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 후 고려 왕실이었던 **개성 왕씨 일족에 대한 대대적인 살해와 탄압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 1.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조선이 건국된 직후, 고려 왕실의 후손들이나 왕씨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옛 왕조를 복구하려는 '복위 운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왕조인 조선 입장에서 고려 왕씨들은 언제든 반란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협이었습니다.
### 2. 살해와 박해의 과정
* **격리 및 처형:** 태조 이성계는 초기에는 왕씨들을 강화도와 거제도 등 섬에 모아두었으나, 이후 왕씨와 관련된 역모 사건들이 계속되자 이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대규모 희생:** 기록에 따르면 왕씨들을 섬으로 유인하여 배를 침몰시키거나 강제로 바다에 빠뜨려 죽이는 등 매우 잔혹한 방식의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당시 공식적으로 희생된 왕씨만 해도 150여 명에 달했다고 전해집니다.
* **성씨 변경:** 살아남은 왕씨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성을 전(全), 옥(玉), 김(金), 마(馬), 전(田) 등으로 바꾸고 신분을 숨기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 성씨들은 자세히 보면 '왕(王)' 자를 포함하고 있거나 왕(王) 자를 변형한 형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 3. 이후의 변화
* **태종의 완화 정책:** 시간이 흐른 후, 태종 이방원 대에 이르러 왕씨들에 대한 박해는 점차 완화되었습니다. 태종은 고려 왕조의 제사를 모시는 '숭의전'을 세우고, 성을 다시 왕씨로 되찾는 것을 허용하는 등 회유책을 펴기도 했습니다.
* **생존:** 모든 왕씨가 몰살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훗날 1413년(태종 13년)에는 생존해 있던 고려 왕손이 발견되어 조정이 떠들썩해지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일부 왕씨들이 숨어 지내며 명맥을 이어왔음이 증명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조선 건국 초기에는 정권의 안정을 위해 고려 왕씨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이 있었으나, 왕조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박해는 멈추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