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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복음서의 시작
(7월 6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56분)
연구 범위: 행 13:1~5, 13; 행 15:36~39; 막 1:1~15; 사 40:3; 단 9:24~27
기억절: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 15).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은 누구며 목적은 무엇인가? 어떤 복음서도 저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다. 오직 요한복음만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간접적인 표현으로 저자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요 21:20, 24).
그럼에도 정경은 초기부터 사도(마태, 요한) 또는 사도의 동료를 복음서의 저자로 가리켰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바울과 연결되고(골 4:14, 딤후 4:11, 몬 1:24) 마가는 베드로와 연결되어 있다(벧전 5:13).
마가복음의 저자는 자신을 밝히지 않지만 초기 교회의 전통은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여행에 동행하였고(행 13:2, 5) 후에 베드로의 동역자(벧전 5:13)가 된 요한 마가를 이 복음서의 저자로 여긴다.
이번 주는 마가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통해 그의 실패했던 초기와 이후의 회복에 관한 내용을 먼저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마가복음의 시작 부분으로 가서 이야기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마가의 이야기를 통해 선교사로서 실패했다가 회복한 경험이 어떻게 복음서의 기록으로 이어졌는지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실패했지만 이후에 복음서를 기록한 마가의 경험을 통해 은혜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느끼기: 예언을 주신 것처럼 우리의 인생 여정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음을 느낀다.
행하기: 마가에게 은혜가 필요했던 것처럼 오늘날도 필요한 은혜를 주변 사람에게 나눈다.
TMI 위로
2. 마가는 어떻게 해서 선교사업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까?(행 12:12)
*답: 바나바의 추천으로 동참했다.
3. 바나바가 마가의 가능성을 믿고 도와준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행 15:39)
*답: 가능성을 쉽게 무너뜨리지 않도록 가르친다.
4.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들은 무엇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까?(사 40:3)
*답: 구주가 오시는 것을 말한다.
5. 마가복음의 시작에서 예수님은 어떤 특별한 모습으로 나타나십니까?(막 1:1-13)
*답: 신성과 인성의 대조로 그분의 실상을 깨닫도록 한다.
6. 예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막 1:14, 15)
*답: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7. 첫째 천사의 기별이 마가복음의 복음과 평행을 이루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답: 동일한 복음이 계속되었고 계속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결론: 이름 없는 실패한 선교사였던 마가는 바나바의 도움으로 회복하여 성실한 동역자가 되었다. 초기교회 전통은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여행에 동참하고 후에 베드로의 동역자가 된 요한 마가가 마가복음을 기록했다고 말한다. 마가복음은 주님이 걸어가는 길을 보여주고 침례 요한은 그의 길을 예비한다. 침례로서 시작하신 그분의 여정은 예언의 성취를 통해 복음이 무엇인지 말하기 시작한다.
6월 30일(일) 실패한 선교사
사도행전 12:12을 읽어 보라. 사도행전은 마가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행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답: 마가라 하는 요한으로 소개하고 그를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했다. 그의 집이 교회 역할을 했다.
사도행전 12장의 사건의 배경으로 여겨지는 서기 40년 중반, 마가 요한은 젊은 청년이었다. 12절은 그를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기록한다. 그녀는 부유한 교회의 후원자로 사도행전 12장을 통해 잘 알려진 기도 모임을 자신의 집에서 연 사람일 것이다. 베드로의 감옥 탈출과 그 이후의 행동, 그리고 헤롯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베드로와 왕 사이의 놀랍고 심지어 우습기까지 한 대조로 가득 차 있다. 이 이야기에서 마가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지만, 사도행전은 이 시점에 그를 소개함으로써 이후의 바나바와 사울과의 관계를 준비한다.
사도행전 13:1~5, 13을 읽어 보라. 마가 요한은 어떻게 바나바와 사울과 관계를 맺었으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행13:1~5],13]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ㅜ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답: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할 때 마가가 동행했으나 밤빌리아 버가에서 돌아갔다.
사도행전 13장은 서기 46년경에 시작된 사울과 바나바의 첫 번째 선교여행을 기록한다. 5절이 되어서야 마가의 이름이 겨우 등장하지만, 단순한 조력자 또는 수행원이었다는 기록에 불과하다. 더 이상 아무런 기록이 없는 그 청년은 13절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만 쓰여 있다.
