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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 정상에서 조망, 앞은 계족산 남릉 847m봉, 멀리 가운데는 소백산 형제봉
매화 향기에
쫓겨서 물러가는
추위여라
梅が香に追ひもどさるる寒さかな
――― 바쇼
▶ 산행일시 : 2015년 3월 28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4명
▶ 산행거리 : 도상 13.5㎞
▶ 산행시간 : 8시간 13분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
▶ 구간별 시간
00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52 –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正陽里) 왕검성주차장, 산행시작
09 : 17 - 새재, 능선마루
09 : 45 - 암릉
10 : 08 - 계족산(鷄足山, △890m)
10 : 23 - Y자 갈림길
10 : 38 - Y자 갈림길(830m)
11 : 00 - 안부
11 : 35 - 응봉산 주릉, △840m봉
11 : 50 ~ 12 : 04 - 811m봉, 점심
12 : 45 - 안부
13 : 20 - 응봉산(鷹峰山, △1,013m)
14 : 27 - 994m봉, Y자 능선 분기봉
15 : 10 - 덕가산(△832.2m)
16 : 13 - Y자 갈림길
16 : 42 - 546m봉
17 : 05 -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津別里) 벼리골(別梨谷) 텃말(基村), 산행종료
1. 옥동천 주변, 건너편은 마대산 자락
▶ 계족산(鷄足山, △890m)
계족산은 주로 정양 왕검성주차장에서 왕검성(정양산성)을 거쳐 남릉을 오르거나 가래골로 가
서 서릉을 오른다. 더산 님과 나는 계족산을 오르기로 하고 오지산행 주력은 응봉산 주릉을 중
심으로 ┏┓자 모양의 산행을 두 차례 하기로 한다. 아무래도 원근 조망은 암릉 섞인 계족산 서
릉이 ┏┓자 지능선보다는 나을 것이다. 오랜만에 강신(降神, 강신도 결국 발품의 소산이다)한
더산 님은 나와 ‘아름다운 동행’한다.
계족산 자락의 왕검성 가기 전 산릉 끄트머리에 있는 ‘정종대왕 태실비’를 알현하려고 했으나
응봉산 정상에서 주력과 만나기로 했던 터라 촌각의 여유도 없다. 계족산 정상 또한 가장 짧은
거리인 가래골로 가서 서릉으로 오른다.
이곳 ‘정종대왕 태실비’는 조선 제2대 왕 정종의 태실이 아니다.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태실이
다. 임금이 죽은 뒤 붙이는 호칭을 묘호(廟號)라 한다. 조(祖)와 종(宗) 등이 있는데 흔히 창업이
나 국난을 이겨낸 공이 있는 임금에겐 조를, 덕으로 나라를 잘 다스린 임금에겐 종을 붙인다. 중
국의 『예기(禮記)』에 따른 것이다. 정조는 본디 ‘정종’으로 묘호가 정해졌으나 뒤에 격을 높여
‘정조’로 고쳤다. 이 태실비를 세울 당시(순조가 즉위한 1800년)에는 정종이었다(한겨레신문, 20
06.1.19.자).
그런데 2012.8.19.자 「시사저널」은 ‘왕이 되고 싶지 않은 왕’이었다며 조선 2대 왕 정종에 관
한 기사를 쓰면서 곁들인 사진(사진은 연합뉴스 제공이다)으로 이 영월읍 정양리에 있는 ‘정종
대왕 태실비’를 올렸다. 기자로서 무지한 일이다.
왕검성주차장을 지나려하자 산불감시원(인근 주민인 듯한 차림새여서 몰라보았다)이 승용차에
서 내리더니 우리를 불러 세우고 화기를 소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묻고 제발 산불을 내지 않도
록 절대 조심하시라며 신신당부한다. 우리 또한 산불감시요원이나 다름없다며 그런 염려와 걱
정일랑 아예 딱 붙들어 매 두시라 혓바닥 물집 잡히게 얘기했다.
