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사순절 묵상집을 펴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리는 사순절을 온 세상에 고통과 신음, 슬픔과 죽음이 넘치는 가운데 맞습니다.
이 세계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공포와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이 와중에도 목숨을 잃거나 경제적으로 벼랑에 내몰리는 사람 중의 다수는 사회적 약자입니다. 그 약자 중에서도 가난한 나라, 내전을 겪는 나라, 권위적인 정권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사는 약자들의 처지는 참혹함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이 사순절에 주님의 고통과 이 땅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의 고통, 둘 다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을 내세우면서도, 그 십자가가 주님의 삶의 결과라는 것을, 최소한 그분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분의 삶은 사랑이었고, 그 사랑의 끝은 십자가였습니다. 그분은 세리와 죄인, 병든 자, 고아, 과부, 가난한 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였는데, 그것은 그 시대 지배자들의 미움을 사는 일이었습니다. 그 미움은 십자가 처형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랑이 십자가였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어진 그 사랑의 길이 골고다의 십자가에 이르기 전, 주님께서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지쳐 곯아떨어진 한밤, 온 몸을 휘감아 오는 죽음의 냉기를 느끼며 깜깜한 어둠 가운데서 혼신을 다하여 기도하십니다. 고통과 공포를 홀로 감내하며 기도하십니다. 칠흙 같은 겟세마네의 밤입니다.
이 사순절에 겟세마네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주님의 기도, 그 기도는 사랑의 길의 절정에서 터져나온 고통스러운 순종의 기도입니다. 자신의 뜻을 누르고 하나님의 따르는 것이 쉬웠다면 주님의 이마에서 땀이 핏방울같이 흐르지 않았을 것이며, 제자들에게 자신이 몹시 괴로우니 잠시라도 깨어 함께 있을 수 없겠느냐고 하소연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 겟세마네의 밤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어둠과 겹쳐집니다. 신앙인들은 이 세계의 어둠 가운데서 주님의 그 밤을 묵상합니다. 오늘에 생생하게 살아나지 않는 신앙은 단지 회고적 신앙일 뿐입니다. 화석처럼 굳어버린 차디찬 신앙일 뿐입니다. 그분의 밤이 사순절을 맞는 우리의 밤이기를 빌어봅니다.
(사)한국YMCA연합회 회장 원영희
한국YMCA전국연맹삼총장 김경민
기독교방송(CBS) 사장 김진오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서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