위험과 도전으로 가득했을 선교 사업이겠지만 그의 생각도, 감정도 그리고 떠난 이유도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단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는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길 수밖에 없다. “마가는 두려움과 낙담에 압도되어 주의 사업에 온 마음을 다해 헌신하려던 목적에서 한동안 흔들렸다. 고난에 익숙하지 않은 마가는 그 길의 위험과 궁핍으로 낙심하였다"(사도행적, 169)라고 엘렌 화잇은 기록했다. 마가는 그런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던 것이다.
<교훈> 마가복음의 저자로 여겨지는 마가는 사도행전에 그 이름이 등장하지만 특별한 설명 없이 선교활동의 위험과 고난으로 중도에 포기한 선교사로 묘사된다.
<부가설명> ‘마가’라는 이름은 ‘큰 망치’라는 뜻이다. 마가복음 14:51,52에 베 홑이불을 쓰고 예수님이 끌려가는 행렬을 따르다가 이불을 벗어던지고 도망하는 한 청년을 마가라고 생각한다. 이 장면은 마가가 겁이 많고 나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마가는 선교 여행 때 버가에서 떠난 사건을 생각하면서 자기의 유약한 성질의 면모를 이렇게 이름 없이 행동만 그의 복음서에 기록한 것 같다. 그랬으나 마침내 바울과(딤후4:11, 몬1:24) 베드로에게(벧전5:13) 인정받고 예수님의 생애를 간단명료하게 복음서로 기록하는 복을 누린 주님께 충성한 성공적인 제자가 된 모습을 성경은 소개했다. 마가의 이런 행적은 그리스도인이 실패할 수 있으나 실패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림성도들의 신앙생활이 항상 성공적이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루시퍼의 세력은 매사에 참된 성도들을 공격하여 이긴다(단7:21, 계13:7). 그러나 성도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이김을 성도의 이김으로 얻는다(요16:33). 그래서 성도는 이긴자로 인정된다. 마가는 성령님의 이런 역사로 마침내 선교사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서 바울이 바나바와 다투면서 그를 버렸던 사실을 미안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내게 유익하다고 말하게 했다. 초기 교부들의 기록에 의하면 마가는 베드로를 수행하면서 통역자로서 선교 사명을 잘 감당한 선교사였다.
<영감의 교훈> 낙심하여 돌아간 마가 - “마가는 그 길의 위험과 궁핍으로 낙심하였다. 그는 좋은 환경 아래서는 성공적으로 일하였으나 흔히 개척자들이 당하는 반대와 위험 가운데서 훌륭한 십자가의 군병으로 고난을 견디는 데는 실패하였다. 그는 위험한 박해와 반대를 용감한 마음으로 맞아야 할 것을 배워야 하였다. 사도들이 앞으로 나아갈 때 마가는 더 큰 어려움을 우려하고 겁이 나서 용기를 완전히 잃어 앞으로 나아갈 것을 거절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사도 행적, 169~170).
<기도> 주님 저도 마가처럼 지치고 낙심하여 때로는 도망가려 하고, 뒤로 물러서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뒤로 물러가게 하는 마귀의 시험에서 도와주옵소서. 부끄럽고 연약한 저를 붙잡아 주셔서 하나님 편에 굳게 설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7월 1일(월) 두 번째 기회
사도행전 15:36~39을 읽어 보라. 바울은 왜 마가 요한을 거부했으며, 바나바는 왜 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었는가?
[행15:36~39]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답: 바울은 밤빌리아의 실패를 거론하면서 마가의 동행을 거절했다. 그러나 바나바는 그에게서 가능성을 봤고 기회를 주어 성공하도록 도왔다.
바울이 이 청년을 거부한 이유는 사도행전 15:38에 기록되어 있다. 선교여행에서 물러났던 마가는 사역에서도 떠나 있었다. 바울이 마가를 반기지 않은 것도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선교사 생활이란 모름지기 거칠고 힘든 것이지만 고대의 선교사역은 특히 그러했다(고후 11:23~28, 비교). 바울은 그런 힘든 일과 상황의 부담을 동료선교사들과 나누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빨리 사역에서 떠나버렸으니 그 사람은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선교팀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바나바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마가의 가능성을 보았고 이 청년을 배제하고 싶지 않았다.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 요한에 대한 심각한 견해 차이 때문에 결국 서로 갈라섰다. 바울은 실라를 선택해서 떠났고 바나바는 마가를 다시 선택했다.
