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52,7-10; 히브 1,1-6; 요한 1,1-18
+ 성탄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스물네 분의 형제자매님들이 세례를 받으시고 한 분의 자매님이 첫영성체를 하시는 뜻깊은 날입니다. 한 분 한 분께 축하 인사를 드리고, 가족들과 대부 대모님께도 축하를 드립니다.
한 사람이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태껏 살아왔던 삶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길로 가도 되고 저 길로 가도 되는 그런 길에서, 다른 길을 한번 걸어본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연의 연속이라고만 생각했던 삶의 길에서 누군가 개입하고 계셨음을, 누군가 끌어주고 계셨음을 고백하는 삶으로의 방향의 전환입니다.
덧없이 왔다가 덧없이 사라지는 인생이 아니라, 누군가의 부르심에 의해 내가 이 세상에 왔고 영원히 그분 품 안으로 가게 된다는 삶의 진리를 고백하는 일이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고 우리 아버지신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나를 당신께로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우리 가족이 그저 우연히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특별한 관계임을, 내가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 역시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관계들임을 받아들이는, 그러한 방향의 전환입니다.
이 방향의 전환은, 온 우주가 움직일 만큼 큰 것이기에, 나 혼자의 의지로 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은인들의 도우심, 그리고 그분들을 통해 나를 불러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당신의 아들딸로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시는 이 은혜로운 세례가 성탄절에 베풀어지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제대 앞을 보시면, 지난 4주 동안 우리를 기다림으로 초대했던 대림초 대신에 성탄 구유가 놓여있습니다. 특별히 이번 구유는 예수님의 성탄 안에 들어있는 부활의 신비를 함께 강조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 한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바티칸을 비롯하여 전 세계 모든 성당에 구유가 설치되고 가정에 구유를 놓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이 성탄 구유가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 아시는지요?
지금으로부터 801년 전인 1233년,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처음 시작하셨습니다. 당시에 이 조각상들을 어떻게 만드셨을까요? 놀랍게도 프란치스코 성인이 만드신 구유는 조각상을 쓰지 않았습니다.
나귀와 소와 건초더미가 실제로 등장했습니다. 사람들이 초와 횃불을 들고 모여 왔습니다. 성인께서 만드신 구유는 실제 동물과 사람들, 그리고 진짜 동물의 여물통을 가져다 놓은, 요즘 말로 ‘레알’ ‘찐’ 마구간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1236년에 돌아가셨는데요, 돌아가시기 3년 전 호노리오 3세 교황에게서 수도 규칙서를 추인받고 수도원으로 돌아오시던 중 그레치오라는 마을에 들르시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지를 방문한 적이 있던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레치오에 있던 동굴을 보고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의 동굴을 떠올리셨습니다.
성인은 그 마을에 살던 요한이라는 사람에게 부탁하십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자 합니다. 필요한 것 하나 갖추지 못한 그 갓난아기가 겪은 불편함을 최대한 생생하게 제 두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아기가 어떻게 구유에 누워 있었는지, 그리고 소와 나귀 옆에서 어떻게 건초더미 위에 누워 있었는지 그대로 보고 싶습니다.”
성인께서 보고 싶어 하셨던 것은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었습니다. “그 갓난아기가 겪은 불편함을 최대한 생생하게 두 눈으로 보고 싶다”는 것이 성인의 원의였습니다. 최초로 성탄 구유를 재현하면서, 성인은 불필요한 오해를 물리치기 위해 교황에게 먼저 허락을 요청하였습니다.
당시 프란치스코 성인은 무척 어려운 처지에 있으셨습니다.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당신께서 성지순례와 선교를 위해 자리를 비우신 사이, 수도원 형제들의 반목과 분열은 심해져 있었습니다. 성인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영적, 육체적 고통을 겪으며, 자신이 살아오면서 노력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의심과 회의를 갖게 된 시련의 때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성인은 음식뿐만 아니라 대화도 끊으며 고뇌하셨고, 가끔 성당 뒤 숲속으로 들어가셔서, 홀로 주님 앞에서 울면서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위안을 청하셨습니다.
