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4일, 이용호 게이트
검찰이 2001년 9월 4일 G&G그룹 회장 이용호를 계열사 전환사채 680억 원을 횡령하고, 보물선 사업
등을 미끼로 주가를 조작, 250억여 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와 더불어 3대 게이트 중에 하나로 권력형 비리의 집결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김대중 정권 당시 3대 게이트의 주역들 좌로부터 이용호,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는 광주상고 출신으로, 버스회사 경리로 시작해서 가스충전소 등을 운영하며 재산을
늘리다가 세종산업개발을 설립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특히 분당의 부동산 개발로 대박을 친 사업가
였다. 구조조정의 귀재라고 불릴 만큼 사업가로서의 기질이 있었지만 횡령, 배임 등으로 29차례나 입건
되었던 전력이 있었으며, 결국 위 사건이 터지면서 징역이 선고되었고 그 후로도 여죄로 추가 기소되기도
했다.
이용호 게이트는 1999~2000년 검찰과 금감원이 이씨의 주가조작과 상호신용금고(현 저축은행)에서 받은
불법 대출을 눈감아 준 데서 시작됐다. 1998~1999년 KEP전자, 인터피온, 레이디가구 등 상장기업들을
잇달아 인수했던 이씨는 인수자금을 동업자인 김영준가 소유한 대양상호신용금고에서 불법 대출했는데
검찰과 금감원이 알고도 덮었다는 것이다.
검찰과 금감원의 무마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이용호는 1999년 6월부터 주식시세조종
또는 주식불공정거래 혐의로 금감원 조사를 받게 되자 당시 계열사인 인터피온 사외이사로 있는 도승희를
통해 이수동씨에게 사건해결을 부탁했다. 이수동은 1967년부터 김대중의 개인 비서일을 하다가 당시
아태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호형호재 하는 사이였던 도승희의 부탁을 받은 이수동은
금감원 부원장보 김영재를 이용호에게 소개시켜 준다. 그리고 그 직후인 1999년 12월 이용호씨에 대한
금감원의 조사는 무혐의 또는 경고 처분으로 종결됐다. 그리고 이용호는 이수동과 도승희에게 각각
5000만원을 감사의 뜻으로 전달하였다.
2000년 5월 9일 서울지검은 이용호를 회사자금 횡령혐의로 긴급체포하고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다.
하지만 이씨는 다음날 곧바로 석방돼 의혹을 낳았다. 이용호는 김태정 전 검찰총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했고 김태정은 1억 원을 받고 임휘윤 서울지검장에게 청탁을 한 것이었다. 이후 7월 25일에
내사 종결되었다.
즉 이용호 게이트는 2000년 5월 서울지검 특수2부의 `이용호 봐주기 의혹`에서 출발, 검찰 간부들의
비호설, 조직폭력배 출신 사업가 여운환의 로비스트 활용설, `이용호 리스트`와 관련한 정·관계 직접
로비설, 이권사업 확장 과정에서의 금융권의 비호설, 국정원 간부의 비호설 등 각종 의혹이 혼재된
사건으로, 이씨가 불과 3년여 만에 1000억 원대의 거부로 성장한 배경에는 지연·학연 등으로 얽힌 폭넓은
정·관계 인맥의 조직적인 비호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었다.
이용호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2001년 8월 재개되었고, 9월 4일 이용호의 구속과 함께 회사 사무실과
계열사를 압수 수색해 회계자료를 확보했다. 얼마 후 이씨 사건은 정치쟁점으로 비화했다. 서
울고검과 서울지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 정치권 실세 비호설과 검찰 수뇌부 외압설이 제기된
것이다. 외압설은 검찰의 축소·은폐 의혹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아태재단이 이 사건에 관련됐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후 여론이 들끓자 대검은 9월 21일 특별감찰본부를 설치했고, 한편 10월말에는 정치권에서 이용호
게이트를 특검으로 처리할 것을 합의했다.
이에 따라 구성된 차정일 특별검사팀은 2001년 12월 11일부터 수사를 착수하여 2002년 3월 25일 최종
발표에 이르기까지 105일간의 힘든 시간을 보냈다. 특검팀은 대통령과 검찰총장 주변 인사들의 비리
혐의를 밝혀내는 등 굵직굵직한 수사 성과를 거둬 지난 1999년의 ‘옷로비 특검’과 ‘파업유도 특검’ 등 세
차례의 특별검사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 대통령 처조카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
등 대통령과 검찰총장의 친·인척과 측근을 잇따라 구속했다. 그 여파로 신 전 검찰총장과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현직에서 물러났다.
특검팀의 개가는 수사 개시 20일 만에 여운환으로부터 로비 명목으로 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이기주
전 한국통신파워텔 사장을 구속하면서 시작됐다. 특검팀은 이어 한국전자복권과 리빙TV의 전직 간부들의
금품 수수 사실을 밝혀내며 이용호 로비 의혹의 윤곽을 그려 나갔다.
특검 수사의 1차 하이라이트는 2002년 1월 13일 신 전 총장의 동생 승환을 구속한 것. 특검은 신씨에게
작년 5~8월 이용호로부터 금감원과 은행 등에 부탁, 쌍용화재를 인수하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세 차례에
걸쳐 6600만원을 받은 혐의를 적용, 구속했다. 차 특검이 “영장이 발부되기 전날 밤잠을 못 이뤘다”고
회고했을 만큼 특검 수사의 성패를 가르는 분수령이었다. 승환이 구속되자 신승남 당시 검찰총장은 결국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신승환을 구속한 뒤 특검 수사는 속도를 내며 거침없이 나갔다. 신승환이 이용호씨의 로비스트로 고용된 뒤
검찰 간부들과 수시로 접촉하고 일부 검사들에게 전별금까지 전달한 사실도 밝혀냈다. 특검팀은 작년
9월 이용호씨 구속 이후 잠적, 핵심 공범으로 지목됐던 D금고의 실 소유주 김영준을 끈질긴 추적 끝에
2002년 1월 16일 전격 검거했다.
특검은 2월 1일 진도 앞바다 보물 발굴사업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샀던 이형택이 보물사업 지분 15%에
대한 대가로 국가정보원과 해군 등 국가기관에 보물 발굴사업 지원을 요청한 혐의를 밝혀내고 구속했다.
이후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이형택을 고(故) 엄익준 전 국정원 2차장에게 연결해준 사실이
드러나 경질됐다.
2월 28일에는 ‘동교동의 영원한 집사’로 불리면서 정·관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가 이용호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밝혀내고 구속했다. 이에 따라 이용호
사건은 단순한 주가 조작 사건이 아니라 대통령 처조카와 가신(家臣)이 연루된 대형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성격이 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수동의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군 수뇌부과 방송국 인사 청탁 서류, 언론개혁 문건 등이 발견돼
이씨의 국정 개입 의혹과 아태재단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한편 한나라당이 그 동안 배후 `몸통`이라며 영문 이니셜로만 거명되던 K·K·J를 김홍일 민주당 의원과
권노갑 민주당 고문과 정학모 LG스포츠 단장이라고 실명을 공개하면서 정국은 새로운 대치상황으로 치달았다.
비리의 주역들, 좌로부터 이수동 아태재단 상임이사, 신승남 검찰총장, 김대웅 고검장.
세 명 모두 같은 전라도 출신으로 신승남과 김대웅은 서울 법대 2년 선후배 사이이고 이들과
이수동은 1998년 전라지역 모임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