사도행전은 왜 바나바가 마가를 데려가기로 선택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게다가 사도행전은 이 구절을 끝으로 그 두 사람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가에 대한 신약의 기록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 것은 흥미롭다.
골로새서 4:10, 디모데후서 4:11, 빌레몬서 1:24, 베드로전서 5:13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마가의 변화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내용을 암시하고 있는가?
[골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딤후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몬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벧전5: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답: 바울이 마가가 자기에게 유익한 동역자라고 고백했다. 베드로는 그를 ‘내 아들’이라고 했다.
마가에게 어떤 놀라운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바울은 자신과 그의 사역에 있어서 마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말한다. 바울은 마가를 동료 사역자로 여기며 디모데에게 그를 데려오라고 말한다.
베드로전서는 베드로 또한 마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바울과 베드로의 편지는 사도행전 15장의 경험으로부터 약 15~20년 후인 서기 60년대 초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마가는 그의 사촌(외삼촌-골4:10) 바나바가 주었던 신뢰에 힘입어 지난날의 실패에서 회복한 것이 분명하다.
<교훈> 바울은 마가와 함께하기를 거부했지만 바나바는 마가의 가능성을 다시 믿어주었다. 이후에 마가는 바울조차 신뢰할 수 있는 성실한 동역자로 변화되었다.
<부가설명> 세상은 예수님을 신실히 믿는 사람들을 탄탄대로로 걸어가도록 두지 않는다. 지금 자유 세계에서는 종교 핍박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초기 교회 시대에서는 성경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관용하지 않았다. 유대교인들이 앞장서서 핍박의 폭력을 휘둘렀고 덩달아 이방인 집권자들도 핍박의 칼을 휘둘렀다. 지금도 이슬람 나라들과 이방 종교가 지배하는 나라들에서는 물리적 핍박이 심하다. 신앙과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들에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환난과 핍박이 닥치면 처음 마가처럼 유약해서 넘어질 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부버 핍박받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순간순간 말씀에 굴복하는 삶을 훈련하기를 게으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두렵다. 유약하고 심지가 굳지 못한 모습을 스스로 자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을 주목하며 기도한다. 호흡마다 걸음마다 기도한다. 베드로가 그렇게 장담했으나 공포가 엄습할 때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떨리는 목소리로 예수님을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깨달았을 때 눈물로 회개했다(눅22:61,62). 우리의 회개를 언제나 받아주시는 우리 주님의 사유하시는 은혜 안에서 우리는 이긴자가 된다. 아니 이긴자로 여겨주신다. 바나바가 마가를 용납하여 기회를 줘서 그가 일어선 것처럼 우리를 이긴자로 여겨주시는 주님 안에서 일어서는 믿음으로 살아갈 뿐이다.
<영감의 교훈>
바울이 마가를 동역자로 영접함 - “하나님의 축복과 바나바의 현명한 훈련 아래 마가는 쓸모 있는 일꾼으로 자라났다. 바울은 후에 마가와 화해하고 그를 동역자로 영접하였다. 또한 바울은 마가를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역자요 ‘나의 위로’(골 4:11)라고 골로새인들에게 추천하였다. 바울은 그가 죽기 얼마 전에 마가에 대하여 자기의 ‘일에 유익하’(딤후 4:11)다고 말하였다”(사도 행적, 170).
<기도>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실패하고 넘어졌을지라도 다시 힘주시고 변화하게 도와주셔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도록 하옵소서. 저를 일으켜 주시는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게 하여 주옵소서.
7월 2일(화) 하나님의 사자
마가복음 1:1~8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누구이며, 그들은 무엇을 말하고 행하는가?
[막1:1~8]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침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시리라.
*답: 하나님 아버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사자 침례 요한이다. 요한은 구주 예수님을 소개한다.
