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라폭(止拉浦)사원(5,210m)의 돌집과 천막 숙소
좀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니 저 멀리 강 건너에 디라폭(止拉浦)사원(5,210m)이 보입니다. 다리를 건너 카일라스 설빙이 녹아 흐르는 하천을 지납니다. 꽤 많은 숙소가 있는 마을에 도착합니다. 천막 숙소가 몇 채 있고 돌로 만든 집이 몇 채 있습니다. 그렇게 쉬면서 놀면서 왔는데 7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후 3시, 해는 중천에 떠 있지만, 날씨는 매우 쌀쌀합니다.
우리가 자는 숙소는 돌집입니다. 벽도 돌이고 침대 바닥도 돌입니다. 침대로 매트리스를 깔았지만 두께가 얇고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기울어져 있습니다. 침낭을 꺼내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바닥이 고르지 못해 몹시 불편합니다. 외양간도 이보다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격은 1인당 50원(약 1만원), 방 하나에 4만원입니다. 물가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쌉니다. 가이드는 불평을 아예 하지 말라는 듯 이런 방에 10명까지도 잔다며 큰소리칩니다. 그래도 천막에 자는 것에 비하면 천국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고승 고창바가 수행한 디라폭 사원
대낮이라 방이 갑갑하여 밖으로 나옵니다. 강 가까운 곳에 최신 시설로 만들어진 군부대 시설이 눈에 거슬리게 다가옵니다. 강 건너 비탈진 언덕에 타르초가 펄럭이는 디라폭 사원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고 보면 사원은 3개의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바이롱하(白龍河), 뚱롱하(東龍河), 줘마라하(卓瑪拉河)가 합쳐지는 곳에 위치하면서 맞은 편의 관음봉과 금강지봉, 보살봉을 바라보는 격입니다. 이 사원은 칼마파에 속합니다. 칼마파는 ‘영적 능력이 뛰어난 라마(승려)들은 다른 이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난다’는 환생설을 처음으로 확립했습니다. 디라폭은 원래 ‘흰 소뿔 동굴’이란 뜻입니다. 고승 고창바가 이 동굴에서 수행하다 카일라스를 일주하는데 갑자기 야크 형상을 한 타라가 나타나 길을 안내한 뒤 이 동굴로 사라져 버렸다는 전설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순례길에 만나 인도의 자이나교 신자들
한 시간 후에 카일라스 언덕을 올라갑니다. 아무리 올라가도 카일라스는 저 멀리 있습니다. 타르초가 걸려 있는 평지를 지나 바위 길을 한없이 올라가다 결국 카일라스 빙하가 흐르는 강가에 주저앉습니다. 신심이 깊은 몇 명의 인도인들이 강가의 돌을 헤치며 카일라스 가까이로 접근합니다. 인사를 나눕니다. 자이나교 신자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자이나교는 불교가 만들어지는 같은 시기에 바르다마나가 창시한 종교입니다. 불교와 모든 것이 비슷하지만 고행과 계율을 특히 중시합니다. 인도를 여행하게 되면 옷 하나 걸치지 않고 지팡이 하나에 물통을 달랑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살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비쩍 마른 바로 그 사람들이 대부분 자이나교 수행자들입니다. 자이나교에서는 엄격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이 있습니다. 살생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소유하지 마라 등등입니다. 이들은 개미 등 미물조차도 발에 밟혀 희생될까 봐 신발조차 신지 않습니다.
아! 왜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카일라스를 찾는가?
카일라스 봉우리의 눈과 빙하를 한없이 바라봅니다. 흐르는 물은 차갑기 그지없습니다. 물소리는 천지를 진동하듯 우렁찬 소리를 내며 힘차게 아래로 흘러갑니다. 누구도 한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시아 대륙을 적시는 그래서 수많은 인간과 생물이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강의 원천 앞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경외심이 솟아나고 자신도 모르게 무념무상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아! 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카일라스를 찾는지 절로 이해가 됩니다.
말을 타고 순례하는 인도인들
한 시간 가까이 묵상에 잠겨 있다 하산합니다. 마을 입구에 수많은 인도인들이 말을 타고 마을로 오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약 40여명의 인도인들이 오늘 이곳을 순례한다는 소식은 가이드를 통해 이미 들었습니다. 카일라스 순례 사흘간 말을 빌리는 값은 1,200원(약 24만원)입니다. 인도인 노동자들의 한 달 월급이 아직도 평균 5만원 미만인데, 말을 이용할 정도라면 아주 부유한 인도인일 것입니다. 마을 가까이 연결된 빙하에서 세수를 하고 이를 닦습니다. 이곳 디라북 마을 사람들은 이 물을 가지고 생활합니다. 너무 차가워 입안이 시리고 몸이 떨립니다.
맞은 편 텐트 식당을 찾아가 저녁을 먹기로 합니다. 그런데 맨밥이나 컵 라면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할 수없이 맨밥을 주문하고 가져간 고추장과 김으로 저녁을 해결합니다. 반찬이 없지만 고추장을 비벼 김으로 싸먹는 밥은 정말 꿀맛입니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주인의 딸인 꼬마아이가 우리 모습이 신기한지 연신 쳐다봅니다. 사탕을 주고 말을 꺼내지만 연신 부끄러운지 몸을 숨기고 훔쳐보기만 합니다.
달과 설봉, 내 생애 최고의 야경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빗소리에 잠이 들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옵니다. 시간은 늦었지만 아직 바깥이 훤합니다. 3단 짜리 우산을 꺼내 밖으로 나가니 아까 식당에서 본 아이가 우산이 신기한지 다가옵니다. 반갑게 맞아주고 우산을 씌워주니 너무 좋아합니다. 소똥을 모아 놓은 곳에 개 한 마리가 누워서 꼬리를 치며 반깁니다. 한 아주머니가 바로 숙소 옆에 수많은 야크들을 데리고 와 말뚝에 고삐를 매달고 있습니다.
침대에 누웠으나 잠이 오질 않아 밖으로 다시 나옵니다. 비는 그치고 달빛이 사방을 훤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카일라스 설봉 바로 왼쪽에 떠있는 볼록한 달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달과 설봉, 내 생애 최고의 야경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2009. 7. 31. 금)
디라폭 사원
마을 입구에서 본 카일라스 봉
디라폭 사원의 천막마을
카일라스 봉을 최대한 가까이하다
빙하가 강물이 되어 아래로 흘러간다. 수량이 엄청나다(불가사의)
휴식은 필수, 수많은 인도인들이 줄을 지어 나타난다
숙소인 돌방 문으로 내다본 카일라스봉
마굿간 보다 못한 돌집의 방
첫댓글 하하하...
첫번쩨 순례길에 그쯤에 텐트를 쳤었는데 밤새 엄청난 비가 내렸었습니다...
그래도 참 행복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