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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하나님
본문/출애굽기3:1-15절
3: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오늘 본문에 보시면 천지와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모세에게 떨기나무 불 속에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이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3:6, 14-16절,)
이 외에도 성경에는 이 표현이 게속해서 나타납니다.
출4:5,마태복음22:32,행3:13, 7:32,
5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이처럼 자주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 전에도 그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에녹을 꼽을수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간 동행하다가 산 채로 승천한 인물로, 유다서에 보시면 인류의 초기 인물 중 하나인 그가 인류의 종말인 재림까지 내다보고 있었던 것을 봅니다.
또 산채로 승천하여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능가해 보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에녹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시지 않고 자신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을까요?
또 아브라함과 비교하면 몰라도 이삭이나 야곱과 비교해보면 요셉이 더 큰 인물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지만 꿈에서도 야곱을 뜻하는 해가 요셉에게 절하는 말씀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요셉 앞에서 딱 끊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을 까요?
물론 성경에는 ‘엘리야의 하나님’이라는 표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왕하2:14절에 보시면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그러나 이것은 다른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붙일수 있는 표현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이것과 다릅니다. 그 증거로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시면 출3:15절에서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이처럼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이고 대대로 기억할 하나님의 칭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 학자가 있습니다. 제임스 브루크는
[이 문장 전체가 하나님의 칭호였다. 곧 모세의 원래 질문,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답변이었습니다. 16절과 이어지는 구절에서 하나님은 그 이름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한정시키셨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사람 중의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도 있고, 사무엘도 있고, 다윗도 있고, 다니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이름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일까요?
여러분 이것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대체로 질문이 없다는 이유는 성경을 전혀 않읽어서 그렇습니다. 저도 동일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 성경을 많이 읽을때에는 성경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석을 억수로 자주 보았습니다. 그러니 관심은 일단 말씀을 말씀이 대해야 생겨납니다. 모르니까 질문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다같이 한번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이름 안에 지극히 중요한 엄청난 비밀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이름에는 뜻이 잇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일일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지만, 성경에 나오는 므두셀라, 아브라함, 사라, 베드로의 이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이름안에 중요한 뜻이 잇고 이름대로 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마태복음1:21절에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이름이 두가지입니다. 그 이름들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즉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라는 이름은 예수님이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구원자)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훗날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신앙을 고백하였습니까?
마16:16절에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신기하게도 예{수님의 이름에 나타나 있는 그대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단순 4대 성인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단지 위대한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희망인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또 중요한 사실은 훗날 예수님이 이렇게 주장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시기 전에 지은 이름에 그것이 정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신기합니다. 또 그 이름들을 부모나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닙니다. “주의 사자”가 계시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지은 이름을 천사가 전해주어서 지은 이름입니다. 또한 임마누엘의 경우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이사야7:14절에 메시야 이름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할렐루야!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예수님이 참으로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름에 나타나 있는 뜻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셔야 합니다. 그런데 성부 하나님께도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여러분이 잘 아는 여호와(야훼)입니다. 창4:26절에 나옵니다.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출6:3,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의 이름은 이슬람교가 주장하는 것처럼 알라가 아닙니다. 여호와입니다.!!! 또 상식이거니와 하나님은 개명하지 않습니다. 개명은 이름을 잘못 지었을 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예지의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이름을 잘못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전지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알라는 결코 성경에 나오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또 많은 이들이 잘 모르는 것인데 하나님의 이름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출3:15을 보십시오.