이 구절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마가복음 1:1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 마가복음 1:2에 암시된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펴볼 주요 대상인 하나님의 사자, 기별자 침례 요한이다.
마가복음 1:2, 3에는 마가가 이 이야기에서 일어날 일을 설명하기 위해 구약에서 인용한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마가는 출애굽기 23:20, 이사야 40:3, 말라기 3:1의 세 구절을 함께 인용하였다.
출애굽기 23:20, 이사야 40:3, 말라기 3:1을 읽어 보라. 이 세 구절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출23:20]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사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말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답: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서 길(여정)을 준비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23:20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해 그들 앞서 보내실 천사에 대해 말한다. 이사야 40:3은 하나님께서 광야에 나타나시고 여호와의 길을 준비하신 것을 말한다. 말라기 3:1은 주님 앞에서 그의 길을 준비하는 사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세 구절은 모두 여정에 대한 것이다.
이사야서의 본문은 침례 요한의 사역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주님의 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길을 걷고 계신다. 이 길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속죄제물로 내어주시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십자가를 향한 이 여정의 의미를 부각한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에 도달하기 전에 많은 일이 일어나야 할 것이었다. 그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으며 마가는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다.
마가복음 1:2, 3절에서 침례 요한은 구약을 인용하여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한다(막 1:4).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처럼 옷을 입은(왕하 1:8) 그는 마가복음 1:7, 8에서 자기 뒤에 오시는 자신보다 더 큰 권능을 가진 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실 분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는 요한의 말은 그가 예수님을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는지 보여준다.
<교훈> 구약성경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 침례 요한에 대해 예언했다. 그는 자기 뒤에 오시는 권능의 주님의 길을 예비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한다.
<부가설명> 구주가 오신다는 것은 창세기 3:15에 예언된 복음이다. 때가 찼을 때 구주는 오셨다. 그분이 오시기 전에 길을 예비할 사자를 보내시겠다는 것도 예언해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살핀 사람들은 침례 요한이 구주 메시아의 사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예언을 자기식으로 읽고 해석한 사람들은 먼저 보낸 사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절하고 헤롯 왕은 그를 죽였다. 그러니 구주 메시아를 어떻게 맞을 수 있겠는가? 역사의 종말에도 예언으로 재림하시는 구주를 맞도록 사자도 보내고 징조도 주셨다. 그러나 이것에 유이하지 않으면 초림 때의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재림 맞을 백성들을 위하여 예언의 신의 증언을 주셨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을 일으켜서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게 하셨다. 우리는 이렇게 준비해주신 주님의 길을 잘 따라서 재림하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는 성도가 돼야 할 것이다.
<영감의 교훈>
주의 길을 예비했던 개혁자 요한 - “침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갖고 나아가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정의로운 자의 지혜를 향해 백성들을 돌이켰다. 그는 그리스도의 두 번째 나타나심을 위해 길을 예비하고자 백성들 앞에 제시해야 할 신성한 진리를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이 말세에 살고 있는 이들을 대표하였다. 요한은 개혁자였다. …그는 요한이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할 것과 태어나면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할 것에 대해서 말했다”(교회 증언 3권, 61).
<기도>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는 주님의 사랑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침례 요한과 같은 믿음과 기쁨으로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믿음을 더해 주옵시고 귀한 소식 충실히 증거하게 하옵소서.
7월 3일(수) 예수님의 침례
마가복음 1:9~13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 침례 받으실 때 누가 함께했으며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막1:9~13]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답: 침례 요한에게 침례 받으시고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셨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말씀하셨다.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침례를 주고 그분이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져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분 위에 임하시는 것을 본다.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 1:11)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이러한 사건들은 예수님의 침례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함께 임재하심으로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을 확증한다. 이 사건의 중요성은 마가복음 15장의 십자가 장면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십자가 장면에서도 침례 이야기의 요소가 많이 재현된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다. "몰아내다"는 헬라어 에크발로(ekballō)에서 유래한 단어로 마가복음에는 귀신을 쫓아낸다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된다. 성령의 임재는 예수님의 생애에 나타난 성령의 능력을 보여준다. 주님은 사역의 여정을 이미 시작하셨고 즉시 사탄과 대결하신다. 40일간의 시험, 들짐승과 함께 계심, 그분을 수종 드는 천사들은 이 투쟁이 어떤 양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가복음 첫 장면에서 특별한 점은 예수께서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갖춘 분으로 나타나신다는 점이다. 신성의 측면에서 그분은 메시아(그리스도, 막 1:1), 사자를 통해 선포되신 주님(막 1:2, 3), 요한보다 능력 많으신 분(막 1:7), 성령이 임재하신 사랑받는 아들(막 1:10, 11)이다. 그분의 인성은 침례를 베푸심이 마땅하나 오히려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심(막 1:9), 성령이 그를 몰아내심(막 1:12), 사탄에게 시험받음(막 1:13), 들짐승의 위협(막 1:13) 그리고 천사에게 도움받는(막 1:13) 장면에서 볼 수 있다.
