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빛이라는 색채의 표현을 창조할 정도로 아름다운 파란색 바닷가와 하늘, 하얀 벽, 그리고 그리스 신화 등을 통해 우리에 알려진 나라, 그리스는 무엇보다 서양 역사의 근원지라는 점과 민주주의 발원지였다는 점만으로도 문화적인 탐구의 가치가 큰 나라다. 특히 동서양의 문화를 모두 갖추었다는 면에서 월드음악 이해의 순서에 있어서 우선권을 갖기에 충분하다.
기원전부터 침략을 받기 시작했던 그리스가 로마의 속주를 시작으로,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길고도 가혹한 압제기를 거쳐 세계대전 당시 강대국들의 권력 다툼의 희생되기까지, 그리고 1970년대 군부독재에 맞서는 민주화 투쟁 전선이 생성되기까지, 어쩌면 우리의 역사적인 상황과 유사한 점이 있기에 그리스의 문화와 음악은 한국의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그리스인들의 한은 유구한 역사에서 나오는 호방한 기질과 함께 때로는 상충하는 모습으로, 때로는 조화로운 모습으로 음악 속에 담겨 있다. 그것은 유럽 음악의 발원이 된 고대 그리스 음악과 이후 터키, 이란, 소아시아, 발칸반도를 비롯한 주변국들의 영향을 받아 대 동방권의 음악적 요소를 포함한다. 근대 그리스 음악! 20세기 초반 그리스인들의 음악은 역사적인 아픔과 함께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1922.
프랑스의 샹송Chanson, 이탈리아의 칸초네Canzone, 포르투갈의 파두Fado와 같이 그리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악 양식인 렘베티카Rembetika의 기원에 관한 연구는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나, 렘베티카에 관계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1922년이라는 해가 상징하는 근원적 의미를 간과하지 않는다. 1922년부터 1923년 사이에 터키와의 전쟁에서 패한 그리스는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살아왔던 에게 해 연안의 스미르나Smyrna(현재 이즈미르) 지역을 포기하고 이 땅에 거주하던 150만 명의 그리스인들을 그리스 국내로 강제소환하게 된다. 이들은 아테네Athens와 피레우스Piraeus로 거주지를 이동하지만, 패전의 아픔과 더불어 그리스 내 사회적인 불안은 이들을 도시 빈민층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렘베트rembet’라는 어원은 바로 이런 밑바닥 인생을 의미하는 터키어로 이 시기 렘베티카는 항구도시인 피레우스를 중심으로 한 피레우스파와 이즈미르 지역에 남겨지진 그리스·터키인들이 연주하는 스미르나파로 양분돼 발전되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렘베티카는 전후 난민들의 밑바닥 인생을 다루고 있는 피레우스파의 음악을 뜻한다.
이후 렘베티카는 피레우스 렘베티카를 정립한 마르코스 밤바카리스Marcos Vamvakaris와 양분되었던 렘베티카를 통합하며, 마르코스와 함께 초기 렘베티카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바실리스 치자니스Vassilis Tsitsanis에 의해 초기 형성기를 맞이하면서, 근대 그리스 음악의 초석이 된다. 이런 그리스 음악의 유산은 1950년대 이후 그리스인들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미키스 데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와 마노스 하지다키스Manos Hadjidakis 등의 걸출한 아티스트를 배출했으며, 마리아 파란투리Maria Farantouri, 멜리나 메르쿠리Melina Mercouri, 멜리나 카나Melina Kana 등 현대 그리스 음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알리고 있는 대형급 스타들의 활약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