산자락 밭두렁 지나 가래골로 들어간다. 날등인 서릉 한번 올려다보고 얌전히 등산로 방향표지
따라간다. 봄 가뭄이다. 골짜기가 바싹 말랐다. 와폭이 빙폭으로 남았다. 그 빙폭 상단을 건너고
갈지자 그리며 사면을 오른다. 이제 골짜기를 벗어나는가 싶더니 빙폭인 직폭과 만난다. 등로
는 왼쪽 지계곡으로 완만하게 오른다.
봄날이다. 홑옷 팔 걷어붙이고도 비지땀 흘린다. 버릇이다. 괜히 좌우사면 풀숲 기웃거린다. 뚱
딴지(돼지감자라고도 한다) 밭 지나고 능선마루다. 조금 더 가서 만난 이정표에 ‘새재쉼터’라고
한다. 등로 주변은 생강나무와 올괴불나무가 많다. 꽃 피운 그들로 인해 온 산이 환하다. 올괴불
나무는 꽃으로 알아본다.
쉬운 산은 없으렷다. 점점 가팔라지더니 암릉이 나온다. 입구에 밧줄 가로로 매단 것을 미루어
암릉을 막아놓았는데 흐릿한 인적이 보이기에 나라고 못 갈쏘냐 하고 바위모서리 움켜쥐고 덤
빈다. 그런데 이다음의 슬랩을 트래버스 하기가 어렵다. 아깝다. 손맛 다시다말고 뒤돌아선다.
왼쪽 사면으로 난 등로 따라 길게 돌아간다.
다시 능선마루. (약간 무디지만) 나이프릿지 구간이다. 철주 박고 굵은 밧줄이 매어져 있어 재미
가 덜하다. 암봉 돌아 야트막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밧줄 잡고 한 피치 바짝 오르면 계족산 정상
이다. 왕검성 쪽에서 올랐다는 일단의 등산객들이 하필이면 삼각점에 자리 펴고 정상주 즐긴
다. 계족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그새 주변 나무들이 자라서 발돋움해도 감질만 난다.
계족산은 산줄기가 닭발처럼 퍼져 나갔다고도 하고, 산의 모습이 닭발처럼 생겼다고도 하고,
봉우리가 6개인데 닭이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도 한다. 정양산(正陽山)이라고도 한다.
2. 오른쪽이 원주 백운산, 치악휴게소 가는 중앙고속도로 차창 밖 풍경
3. 치악산 산군, 치악휴게소 가는 중앙고속도로 차창 밖 풍경
4. 생강나무꽃
5. 생강나무꽃
6. 앞은 계족산 남릉 847m봉, 그 뒤는 태화산
7. 소백산 형제봉
8. 소백산 형제봉
9. 노루귀꽃, 꽃이 진 다음에 잎이 나는데 잎이 노루귀 모양이다
계족산 산행로, 검은색은 오지산행 주력 산행로
▶ 응봉산(鷹峰山, △1,013m)
우리는 정상 바로 비킨 공터에서 휴식한다. 그러고 보니 산행시작 후 첫 휴식이다. 더산 님은 뜻
하는 바가 있어 술을 삼간 지 100일이 되었다고 한다. 계속 삼가려고 한단다. 나 혼자서 탁주 한
병을 비우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더산 님이 영희언니가 다수 일행을 위하여 준비한 포도를
몽땅 가져와버렸다. 훌륭한 간식거리다.
응봉산을 향한다. 뚝 떨어졌다가 그만큼 올라 Y자 능선 분기봉이다. 오른쪽이 계족산 남릉 주등
로다. 왼쪽은 응봉산으로 이어지는데 인적이 뜸하다. 우리는 왼쪽으로 간다. 엄청 가파르게 떨
어진다. 선답의 발자국계단으로 내린다. 노루귀꽃 군락지다. 카메라 앵글 들이대면 저마다 살
래살래 고개 저어대는 통에 엎드려 잠잠하기 기다리려니 무릎 다 까진다.
