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3일 아침! 배덕환 아나운서로부터 울먹이는 목소리의 전화음성이 들렸다. “이형! 나, 어제 저녁 한잠도 못 잤어요. 뉴스 못 들었어요.” 앞뒤도 없이 그리 얘기를 하니 깜짝 놀랐다. 틀림없이 큰 일이 난 것이다. 자초지정을 물었다. "그 애기봉! 그 애기봉 성탄추리 철탑이 철거 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지난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잠 못 이루다가 잠에서 깨었을 것 같아 이토록 일찍 전화 올린 거예요. 올해 82세가 된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 애기봉의 성탄추리 철탑이 먼저 가다니..... " 한참동안 얘기가 이어진다. 애기봉 성탄추리 첫 점화 중계방송 45년의 추억과 오늘 배덕환 아나운서 배덕환 아나운서와 필자 이장춘에게는 어느 누구보다도 애기봉 성탄추리의 추억이 깊다. 그 애기봉 성탄추리를 세우던 그때 군 추럭 GMC를 타고 3시간 여의 비포장도로를 터덜기리며, 그 추위를 참으며 애기봉을 갔다. 남북 전 국민 아니, 전 세계인에게 남북이 함께하는 그곳 임진강 가에 비치는 불빛을 알리려고 갔다. 71년에 세워진 성탄추리라고 한 기록도 있지만 그때 고쳐 세웠는지는 몰라도 첫 점화일자는 분명히 1969년 12월 18일이다. 그날 그 중계방송을 했고 필자에게는 그 기록이 생생한 녹음 테잎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40년이 되었던 2009년 그에 관한 글을 처음으로 올렸다. 지금 듣는 목소리는 그때 그 중계방송 배덕환 아나운서 목소리다. 그 춥던 겨울 두명의 병사가 천둥벼락에 맞아 쓰러졌고 뒷날 사망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그 일, 누구보다도 마음이 여리고 감성적인 배덕환 아나운서는 필자가 첫 글을 올렸을 때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저녁에 전화가 걸려와 40년의 추억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배덕환 아나운서는 필자와 만나는 자라리면 그 얘기를 화제로 올리고 때로는 많은 분들이 만나는 공개석상 에서도 기회 있을 때 마다 배덕환 아나운서가 프로듀서 이장춘과 함께 겪었던 그때 그 일을 얘기한다. 그 애기는 그때 쓴 그 글을 밑에 연결하는 것으로 가름한다. 그리고 아래 사진은 1960년대 배덕환 아나운서다. 이곳 성탄추리가 섰던 애기봉에는 통일전망대라는 이름으로 관광지가 조성되었다. 수많은 남녀노소, 국내외 동포들, 그리고 나아가 수많은 외국인들도 이곳을 다녀가며 그 철탑들 보아왔고 해마다 성탄절을 전후해서는 평화의 불빛이 켜졌다. 남북이 함께 볼 수 있는 평화의 상징 「애기봉 성탄추리」는 비무장지대에 세워진 최초의 구조물이다. 그 성탄추리는 종교나 사상적인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남과 북이 이념을 초월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최초의 상징물이다. 그 불빛이 중간에 잠시 꺼진 적도 있었다지만 45년간 평화의 상징물로 국민의 마음을 담아 그곳을 지킨, 역사적인 산물이다. 남북이 하나로 된 그날에도 한민족의 뜻을 담아 영원히 켜져야 할 불빛이다. 꼭 그런 형태로 세워져야 할지는 잘 모르지만 그런 정신을 담은 상징물은 거기에 있어야 한다.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배던환 아나운서 2017년 광복절 아침편지
굿모닝.ㅡ?!ㅡ새벽-5시에 일어나 72년전. 12살때ㅡ종이가 없어 방 문살에 붙어 있는 창호지를 뜯어 한번도 보지 못했던 태극기를 그려 양손에 들고 무조건. ㅡ장지동에서 10리갈이나 되는 송파. 나의 초등학교로 달려가 목청이 터져라고. 만세. 만세. 또 만세 를 외쳐 볼렀던 생각이나ㅡ 고이 간수해 두었던 태극기를 꺼내어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아파트 창문을 열고 걸어 놓으며 잠시 감회에 젖어 봤습니다ㅡ
지금 내 나이 84세ㅡ 세월이 가도 많이도 흘었나 봅니다ㅡ이 형.ㅡ!ㅡ당신과 나ㅡ 어쩌다. kbsㅡ방송국에서의 인연으로ㅡ 애기봉. 성탄추리 점등식 축하 중계 방송을 하며 북한동포의 안녕과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중계방송을 했던 기억에 잠시 내 마음이 숙연해 지기도 했소이다. ㅡ이형. 늘 우리를 위해 노심초사 애써 주는 당신의 정성과 사랑에 항상 감사 하고 있소이다.ㅡ
이형 이제 우리 나이 이많큼 됐으니 스스로 건강 챙기기에 욕심을 내도 괜찮을것 같구려.ㅡ우리 건강하게 또 만납시다ㅡ 오케이ㅡ?!ㅡ사랑하오.ㅡ덕환.ㅡ(방긋) (하트)(오케이)(굿)(음표)ㅡ
2017년 8월 15일 광복절 72주년의 날 배덕환 아나운서 현관문에는 '국가유공자집' 표지판이 붙어 있었고. 아파트 배란다에서는 태극기가 비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1969년 12월 18일이면 제가 모국을 떠나 있던 때였네요. 그후 다시 돌아와 40여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지만, 불과 반세기도 안되는 세월을 못견디고 철거되고 말았나봅니다. 말없이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는 예측할 수 없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참모습을 알 수가 있지만 두분 께서 느끼시는 애기봉 철거에 잠 못이루셨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뉴스를 통해 듣기는 하였지요. 이정부 아나운서님 글
배선배님은 애기봉의 역사와
함께, 눈물겨운 민족의 역사와함께 가고계십니다. 애기봉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흐르는 역사와 함께 단지 조금 먼저 떠나 훨훨 가고 있는 것입니다 .
이정부 아나운서 2017년 8월 15일 글
선배님 덕분에 북새통의 歸京 작업을 무사히 끝내고 이제 초죽음의 整理 작업으로 들어갑니다. 春夏秋冬放送은 近 現代史를 한 눈에, 내 주머니에서 꺼내 보며 살게 해주는 ... 그리하여 生의 虛妄 함 마저 確實히 輕減 해주는 最高의 代案 言論 입니다. 創設者 李長椿 先輩 님 과 參與 하시는 모든 분 萬歲 !!!
초가을에 南草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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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봉 성탄추리 첫 점화 중계방송의 추억/1969년 http://blog.daum.net/jc21th/17780197 배덕환아나운서 특집대담 PBC 평화방송 김지현 아나운서, 한국아나운서클럽 http://blog.daum.net/jc21th/17782188 광복 72년, 달라진 경축식, 문재인 대통령 경축사, 배덕환 아나운서 글 http://blog.daum.net/jc21th/17783229
방우회 이사 춘하추동방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