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회원 여러분!!!
이 시간은 항상 쉬어 가는 코너.....오늘도 재미있는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 할 시간이 돌아 왔군요.
세조에게는 아들 둘과 공주 한 명이 있었는데,첫째 아들 덕종(후세에 추존 )은 스무 살 때 동궁에서
낮잠응 자다가 몽압(가위 눌림)으로 죽었으며, 조선 제 8대 임금인 예종은 세조의 둘째 아들로서
덕종이 세자로 있을 때 요절하였으므로, 부득히 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던 것인데.....
예종은 등극한지 일년만에 춘추 20세에 승하 하였다.
그러므로 세조의 두 왕자는 각각 스무 살을 넘지 못하고 죽었는데, 이것은 세조의 잔혹한 행위에 대한
응보라고 하는 설도 있으나, 아무튼 그들은 청춘을 다 피우지 못하고 요절하였던 것이다.
오늘 기술코져 하는 이야기는 세조와 예종 때에 걸쳐 일어났던 "남이장군"에 관한 이야기인데...이는
정사와 야사가 혼합된 이야기오니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라면서....
장군 남이(南怡)는 태종의 외손자로서,나면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웅장한 기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17 세의 약관에 무과에 올라, 스물이 넘어서 부터는 이미 훌륭한 장수로서 여러 번 싸움터에 나가
큰 공을 세우곤 하였다.
"백두산 돌을 갈아 다하고 , 두만강 물은 말 먹여 없애리
남아 스물에 나라를 평정 못하면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 !" 이 유명한 노래는 남이가 스물 다섯 살에 북방의 야인족을 토평하고 돌아올 때 지었다는 것으로 그의 씩씩하고 웅장한 기상이 그대로 넘쳐흐르고 있다. 그는 혁혁한 전공으로 이듬해 스물 여섯 살에는 드디어 국방의 최고 영직인 병조판서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한창 일할 나이인 스물 여덟 살에, 그의 출세를 시기하는 간신배들의 참소를 입어 아깝게도 역모죄로 몰리어 죽었다. 그가 이처럼 요절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요귀의 작희가 따랐다고 한다.
그가 아직 소년 시절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어느 날 남이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이상한 요귀를 발견하게 되었다.즉 뉘집 비복인 듯한 사람이 함을 지고 가는데, 문득 바라보니 그 함 위에 요귀 한 마리가 올라앉아 따라가고 있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띄지 않는 모양이었으나, 남이의 눈에는 역력히 보였다. 괴이하게 여긴 남이는 그 함을 지고 가는 사람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동행하였다.
어느덧 그 사람은 어느 크나큰 대가집 문안으로 들어섰다. 뒤따라 오던 남이는 그 집 문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필연 이 집에 큰 일이 나겠구나." 생각하고 문 밖에서 기웃거리고 있을 때, 아니나 다를까,집
안에서는 갑자기 통곡 소리가 구슬프게 들려 나왔다. "그러면 그렇지.분명 그 요귀의 장난이렸다 ! "하고
남이는 그 집 문안으로 들어서며, "이리 오너라. " 하고 주인을 불렀다.
이윽고 아까 그 함을 지고 들어오던 청지기인 듯 싶은 사람이 나와서 누구를 찾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남이는 요귀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대충 하고 나서,"내가 안으로 들어가서 그요귀를 쫓아내 드리리라."
하고 자청하였다. 그러자 청지기는 매우 반가워 하면서, 그 집 주인에게 통래하여 남이를 집 안으로 안내하게 되었다. 들어가 보니, 그 집은 김판서 대감 집인데 그 대감의 무남독녀 외동딸이 갑자기 무슨 병으론지 숨이 넘어가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내외가 다 무었입니까 ?"하는 주인 대감의 말을 듣고, 남이는 서슴치 않고 그 색시 방으로 들어섰다. 보니, 요귀는 죽어 넘어진 처녀의 가슴을 타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요귀는 남이를 보자, "아이구 무서운 장군님 !" 하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순간 처녀는, "휴우 !" 하는, 숨 돌리는 소리와 함께 소생하여 눈을 뜨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집안 사람들은 모두 환성을 올리고 있는데, 남이는 남의 처녀 방에 더 오래 있을 수가 없어서 이내 사랑으로 나왔다. 그러자 색시 방에서는 또다시 요란한 곡성이 들려 나왔다.
