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질의와 응답 1041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 /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 2005-02-22. 요1:14, 요1:18, 요1:12-13, 창2:18, 창2:22, 사54:5, 렘3:14, 렘31:32, 호2:2, 호2:7, 고후11:2, 엡5:23, 렘31:9, 시103:13, 마23:9, 잠3:12, 말1:6, 히12:7, 잠23:22, 고전4:15, 고전11:7-9, 사4:1, 창3:16
오랫만에 질문 드립니다.
늦었지만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해도 주님의 축복속에서 보내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하나님은 남성,여성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분이신데 꼭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하나님이라 불러도 상관 없을 것 같은데요?
얼마 전 어린 조카가 하나님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데 왜 아버지라고 불러야 되냐고 저한테 물어봤는데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응 답>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 경우는 구약의 경우는 매우 드믈고 대개 신약의 경우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비롯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을 때,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호칭에서 아버지의 명칭이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요1:14,18). 하나님 안에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성령의 권능으로 사람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말하자면 그가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과정은 하나님께로서 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생명의 영원한 근원이 되시기 때문에 그가 세상에 오시기 이전에도 독생자이시며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이후에도 오직 한분 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아버지란 말은 어머니란 말과 대립되는 남성적인 의미가 주어진 의미에서 부쳐진 것이 아닙니다. 원래가 인류는 그 시초부터 부계사회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이 인류의 시조가 된 것처럼 인류사회는 아담의 혈통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란 인류사회에 있어서의 가부장적인 의미가 주어진 말이며 자기 생명의 근원이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인간적인 관계의 표현으로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으로 압니다. 아버지란 표현외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표현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더 깊고 오묘한 관계를 나타내는 호칭을 부를 수 있다면 우리가 지금 부르는 아버지란 표현보다 더 친근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 예수로 말이암아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어 하나님의 후사가 되며 이 후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아들이 된 자에게 주시는 후사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후사가 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호칭입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
***1041-1번. Re: 그분이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2005-02-24
하나님은 남성,여성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분이신데 꼭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하나님이라 불러도 상관 없을 것 같은데요..?
안녕하세요, 위 구절에 대하여 저의 의견을 말씀드려보고저 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맞습니다. 일부 몰지각한 여성신학 등의 영향으로 여성의 지위가 질서를 넘어선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경향은 부인 못할 사실입니다. 그들은 한쪽 성으로 치우친 것을 바로잡는 것이 마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가정과 사회의 민주화가 시급한 듯 문제를 제기하며, "가부장적"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면서 기존 남성위주의 권위주의 체제를 까부수어야 된다는 사고를 가진 자가 많습니다.
신학계에도 이 조류가 들어가 "왜 하나님이 꼭 부성이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으며, 하나님 어머니라고 호칭하는 교회들도 생겨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질서를 뒤엎는 마귀의 논리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맞습니다. 하나님은 남자를 지으시고, 그의 독처하는 모습이 보시기에 좋지 않아 '돕는 베필'로 만든 것이 여자입니다(창 2:18). 하나님은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신 후 그를 아담 앞으로 이끌어 오셨습니다(창 2:22). 결혼식 때 신부가 아비 손에 이끌려 신랑에게로 데려져 오는 것은 여기서 기인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남편이라 칭하셨으니 그는 교회의, 이스라엘의 남편이십니다(사 54:5, 렘 3:14, 31:32, 호 2:2,7, 고후 11:2, 엡 5:23). 이 말씀들은 절대 교회가 남편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이 아내가 될 수 없음을 뜻합니다. 그는 절대적으로 부성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아비라 칭하셨기에 그는 또한 아비인 것입니다(렘 31:9, 시 103:13, 마 23:9, 잠 3:12, 말 1:6, 히 12:7).
