 나의 외할아버지는 읍내에 끌려가서 괴뢰군의 총살에 돌아가셨다. 부농이셨던 외할아버지를 동네 사람의 밀고로 잡혀가셨다고 한다. 체제가 바뀌면 으레 배신자가 생기고 그로 말미암은 희생자가 많이 생기게 된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여야 하고, 국민은 그런 국가에서 번영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그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북한이 일으킨 육이오 전쟁도 막아냈고 국가 재건을 위해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세계에서 부러워할 만큼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데모꾼들은 우리 몸에 암세포가 퍼지듯 끊임없이 곳곳에 빨간 물감을 칠해 놓고 있으니, 오호통재라. 요즘 우리 속담에 ‘등 따습고 배부르면 엉뚱한 생각을 한다.’라는 속담이 자꾸 생각나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