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대학에서 공부한 한국인과 태국 유학생 출신 영주권자 중 절반 이상의 영어능력이 기준미달”이라는 결과가 발표됐다. 실망스럽지만 충격적인 내용은 아니다. 이미 한인 커뮤니티에서 한인 유학생 출신들의 영어 실력이 수준급인 경우가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 잘 알려져 있다. 호주에서도 졸업과 영주권 취득 후 주류사회 직종 진출이 어려워 대부분 한인 커뮤니티에 머물러 있는 현실이 영어 소통 능력의 암울한 현주소를 설명한다. 한 예로 시드니 소재 유명대학 회계학과 졸업 후 여행 가이드를 하는 사례 등 영어교육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이번 주 호주 매스컴에 크게 보도된 이 논란은 저명한 인구사회학자 봅 비렐 교수(모나쉬대)가 최근 발표한 논문에 근거한 것이다. 기술 이민 유입 증대의 문제점 등 많은 이민 관련 연구를 통해 영향력이 막강한 오피니언 리더인 비렐교수는 논문에서 1만2천여명의 유학생 출신 영주권 취득자 중 34%가 영어수준이 형편없다고 지적했다. 이중 중국계 유학생의 기준 미달은 43.2%에 달했고 유감스럽게도 한국과 태국 유학생은 절반 이상이 수준 이하라는 판정을 받았다.
대표적 ‘고비용, 저효율’ 사례
작년 한국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게 “한국인의 영어 능력은 비즈니스 활용에 낙제점 수준”이라며 대학생들의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해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해 달라고 요청했다. “영어를 생활화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영어구사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데 중점을 둔 시스템을 개발해 달라”는 간곡한 읍소였다. 한국만큼 영어 교육에 많은 비용을 들이고 안달복달하는 나라는 없다. 2004-05년 한국인 토플 응시자는 10만2천여명으로 전체의 18.5%로 세계 1위였고 토익, 토플 등 영어평가에 연간 7천억원 이상을 소비했지만 평균 점수는 중하위권이었다. 중학-대학 과정의 10년간 1인당 평균 영어투입시간은 1만5천여 시간이며 영어 사교육 비용은 연간 14조원(일본 5조원) 이상이었다. 그러나 효과는 한심스럽다. 2006년 IM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영어구사능력은 61개국 중 35위였다. 2005년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지역 본부 수가 홍콩 1167개, 한국 11개로 비교조차 안됐다. 영어 교육 투자는 세계 최고지만 실력은 밑바닥인 셈이다. 고비용 지출, 저효율성의 대표적인 사례다.
낙제 수준인 한국인의 생활(실용) 영어 부족 문제는 표현(의사 소통)을 못하는 언어 교육은 이제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냉엄한 현실 인식에서 접근해야 한다. 스포큰 잉글리쉬(spoken English) 능력이 없는 한국내 ‘점수 따기’ 위주의 주입식 교수법이 계속되는 한 이번 결과에서 나타난 것처럼 해외에서 써 먹지 못하는 ‘기준 미달 대졸자’를 양산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이 결과로 거의 모든 해외한인사회에서 상당수 한인 대졸자들이 주류사회 진출의 한계에 직면하고 전공을 못 살린 채 한인사회 (자영업) 직종에 국한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생활영어에 강한 인도와 필리핀인은 현지 공무원 등 주류 진출이 비교적 수월하다. 바로 평이한 실용 영어(plain English)에 능숙하기 때문이다. 이들보다 한국인 대졸자들이 학벌, 지식우월을 주장해 봐야 ‘우물안 개구리의 큰소리’로 치부될 뿐 이다. 써먹지 못 한 채 ‘실력 있다’고 강변해본들 상대적으로 콤플렉스만 커진다.
“언어 때문에 주류사회 장벽 못 넘어”
한국 정부가 ‘아시아 금융 허브’를 발표했을 때 많은 외국기업인들이 비웃었다. 언어소통의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드웨어만으로는 ‘공염불’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도시를 자처하는 서울에서 조차 영어 소통이 어려운 실정은 외국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환경 저해 요인이다. 이런 이유로 다국적 기업들이 아시아 본부 선정에서 서울 보다 홍콩 싱가폴 동경 시드니 상해를 선호하는 것이다. 인터넷이 공기처럼 필수 요건이 된 마당에 영어는 더 이상 외국어 교육이 아닌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심각성을 인식해야 하고 효율적, 실리적으로 접근 해야 한다.
영어는 논리적인 특징과 비교적 간단한 문법이 장점이다. 복잡한 동사 변화 등 독일어와 비교하면 쉽게 수긍이 간다. 또 영어는 근대 세계사를 주도했고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영국문화의 특징인 평등성(equality)과 보편성(universality) 개념이 강하게 배어있는 언어다.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일단 듣고 말하는 능력(listening ability)이 조금씩 늘어가면 현지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영어 실력이 증진된다. 현지인의 생활, 문화, 취미, 시사 토픽 등 관심사와 일반 상식이 보완되어야 언어 소통능력이 배가 된다. 리셉션이나 파티 등 사교 모임에 가 보면 이 점의 중요성이 금방 드러난다. 날씨, 고향, 가족관계, 취미 등 기초 대화 다음에 더 이상 진전이 없기 때문에 한국인들만 ‘따로’ 모이는 어색한 광경이 자주 목격되는 것이다. 마치 구석에 모여 독립운동이라도 모의하듯이.
영어 교육에서 열린 마음, 원어민의 소리(발음)에 귀를 기울이는 어린 아이와 같은 오픈된 자세가 필요하다. 물을 흠뻑 빨아 들이는 스펀지 같은 태도를 가져야 ‘발음 흉내내기’에 유리하다. 선입견, 두려움과 체면, 무분별한 반미(서구문화 배척) 감정, 불필요한 민족의식(내셔날리즘),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 문화적 우월감과 비교감정, 쓸데없는 권위의식 등은 외국어를 배우는데 방해되는 ‘심리적인 장애 요인’이다. 한국인 대졸자 중 영어 실력이 부진한 사람들의 특징은 이런 장애요소가 가득하다는 점이다. 또 한국내 학교(초중등) 영어 교육에서 원어민 교사가 부족하다는 여건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영어권 해외교민 중 영어교습 능력이 있는 인적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는 효율성, 비용 그리고 동포 격려 차원에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새 과학기술을 배우려고 모든 것을 혁신하는데 여념이 없는 한국인들이 지적 경쟁력 향상과 우리 문화 알리기의 지름길인 영어 능력 배양에서 도전 정신 없이 관례 타령, 현실 답보만 하고 있는 것이 필자의 눈에는 ‘불가사의’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