이에 남이는 주인의 간곡한 청원으로 다시 들어가 보니, 이번에는 아까의 그 요귀가 처녀의 머리 위에 타고 앉아 있었다. 처녀는 머리가 뻐개지는 것 같다고 울부짖다가 그만 죽어 넘어진 것이었다.
남이가 가까이 가자, 요귀는 문틈으로 빠져나가 도망하였다.
이러기를 서너 번, 남이는 처녀 방에서 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이는 그 집에서 하루 이틀 묵는 동안에 처녀와 정이 들었고, 마침내 김대감 부처의 주선으로 백년가약을 맺게 되었다.
그 때 처녀의 집에서는 유명한 사주쟁이를 청하여 남이의 사주를 보게 하였던바, "부귀는 겸전케 되겠으나, 요귀의 작희로 수한은 30을 넘기기 어렵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김대감 부처는 지극히 섭섭히 여기면서도 어쩔 수 없이 혼례를 거행하게 되었다..
그 후 남이는 일취월장으로 출세를 거듭하여 스물 여섯 살에 병조판서에 올랐는데, 그 전해에 그가 함경도 강계 방면에서 소란을 일으킨 야인족의 난리를 평정하고 돌아올 때 지은 그 시가 말썽이 되어 역모로 몰려 죽게 된 것이다. 당시의 임금인 예종은 워낙 나약한 성격의 소유자여서 26세의 젊은 남이가 병조판서로 있는 것을 은근히 두려워하고 있던 차에 남이의 출세를 시기하고 있던 소인 유자광이 참소하기를,
"병판 남이는 지금 상감이 나약하신 틈을 타서 역모를 계획하고 있나이다. 그 증거로는 그가 야인족을 토평하고 돌아올 때 지은 글 가운데ㅡ"남아 스물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 이란 구절을 보아서도 알 수 있나이다."하여,"男兒二十未平國 " 을 "未得國 "이라 꾸며대어 일러바쳤던 것이다.
이에 예종은 대경 대노하여 남이를 잡아들이라 하여 친국을 할 때 "네 이놈 무슨 일로 역적 모의를 하였느냐 ? 물으니, 남이는 처음에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나이다." 하고 부인 하였으나, 워낙 고문이 대단하여, 앞 정강이 뼈가 부러져 버리는 지라 남이는 한탄하기를, "내 오히려 살려 하였음은 장차 나라의 대사를 위하여 이 몸을 바치려 하였음인데, 이제 정강이가 부러진 병신으로 살아난들 무슨 소용이리오 " 하고 역모를 하였노라 거짓 자백하였다.
그러자 예종은 "네 누구와 더불어 모의 하였느냐 ?"고 묻는 것이었다. 그 때 남이는 서슴치 않고 "저기 있는 저 영상과 함께 하였습니다 ." 하고 엉뚱한 사람을 끌고 들어갔다.
그 때 영의정 강순은 80 고령의 늙은이 였는데 담박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그도 못이겨 모의 하였노라고 자백하였다. 이윽고 참형을 받으러 형장으로 갈 때, 수레 위에서 강순은 말 하였다.
"이놈아 네가 죽으려거던 혼자나 죽지, 어찌하여 죄없는 나까지 끌고 들어 갔느냐 ?" 그러자 남이는 껄껄
웃으면서,"대감도 뱃심은 좋으십니다 그려.낸들 죄가 있어 죽는 거요 ? 나의 무죄함을 당신은 잘 알면서도 일언반구의 조언이 없으니, 그래 일국의 영상으로 그게 체모가 서우. 나 같은 청춘으로도 말 없이 죽으려는데, 당신은 그 만큼 살았으면 그만이지 않소. " 하고 어이 없다는 듯이 웃는 것이었다.
이 말에 강순도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이리하여 남이는 원통하게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는데, 그 때에 그의 나이 스물 여덟, 그의 부인은 남이가 처형되기 전에 이미 자결하여 버렸다고 한다.
첫댓글 역사의 한 간신배들이
처단되어야 ! 자고로 나라가
바로 선다 공부 잘 했씨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