왜 이런 대조가 나타나는가? 이는 우리의 주님이자 구세주이시며 우리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한 인간이며 우리의 형제요 모범이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실체를 가리킨다. 어떻게 하면 이 개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다만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이 진리가 보여주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경탄할 뿐이다.
<교훈> 침례는 사역의 시작을 확증하며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이신 예수님의 실체를 보여준다.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 속에 나타난 사랑에 감탄한다.
<부가설명> 우리의 침례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는 것을 표상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침례는 무엇을 뜻하는가? 마태복음에서는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마3:14,15)라고 기록되었다. 예수님의 침례는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지 않으시면 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인가? 예수님은 다른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10:38).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12:50). 예수께서 물로 침례를 받으셨으나 아직도 받아야할 침례가 있다고 하셨다. 그것을 이루기까지 답답하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침례는 예수님의 봉사의 의미를 계시하는 예식이었다. 그분은 죄를 처리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이다. 그리고 땅에 묻히실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실 것이다. 이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예수님의 봉사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의를 이루셨다. 그분을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서 옛사람이 죽어야 한다. 장사되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따라 부활해야 한다. 그러면 의를 이룬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영감의 교훈>
인간을 하나님과 연결하기 위해 인성을 취하신 하늘 사령관 예수 - “하늘의 위대한 사령관이신 예수님은 하늘 궁정을 버리고 저주로 마비되고 훼손된 세상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인성의 팔로는 인류를 두르시고 당신의 신성의 팔로는 전능하신 분을 붙잡으시므로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과 연결 되도록 하기 위하여 스스로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다. 우리의 구속주께서는 불멸의 생명을 얻기 위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보여주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교회 증언 4권, 563).
<기도> 우리를 위해 침례 받으신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받으신 침례에 동참할 수 있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생각과 행동에 함께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십자가를 생각하며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옵소서.
7월 4일(목)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마가복음 1:14, 15을 읽어 보라.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의 세 가지 내용은 무엇인가?
[막1: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답: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마가는 예수님의 단순하고 직접적인 기별을 요약하고 있다. 기별의 세 부분이 다음 표에 설명되어 있다.
범주 | 내용 |
시간 예언 | 때가 찼고 |
언약의 약속 |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
제자도로 부르심 |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
예수님이 말씀하신 시간 예언은 다니엘서 9:24~27의 70이레 예언이다. 이 예언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기름 부으심을 받고 사역을 시작하신(행 10:38) 그분의 침례로 성취되었다. 놀라운 70주의 예언은 다음 도표에 설명되어 있다.
다니엘서 9장의 70이레
7주+62주=483일
실제의 483년
이 예언에서 하루는 1년을 의미한다(민 14:34, 겔 4:6). 예언은 기원전 457년 예루살렘 회복을 완수하라는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의 칙령으로 시작되었다(스 7:). 69이레는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침례를 받으시고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으신 주후 27년까지 이어진다.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3년 반 후에 이루어졌다. 마지막 70번째 이레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은 후 이방인들에게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한 서기 34년에 성취되었다.
