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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사야 46:1-7)13.09.29.주일낮설교
문법에는 비교급이라는 게 있습니다. 「좋다」라는 말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좋다’, ‘아주 좋다(매우 좋다)’, ‘가장 좋다(최고로 좋다).’
이렇게 세 가지 분류로 표현하는 것을 비교급이라고 합니다.
가치에도 비교급이 있습니다. ‘귀하다’, ‘아주 귀하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최고로 귀하다’ 라고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본문 5절이 그 사실을 설명해 줍니다.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든 우상과 하나님을 비교하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우상은 나무, 돌, 쇠붙이 등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디자인하고 깎고 다듬고 녹여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신이라 부르고 믿고 숭배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이방신을 의지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이들은 전쟁에서 이긴 쪽의 신이 진 쪽의 신보다 강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의 신이 여호와하나님보다 강한 신이 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이런 우상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5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계속해서 이사야는 우상들은 아무런 힘도 가치도 없다고 강조합니다.
46:1절을 보면“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렸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들이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들도 잡혀 갔느니라”고 했습니다.
믿고 안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선택입니다.
그러나 나무나 돌이나 쇠로 만든 것들을 신격화하고, 거기에 복을 빌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46:7을 주목합시다.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 있고 거기에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하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것들은 무용지물이고 무능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밝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사45:18).
45:18을 보면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1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높은 건물들이 여러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5위 윌리스 타워 108층, 높이 442m, 가장 끝 지점 527m
미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이 빌딩은 시카고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4위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88층, 높이 452m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해 있습니다. 참고로 삼성에서 만든 빌딩입니다.
3위 상하이 세계 금융 센터 101층, 높이 492m
2008년에 지어진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건물입니다.
2위. 타이페이 101층, 높이 509m 대만의 수도인 타이페이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2위를 차지한 건물입니다.
1위 부르즈칼리파 160층, 828m 2009년에 완공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삼성물산에서 시공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서울 63빌딩은 249미터라고 합니다.
나라마다 높이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높아봤자 하늘아래 뫼일 뿐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성냥갑을 세워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어느 날 잠자고 났더니 63빌딩이 생겼더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 감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날 잠깐 졸다 깼더니 서울에서 부산까지 길이 뚫렸더라며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과 의사가 도와줘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늘과 땅, 해와 달과 별, 저 높고 기묘한 산맥들,
짙푸른 바다, 그 속의 고기떼들이 절로 생겨날 수 있습니까?
과학은 저절로 생겨났고 생성되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가르칩니다.
고층빌딩이 저절로 솟아났다고 가르치는 사람과 건설사가 십여 년 간
계획하고 설계하고 시공해 건축했다는 사람, 누가 진실한 사람입니까?
누구 말을 믿어야 합니까? 성경은 도처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인간도 창조했다고 가르칩니다.
2003년 미국 펜실바니아 주 피츠버그에 있는 멕시칸 식당에서 음식을
먹은 손님 3명이 사망했고, 555명이 A형 간염에 걸렸습니다.
원인은 감염된 양파였다고 합니다.
양파 때문에 죽는 인생, 최첨단 과학문명국 미국 거기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도 믿고 살 수 없고, 과학도 믿고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고 사는 것입니다.
시편 121편의 시인은 노래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이 밝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사45:18).
2.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사45:21).
45:21을 보면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49:6에도“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했습니다.
이 두 구절을 합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되 세계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 우리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건져내는 것,
불길에 휩싸여 죽어가는 사람을 구해 내는 것,
달려오는 기차에 치여 죽게 된 사람을 살려내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를 살려내셨습니다.
악의 불길에 싸여 타 죽어가는 나를 건져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사람들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단순 명료합니다.
삼보일배를 할 필요도 없고 도통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믿기만 하면 됩니다.
못된 짓만 골라하다 붙잡힌 강도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법정은 그의 죄가 너무 큰 탓으로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예루살렘 법정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는 날 그 강도도 함께 처형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가 예수님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생각하소서.”
그 뜻은 “나는 예수 당신과 당신의 나라를 믿습니다.
나도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십시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누가복음 23:43에 나옵니다.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숨지기 직전 예수를 바라본 강도, 숨을 거두기전 그 나라를 원했던 강도, 그에게 주님은 구원과 나라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믿는 것입니다.
이사야 55:7을 보면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했고, 사도행전 16:31을 보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을 다 믿으시지요. 지금 “믿습니다”라고 고백합시다.
저와 여러분과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삽시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성경이 밝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사45:18).
2.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사45:21).
3.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46:3,4절).
3-4을 보면 “네가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했습니다.
여기 품는다, 안아준다, 업는다는 것은 모성애와 같은 사랑으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태어나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어머니의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주시고 지켜 주십니다.
신생아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신생아의 엄마가 품에 안고 모유를 먹인 아이와 간호사가 품에 안고 우유를 먹인 아이를 비교했더니 엄마가 안고 모유를 먹인 아이가 소화도 잘 시키고 발육도 좋았습니다.
자원봉사자가 신생아를 안고 우유를 먹이고,
침대에 누인 채 우유를 먹이는 실험을 했습니다.
안고 우유를 먹인 아이가 소화도 발육도 좋았고, 성격도 좋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긴 사람이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성격도 좋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머니의 사랑으로 안고, 업어서 기우십니다.
이사야 40:11을 보면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아버지를 떠난 아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냥 떠난 게 아닙니다. 떠나지 말라는 아버지의 권고도 무시했고,
돈까지 몽땅 챙겨 떠났습니다. 배신자였고 불효자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을 기다립니다.
보나마나 돈 떨어지면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날마다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아버지 마음속엔 배신감, 불효자의 태도, 탕진해버린 재산,
이런 것들은 자리 잡지 않습니다. 오직 아들뿐입니다. 돌아만 오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용서입니다. 이것이 지키시는 마음입니다.
성경 인물 가운데 인생을 아주 고단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얼른 생각나는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는 정말 험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유복했지만 장성해서 형 에서와 아버지를 속여 장자권을
차지하려다 형의 미움을 사서 밧단아람으로 쫓겨 갑니다.
그 후 20년 타향살이를 합니다.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후에도 시련이 계속됩니다.
가장 사랑하는 요셉을 형제들의 모함으로 잃었습니다.
나중에 바로 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창47:9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기에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그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임종 직전 요셉과 그의 두 아들을 축복할 때 뭐라고 고백합니까?
창48:15~16 “ ...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 ”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죄와 허물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영원토록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좋으신 하나님을 누구와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서 광 교 회 [瑞光敎會]는 상서로운 빛이 비취는 교회,
하나님의 빛이 임하는 교회입니다.
서 광 교 회 는 ‘희망이 있는 좋은 일이 일어나는 교회’입니다.
“유다 사람들에게는 서광이 비치는,
기쁘고 즐겁고 자랑스러운 날이었다.”
(에스더 8:16, 표준새번역).
첫댓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우리을 구원하여 주시고 지커주신데 감사합니다 ~
집사님! 항상 멋지십니다
집사님과 권사님!
글구 손자 손녀 아들들과 며느리
늘 행복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