다시 Y자 갈림길. 오른쪽으로 꺾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내기가 어렵다. 드물게 산행표지기가 보
이지만 그의 행로를 몰라 선뜻 따르지 못한다. 엷은 능선마루 찾으려고 사면을 누빈다. 거의 수
직사면이다. 이쪽 능선에서는 저쪽 능선이 더 통통한 것 같고, 그래서 저쪽 능선으로 애써 가면
이쪽 능선이 더 통통한 것 같다. 우왕좌왕한다.
바닥 친 안부 지나고 꾸준한 오르막이다. 겨우내 눈에 짓눌렸던 낙엽이 마침내 눈 녹아 풀려났
다. 발이 낙엽에 푹푹 빠진다. 가급적 낙엽이 덜 쌓인 데를 골라 걷는다. 더산 님(지난 동아마라
톤대회 풀코스에 참가하여 3시간 22분에 주파했다)과 함께 산행할 때마다 적잖이 힘이 든다. 오
늘도 그렇다. 더산 님이 내 뒤에 오면 내가 몰이 당하는 것 같고, 더산 님이 내 앞에 가면 내가
끌려가는 것만 같다.
펑퍼짐한 사면 쓸어 △840m봉이다. 삼각점은 예미 440, 2004 재설이다. 오지산행 주력은 거리
원골에서 남서릉 타고 이 봉우리로 올랐다. 그들의 발자취 쫓아 더덕이삭 줍는다. 811m봉. 쉬
느니 점심밥 먹는다. 나는 김밥 한 줄과 날계란 두 개다(라면 끓일 때 넣으려고 가져왔는데 일행
과 멀어지는 바람에 날로 먹었다).
이맘때 응봉산 주릉은 황량하여 참 멋이 적은 길이다. 키 큰 나무 숲길은 사방 조망 가리고, 고
지라 풀꽃이 피기에는 아직 이르다. 어쩌면 조망이 트일까 우회로 마다하고 봉봉 오르려니 억
센 잡목 숲 헤쳐야 한다. 그러나 빈 눈이다. 886m봉 내리막은 가파르기가 수직이다. 사태 나듯
낙엽에 냅다 쓸려 내린다. 응봉산 정상이 저기 공제선인가? 땀범벅 하여 다가가면 저만치 물러
나 있다.
오기가 발동하여 내쳐 오르려니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러고서 응봉산 정상이다. 정상 표지석이
덩그렇게 놓여 있고 삼각점은 흙 속에 묻혀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흙 파내어 지명 등급 확인
하기조차 귀찮다. 주력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초혼처럼 소리쳐 불러보고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휴대전화 눌러보아도 감감 무소식이다 (그들은 응봉산 정상을 우리보다 2시간이나 늦은 15시
19분쯤에 올랐다).
10. 노루귀꽃
11. 응봉산 가는 도중에
12. 응봉산 정상
13. 태화산
14. 덕가산 정상에서
15. 앞은 마대산 자락, 뒤는 태화산
16. 앞이 우리가 가야 할 능선
17. 옥동촌 주변, 건너편은 마대산 자락
▶ 덕가산(△832.2m)
서행한다. 재재작년 늦가을에 더산 님이 대물 손맛 본 곳이 여기던가 저기던가 애꿎은 덤불 막
헤친다. 958m봉 넘고 헬기장 지나 Y자 능선 분기봉인 994m봉이다. 잘 난 길은 왼쪽으로 가고
우리는 오른쪽 사나운 길로 간다. 등로 주변에는 겨우 겨우살이를 따려고 톱으로 베어 자빠뜨
린 우람한 참나무가 나뒹군다. 그 사람은 이래저래 오래 살겠다. 우리가 뱉는 욕까지 먹으니.
957m봉 내림 길은 가파른 돌길이다. 쭈욱 내렸다가 넙데데한 사면 한참 지나면 영진지도 상의
△832.2m봉이다. ‘덕가산’이라 새긴 정상 표지석이 있다. 옥동천과 건너편 마대산이 한눈에 보
이는 경점이다. 목 추긴다. 며칠 전부터 물을 얼렸다 가져오기 아주 잘했다. 물 맛 난다. 덕가산
한 차례 내리면 바위 섞인 나이프릿지가 이어진다.
