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 서정주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날마다 칠해져 온 곳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 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 묻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그때,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따로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합니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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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댁 툇마루에 얽힌 유년 시절의 추억을 노래한시로
외할머니댁에 있던 뒤안에 있는 '툇마루'라는 소재를 통하여
어머니와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으며, 한국적인 인정과
따뜻함이 배어 있는 추억의 장소이자, 우리네 교육이 이어지는 정감의 장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꾸짖음보다는 사랑을 통한 정의 문화가 담겨 있는 교육을 엿볼 수 있는 시이다.
툇마루는 건축물의 툇간에 놓인 마루를 일컫는다.
툇간이란 건축물의 중심부를 버텨주는 높은 기둥들 밖으로 외벽이나 지붕을 지탱해 주기 위해
둘러 세운 기둥들 사이의 공간을 말한다. 말하자면 건물 가장 자리에 생기는 빈 공간들을 말한다.
그런 공간에 마루를 놓아 신발을 신지 않고도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곳이 툇마루이다.
툇마루는 대개 건축물의 전면에 많이 놓이고 규모가 큰 건물에서는 측면이나 후면에도 생긴다.
옛날 한옥에서 툇마루는 지붕 가장자리가 비교적 넓어서 벽이나 큰 마루 둘레에 공간이 꽤 생길 때 놓게 된다.
툇마루를 놓으면 신발을 신지 않고 움직이는 공간이 넓어져서 주거공간을 넓혀주는 효과가 있다.
대청 앞에 툇마루를 문짝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고, 하방으로 문턱을 만들어 경계를 짓는 경우도 있다.
옛날 가옥에서 온돌방의 전면에는 대부분 툇마루를 놓았다.
방과 툇마루 사이에 있는 벽에는 출입구 또는 창을 내는데, 단칸방으로 독립된 경우에는 문을 내고,
온돌방 옆에 대청이 있을 경우에는 머름을 설치한 위에 두 짝의 창을 낸다.
따라서 툇마루는 통로 구실도 하고, 간단한 살림살이를 보조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짜임은 대청과 마찬가지로 우물마루로 하고, 마루의 끝은 외부와 통하게 한다. 마루가 높아서 난간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고, 특수하게 머름을 설치하고 창을 다는 경우도 있다. 집으로 들어가는 첫 단계로서,
토방에 놓인 섬돌을 딛고 올라서면 툇마루가 된다.
서양 가옥의 건축으로 따지자면 툇마루는 '베란다'와 가장 흡사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발코니나 테라스와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집 밖으로 붙어서 주거 공간을 다양하게 넓혀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툇마루를 놓지 않은 한옥은 그 자리가 흙바닥을 이루게 된다. 마당이나 뒷뜰로 나아가기 전에 조금 높게
쌓아 올린 흙 턱을 이룬다. 신발을 신고 활동해야 하는 것을 빼고는 툇마루와 거의 같은 기능을 한다.
서양식 건축구조에서 테라스의 기능과 비슷하다. 툇마루는 바로 그런 공간에 마루를 놓아서
더 편리하게 만든 것이다.
햇살 가득한 툇마루에서 삶을 반추하다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암울할지라도 햇살 가득한 툇마루에 앉아서 맑은 하늘을 처다보노라면
이 세상이 살만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의미 있게 살고 싶다는 의욕이 생긴다.
세상이 고달퍼지는 것은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다. 가진 사람이 더 많이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고,
각 사람마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며 삶을 복잡하게 엮어가다보니 이 세상이 불행해진다.
가끔은 햇살 가득한 툇마루에 앉아서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라.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살만한 것이다...
그런 뜻에서 툇마루는 삶의 여유를 만들어 준다. 자아의 내면과 바깥 세상 사이에서 유용한 완충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조급함 때문에 범하는 실수를 줄여주고 자아와 세상을 성찰하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툇마루를 잘 마련하여 가꾸고 많이 이용하는 사람일수록 깊이 있고 향기나는 삶을 영위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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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따가운 봄 날
눈꺼풀 지긋 눌린 졸음에 겨워
목침괴고 툇마루에 외로 누웠으니
묵지근한 사지마냥
늘어진 푸성귀 언저리엔
스멀거리는 아지랭이
봄비로 얼룩진 토담에 설핏
괭이의 기지개 그림자
툇마루의 오침을 회상하며..펌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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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으리으리힌 위압적인 커다란 기와집 툇마루는 정겹지 않습니다. 내려 서면 금방 마당인 그런 툇마루가 그립습니다. 겨울, 따사한 볓 쪼이기가 안성 맞춤인 곳, 앞집 순이와 나란히 앉아 무릎 밑에 손을 넣으면 툇마루의 따사한 그 손맛이 순이의 웃는 따사함과 더해 정말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