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31. 주일예배설교
디모데후서 4장 6~8절
끝 날에 생각하는 끝 날
■ 특별하게도 오늘이 2023년 마지막 날인데 특별하게도 주일입니다. 12월 31일이 주일이었던 때가 2017년이었으니 6년만입니다. 보통 그해의 마지막 날이면 여러 생각이 드는데, 오늘을 특별히 주일이니, 여러 생각을 주님 안에서 정리해 보면 좋겠다 싶습니다.
무엇보다 오늘은 올해의 끝 날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의 끝 날에 관해서 생각해 보면 좋겠다 싶습니다.
우리의 끝 날에 관해서라 함은, 우리의 끝 날을 위해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지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의 안내를 오늘의 본문을 쓴 바울 사도에게서 받도록 하겠습니다.
■ 오늘 본문은 바울 사도께서 자신의 인생이 끝자락에 왔음을 예견하며 쓴 편지입니다. 이를 6절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여기서 “나의 떠날 시각”이라고 함은 다른 목적지로 이동할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날이 얼마나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살날은 자연스럽게 온 노년이 아니라 순교를 예견한 살날입니다.
이를 “전제와 같이 내가 부어지고”에서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전제”는 구약의 제사 의식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어린 양 제물을 제단 위에 놓고 불사르기 직전에 포도주를 붓는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의 의미는 자신이 곧 순교의 제물 됨을 예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편지는 바울 사도의 인생의 끝자락에 쓴 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편지에는 바울 사도의 애정이 가득 담긴 교훈들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중 중요한 신앙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신앙고백은 한 해의 마지막 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분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거룩한 가이드입니다.
■ 바울 사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를 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새번역)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공동번역개정판)
1.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맡겨진 싸움을 다 싸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 싸움을 폭력과 연관 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싸움은 그런 물리적 싸움이 아니라 영적 싸움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거룩한 삶을 방해하는 영적 훼방꾼들과의 영적 전쟁을 말합니다. 그래서 “선한 싸움”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 “선한 싸움”에서의 “선”은 하나님의 선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싸움”은 하나님의 선을 위한 거룩한 영적 싸움으로서 거룩함을 살아내는 삶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치열하게 살아내는 삶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붙잡혀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선한 싸움입니다. 이렇게 거룩을 위한 삶을 치열하게 살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한 싸움은 육체의 싸움이 아닙니다. 영적 싸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의미를 훼손하려는 모든 것들에 맞서는 싸움입니다. 법과 제도와 구조가 하나님 나라의 세계관, 인생관, 우주관, 결혼관, 경제관 등을 훼손하고 있고, 훼손했다면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싸우는 싸움이 영적 싸움입니다.
혹시 영적 싸움을 기도로 악귀를 물리치고, 병을 고치는 정도로 이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영적 싸움에 이런 것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영적 싸움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의미를 파괴하는 모든 것들과의 싸움입니다. 기도에 국한된 싸움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반드시 비폭력적, 무권력적 싸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샬롬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2. 그리고 바울 사도는 이 샬롬을 위한 선한 싸움을 끝까지 수행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어느 정도 하다 만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거룩한 임무를 끝까지 수행했다고 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그런데 혹시 바울 사도가 주어진 임무를 끝까지 수행했다고 하는 것에 대해 기가 죽으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러실 필요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이것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지, 완벽했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족하고 민망해도 최선을 다한 것이지, 흠도 티도 없이 완벽하게 이루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도 인간이기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그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실수도 했고, 실패도 했습니다. 단지 그 실수와 실패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았고, 또 실수하고 실패할지라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것이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의 의미입니다.
3. 그런데 여기서 바울 사도가 한 매우 중요한 고백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을 지켰다”는 고백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가야 할 길을 다 마친 이 모든 것이, 믿음 안에서의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의 고백인즉, 자신의 임무 수행에 실수와 실패가 있었어도, 그래서 완벽하지 못했어도 최선을 다했는데, 이 모든 것이 믿음을 지킨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는데 또다시 우울해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믿음의 한계와 바울 사도의 모습이 너무 대조되기 때문이어서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우울해하지 마십시오. 그러실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성령님이 공급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 없음을 고백하고, 믿음을 구하는 기도에, 성령님이 믿음을 공급하십니다.
이렇게 믿음은 주어지고, 이 믿음을 통해 믿음의 행위가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믿음을 행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두려움을 주님께 맡기고, 선한 싸움을 위한 믿음의 행위를 하면 됩니다. 맡기면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 바울 사도는 이렇게 자신에게 맡겨진 선한 임무를 믿음으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물론 한계 때문에 부족하고 완벽하지 못했습니다. 실수하고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부끄럽고 민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또 일어서서 믿음의 달리기를 했습니다. 선한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온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이런 바람직한 태도를 가진 바울 사도는 끝을 향해 갈수록 한 약속을 확신했습니다. 8절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무슨 약속인가요? 그렇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위해 “의의 면류관”이 약속된 것에 대해 확신했고 기뻐했습니다.
그렇다면 “의의 면류관”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인정하신 인증서 격의 상입니다. “선한 싸움”을 잘 싸웠고, “믿음을 지키는 삶”을 잘 산 것에 대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주시는 상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그 모진 영적 싸움을 견뎌낸 것에 대해 의로우신 하나님이 주시는 칭찬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는 참으로 엄혹할 그 끝 날, 그 마지막 시간에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삶은 기쁘기도 했고 신나기도 했지만, 만만치 않은 유혹과 핍박 속에 경주해 온 믿음의 경주였습니다. 치열하게 싸워온 영적 싸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의의 면류관”은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값어치입니다. 온 세상과도 바꿀 이유가 없는 하나님 나라의 값어치입니다.
그러므로 “의의 면류관”은 믿음으로 살아온 모든 것에 대한 보상입니다. 하나님이 아낌없이 주시는 우주적 보상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우주적 보상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물론 매일 내려주시는 만나와 같은 매일의 은혜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매일이 기적이니까요. 그렇지만 이것으로 하나님의 보상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신나는 일입니다. “의의 면류관”은 지금까지 매일 받은 하나님의 선물을 다 합쳐도 견줄 수 없는 보상이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기대하십시오. 최고의 선물인 “의의 면류관”을 기대하십시오. 사실 그 기대에 훨씬 넘는 선물이 “의의 면류관”일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은 복 있는 분들입니다.
■ 한 해의 마지막 날, 우리는 끝 날의 의미를 짚어봤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이 너무 기대된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분명 우리의 믿음의 경주가 고단하고 고통스러울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나를 위해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의의 면류관”을 쓰고 한 자리에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올 한 해 믿음으로 사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