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결자웅(一決雌雄) - 한 번에 우열이나 승부를 결정하다.
[한 일(一/0) 결단할 결(氵/4) 암컷 자(隹/6) 수컷 웅(隹/4)]
암컷과 수컷을 아울러 雌雄(자웅)이라 한다. 정확하게는 날짐승의 암수를 말하고, 소와 같은 길짐승의 암수는 牝牡(빈모)라 일컫는다. 모두 암컷을 앞세웠는데 음양과 관련된 용어에는 음이 먼저인 것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상상의 동물 鳳凰(봉황)과 麒麟(기린)은 앞의 것이 수컷이다.
암수를 한꺼번에 나타낸 것은 멀리 詩經(시경)에서 등장하니 역사가 오래 됐다. 小雅(소아)편에 암수의 양떼를 以雌以雄(이자이웅)으로 표현했고, 검은 까마귀 암수를 알 수 없다는 誰知烏之雌雄(수지오지자웅)이란 유명한 말도 같이 나온다. 그런데 자웅을 겨루다, 자웅을 다투다란 말은 莫上莫下(막상막하)의 우열을 가리는 승부에서 많이 사용된다.
암수가 승부를 겨루지는 않을 텐데 여기서의 자웅은 밤과 낮을 뜻한 데서 왔다고 풀이한다. 天地(천지)와 日月(일월) 등과 같이 서로의 부족한 면을 보완하는 존재로 밤과 낮이 번갈아가며 세상을 차지하니 一進一退(일진일퇴)하는 것으로 봤다는 이야기다. 어떻든 자웅을 겨루어 승부를 결정짓자는 뜻으로 사용된 예는 ‘史記(사기)’의 項羽(항우) 본기에서 볼 수 있다.
처음 천하통일한 秦始皇(진시황)이 죽은 후 군웅들이 할거하다 楚(초)의 명문 출신 항우와 하급관리였던 劉邦(유방)이 일으킨 漢(한)나라의 쟁패로 좁혀졌다. 초기에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던 항우는 주위의 조언도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나가다 유방에 점차 밀렸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오랫동안 서로 대치하며 승부를 내지 못하자 모두가 시달렸다. 장정들은 행군과 전투로 고달팠고, 노약자들은 물길로 물자를 수송하느라 기진맥진하자 항우가 유방에게 말했다. ’천하가 지난 몇 년간 흉흉한 것은, 우리 두 사람 때문이었소(天下匈匈數歲者 徒以吾兩人耳/ 천하흉흉삭세자 도이오량인이), 그대 한왕에게 도전해 자웅 가릴 것을 원하니(願與漢王挑戰決雌雄/ 원여한왕도전결자웅), 더 이상 백성들을 고달프게 하지 말기를 바라오(毋徒苦天下之民父子爲也/ 무도고천하지민부자위야).‘ 힘이 산을 뽑는 항우와 대적할 수 없는 유방은 웃으며 힘으로 겨루지 말고 지혜로 다투자고 답했다. 모사들의 도움을 받아 꾀로 나간 유방이 한나라로 통일한 것은 물론이다.
세력이 엇비슷하여 큰 차이가 없는 것을 어금버금하다거나 어금지금하다고 한다. 팽팽하게 양립되어 있을 때는 龍虎相搏(용호상박)이나 雙璧(쌍벽)을 이룬다고 많이 쓴다. 문제는 이럴 때 나란히 존재하기보다 제일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중심부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퉜던 逐鹿(축록)은 왕권을 상징하는 사슴을 쫓는다는 뜻이었다. 이 때는 서로 싸우고 멸망시켜야 나라가 존속되었기에 불가피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엔 민주적인 투표로 지도자를 선출한다. 그런데도 죽기 살기로 상대방을 헐뜯고, 정권이 바뀌면 또 싸우니 일결로 승복하는 수가 없을까.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