<교훈> 다니엘서 9:24~27의 70이레 예언은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성취되었다. 그것은 정확한 시간에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며 우리를 복음의 제자로 부른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근본이 말씀 하나님 여호와시다(요1:1, 사9:6 참고). 그런데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그분은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탄생하셨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육으로 나신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탄생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영이시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성령이 주장하는 사람은 육신에 있지 않다고 성경은 분명히 가르친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그러므로 우리가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우리의 인성으로 평가하면 오해하는 것이 아닐까? 그분의 몸은 우리와 똑같다. 상처 입으면 아프고 굶주리면 배고프고 주무시지 않으면 피곤하시고 그렇다고 그분이 육신에 속한 분이 아니다. 그분은 영이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바울도 예수님을 육체대로 알았다. 그래서 핍박했다. 그러나 이제는 육체대로 알지 않는다고 말하고 우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후5:15,16). 예수님을 성경이 가르치는대로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그분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신 것은 확실하지만 그분의 생명의 씨는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사망의 씨로 왔으나 그분은 생명으로 오셨다. 이 사실을 바르게 깨닫지 않으면 죄 가운데서 죽는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8:23,24).
<영감의 교훈>
70주일 예언 -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Artaxerxes Longimanus)의 조서에 의하여 완성된 예루살렘의 재건령(再建令)은 기원전 457년 가을에 내렸다. 이때부터 483년은 서기 27년에 해당된다. 예언에 따라 이때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아가 나타나야 하였다. 서기 27년 예수께서는 당신의 침례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그 후에 곧 당신의 봉사를 시작하셨다”(선지자와 왕, 698).
<기도> 하나님의 때를 이루며 순종하신 예수님의 약속하심과 사랑을 인해 감사합니다. 주님의 약속과 귀한 부름 앞에 부족한 종이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복음을 나누라는 부름을 따르기 원하오니 제 마음에 오셔서 약속하신 능력을 부어 주옵소서.
7월 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시대의 소망 10장 "광야의 외치는 소리"와 사도행적 17장 "복음의 사자들"을 읽어 보라.
첫째 천사의 기별인 요한계시록 14:6, 7이 마가복음 1:15의 예수의 복음과 평행을 이룬다는 것은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첫째 천사는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마지막 때에 영원한 복음을 세상에 전한다. 예수님의 기별과 마찬가지로 첫째 천사의 마지막 때 복음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마가복음 1장
범주
요한계시록 14장
때가 찼고(다니엘 9)
시간 예언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
(다니엘 7, 8)
하나님 나라가 가까움
언약의 약속
영원한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제자도로 부르심
두려워하며, 영광을 돌리라, 주님을 경배하라
첫째 천사의 기별은 다니엘서 8:14의 2,300일 예언에서 예언된 1844년부터 재림 전 심판이 시작된 것을 선포한다. 심판은 박해받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한다(단 7:22). 첫째 천사의 부름은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의 세력이 거짓 신을 내세워 그를 두려워하고 영화롭게 하며 경배하게 하는 마지막 때의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그분을 경배하라는 제자도로의 부름이다.
복음 선포가 시작될 때 마가복음 1장의 예수님의 기별이 다니엘서의 예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지구 역사가 끝날 때의 첫째 천사의 기별 또한 다니엘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마가복음 1:1~13의 침례 요한과 예수님을 비교하고 대조해 보라. 그들이 나타나는 방식에서 어떤 특별한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답: 침례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하여 보낸 사자이다. 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였다. 침례요한은 갑자기 광야에 나타나 회개의 침례를 전했고 예수님은 침례요한에게 침례 받으심으로 공중 봉사를 시작하셨따.
2. 침례의 의미를 생각해 보라. 로마서 6:1~4과 요한복음 3:1~8을 읽고 마가복음 1:9~13에 나오는 예수님의 침례와 비교해 보라. 어떤 유사점과 대조점이 보이는가? 이것은 침례의 의미를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답: 로마서는 침례의 구속적 의미를 가르쳐준다. 침례받는 형식은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를 이루기 위한 것이고 우리는 예수님이 이루신 의슬 받는 것이다.
3. 마가복음 1:14, 15의 예수님이 선포한 복음과 요한계시록 14:6, 7의 첫째 천사의 기별을 비교하고 대조해 보라. 이 기별을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사명을 더 잘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답: 예수님은 회개하고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전파하셨고 우리는 창조주를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아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으라고 전한다. 다 때가 찬 기별이다. 예수님은 70이레가 예언한 때에 오셨고 우리는 2,300주야가 찬 때에 전하는 기별을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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