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
임병식 rbs1144@daum.net
근자에 고물 승용차를 폐차시킨 후로 통 고향마을을 들르지 못한다. 해서 고향집이 그리워지면 예써 달리 하는 버릇이 생겼다. 무슨 방법이냐면 그대신 인터넷을 검색하여 고향명소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도에서 고향마을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지역을 검색하면 전체는 나오지만 건물과 주위 풍광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지라 보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네티즌들을 보면 보성지역의 가볼만한 곳으로 몇 군데를 추천한다. 그 중에는 제암산 자연휴양림과 태백산맥문학관, 대원사 벚꽃 길, 그리고 한국 차 박물관, 율포 해수욕장을 든다.
하지만 인문학적 견지에서 볼 때 별교의 나철선생 기념관, 문덕의 서재필선생 기념관, 보성의 열선루, 은봉 안방준선생의 기념관도 추천하고 싶다. 그 이유는 이곳을 방문해야만 비로소 보성의 진정한 속살, 보성의 정신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나는 국립해양수산박물관이 고향 보성이 아닌 완도로 선정된 것을 매우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그곳도 그만한 입지조건이 되기 때문에 선정이 됐겠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보성 득량 만큼은 미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당초 전라남도 몫으로 남녘에 해양박물관이 배정이 되었을 때, 선정이 보성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 보성은 지리적으로 전남의 중심지에 해당할 뿐 아니라 자연사적인 상징 현장이라고 할 공룡 알 화석지가 있고, 다른 역사 유적지도 많기 때문이다. 인근의 칼바위는 이순신 장군이 병사를 보충한 곳이며 가까이 위치한 군영구미는 명량대첩에 나설 때 지역에서 군량과 무기를 확보하여 출진을 했던 곳이다.
지리적으로도 훌륭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에다 눈앞에 그림 같은 득량도가 펼쳐져 있고, 고흥 대서로 이어지는 방조제 뚝 길 4키로 미터에는 장미꽃길이 조성되어 환상적인 힐링 코스를 제공한다. 거기다 일렬 행대로 늘어선 소나무의 조림은 풍광을 돋보이게 한다.
그런데, 대단위 공장부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임에도 최종 탈락을 하고 말았다. 나는 처음 유치운동이 벌어질 때 열기가 지극히 소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을 이장 단이 구성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것만으로는 될까’ 싶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결과는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상대후보지는 현역 도지사가 배출된 곳인데, 순진하게도 입지조건만 믿고 있다가 나가떨어진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쪽이 평점이 높았다는데 그것은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낙후지역으로 말하면 득량 고을이 훨씬 더 뒤쳐지고, 인접 시군의 교통여건으로 말하면 이곳만큼 접근성이 월등한 곳도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역을 홍보하는 것도 좀 치밀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내가 보기에 보성은 산업시설이나 관광명소를 조성할 훌륭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한때 제철공장의 후보지였던 득량은 높은 평점을 받고도 타 지역에 밀리고 말았다. 수심이 깊어 준설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임에도 굳이 수심이 낮아서 월등히 많은 돈이 들어가는 다른 곳에 밀려난 것이다. 이는 군세(郡勢)가 약하고 지역에 인물이 없는 것이 큰 약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보성은 지역홍보 여부에 따라서는 다른 차원에서 각광을 받을 수 있는 관광자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른 지역이 갖지 못하는 독특한 자원으로 ‘구들장 우마차길’이 있는데 구불구불한 험로가 압권이다. 다른 것은 놓쳤지만 이것만은 꼭 귀중한 자산으로 잘 활용했으면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근대유물의 발자취를 돌아보게 하는데 충분한 가치가 있다. 경남 남해의 산비탈 다랑이 논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듯이 이것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관광객을 끌어 들릴 수 있다.
그것은 일본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일본은 군항도와 사도광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거나 등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조선인을 끌고 가 가혹한 노동착취를 행한 악명 높은 곳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감추고 그곳을 근대시대 자기 나라의 발전 동력을 얻은 곳이라고 기리고 있다.
거기에는 관광객을 끌어 모으려는 속셈이 읽힌다. 그것을 보면 보성의 '우마차길'은 더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가. 일제 강점 1930년대부터 1980대까지 50여 년 간 채석이 이어진 곳으로, 엄혹한 시대에 먹고 살기위해 험한 길을 개척하여 구들장을 실어 나르고, 백성은 그것으로 구들을 놓아 허기진 삶이나마 등 따시게 지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물량이 실로 전국 수요의 70%를 차지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곳인가.
그런 것을 생각하면 눈으로 보는 자원인, 제암산 자연휴양림을 비롯한 여러 곳도 널리 알릴만 하지만 땀 흘리며 생존을 도모하던 위험천만한 노동현장의 유적도 충분히 가슴으로 느끼게 할 만하지 않는가.
진정한 관광의 의미는 우선 눈으로 보아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물, 어떤 현장을 보고 가슴에 담아가는 것도 뜻이 있지 않는가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단순히 구경하고 눈요기에 그치는 홍보 보다는 좀 더 역사를 돌아보고 배우고 느끼게 하여 가슴에 담아가는 홍보 전략을 짜는 것이 좀더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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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산재한 유명 관광지도 좋지만 조상의 삶의 흔적과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유적을 발굴.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것은 더욱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보성 득량에는 근대에 생업을 위해 분투노력하던 산업현상이 존재합니다. 바로 '구들장유적'으로 이것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면 훌륭한 명소가 될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