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참 평화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루카 12,49-53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예수님께서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는 말씀은 이단 종파에서도 즐겨 인용하는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한부 종말론이나 그릇된 맹신에 빠졌을 때,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당연히 만류하고 반대하겠지요. 이런 경우에 이단자들은 이 말씀을 내세우며 가족의 박해에 맞서 싸우라고 가르칩니다. 심한 경우, 자해를 하겠다고 소동을 벌이면서 가족을 위협하는 방법까지 교육시킨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그들처럼 해석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하늘 나라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기에, 우리도 복음의 가르침과 충돌을 피할 수 없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은 복음의 말씀이 참 피곤하게 느껴집니다. 복음을 몰랐더라면 세상이 옳게 돌아가는지 아닌지 묻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으면서 혼자 적당히 편안하게 살 텐데, 복음은 우리를 그렇게 놓아두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게 살아가려면 악인의 뜻과 죄인의 길에 맞서야 하기 때문입니다(화답송 참조). 이러한 거부와 과감한 결단 없이는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없다고, 시편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는 반드시 크고 작은 갈등과 어려움은 물론, 많은 시련과 인내, 충돌과 좌절, 급기야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느님께서 새로운 힘과 마음을 넓혀 주시어 쉽고 편한 길만 선택하지 않고 외롭고 고독한 길도 마다하지 않을 은총과 용기를 주시도록, 오늘도 마음을 모아 기도드립시다.(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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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많은 능력을 받은 나」
어제 공항을 다녀왔습니다. 성지순례를 가시는 신부님께서 공항까지 데려다 달라고 해서 다녀왔지요. 신부님들의 짐을 싣고서 공항으로 가고 있는 중에 한 신부님께서 제 차 앞 유리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보더니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공해 차량이네요. 그러면 주차요금이 절반이죠?”
사실 저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습니다. 솔직히 차량을 구입할 때 저공해 차량 등록을 해주신다고 했는데 그 혜택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주차요금 50%의 혜택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공항에 그렇게 많이 다녔는데, 한 번도 그 혜택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몰랐기 때문이지요.
5년 넘게 타고 다닌 저의 차이지만 이러한 혜택을 가지고 있는 차인지를 몰랐습니다. 문득 우리 자신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능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깨닫지 못해서 ‘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께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창조하시면서 조치를 해놓았는데, 스스로를 깨닫지 못하고서 그저 힘들게만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무책임하게 이 땅에 내려 보내신 것이 아님을 굳게 믿으면서 주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는 만큼 자신의 행복도 커진다(제러미 벤담)>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루가 12,49-53)
あなたがたは、
わたしが地上に平和をもたらすために
来たと思うのか。
そうではない。言っておくが、むしろ分裂だ。
(ルカ12・49-53)
Do you think that I have come
to establish peace on the earth?
No, I tell you, but rather division.
(Luke 12:49-53)
年間第29木曜日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ネガ イ セサンウル ピョンハロッケ ハリョゴ
온 줄로 아느냐?
オンジュルロ ナヌニャ?
아니다. 사실은
アニダ。サイルン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ブニョルル イルキロ ワッタ。
(루가 12,49-53)
あなたがたは、
아나타가타와
わたしが地上に平和をもたらすために
와타시가 치조오니 헤에와오 모타라스 타메니
来たと思うのか。
키타토 오모우노카
そうではない。言っておくが、むしろ分裂だ。
소오데와 나이 잇테오쿠가 무시로 분레츠다
(ルカ12・49-53)
Do you think that I have come
to establish peace on the earth?
No, I tell you, but rather division.
(Luke 12:49-53)
Thursday of the Twenty-ninth Week in Ordinary Time]
Luke 12:49-53
Jesus said to his disciples:
"I have come to set the earth on fire,
and how I wish it were already blazing!
There is a baptism with which I must be baptized,
and how great is my anguish until it is accomplished!
Do you think that I have come to establish peace on the earth?
No, I tell you, but rather division.
From now on a household of five will be divided,
three against two and two against three;
a father will be divided against his son
and a son against his father,
a mother against her daughter
and a daughter against her mother,
a mother-in-law against her daughter-in-law
and a daughter-in-law against her mother-in-law."
2025-10-23「あなたがたは、わたしが地上に平和をもたらすために来たのではない。むしろ分裂だ。」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年間第2木曜日です。
御心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み心の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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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カによる福音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が地上に平和をもたらすために来たのではない。むしろ分裂だ。>
そのとき、イエスは弟子たちに言われた。12・49「わたしが来たのは、地上に火を投ずるためである。その火が既に燃えていたらと、どんなに願っていることか。50しかし、わたしには受けねばならない洗礼がある。それが終わるまで、わたしはどんなに苦しむことだろう。51あなたがたは、わたしが地上に平和をもたらすために来たと思うのか。そうではない。言っておくが、むしろ分裂だ。52今から後、一つの家に五人いるならば、三人は二人と、二人は三人と対立して分かれるからである。
53父は子と、子は父と、
母は娘と、娘は母と、
しゅうとめは嫁と、嫁はしゅうとめと、
対立して分かれる。」(ルカ12・4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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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のミサ・「今日の黙想」です。
イエスが平和をもたらすためではなく、分裂を引き起こすために来られたというみ言葉は、異端とされる集団などが好んで引用する箇所の一つです。いわゆる「時限的終末論」や誤った盲信に陥った時、家族がその事実を知れば、当然引き止め、反対するでしょう。このような場合、彼らはこのみ言葉を持ち出して、家族からの「迫害」に立ち向かえと教えるのです。ひどい場合には、自傷行為をもちらつかせながら騒ぎ立て、家族を脅すといった方法まで教え込むことさえあると言います。
私たちがこのみ言葉を彼らのように解釈す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しかし、神の国がまだ完成していないこの世を生きる上で、私たちも福音の教えとの避けられない「衝突」に出会うことがあります。そのため、時として福音の言葉が重荷のように感じられることさえあるのです。福音を知らなければ、世の中が正しいかどうかなど問うことも、関心を持つこともなく、自分ひとり、それなりに安楽に生きていけた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福音は私たちをそのままにはしておかないのです。神の御心に忠実に生きようとするなら、「悪しき者の計らい」や「罪人の道」に立ち向かわ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です(答唱詩編参照)。このような拒否と勇気ある決断なしには、真の幸福に至ることはできないと、詩編は私たちに教えています。
神の国のためには、必ずや大小の葛藤や困難、多くの試練と忍耐、衝突と挫折、そしてついには死に至ることさえあるかもしれません。神が私たちに新しい力と広い心を与え、安易な道を選ぶことなく、たとえ孤独な道であってもそれを厭わない恵みと勇気をくださるよう、今日も心を合わせて祈りまし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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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の御言葉を読み、福音に忠実に生きることの厳しさ、そしてそれに伴う葛藤を改めて深く考えさせられました。安易な道を選ばず、勇気をもって主に従う恵みをくださる聖霊、き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