자식은 아비가 낳는 것입니다(잠 23:22, 고전 4:15). 생명이 아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어미는 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 국가를 '어미'에 비유하신 곳이 많습니다. 아비(하나님)의 법과 생명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왕, 제사장, 선지자라는 기름부음 받은 자들을 통하여 교훈되고 훈계되면서 그 백성 이스라엘이 보호 양육되었던 것입니다.
하도 시대가 희한해져서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려고 하고, 남성 또한 비뚫어진 여성인권 운동에 응해주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치인도 설 곳이 없고, 어떤 지도자나 지식인들도 말발이 서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데,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인간이 파괴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남자가 여자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하는 것이며, 여자는 남편을 주께 하듯이 섬기고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역할이 바뀔 수도 없을 뿐더러 바뀌어도 저주입니다. 제대로 돌아가지가 않습니다. 뿌리가 열매일 수 없고 열매가 뿌리일 수 없습니다. 뿌리가 열매더러 "너는 나 때문에 있는데, 나무 이름이 왜 너를 따라가니?기분 나쁘다" 할 수 없습니다. 사과가 열리면 사과나무이고, 배가 열리면 배나무입니다. 뿌리는 먹음직스런 열매가 열리는 데서 함께 만족하고 기뻐해야 할 뿐입니다. 열매는 자기 자신이 훌륭히 맺힐 대 비로소 뿌리를 높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남자가 제대로 제값을 해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여자가 제 몫을 잘 순종할 때 남자가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삼성 노트북이 세계를 석권하면 삼성 회사에 영광이 돌아가듯이 말입니다.
고전 11: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따라서 호주는 남자여야 하며(사과열매 열리면 사과나무라 부르듯), 여성일 수 없으며(여성은 말없이 양분 공급해주는 뿌리) 집안의 성씨는 남자의 성을 따라 씨가 되어 내려가는 것이 순리이지, 무지하고 용감한 정치인들의 주장처럼, 자녀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 시대에 들어가면(천년왕국) 최초에 그 인구 비율이 남자보다 여성이 많습니다. 흰무리에 여성의 비율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천년왕국은 자손만대가 죽음, 질병없이 번성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땅에 충만, 정복, 다스리라는 말씀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입니다. 이 때 이사야 선지자가 묵시받기를
사 4:1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로 수치를 면케 하라하리라"
새 시대에서조차 남자가 역시 가정의 기둥이 되고, 대표로서 불리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사람이 변할 수 없고, 하나님의 질서를 인간이 파괴할 수 없습니다. 말씀에 무지하고 말씀을 거역하는 영이 역사하기 때문에 가부장제의 악을 운운하며 여성이 당한 한을 풀겠다고 교묘히 페미니즘이 확대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도 정당치 못하다고 인정하시는 여성인권에 대하여는 남자가 앞장서 해결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여자가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것 자체를 악으로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선악과를 먹고 온 저주이기 때문에 당해야 합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다스리는 주체가 예수님과 같이 완전치 못하고, 불완전한 여자와 똑같이 불완전한 남자라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같이 타락하고 같이 저주를 받았어도 하나님은 남자는 땀흘려 밭갈아 일하라고 하셨고, 여자는 남편을 사모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으라 하셨습니다(창 3:16).
권력의 남용과 인권의 억압은 어느 시대든 있어왔습니다. 사단이 다스리는 타락한 죄악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더 사회적 약자, 억울한 입장이 되었을 것 또한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 죄악 세계의 모든 악의 구조를 "가부장제"로 돌리고 그로부터 해방을 받으면 참 자유가 얻어지고, 참된 인권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름다운 가부장제와 가정의 질서를 파괴하려는 간교한 사단의 수작일 뿐이라고 성경적으로 믿습니다.
사단은 이제 우리의 아비되신 하나님의 위치까지 애매모호하게 만들려고 신학계에 침투하여 혼란의 줄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기록되었으면 "아멘"하여 말씀대로만 하여 우리의 아비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의 남편 되시는 신랑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아름다운 신부로서 그분을 영접합시다. 할렐루야!
2005년2월23일 민병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