특히 왼쪽 사면은 절벽이다. 회양목이 울타리로 자라고 밧줄로 가드레일 둘렀지만 사진 찍으려
고 다가가기 오금 저린다. 그래도 암봉인 봉봉을 들려 온 길 갈 길 살피고, 마대산을 또 바라본
다. 자연성곽인 암벽과 맞닥뜨리고 오른쪽 사면으로 길게 돌아 오른다. Y자 능선 분기봉. 왼쪽
은 덕산을 가고, 오른쪽은 벼리골 텃말로 뻗어 내린 능선이다.
여태 덕산을 갈까 말까 했던 마음고생을 이제 그만 하련다. 지금 시각 16시 13분. 덕산을 가기
에는 시간이 너무 늦다. 텃말 하산완료 예정시각을 17시로 정했다. 텃말 가기에도 바쁘다. 아마
일반등산로는 왼쪽 능선 잠깐 내려 마리골로 났을 법하고, 우리가 가는 능선에는 인적이 흐릿
하다. 암봉을 만난다. 의외다. 암만 둘러보아도 외길이다. 직등해야 한다. 손맛 짜릿하게 본다.
오르고 내리는 봉봉마다 대단한 첨봉이다. 651m봉, 546m봉이 그렇다. 마른 낙엽에 미끄러져
뒷걸음까지 쳐야 하니 고도 두 배를 오르는 셈이다. 무덤 나오고 등로가 풀린다. 산릉 끄트머리
에 거의 다 와서 철조망이 막는다. 오른쪽 가파른 생사면을 낙엽 지쳐 내린다. 이럴 수가! 더산
님과 내가 내리려는 도로 공터에 우리 노란 버스가 떠억 하니 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기사님에게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점심 먹은 곳이라며 대장님께서 이곳에 가 있으라
고 했단다. 지푼개에서 응봉산을 오른 그들은 아마 주릉을 잠시 돌다가 지푼개로 내릴 터이니
그곳으로 가자고 했으나 곧이듣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더산 님은 암반 훑는 계류에 알탕한다.
휴대전화가 연결되고 그러면 그렇지 차 몰고 지푼개로 올라오라고 한다.
지푼개까지 콘크리트 포장한 도로다. 이 고장에는 ‘개’자 돌림 지명이 몇 개 된다. 지푼개 말고
도 도락개, 산양개, 돌앞개 등이 있다. ‘개’는 ‘시냇물이 흐르는 곳’을 말한다. ‘지푼개’는 아마 ‘깊
은 개울’이 원래 뜻이 아닐까 한다(서울의 야주개, 배오개, 애오개 등의 ‘개’는 고개(峴)을 말한
다). 지푼개에서 응봉산 남쪽 골짜기가 모두 만난다.
아침에 보고 이제야 보는 일행들이다. 반갑다. 아까 덕가산 넘기 전에 상고대 님과 전화할 때 그
음색으로 내 알아보았다. 즐거움이 넘친 산행이었다.
18. 응봉산
19. 마대산
20. 우리가 가야 할 능선
21. 노루귀꽃, 산행 내내 동무했다
22. 올괴불나무꽃(早咲瓢簞子, Lonicera praeflorens), 올벼처럼 빨리 꽃이 핀다고 하여 ‘올괴불
나무’라고 한다. 괴불은 어린이들이 주머니 끈 끝에 차는 노리개를 말한다. 꽃이 괴불처럼 생겼다.
23. 올괴불나무꽃
24. 개나리꽃(이하 우리동네에서 찍은 꽃임)
25. 제비꽃
26. 목련
27. 산수유
28. 매화
29. 매화
30. 매화
31. 매화
응봉산 산행로, 검은색은 오지산행 주력 산행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