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은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다. 사랑은 죄가 아니지만, 그 대상에 따라서 사랑도 죄가 되기도 한다. 바울은 마지막 시대의 현상을 지적하기를 (딤후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여기서 자기를 사랑하는 죄, 곧 이기심을 지적하고 있다. 모든 죄는 바로 자기 사랑 곧 이기심에서 시작한다. 여호수아는 나이 많아 자기가 죽을 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끼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에게 신신당부하기를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조심하여 사랑하고 섬기라 했다. 그리고 경고하기를
(수 23:12)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수 23:13)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물론 이것이 이민족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매는 것은 위험천만하고, 스스로 짚을 짊어지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혼인에 대한에 철저한 규칙이 있었는데 반드시 그 상대가 신분을 완전히 바꾼 다음에 결혼할 수 있었다. 이방인 포로와 결혼할 때 그는 “의복을 바꾸고” 자신의 과거와 단절한 후에 이스라엘 사람과 결혼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은 부담되는 일이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엣가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 명령은 신약에서 여전히 유효한 명령으로 남아 있다.
(고후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고후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같은 신앙 안에서의 결혼이 가장 안전하고 건강한 결혼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적당한 배우자를 찾을 수 없는 경우에 어찌해야 하는가? 상대방이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지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은,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 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명령을 따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안되는 사람과 결합한다면 분명히 그 사람은 올무와 덫과 채찍과 눈엣가시의 길로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다. 성장하면서 자라온 문화가 달라도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신앙이 다른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두 사람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다르고 종국에는 그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다. (암3: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라고 했다. 결국에는 서로에게 상처와 아픔만 남기고 헤어지거나 한쪽이 힘든 고난의 세월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 우리 하늘 아버지시여! 오늘도 새날을 허락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이 되게 하시고 같은 신앙, 같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멍에를 매게 하소서. 재림 청년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세상의 판단과 가치관이 아니라 신앙과 영원한 것들을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믿음과 지혜가 있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