마침내 성인은 ‘아기 예수님이 겪은 불편함을 보고자’ 구유를 만들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성인을 위로해주시는 길은 바로, 주님께서 겪으신 불편함을 드러내심으로써, ‘너의 어려움 가운데 내가 함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임을 성인은 깨달으셨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성탄 밤에 여러 지역에서 많은 형제 수사들이 그레치오에 왔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횃불과 꽃을 들고 왔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들과 함께 건초더미가 가득 담긴 여물통과 소와 나귀를 보았습니다. 이 성탄 구유 앞에 모인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새로운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그들 자신이 바로 성탄 구유의 일부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딱 한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바로 아기 예수님의 자리였습니다. 여물통에 건초더미만 있고 예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디 계셨을까요? 그들이 거행한 미사 안에 계셨습니다. 이로써 801년 전, 최초의 구유는 완전한 구유가 되었습니다. 성인은 예수님의 탄생을 연극처럼 재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실제로 탄생하시게 하였습니다. 미사 안에서 예수님은 성체로 이 세상에 새롭게 탄생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성탄 시기에 구유 앞에서 기도드립니다. 우리 마음이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구유 앞에서 기도하시고 마음이 평화로우시다면, 하느님의 선물로 그 평화를 간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만일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바로 아기 예수님께서 당신의 거처로 삼으신 불편한 구유라는 것을, 이 불편한 구유인 내 마음이 바로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곳임을 깨달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마을, 베들레헴은 ‘빵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많은 교부들은 이를 근거로 베들레헴이,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집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제대 앞에 있는 구유는 베들레헴 구유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 미사를 마치고, 세례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면 베들레헴은 어디에 있게 될까요? 예수님을 모신 나 자신이, 생명의 빵을 모신 집, 바로 베들레헴이 됩니다. 내가 베들레헴이 되고 내가 구유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당신의 거처로 삼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례 받으시는 우리 형제자매님들이 택하신 세례 성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은 세례 받으시는 한 분 한 분께 하시는 말씀이면서 동시에, 이분들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지금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4)
이재일 요셉 “주님은 나의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1)
권지수 힐데가르트 “주님의 결정을 나는 선포하리라.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시편 2,7)
송문수 미카엘 “주님께서는 의로우시어 의로운 일들을 사랑하시니 올곧은 이는 그분의 얼굴을 뵙게 되리라.”(시편 11,7)
최정우 라파엘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그분께서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시편 55,23)
잠언 (1)
염혜인 요안나 “인간이 마음으로 앞길을 계획하여도 그 발걸음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이시다.”(잠언 16,9)
지혜 (1)
이지연 안젤라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지혜 3,9)
이사 (1)
전미선 아녜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이사 43,5)
여호 (1)
최정후 다니엘라 “힘과 용기를 내어라. 무서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라. 네가 어디를 가든지 주 너의 하느님이 너와 함께 있어 주겠다.”(여호 1,9)
서간 (4)
방현주 루시아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1테살 4,17)
안은정 미카엘라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필리4,4)
한상은 안토니오, 윤명숙 프란치스카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8)
루카 (2)
김영희 마리아, 강동훈 안젤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요한 (3)
박일수 토마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김준경 요한보스코 김나연 율리아나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마태 (7)
허순영 미카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김윤호 베드로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마태 9,29)
벤통거루 로버트존 사도요한 “너희가 기도할 때 믿고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마태 21,22)
이주형 안젤라, 구경순 헬레나, 송지영 로사, 최은순 베로니카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
주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이루어지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성탄 구유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서한 "놀라운 표징"(2019년)
[교황 교서] 놀라운 표징(Admirabile Signum)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처음 구유를 재현하신 그레치오의 동굴
출처: Greccio: The Italian village that's home to the world's first nativity sce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