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이것도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본문에 그렇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 사람의 이름에도 뜻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심혈을 기울여서 지으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이름에는 얼마나 중요하고 어마어마한 의미가 들어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이 이름에 들어 있는 뜻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름이 나오는 성경구절을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이 이름에는 세가지 의미가 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첫째로, 이 이름에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유대인들의 조상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이 실제로 그런 뜻이라는 것은 성경에 문자적으로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3:6절에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출4:5, 5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행전3:13,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행전7:32절, 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이것이 이 이름의 가장 기본적인 뜻입니다. 또 이 이름을 모세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실 때 사용하셨다는 것도 이것을 뒷받침해 줍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이름에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믿었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거듭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45:5절, 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사45:21절, 21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2절에도 있습니다., 22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그러니 우리 모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답을 십계명의 1계명과 2계명이 보여줍니다. 십계명 제1계명을 출20:3-5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그러므로 절대로 우상 숭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우상 숭배를 하는 분이 있다면 우상 숭배를 한 것이 지나간 때로 족한 줄로 아십시오.(벧전4:3/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참되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살전1:9/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둘째로, 이 이름에는 하나님을 믿는 신자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고 그들을 위한 천국과 부활과 영생이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설마 이 이름에 그런 뜻이 있겠나?’라고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사두개인들에게 하신 말씀가운데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마22:23-33절에 있습니다.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뭔가 알 것 같은 충분히 쉽게 가르쳐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해석하신 학자들의 해석을 보시면 R.T 프랜스의 글은
[이 논증은 하나님과 그를 따르는 인간 사이의 관계의 본질에 기초한다. 즉 하나님과 그들을 결속시킨 언약은 죽음으로 끝나버릴 만큼 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 당에서의 삶을 넘어 하나님만큼 영원한 관계로 이어진다.]라고 해석합니다.
양용의 교수님은 이 해석을 더 실제적으로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 시대 한참 전에 죽었던 족장들, 곧 아브라함과 야곱의 하나님 이었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족장들이 이미 죽었지만 모세 당시 그리스도 수신자들 시대에도(참조31절,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여전히 현재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다시 말해서 족장들은 죽음으로 과거의 존재(이었다.) 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는 다른 형태의 현재적 존재(이다.)로 계속 남아 있다는 것이다. 죽음 후 이러한 지속적 존재의 가능성은 궁극적 부활의 가능성도 내다보게 해준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사람이 볼 때는 이미 죽고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어디에 살아있을까요?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나 천국이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고 가실 최종 목적지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새하늘과 새땅입니다.(사66:22,벧후3:8-13,계21:1-7) 그곳에는 천국과 달리 부활한 사람들만 갑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천국에 있다는 것은 때가 되면 그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즉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과 달리 부활이 있다는 분명한 증거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이름안에 그런 뜻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한편, 예수님이 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11:25-26절에 나사로의 죽음앞에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는 곳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러분, 부활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참된 신자는 죽었어도 죽은 것이 아니고 천국에서 하나님 앞에서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부활하여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이 이름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을 통해서 일어나는 종교가 참 하나님이 세우신 인류를 구원할수 있는 유일한 참 종교라는 놀라운 뜻이 있습니다.
행전3:1-13절을 보십시오.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러분 뭐가 보이십니까? 아직 안보이신다면 학자들이 이 구절을 통하여 해석하기를 대럴 벅이라는 학자는
[베드로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을 언급할 때 그는 약속의 하나님과 민족의 하나님을 떠올리게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약속의 하나님”과 “민족의 하나님”은 둘다 이 구절을 이해할수 잇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이루시고자 한 약속을 이룬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학자는(슈나벨) 이 구절을 해석하기를
[이 걷지 못하던 사람을 고친 능력의 원천에 대해 베드로는 먼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연결된다....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과 언약을 맺으셨다.(25)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땅의 족속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25-2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본문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아가 태어나고 그분이 일으키시는 종교가 인류를 구원할수 있는 유일한 참 종교라는 그런 놀라운 의미가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의 이 세 번째 뜻은 유일한 참 종교와 다른 모든 거짓 종교를 구분하는 시금석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정통과 다른 모든 거짓 종교를 구분하는 시금석이됩니다. 나아가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즉 무엇이 의이고 무엇이 죄인지를 구분하는 시금석이 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모든 종교와 진짜 정통과 참 도덕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시금석을 우리에게 제공해 줍니다. 그래서 그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하게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 경이로운 이름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나눠서 이 이름에 들어있는 깊이 있고 웅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펼쳐서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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